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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페라처럼

풍자와 해학의 작곡가 위대한 사랑을 노래하다

자크 오펜바흐 ‘호프만 이야기’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풍자와 해학의 작곡가 위대한 사랑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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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속 아우슈비츠 수용소 만찬 파티에서 주인공 귀도가 아내를 위해 튼 음악을 기억할 것이다.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가운데 나오는 환상적인 ‘뱃노래’ 이중창이다. 오펜바흐는 평생 풍자와 해학이 담긴 오페레타를 만들었지만, 죽기 직전 유일하게 ‘진지한’ 이 오페라를 남겼다.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뉴시스]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뉴시스]

이탈리아 배우 로베르토 베니니가 메가폰을 잡고 직접 주연까지 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언어유희 장면으로 가득하다. 영화 곳곳에 배어 있는 베니니의 풍자는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그가 그 얼마 전까지 성인 코미디 영화계를 전전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진 반전이었다. 

더욱이 르네상스가 일어난 토스카나 지방 출신답게 그는 이탈리아의 수려한 르네상스 문화를 영화 곳곳에 숨겨놓고 있다. 물론 여기에 오페라가 빠질 수 없다. 풍성한 저녁, 마을 사람들이 오페라극장에 삼삼오오 모여 오페라를 감상하는데, 이때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가 무대에 오른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 음악

베니니 감독이 오펜바흐의 오페라를 영화에 삽입해 이야기의 한 동기를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는 제작 전에 언론에 보도됐다. 그런데 어떤 작품이 오를지는 몰랐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1819~1880)는 유대인으로 본명이 ‘야콥 에베르스트’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이므로 당시 독일의 우방국인 이탈리아에서 유대인 작곡가의 작품이 영화에 들어간다는 설정 자체가 하나의 풍자다. 

오펜바흐는 100여 편에 달하는 ‘오페레타’(희가극, 작은 오페라라는 뜻)를 작곡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물론 여기에서 ‘작은 오페라’라는 의미는 비단 규모가 작다는 것만은 아니다. 물과 우유를 마실 때의 느낌 차이처럼 작품의 밀도가 낮다는 의미가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오펜바흐가 남긴, 유일한 무거운 오페라가 바로 ‘호프만 이야기’인데, 베니니는 오페레타가 아니라 오페라를 영화에 넣어서 좀 더 밀도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오펜바흐는 사회적·정치적 격변기를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살아간 예술가였다. 독일 쾰른에 살던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정치적 차별과 사회적 멸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을 이끌고 프랑스로 향한다. 프랑스는 1830년 7월 혁명 후 유대인에게도 동등한 법적 권리를 인정해주었기에 유대인들은 독일에서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자 피혁제품으로 유명한 도시 오펜바흐의 이름을 따서 ‘오펜바흐’라고 개명한다. 



그 덕분에 14세 때부터 유대인의 흔적이 지워진 아들 자크 오펜바흐는 프랑스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독일계 첼리스트로 두각을 나타낸다. 이어 20대에 이미 오페라 코미크(프랑스 희가극) 음악감독으로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에 취직하는 명예까지 누리게 된다. 자유의 땅 파리이기에 가능했다. 프랑스대혁명(1789),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1784)으로 유럽인의 삶의 방식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변화했다. 팽창되는 도시로 유입되는 도시 노동자들은 고상한 오페라극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극단적인 빈부격차라는 어두운 사회문제가 대두됐고, 신흥 노동 중산층의 소비문화도 형성돼갔다.

36세에 극장주 되다

오페레타 장르를 개척한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REX]

오페레타 장르를 개척한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REX]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주목한 오펜바흐는 비교적 안정된 직장인 코메디 프랑세즈를 박차고 나와 본인의 숙원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만국박람회로 파리는 인산인해였는데, 파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관광할 곳이 많지 않았다. 이에 오펜바흐는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허름한 건물을 공연장으로 계약한다. 그의 나이 36세 때인 1855년 무렵이었다. 박람회장에서 나와 샹젤리제 거리로 향하는 사람들이 모두 지나가는 곳에 그 건물이 있었기에 입지조건이 좋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과제는 매일 끊이지 않고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레퍼토리였다. 그런데 엄격한 극장 인가 조건 때문에 출연자가 3명 이내인 단막극만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오랜 음악감독 경험으로 그는 웬만한 클래식 레퍼토리는 줄줄 꿰고 있으나 관객의 새로운 입맛에 맞는 맛깔스러운 뭔가를 더해야 했다. 

그는 해학과 풍자를 음악에 도입했다. 낯익고 대중성 있는 멜로디를 능숙하게 적재적소에 넣어서 관객의 입맛을 자극했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를 넣어서 오락적 감흥을 주면서도 예술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을 친숙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가 만들어낸 재기발랄하고 익살스러운 인물들은 길 건너 오페라극장에서 최고의 박수갈채를 받는 오페라를 조롱하기 일쑤였다. 관객의 열화와 같은 갈채와 환호는 그의 든든한 아군이 됐다. 

