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Interview

“‘오만 경영’ 낳는 재벌 세습 자진해서 그만두라!”

‘경제학 대부’ 조순 前 경제부총리

  •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오만 경영’ 낳는 재벌 세습 자진해서 그만두라!”

3/4
“‘오만 경영’ 낳는 재벌 세습 자진해서 그만두라!”
▼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까.

“특별한 방법이란 건 없어요. 그리고 대단한 정책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욕을 먹더라도 꾸준히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난초를 기르는 마음으로 중소기업과 내수시장을 키워야 합니다. 그거면 됩니다. 기술과 의지가 있는 중소기업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정부와 금융기관이 리스크를 나눠 가지면 됩니다. 지금은 아무리 좋은 기술과 의욕을 갖고 있어도 담보가 없으면 돈을 안 빌려주잖아요. 기다려주지도 않죠.”

▼ 과거와 같은 식의 경제 목표를 가지고도 고용을 늘리고 내수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과거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재벌을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재벌을 키워 고용을 늘리는 식이었죠. 그러나 이제는 재벌을 통한 고용이 한계에 달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 재벌 대부분은 기술집약적인 수준으로 진입했어요. 이제는 중소기업 육성, 내수산업 발전을 통해서만 고용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용이 늘어야 소득의 양극화도 막을 수 있고요. 고용이 안 되면서 소득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국가는 앞으로 더 지탱할 수 없습니다.”

▼ 고용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고용의 형태도 중요할 겁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맞습니다. 비정규직을 늘려놓고 고용이 늘었다고 말하는 건 잘못이죠. 정규직화한 고용이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체 근로자의 평균 급여를 낮추더라도 정규직을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창조와 파괴가 없는 경제

▼ 그 말씀은 성장과 복지 중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하느냐는 고민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다르죠. 성장과 복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장도 포기할 수 없어요. 다만 예전과 같은 고성장이 아니라 저성장이죠. 복지도 필요합니다. 특히 고령화 시대를 잘 대비해야죠. 앞으로 근로 임금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겁니다. 복지를 할 수 있는 재원도 점점 줄어들겠죠.

따라서 정부는 하루빨리 중장기 재정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앞으로 5~10년간 재정은 대체로 이 정도다’라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그것에 맞는 계획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획을 준수해야 해요. 그래야 불필요한 지출과 낭비가 줄어듭니다. 그렇게 마련된 재원을 복지에 쓰면 됩니다.

이게 바로 영국의 대처가 실시한 경제정책입니다. 지향점은 달라도 계획하고 실천하는 방법론은 배워야 해요. 잘 알려진 대로 대처는 1979년 총리가 되기 몇 년 전부터 ‘그림자 내각’을 준비하고 경제계획을 세웠습니다. 총리가 되면 뭘 어떻게 한다는 계획이 취임 전에 이미 다 세워져 있었어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떠오릅니다.

“방식은 비슷한데 목표가 다르죠. 그때는 성장과 수출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달렸어요. 제가 말하는 건 그런 계획이 아닙니다. 재정의 테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결정하고, 정부 수입과 복지 수요, 지출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우자는 겁니다.”

조 전 부총리는 이 대목에서 국가통계의 문제를 언급했다. 경제계획을 올바로 세우려면 확실한 통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 정부 부채, 공기업 부채, 지방정부 부채가 투명하게 관리되고 공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확한 통계의 필요성에 대한 얘기를 기사에 꼭 넣어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도 짚고 넘어갈까요.

“우리나라 30대 기업 명단을 한번 보세요. 지난 수십 년간 거의 바뀐 게 없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가진 기업이 들어오고, 나갈 기업은 나가는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야말로 창조와 파괴가 없는 경제구조입니다. 기업이 하나의 왕조처럼 세습을 해서 내려갑니다. 문제는 지위는 세습이 가능할지 몰라도 능력은 세습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오만한 경영, 잘못된 관행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같은 일도 다 그런 데서 비롯됐습니다. 재벌이 자진해서 그만둬야 합니다.

혁신과 파괴가 없는 자본주의는 정말 위험해요. 이대로 가면 결국은 스태그네이션(장기적 경기침체)으로 가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스태그디플레이션’(장기적 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이죠. 2013년 3월엔가 매킨지에서 이런 보고가 나온 적이 있어요. ‘한국의 진짜 위험은 북한 핵이 아니라 성장동력의 상실’이라고. ‘한국 기업들은 뜨거워지는 물에서 놀고 있는 개구리와 같다’는 내용도 있었어요. 제 생각도 마찬가집니다.”

▼ 너무 비관적인 얘기만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경제의 활로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거듭 강조하지만, 내수산업과 중소기업 육성입니다. 일본은 그나마 내수산업이 강한 덕분에 20년 넘는 장기 침체를 버틸 수 있었어요. 독일도 그렇고요. 솔직히 당장 우리 경제를 일으킬 해법이 제 머릿속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야 해요.”

3/4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목록 닫기

“‘오만 경영’ 낳는 재벌 세습 자진해서 그만두라!”

댓글 창 닫기

2021/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