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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전철 밟으면 ‘옥상옥’ ‘유명무실’ 된다

싱가포르·홍콩·대만 사례가 공수처에 주는 시사점

  • 최창근|대만 전문 저술가, 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 caesare21@hanmail.net

대만 전철 밟으면 ‘옥상옥’ ‘유명무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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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싱가포르의 ‘부패범죄혐의자 유죄추정원칙’
    ● 홍콩 염정공서에는 ‘염라대왕’ 별칭 붙어 undefined
    ● 싱가포르 홍콩 벤치마킹한 대만의 실패undefined
10월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토론회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왜 필요한가? 적폐청산과 제도개혁 과제’.[뉴시스]

10월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토론회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왜 필요한가? 적폐청산과 제도개혁 과제’.[뉴시스]

“중국은 수천 년 역사상 청백리(淸白吏)가 손에 꼽을 정도다”

‘중국인이야기’를 펴낸 김명호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말처럼 ‘과거(科擧)’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실적주의(merit system)에 입각한 관리 선발 제도를 두고 있는 중국 역사상 관료와 부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로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다. 현대 중국을 지배하는 중국공산당이 당면한 과제도 부패 척결이다.

‘용의 후예(龍的專人)’들이 사는 또 다른 세계 싱가포르·홍콩·대만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고도성장기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으로 꼽힌 싱가포르·홍콩·대만은 ‘재신(財神)’을 숭배하는 민족의 후예가 사는 곳답게 부패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들 나라에서 부패 문제는 ‘현재 진행형’인 과제이며 국가 발전의 성패(成敗)를 좌우하는 중대사다.


‘4마리 龍’ 중 韓이 가장 부패

싱가포르 7위, 홍콩 15위, 대만 31위, 한국 52위.

2017년 1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6년 부패인식지수(CPI)’ 성적표다. 부패인식지수는 1995년부터 매년 발표되는 공공·정치부문 부패 실태에 대한 조사다. ‘인식조사’이기에 수치를 절대화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각 나라의 청렴성을 평가하는 유용한 잣대다.



국제투명성기구 CPI에 따르면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의 작은 용들이 사는 ‘물’은 상대적으로 깨끗하다. 100점 만점에 40점으로 벨라루스·브라질·인도와 함께 79위를 기록한 중국과 비교해도 탁월한 성과다.

싱가포르·홍콩·대만은 부패 문제에서는 민족 DNA에 내포된 ‘고질병’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패와의 전쟁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데는 부패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반부패기구다.

“부패 방지는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 문제다. 반부패 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굴복시켜야 한다.”

2015년 작고한 싱가포르 초대 총리 리콴유(李光耀)는 부패 문제에 관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를 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오늘날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리콴유의 리더십과 더불어 싱가포르가 세계 최고 청렴국가 반열에 오른 원동력은 탐오조사국(貪汚調査局·CPIB)의 존재다. 싱가포르가 말라야연방의 일원이던 1952년 창설됐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싱가포르에는 부패가 만연했다. 1959년 리콴유가 싱가포르 ‘자치주’ 총리에 당선될 무렵만 해도 ‘부패는 생활의 일부’라는 말이 통용됐다. 싱가포르 경찰 소속 반부패국이 있었으나, 경찰관 부패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1951년 경찰관들이 40만 싱가포르달러 상당 아편 강탈 사건에 관여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반부패국도 제 식구인 경찰 관련 사건에서는 솜방망이였다. 독립적인 반부패기구 설립은 필연이었다.


‘부패범죄수익몰수법’도 제정

싱가포르 탐오조사국 청사.[구글]

싱가포르 탐오조사국 청사.[구글]

1952년 설립 당시 탐오조사국은 싱가포르 대법원 소속 일개 국(局)에 불과했다. 소속 직원은 13명으로 대법원 청사 귀퉁이를 빌려 사무실로 썼다. 반부패기구가 설치됐으나 실제 활동에는 법률적 제약이 따랐다. 실효성 있는 부패방지법이 미비(未備)했다. 영국 식민통치기인 1937년 제정된 ‘부패방지법’도 유명무실했다.