1858년 출연자 수 제한법규가 철폐되자, 오펜바흐는 등장인물에 구애하지 않고 마음껏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한다. 그즈음 구상한 것이 ‘지옥으로 간 오르페오’(혹은 ‘천국과 지옥’)였다. 신화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다. 죽은 아내 에우리디체를 잊지 못하는 순애보의 주인공 오르페오는 천신만고 끝에 저승에 가서 아내를 데려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승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어기는 바람에 아내가 다시 지옥의 불구덩이로 빠지게 된다는 줄거리다.

오르페오 신화 풍자

오페라

오페라 '호프만 베니니'의 음악이 나오는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오펜바흐는 이 신화 내용을 비틀었다. 서슬 퍼런 루이 나폴레옹의 제2제정 시대 속빈 강정처럼 요란하고 경박스러운 위정자들의 타락한 생활에 예술로 대항하고자 했다. 오펜바흐의 작품에는 권태기 ‘쇼윈도’ 부부가 등장한다. 아내의 실종 소식에 사실은 뛸 듯 기쁘지만 오르페오는 주위의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설처럼 아내를 구하러 간다. 아내를 데려오다 일부러 뒤를 돌아보는데, 사실은 벼락 소리에 놀라서 어쩔 수 없었던 일로 나온다. 화끈한 풍자와 통렬한 해학이 넘친다. 

당시엔 금지곡이던 지금의 프랑스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를 삽입하고, 신나는 캉캉 춤곡에 맞춰 세속적인 인간들이 희극적으로 춤춘다. 이 작품은 전례 없는 인기를 끌며 압도적으로 파리 공연계를 휩쓸었다. 이와 동시에 오펜바흐는 파리에서 가장 바쁘고 몸값 높은 작곡가 반열에 들게 됐다. 오펜바흐의 지치지 않는 창작열 때문에 비록 실패작이 나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작을 내놓았기에 그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오펜바흐는 독보적으로 오페레타 영역을 확고히 하며 빈과 독일까지 진출했다. 어쩌면 그는 유대인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 신랄한 풍자와 번뜩이는 재치로 부단히 대중과 호흡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보불전쟁이라는 복병 때문에 꼬이기 시작했다. 전쟁에 진 프랑스는 국제적 평판에 다시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프랑스인의 사회적, 문화적 생활방식 또한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이제는 점잖고 그윽하고 진중한 예술이 사랑받는 시대가 다가왔다. 이런 시대의 요구에 오펜바흐도 무언가 변화해야만 했다. 

그는 화려하고 낭만적인 예술적 산물을 위해 공연 규모를 키웠고 제작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관객은 늘었지만 손익분기점에는 한참 모자랐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미국 연주여행을 떠나고 극장 지분을 팔아도 늘어나는 빚더미는 막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다작으로 기존의 곡을 재탕, 삼탕하는 악수를 두었고 그 결과 그의 작품성은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은 그였지만, 제작자로서의 오펜바흐는 불가피하게 돈 앞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건강마저 악화됐다. 

오펜바흐의 작품 중 ‘재클린의 눈물’이라는 곡이 있다. 이는 그의 미발표 첼로 작품인데, 한 세기 뒤에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가 찾아내 불치병에 시달리는 동년배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에게 헌정한 곡이다. 듣는 이의 눈물을 자아낼 만큼 가슴 저미는 아름다운 선율로 인기 있는 곡이다. 정확한 작곡 연도는 알려지지 않은 곡이지만, 혹시 바로 이 곡이 당시 오펜바흐의 심경을 구구절절 담은 것은 아닐지.

세 가지 색깔의 사랑

예순을 바라보던 고독한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오랫동안 미뤄뒀던 오페라 작곡에 박차를 가한다. 당대 최고의 대본작가 질 바르비에에게 대본을 맡기고 대표적 독일 낭만주의 작가이자 음악가, 법관 생활을 동시에 했던 ‘호두까기 인형’의 원작자 에른스트 호프만(1776~1822)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의 몇몇 판타지소설에서 발췌한 에피소드에 시인 호프만을 등장시킨 액자식 옴니버스 구성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호프만의 전 애인 3명(인형 올림피아, 노래를 좋아하는 안토니아, 창녀 줄리에타)은 로마, 뮌헨, 베네치아에서 각기 다른 3가지 색의 사랑을 대표한다. 

