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와 작약꽃, 1990년 경북 의성
오지기행은 큰 호응을 얻었으며 독자의 성원에 힘입어 전통의 지성지인 ‘신동아’로 옮겨 연재되기에 이른다. 강원도 비무장지대 오지에서부터 완도 앞바다 외로운 섬 노화도까지, 그와 함께 한 오지기행은 고향을 떠나온 보통 한국인의 큰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미디어에 비슷한 기획물을 등장하게 하는 도화선이 됐다.
그러나 그 많던 오지는 이제 없어졌다. 이후 우리는 동시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클래식 반열에 오른 노래의 배경과 현장을 기록에 남기기로 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신동아’의 ‘노래가 있는 풍경’이다. 송창식의 ‘고래사냥’, 김현식의 ‘골목길’, 김민기와 김광석과 양희은과 이문세 노래의 근원을 찾아다녔다.
이승을 떠나기 사흘 전, 그와 나는 이 연재물을 위해 부산을 찾았다. 수다를 떨며 유쾌하게 국제시장 골목을 걸어 다녔다. 부산 오뎅을 먹고 단팥죽을 나눠 먹고, 셔터를 연방 누르며 거리를 취재했다. 그런 그가 자다가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이승을 떠났다. 그렇다. 그는 갔다.
그러나 만일 저승에서 비슷한 일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나 해왔던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그가 내게 들려주었던 슬픔을, 기쁨을, 외로움을, 그리고 아름다움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런 그가 갔다. 피안을 향해 눈 덮인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다. 아아, 그는 갔지만 우리는 그를 보내지 아니했다. 그가 어디선가 짓고 있는 웃음을, 속삭임을 나는 깊은 우정으로 느낀다. 그의 이름은 권태균. 그는 쉰아홉 나이에 심장마비로 우리 곁을 떠났다. 오, 장려했느니, 우리 시대의 작가여!

소 주인, 1982년 경북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