리콴유는 총리 당선 이듬해인 1960년 종전의 법을 대체한 ‘부패방지법’을 제정했다. 골자는 반탐오조사국에 강력한 사법권·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기구도 총리실 직속으로 해 수사 범위와 대상의 제한을 없앴다. 부패방지법도 개정을 거듭하면서 강력해졌다. 1989년에는 ‘부패범죄수익몰수법’이 제정돼 부패 연루 범죄자의 재산을 동결·몰수할 법률적 기반도 마련했다. 제도적 뒷받침 속에서 탐오조사국은 부패·독직에 관한 ‘성역 없는 수사’를 펼쳤다. 부패 연루 혐의를 받은 공직자는 남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거나 자살로 삶을 마감할 것을 강요받았다. 총리의 동료나 측근도 예외는 없었다.

강력한 권한을 지닌 탐오조사국의 규모는 크지 않다. 총 인원 75인의 작은 부처다. 국장(Director)과 부국장 2인, 국장보 5인, 특별수사관 41인으로 구성된다. 이들의 대외직함은 조사관(CPIOs)이다. 이외 정보관리관 4인, 일반행정·회계직원 22인 등 26인의 행정관으로 구성된다. 조직도 단출하다. 국장을 정점으로 부국장들이 책임지는 집행부, 행정부, 수사부로 구성돼 있다. 집행부는 수사국을 지원하기 위한 정보수집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컴퓨터포렌식과, 거짓말탐지기 운영과, 운영·지원과로 나뉘어 있다, 행정부는 인사관리과, 재정관리과, 기획정책과, 정보기술과로 구성된다. 탐오조사국 핵심부서인 수사부 조직은 특수조사과와 일반조사과로 나뉜다. 전자는 공공부문 수사, 후자는 민간부문 수사가 주된 업무다.

탐오조사국은 부패방지법에 의거해 싱가포르 형법이 규정한 뇌물수수죄, 부패방지법상 부패범죄 및 예비·음모죄에 대해 검사의 수사 지휘 없이 독립수사를 할 수 있다. 수사 대상은 부패범죄의 경우 죄의 경중(輕重), 대상자의 지위고하를 막론한다. 공직자와 민간인 구분도 없다. 수사 결과, 범죄혐의가 드러나면 뇌물수수자와 뇌물공여자를 함께 처벌한다. 수사도 직접수사가 원칙이다.

2010년 개정된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르면 탐오조사국 특별수사관의 수사는 경찰에 준하며 국장을 포함한 특별수사관 전원에게는 사법경찰권이 부여된다. 관련 법률에 의해 탐오조사국 수사관은 부패 혐의를 받는 용의자 혹은 ‘합리적 고발’의 당사자를 영장 없이 48시간 동안 체포·구금할 수 있다. ‘부패범죄혐의자 유죄추정원칙’도 적용한다. 부패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자신이 취한 이익이 뇌물이 아닌 정당한 대가임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뇌물 수수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규정은 부패범죄 척결의 요체(要諦)다. 탐오조사국 수사 결과 유죄선고율은 평균 90%대다. 싱가포르 탐오조사국의 강력한 권한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인은 수사관의 법적 지위다. 국장을 위시한 수사관 전원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영국 식민 지배를 겪은 싱가포르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된 영국식 사법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수사권은 경찰이 행사하며, 수사 종료 후 기소 여부는 검찰이 결정한다. 부패 문제에 관한한 ‘무소불위’로 평가받는 탐오조사국도 기소권은 행사하지 못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아야 한다.

삼합회와 홍콩 누아르

홍콩 염정공서 청사.

홍콩 염정공서 청사.