에필로그에서 시인 호프만은 현재 연인인 성악가 스텔라와 싸우고 선술집에 들른다. 학생들이 연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자 취기가 오른 호프만은 3가지 연애담을 시작한다. 1막에서 호프만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로봇인형 올림피아를 누구보다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로봇이 부서지는 참혹한 모습에 자신의 허영적 사랑을 깨닫는다. 

2막에서 호프만이 사랑하는 여인 안토니아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졌으나 폐병환자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면 안 되는 건강 상태이지만 의사로 변장한 악마의 마법으로 끊임없이 노래를 부른다. 숨을 거둔 그녀를 품에 안은 호프만은 그녀의 진실한 사랑에 더욱 가슴이 찢어진다. 3막에서 호프만은 관능적인 창녀 줄리에타의 방으로 가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고 만다. 그런데 악마의 사주를 받은 줄리에타는 다른 연인과 베네치아의 곤돌라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 

3막 맨 처음과 마지막에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삽입된 유명한 ‘뱃노래’ 이중창이 흐른다. 뱃노래는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등장하는 친구 니콜라우스(보통 남장 메조소프라노)와 함께 줄리에타가 부른다. 오페라 초연 이후 가장 많이 불린 익숙한 멜로디다. 사실 오펜바흐의 이전 성공작에도 이 멜로디는 자주 사용됐다. 영화 속 아우슈비츠수용소 독일군 만찬 파티에서 서빙을 돕던 주인공 귀도가 ‘호프만 이야기’ LP판을 발견하고 아내 도라가 있는 곳을 향해 ‘뱃노래’를 확성기로 트는 장면은 압권이다. 유대인 작곡가의 음반을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듣는다는 것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더욱 인상 깊은 장면이다.

미완성 오페라 퍼즐 맞추기

3막 동안 3가지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를 하던 호프만은 에필로그에서 이미 걸쭉하게 술에 취해 있다. 연인 스텔라가 왔음에도 호프만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는 화가 나서 그만 나가버린다. 이에 친구 니콜라우스에서 본모습으로 돌아온 예술의 여신 뮤즈는 ‘예술가는 고통과 좌절을 통해 더욱 숭고한 예술을 창작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을 남기고 막은 내린다. 

사실 오펜바흐는 ‘호프만 이야기’를 미완성작으로 남기고 사망한다. 그의 작곡 스타일을 아는 동료들이 힘을 합해 초연을 올리긴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음악가, 이론가, 연출가들이 지금도 이 오페라의 부족한 퍼즐을 맞추려고 막을 바꾸기도 하고 음악적 대사를 오펜바흐의 의도대로 연극적 대사로 바꿔보기도 한다. 오펜바흐는 성격상 미리 완벽하게 악보를 완성하지 않았다. 초연 준비 무대를 보며 그가 악보를 정리했기 때문에 군데군데 오펜바흐답지 못하게 투박한 부분이 남아 있다. 

오펜바흐는 자신에게서 대중의 사랑이 떠나던 시기, 건강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이 곡을 써나갔다. 풍자와 해학으로 관객에게 생의 즐거움을 안겨준 그였지만, ‘호프만 이야기’에서는 예술과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따져 물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사랑이 있는 예술과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 아니었을까. 사랑하자, 오페라처럼.




추천영상(유튜브)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https://www.youtube.com/watch?v=klbRQDenW9E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뱃노래’가 삽입된 부분의 편집 영상이다. ‘뱃노래’라는 제목 때문에 우리나라 민요를 떠올리는 분들이 있겠지만 이 영상을 보면 ‘아 그 장면’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잔잔하게 너울지는 파도와 함께 베니스에서 곤돌라 타는 느낌을 상상해보시길.

■ 조수미가 부르는 ‘인형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u01UQW-AAUA
한국이 낳은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르는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인형의 노래’다. 1막에 나오는 올림피아의 아리아지만 그녀는 독창회에서도 유감없이 관객을 압도한다. 부채를 마이크로 이용하기도 하고 반주자가 나와 태엽을 다시 감아주는 연극적 효과가 일품이다. 태엽이 다 돌아가 인형이 노래를 멈추는 장면과 인형이 고장 나서 지속되는 환상적인 고음을 우아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소프라노 조수미’이기에 가능한 무대다.

■ 리옹극장 실황 ‘지옥으로 간 오르페오’
https://www.youtube.com/watch?v=grtFa34EdgI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으로 간 오르페오’의 1997년 리옹극장 실황으로 경쾌한 캉캉춤곡이 나오는 지옥의 갤럽 피날레다. 마크 민코프스키의 깔끔한 지휘와 로랑페리의 현대적 연출이 눈에 띈다. 에우리디체 역을 맡은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와 제우스 역을 맡은 그녀의 남편 바리톤 노랑 나우리의 열연을 눈여겨볼 만하다. 영상을 보며 어느새 어깨와 몸을 리듬에 맞춰 흔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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