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시위 속에 멍든 재정
주한미군 훈련 중 한국 여학생이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일어나자 좌파는 주한미군을 비난하며 철수를 주장했다. 한미동맹을 책임진 국방부는 가만히 있었다. 정부가 회장을 지명하는 과거의 향군이었다면 ‘역시’ 꼼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훈 회장이 이끄는 향군은 들고 일어났다. 좌파와 정부에 반대하는 친미 시위를 펼친 것.
향군과 정부의 대립은 노무현 정부 때도 반복됐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대해 국방부와 합참의 현역들은 ‘순순히’ 따라갔지만, 향군은 또 반대로 갔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서울시청 광장으로 몰려나온 것. 그때쯤 보수 언론은 전작권 전환이 한미연합사 해체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늙은 군인의 데모’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향군이 보수층의 여론을 선도한 셈이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명박 정부는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다”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그때도 향군은 제일 먼저 종북과 친북을 척결하자는 안보시위를 벌였다. 서울시청에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대로는 촛불을 든 젊은 층과 군복을 입은 노병의 물결이 교차했다.
박세직-박세환 회장 시절을 거치면서 ‘어용단체’는 정부 정책은 물론이고 종북·친북 세력에 대항하는 ‘보수운동단체’로 변모했다.
김대중 정부 이후 향군의 시위는 군사정부 시절의 관제 데모와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관제 데모는 정부 지원금을 받았으나 지금의 향군은 시위 비용을 자체 조달한다. 서울시청 앞에서 한 번 시위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억여 원. 향군은 매번 자체 조달했다. 그렇게 안보 단체로 자리매김하면서 향군은 안으로 급속히 썩어들어갔다. 불치병에 가까운 ‘암’에 걸린 것이다.
향군은 군사정부 시절 든든한 지원을 받았기에 상당한 자산을 갖고 있다.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이다. 중앙고속, 충주호유람선, 코레일이 운영하는 객차와 역사(驛舍) 등을 청소하는 향우산업, 군에서 나오는 고철을 처리하는 향우실업 등 8개 업체를 거느린다. 그 밖에도 여러 개의 수익사업을 운영한다.
‘아생(我生)’에 실패한 향군
그런 점에서 향군은 군인공제회(군공)와 비교된다. 군공은 현역들이 내는 회원급여금을 모아 투자하는 법인인데, 노하우가 뛰어나 투자 성공률이 꽤 높았다. “군공이 투자하는 곳은 따라가도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증권가에서 주목받는 큰손이 됐다. 군공은 민간 전문가를 영입해 투자했기에 건실한 기업을 거느린 그룹이 됐다. 향군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산을 잘못 운용한 것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던 2006년 향군은 사업개발본부를 만들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에 뛰어들었다. 군공은 인수합병, 펀드 투자, 부동산 개발 등으로 분산 투자를 하는데, 향군은 이른바 ‘몰빵’을 택했다. 부동산 개발 회사는 신용등급이 낮아 자기 신용으로는 대출을 받지 못한다. 향군은 개발사 보증을 서주고 대가를 받기로 했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도 투자했다. 이른바 ‘고리채 장사’를 한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급락해 분양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향군은 20개 PF 사업에 참여했는데 전부 부도가 났다. 부동산 개발 회사들이 무너지자 금융권은 보증을 선 향군에 변제를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떠안은 빚이 순식간에 7000여억 원대로 치솟았다. 안보시위를 치열하게 펼칠 때였다. 사회운동을 하려면 ‘아생(我生)’부터 해야 하는데, 아생은 등한히 하고 ‘살타(殺他)’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향군의 앞날이 깜깜해졌다.
당시 향군은 PF 사업과 별도로 서울 잠실에 주상복합의 36층짜리 향군타워(향군회관)를 짓고 있었다. 잠실에 갖고 있던 두 필지 가운데 하나를 판 돈으로 다른 필지에 회관을 건설한 것이다. 워낙 요지였기에 2013년 완공된 이 타워의 사무실은 금방 임대가 됐다.
향군은 이 타워를 담보로 제공하고 변제를 연장했다. 그 사이 떠안은 부동산 일부를 헐값에 매각해 빚 변제에 보탰다. 빚은 5500억 원대로 줄었고, 이자율도 크게 떨어져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5500억 원은 하루 7000여만 원의 이자가 발생하는 거금이다. 향군은 8개 업체 수익금과 향군타워 임대료 등으로 이를 메워가지만 역부족이다. 향군에서 ‘흑자’란 말은 천연기념물이 된 지 오래다. 아끼고 또 아껴도 2015년 향군은 수억 원의 적자를 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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