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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제국에 비끼는 노을, 6화. 불만의 겨울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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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애비는 또 어디 갈라꼬? 나가디라도 오늘 밤에는 지발 술 좀 먹지 마래이. 요새 사흘도리로 억병이 되어 취해 댕기이, 내 참말로 걱정이고 또 걱정이따.” 

이른 저녁상을 건성으로 받은 뒤 집을 나서는데 마침 밖에 나갔다 돌아오던 어머니가 현관문을 가로막고 서서 술 단속부터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주일이 그해 마지막 주일이라 그런지 이래저래 술자리가 잦았다. 그러나 고분고분 받아들였다가는 현관문 앞에서 한동안 잔소리에 시달려야 할 것 같아 얼른 공적인 방패막이를 내밀었다. 

“아니, 술이라니요? 오늘은 야간 당직 서러 나갑니다. 아시잖아요? 이번 연말에 신문사 비상 당직이 일주일 철야로 있다는 거.” 

“아, 글나? 당직이라카믄 술 걱정은 안 해도 될따마는 우짜든지 조심해라. 세상이 하도 수상시러부이. 밖에 뭔 일 있으믄 바로바로 집에 전화하고. 나도 이따가 신문사로 전화 한번 해볼 끼다.” 

하지만 그건 엄포였다. 이럭저럭 세상에 나와 일을 한 지 어느새 6년이 다 돼가지만 어머니가 일터로 전화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전화할 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는 아내를 시켜 용건만 전했다. 신문사로 옮긴 뒤에는 더했다. 당신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가 함부로 그의 일터에 전화하는 것까지 못마땅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뒤따라 나오던 아내가 어머니의 그런 엉뚱한 엄포에 가만히 웃음 짓다가, 할끔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어머니를 거들고 나섰다. 



“저도 이따가 전화해볼 거예요. 편집부 당신 자리 전화벨이 울리면 제 전화인 줄 아세요.” 

실은 야간 특별당직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집을 나가 자정 무렵까지 있어야 할 곳은 신문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편집국을 비우게 되더라도 그렇게 벼르는 아내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내는 정말로 긴급하지 않은데도 오직 부재 증명을 위해 직장에 대고 전화해댈 위인은 아니었다.

그날은 특집판도 지방판도 없어 야간 특별당직을 핑계로 일찍 퇴근하려는데, 역시 일찍 외근에서 돌아오던 문화부 김경수 시인이 길을 막듯 일부러 다가와 말했다. 

“그러잖아도 이형한테 할 말이 있어 서둘러 돌아왔는데,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네. 이형, 오늘 저녁에 무슨 특별한 약속이라도 있어요?” 

김 시인은 문단 등단뿐만 아니라 신문사 기수로도 그보다 4년이 빨랐다. 그러나 나이는 한 살 위라 이래저래 응대(應待)에 신경 쓰였지만, 문단과 신문사에 걸친 이중의 인연이 옴니암니 따져볼 것도 없이 김 시인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내야 할 직장동료로 만들었다. 기자 수습이 끝나고 그에게 자신이 가고 싶은 부서를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가 문화부를 오히려 기피 부서로 밝힌 것은 김 시인이 거기 자리 잡고 있어 왠지 거북해질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또 그가 그해 초 늦은 등단을 했을 때 마침 차장으로 승진한 김 시인이 그를 문화부로 끌어와야 한다고 우겨, 그가 사양하느라 진땀을 뺀 것도 어쩌면 자신이 바로 그 밑에 들어가 일하다가 서로 어색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게 싫어서였을 것이다. 

“특별한 약속 같은 건 없습니다. 있다면 오늘밤 편집국 야간 당직이죠. 그 때문에 집에 잠깐 들렀다 오기 위해 조금 일찍 퇴근하려는 겁니다.” 

그가 그렇게 대답하자 김 차장이 차라리 잘됐다는 듯 그 특유의, 억양은 사투리지만 어휘는 반듯한 표준말로 말했다. 

“그럼, 오늘밤에 있을 여기 촌 문학 동네 망년회에 좀 나와주쇼. 아니 꼭 나왔으면 해요. 이따가 7시에 향촌동 귀퉁이 부용장(芙蓉莊) 알지요? 우리 ‘비가비’ 동인(同人)에다 연간(年刊) ‘팔공산’ 편집동인과 문협(文協) 지부 어른 몇 분 보태 한 여남은 명 될 거요. 모두 이형 보고 싶어 특별히 나한테 초대를 부탁했으니 빠질 생각은 마시오. 안 가면 중앙 문단에서 끗발 날린다고 유세 떤다는 소릴 들을 뿐만 아니라, 별 볼일 없지만 신문사에서는 하늘 같은 선배기자 부탁까지 무시한다고 모두 입이 벌겋게 씹어댈 거요.” 

그런 김 차장의 말투는 오랜 문학담당 기자로서뿐만 아니라, 그의 든든한 문단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는 중앙의 문학지들을 찾아보는 일로 서울 나들이가 잦아, 절로 입에 익게 된 것이라는 추정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 오늘밤 편집부 특별당직이 내 차례라….” 

그가 망년회에 가기 싫다는 핑계로 둘러대는 말이 아님을 밝히려고 다시 한 번 더 그렇게 되풀이하자 시인에다 선배기자가 이제는 대놓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받았다. 