지난날 대영제국의 ‘동방의 진주’ 홍콩은 아시아 국가 중 싱가포르에 이어 청렴한 국가로 꼽히나 40여 년 전 홍콩은 부패가 일상화한 곳이었다. 1960~1970년대 중국 본토로부터 인구가 유입되면서 홍콩 인구는 팽창하기 시작했다. 제조업도 더불어 발전해 홍콩은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러한 빛 뒤의 그림자도 짙어졌다. 인·허가권을 가진 공무원의 부패가 그것이다. 인구 증가에 따라 새로운 생활기반 시설 증설이 필요했다. 공무원들은 각종 공사, 사업 인·허가 시 뇌물을 요구했다. 병원 진료, 소방 등 생존 관련 문제에도 예외는 없었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진료를 받을 수도 화재 진압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공직자 중 경찰 부패가 특히 심각했다. 삼합회(三合會·Triad) 문제도 더해졌다. 경찰은 삼합회와 결탁했고 ‘흑사회(黑社會)’는 홍콩의 밤을 지배했다. 비슷한 시기 ‘영웅본색(英雄本色)’으로 대표되는 홍콩 누아르 영화의 인기도 더해갔다. 누아르(noir)는 ‘검은’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다. 홍콩누아르란 영화 장르가 생길 정도로 경찰과 폭력조직 간 결탁과 부패 고리는 심각했다. 이를 다룬 영화와 현실의 경계는 불분명했다.

부패가 만연했던 1970년대 홍콩 사회에도 각성과 혁신의 계기가 생겼다. 1973년 주룽(九龍)지구 경찰국 부국장 피터 가드버가 본국 영국으로 도주했다. 그는 삼합회와 결탁해 상습적으로 뇌물을 수수한 ‘부패 경찰’의 표본이었다. 그는 수사 도중 감옥행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자 야반도주를 택했다.

부패·독직 혐의로 수사 받던 경찰 간부의 도주는 홍콩 시민의 공분을 샀다. 이제껏 쌓인 불만이 한꺼번에 터졌다. 시민들은 “부패를 척결하고 가드버를 체포하자”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6개월간 시위가 이어졌다. 홍콩총독부도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듬해 2월 홍콩 당국은 새로운 조례를 발포(發布)했다. ‘염정공서조례’다. 조례에 따라 새로운 반부패기구 염정공서(廉政公署·ICAC)가 출범했다.

이 기구의 첫 임무는 가드버 송환과 처벌이었다. 가드버는 1974년 4월 영국에서 체포된 후 이듬해 1월 홍콩으로 인도됐다. 공판 후 부패 혐의로 유죄가 선고돼 2만5000홍콩달러를 추징당했으며 4년간 복역했다. 홍콩 시민들은 신생 기구의 성과에 환호했고 경찰·공무원들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염정공서에는 ‘염라대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가장 성공한 반부패 기구”

염정공서의 시원은 1956년 설치된 경찰청 산하 반부패부다. 반부패부는 1971년 반부패국으로 승격됐다. 더불어 홍콩총독부는 부패 척결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부패 사건 법정형을 강화했고, 전담 사정기관도 신설했다. 문제는 조직구조상 결함이었다. 경찰청 소속 기구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기에 경찰부패·독직 사건에는 손을 쓸 수 없었다. 결국 ‘독립기구’ 형태의 반부패기구 염정공서가 출범했다.

출범 후 염정공서는 경찰조직을 주 표적으로 삼았다. 부패 경찰을 체포해 법정에 세웠다. 어김없이 중형이 선고됐고, 시민들은 환호했다. 경찰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경찰은 조직적으로 저항했고 범죄를 은폐했다. 급기야 1977년 10월 경찰들이 거리로 나서 반(反)염정공서 시위를 벌였다. 가담자가 2000여 명에 달했고 그 기간 홍콩은 치안 공백 상태에 빠졌다.

경찰들의 저항도 여론 앞에서 무력해졌다. 염정공서가 힘을 발휘할수록 홍콩은 깨끗해졌고 시민들은 염정공서에 열화 같은 성원을 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홍콩 누아르 속 장면은 빛바랜 옛 영화 속 모습이 돼갔다. 홍콩의 청렴지수는 상승 곡선을 그렸다.

