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영미의 스포츠 ZOOM 人

“꿈을 꿈으로 멈춰 있지 않게 하겠다”

‘배구 여제’ 김연경

  • 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꿈을 꿈으로 멈춰 있지 않게 하겠다”

2/4
안정이냐, 도전이냐

▼ 페네르바체는 재계약을 원할 듯한데.

“그들은 당연히 나와 계속 가길 바란다. 하지만 구단에선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존중하겠다고 했다. 지금 우리 팀은 내 위주로 시스템이 돌아간다. 모든 걸 나한테 맞춘다. 내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다. 안정을 원한다면 페네르바체에 계속 있는 게 맞다. 그러나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다른 리그, 다른 시스템을 경험하는 게 내 배구 인생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도 싶다.”

▼ 다른 나라 리그나 터키의 타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안다.

“러시아, 중국, 일본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건 사실이다. 다들 내가 페네르바체와 계약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나로선 고맙고 행복한 고민인 셈이다.”



지난해 김연경이 페네르바체와 재계약할 때 러시아 리그로부터 20억 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김연경은 페네르바체와의 재계약을 선택했다. 페네르바체의 적극적인 잔류 요청에다, 2년간 이어진 흥국생명과의 분쟁 해결에 페네르바체가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그의 해외 진출 출발점은 일본이다. 2009년 5월 17일 소속 팀 흥국생명과 자매결연을 한 일본 여자배구팀 JT마블러스와 2년 계약을 맺고 프로배구 출범 이래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한 여자선수가 됐다. 김연경은 일본에 진출하면서 연봉의 10%를 출연해 장학회를 만들고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힘들게 배구를 하는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 해외 진출의 계기는.

“단순하다. 왜 우리나라 선수들은 해외에서 배구를 하지 못할까를 생각하다가 실행에 옮긴 것이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다른 나라 대표팀 선수들끼리는 서로 인사도 나누고 친밀하게 지내는 걸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그들 틈에 끼질 못한다.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해외 진출에 도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구단과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꽤 복잡했다.”

우여곡절 끝 해외 진출

▼ 해외 진출 얘기를 꺼냈을 때 소속팀(흥국생명)에선 어떤 반응이었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반응이었다. 그러다 ‘여자배구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선수가 해외에 나가서 활약하는 것이 한국 배구를 위하는 길’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구단의 마음이 움직였고, 일본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JT마블러스에 입단한 김연경은 일본 V리그 개막 후 정규리그 모든 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해 경기당 평균 24.9점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전년 리그 때 10개 팀 중 9위이던 JT마블러스는 김연경 덕분에 2009-2010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JT마블러스는 김연경 영입 이후 개막전부터 25연승을 기록했다. 김연경은 2010년 2월 6일 도레이 애로즈 전에서 45득점을 올리며 흥국생명 시절 자신의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44득점)을 경신했다. 김연경의 활약을 지켜본 일본 V리그 덴소 에어리비스의 다쓰카와 미노루 감독은 “일본에서도 100년에 한 번 나올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 일본 팀과의 2년 계약이 끝난 후 터키 리그로 옮겼다. 일본에서도 재계약 요청이 있었을 텐데.

“마음이 유럽 진출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탈리아 리그를 꿈꿨다. 유럽 진출을 알아보던 중에 터키 리그가 부상했고, 특히 페네르바체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페네르바체 정도라면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화? 생각한 적 없어요”

“꿈을 꿈으로 멈춰 있지 않게 하겠다”
흥국생명에서 4개 시즌을 보낸 김연경은 일본으로 2년간 임대됐다. 그후 터키 페네르바체와 1+1년 계약을 맺고 2011-2012시즌부터 터키에서 활약했다. 김연경은 2012년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국내 무대 4개 시즌과 임대 신분으로 일본에서 2개 시즌을 뛰었기 때문에 6년을 뛰어야 하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흥국생명은 규정상 임대 기간은 국내에서의 선수생활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김연경은 FA 선수가 아니고 여전히 흥국생명 소속이라고 맞대응했다.

김연경은 터키로 날아가 페네르바체 유니폼을 입고 팀 훈련에 합류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이런 행동이 한국 배구를 위태롭게 한다며 그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했다. 대한배구협회도 김연경이 요청한 국제 이적 동의서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지루한 다툼 끝에 지난해 2월 국제배구연맹(FIVB)은 “2012년 6월 30일 이후 김연경이 흥국생명과 재계약을 맺지 않았기에 더 이상 흥국생명은 김연경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또한 페네르바체에서 뛰는 김연경의 이적료를 흥국생명에 주지 않고 그 문제를 대한배구협회에 일임했다. 흥국생명은 선수도 잃고, 돈도 못 챙기는 상황에 처했다.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었다. 구단과 갈등을 빚고 싸워 나가는 과정에서 너무 힘든 나머지 모든 걸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끝까지 버텼다.

‘김연경도 해외 진출을 못하면 다른 선수도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의 조언이 힘이 됐다. 모든 짐을 혼자 떠안고 가는 느낌이었다. 외로웠다. 그래도 해외 진출 관련 규정이 개정됐다는 데 만족한다.”

▼ ‘선구자’ 노릇을 했다.

“선구자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메이저리그 박찬호, 프리미어리그 박지성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이기에 모든 걸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배구를 하고 싶었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그렇게 결말이 나면 다른 선수들도 해외 진출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겠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고통은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 혹시 귀화를 생각한 적도 있나.

“전혀. 단 한 번도 귀화는 고려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귀화를 부추긴 적은 있다. 귀화하면 마음 편히 외국에서 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는 태극마크를 달 수 없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내가 왜 다른 나라 선수로 뛰어야 하나. 대표팀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에 귀화를 할 수 없었다.”

2/4
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목록 닫기

“꿈을 꿈으로 멈춰 있지 않게 하겠다”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