오늘날 홍콩 염정공서에 붙는 수식어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반부패 기구’다. 홍콩 내부 평가도 높다. 홍콩 시민 90% 이상이 이 기구를 절대 신뢰한다. 높은 신뢰도의 기저에는 부패 혐의자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수사, 높은 유죄 선고율이 자리한다. 부패 혐의자를 14년 추적 끝에 검거해 ‘세계 최장기 조사기록’ 항목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한다. 2015년 10월 도널드 창(曾蔭權) 전 행정장관을 부패 혐의로 체포했고, 2017년 구속을 이끌어냈다. 렁춘잉(梁振英) 전 행정장관도 부패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확실히 보장된 독립성”

‘독립기구’ 염정공서는 집행처(執行處), 부패예방처(防止貪汚處), 지역사회관계처(社區關係處)로 구성된다. 핵심부서는 부패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집행처다. 부패행위에 대한 고발 접수·검토, 염정공서조례·뇌물방지조례·선거조례가 규정한 범죄행위, 독직·부패 관련 공무원 수사를 전담한다. 염정공서는 공식 직함이 ‘염정전원(廉政專員)’인 서장(署長·Commissioner)을 포함해 1200명이 근무하는 방대한 조직이다. 그중 조사관이 940명으로 가장 많고, 부패 예방 담당 직원, 교육·홍보 직원, 지원부서 직원 등으로 구성된다. 직원 절반 이상이 1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요원이다.

‘홍콩기본법’에 의거한 ‘홍콩조례’ 규정에 따르면 염정공서는 ‘독립성이 보장되는 반부패 수사기구’다. 권한의 법률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염정공서 조례에서 정한 부패 관련 범죄뿐 아니라 광의(廣義)의 독직사건에 대해서 수사할 수 있다. 둘째, 뇌물방지조례에 따라 홍콩에서 발생하는 정부 및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구 및 민간부문 뇌물 관련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광범위 수사권을 지닌다. 뇌물방지조례는 특혜를 얻기 위한 각종 이익의 수수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이익에는 금전, 선물, 금전대차, 계약, 청탁 등이 포함된다. 가벼운 유흥접대인 ‘관대(款待·entertainment)’는 예외다. 셋째, 선거조례에 따라 선거의 염결성을 보장하고 투명성을 감독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염정공서 수사관은 사법경찰권을 부여받는다. 일반적으로 수사는 당사자 ‘고발’에서 시작된다. 효과적인 고발·투서를 위해 염정공서는 24시간 범죄신고센터를 운영 중이다. 고발자의 신원은 철저하게 보장된다. 수사 단계에서는 일반 사법경찰이 행사하는 압수·가택 수색 등을 실시할 수 있다. 종래에는 영장 없이 가능했으나, 조례 개정으로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한다. 염정공서가 강력한 이유는 피의자를 영장 없이 48시간 구금할 수 있는 점이다. 체포된 피의자는 보석 등으로 석방되지 않으면 48시간 이내에 영장전담판사에게 인계돼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된다. 염정공서 수사 사건에 대한 기소는 법무부 소속 검사가 전담한다. 피의자 기소 여부는 법무부 산하 정부변호사소추방침규범 기준에 따른다.


한국과 대만은 ‘대륙법 국가’

‘대만의 공수처’ 염정서 청사.[구글]

‘대만의 공수처’ 염정서 청사.[구글]

‘지구상에서 한국과 가장 유사한 나라’로 손꼽히는 대만의 반부패기구 출범은 싱가포르·홍콩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다. 2011년 7월 법무부 산하 염정서(廉政署·Agency Against Corruption·AAC)가 공식 출범했다. 싱가포르·홍콩의 제도를 모델로 삼아 독립적 지위를 부여했지만, 완전 독립기구가 아닌 법무부 산하 독립기관이라는 한계를 안고 창설됐다.

세계 유일의 5권분립(행정·입법·사법·고시·감찰)제를 채택한 대만의 사정(司正)·정풍(整風)기구는 방대하다. 총리급 부처로 감찰원을 두고 있고, 법무부 산하에 검찰청, 조사국(調査局·미국 FBI와 유사)이 있다. 내정부 산하에는 경찰 조직도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반부패기구를 설립하면서 ‘옥상옥’을 만든다는 지적도 많았다.

비판과 지적 속에서 염정서를 출범한 배경에는 2010년 발생한 법조 비리가 자리한다. 판사가 뇌물을 받고 무죄를 선고한 사건으로 관련 판사 4명에게 징역 11~20년, 검사 1명에게 징역 6년, 변호사 1명에게 징역 1년 6월형이 선고됐다. 같은 시기 대만의 청렴성지수도 경쟁 국가에 비해 낮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2011년 4월 ‘법무부염정서조직법’ 제정을 거쳐 7월 법무부 산하 차관급 기구로 염정서가 설치됐다.

염정서 출범 전 대만에서 부패사건 수사·기소는 검찰이 담당했다. 특수 수사 전담기관으로 법무부 조사국, 정풍기관으로 법무부 정풍사(司)가 존재했지만, 검찰이 수사권·기소권을 독점하는 대륙법 시스템 속에서 두 기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사건은 검찰청에 송치해야 하는 전건송치주의, 기소법정주의를 채택한 현실 때문에 검찰의 업무는 과중됐다. 자연히 부패 관련 수사에 전념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이런 와중에 발생한 법조비리 사건은 새로운 반부패기구 창설의 촉매가 됐다.

염정서는 서장(차관급) 외 부(副)서장 2인 산하에 종합규획팀(綜合規劃組), 방탐팀(防貪組), 숙탐팀(肅貪組), 정풍업무팀(政風業務組)을 두고 지원조직으로 비서실, 인사실, 주계실(主計室)이 있다. 총원은 200명 규모로 ‘법무부염정서조직법’에 따른 정원은 240명이다. 업무는 크게 반부패정책의 수립과 추진 등 기획, 부패행위 단속, 부패 방지, 정풍 등 4개 부문으로 나뉜다. 핵심 업무인 부패범죄 수사는 염정관(廉政官)이 담당한다. 상주검사(파견검사)도 존재하는데, 수사·기소 관련 염정관을 지휘한다. 검찰이 수사권·기소권을 행사하는 대륙법에 기반을 둔 대만 형법 체계에 따른 것이다.

이는 별도 기구인 검찰이 염정서 수사를 지휘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다. 영미법 계통인 홍콩, 싱가포르와 달리 대륙법 계통인 대만에서 사법권을 가진 염정서를 총통이나 행정원장 산하로 할 경우 검사가 수사 주체인 사법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결과다.

“공수처 성공 열쇠는 독립성”

염정서는 인지(認知)·고발 사건을 부패사건과 일반사건으로 분류한다. 전자는 직접 수사, 후자는 자체 처리나 검찰·경찰·법무부 조사국 등 관련 기관 이첩(移牒)이 원칙이다. 수사 후 기소 여부 판단은 상주검사가 하며, 경우에 따라 검찰 소속 전담 검사가 맡기도 한다.

출범 6년째를 맞이한 염정서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부처 산하 독립기구’라는 제도적 제약을 극복하지 못한 채 검찰에 예속된 기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위 공직자 비리 등을 포함한 ‘거악(巨惡) 수사’의 대명사로 인식돼 법무부 조사국과 차별성도 드러내지 못했다. ‘게이트’라 할 만한 대형 부패 사건을 수사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실적도 전무하다. 영미법 제도에 기반을 둔 싱가포르·홍콩의 반부패기구를 대륙법 국가인 대만에 이식하려다 유명무실한 기구를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법무부가 제출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안 처리를 당부하며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대통령인 저와 제 주변부터 공수처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그의 말대로 국가원수나 행정수반도 수사 대상으로 삼으려면 공수처의 제도적 독립성 유·무가 관건이다. 싱가포르·홍콩의 성공사례를 타산지석으로, 대만의 전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최창근
● 1983년 경남 고성 출생
●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대만 국립정치대 석사(커뮤니케이션학)
● 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원, ‘월간중앙’ 타이베이 통신원
● 現 한국외국어대 행정학 박사과정, 동아시아학통섭포럼 총무이사
● 저서 : ‘ 대만 :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가희 덩리쥔 : 아시아의 밤을 노래하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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