“그거라면 괜찮소. 보자…, 오늘 밤 이형과 함께 당직을 서는 다른 내근부서 기자는 국제부 외신담당 정형서 씨지요? 신문사 한구석에서 국어사전이나 뒤적거릴 교정교열부 윤 차장이나 밖에서 어슬렁거리며 전화로 바람이나 잡는 외근 부서 고참 두엇 말고는. 그런데 우리 망년회 어차피 밤샘할 거 아니고 통금 전에는 끝날 술자리요. 12시까지만 정 기자가 내근 부서 당직 혼자서 좀 처리해달라고 하지 뭐. 무슨 큰일이야 있을까만, 부용장 전화번호 미리 일러주어 선을 이어놓고 있으면 별 탈 없을 거요. 정 기자가 이형보다 나이는 한 살 적어도 기수가 하나 빨라 말하기 뭣하면 내가 대신해줄까요?” 

일이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그에게도 지역 문인들과의 만남이 굳이 피하고 싶은 자리는 아니었다. 억지로 벌주를 받기보다는 청해서 선선히 받는 잔이 낫겠다는 기분으로 그는 짐짓 흔쾌한 목소리를 지었다. 

“아, 그 일은 제가 정 선배한테 직접 부탁해보지요. 어쨌든 늦어도 7시까지는 부용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
집을 나서 보니 아직 오후 6시가 되기 전인데도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왔다. 버스를 타고 신문사에 앞에 내렸을 때는 벌써 가로등이며 상가 간판과 형광등 광고 문구에까지 불이 밝혀져 중앙통 양쪽 거리가 축제 전날 밤처럼이나 번쩍거렸다. 그제야 그는 동지가 지나간 지 며칠 안 되는 연말임을 떠올리며 깊어가는 겨울을 실감했다. 그러고 보니 집을 나설 때 무심코 받아 걸치고 나온 파카점퍼도 방한 내피가 두툼한 한겨울 옷이었다. 

불 꺼진 수위실을 지나 편집국으로 올라가니 휑한 사무실에 정 기자가 벌써 와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 시각에도 무슨 일인가로 늑장을 부리며 편집국에서 빈들거리는 이가 몇은 있을법 한데, 정 기자 말고는 비로 쓴 듯 편집국에 아무도 없는 게 연말이 가까움을 한 번 더 실감하게 했다.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 

“정 선배. 일찍 나오셨군요. 집에 가서 저녁이나 먹고 나온다는 게 그만 좀 늦었습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멀리서 그렇게 인사를 건네자 자기 자리에서 무언가를 읽고 있던 정 기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예절 바른 어투로 받았다. 

“나는 집이 앞산 쪽이라, 퇴근 않고 그대로 공장에 눌러앉아 있었어요. 도시락도 아침에 나올 때 아예 하나 더 싸온 게 있고.” 

그러고는 문득 벽시계를 바라보더니 한층 더 사양하는 어조가 되어 말했다. 

“뭐, 시간도 이제 겨우 6시 반이네요. 당직 근무를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시간은 아닌 듯하고.” 

듣기로 정 기자는 원주에서 나고 자랐는데 대학교는 서울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일찍부터 품은 뜻이 있어 외국어학부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유학으로 박사학위를 따 전문성을 키운 뒤 돌아와 세상에 크게 쓰이기를 바랐다. 그런데 막상 학부를 마친 뒤 유학을 떠나려고 보니, 그때만 해도 냉전 시절이라 러시아문학으로 박사를 따기 위해서도 미국밖에 갈 데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다가 그만 요란한 연애 사건이 터져 어, 어 하는 사이에 두 아들을 둔 아버지로 취업 연령 데드라인에 걸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시카고대학 러시아학과도, 박사학위 취득 후 소련 전문가로서 조국을 위한 봉사도 다 뒤로 물리고, 잠시 취업 전선에서 허둥거리다가 몸담게 된 곳이 이웃 도(道) 지방 신문사였다고 한다. 

무엇에든 열심이기는 하지만 답답하리만큼 고지식한 그를 빈정거려 엮은 그 이력 말고 좀 더 희화적인 사내(社內) 풍문으로는, 근래 들어 그가 기약 없는 미국 유학 대신 차라리 소련이 개혁으로 개방되기를 느긋이 기다리기로 했다는 것도 있었다.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같은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1970년대 말의 소련을 두고. 그리고 그 무렵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사흘이 멀다 하고 국제 통신사들이 긴급한 외신을 각국에 쏟아내게 하는 소비에트사회주의국가연방을 두고. 

“그래도 군대 고참보다 훨씬 끗발이 높다는 신문사 선배를 먼저 와 기다리게 만들었으니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듣자니 요 근래에도 어떤 뉴욕타임스 기자 하나가 바쁜 김에 함부로 선배기자 의자에 앉아 기사를 작성했다가 결국 그 신문사에서 쫓겨났다고 하던데요.” 

정 기자가 인사치레 말을 하도 정색하고 하는 바람에 그가 조금은 농담조로 그렇게 받아보았다. 그래도 정 기자는 읽던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여전히 고지식한 응답을 이어갔다. 그제야 정 기자가 읽고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보니 같은 건물에 있는 통신사에서 넘어온 외신 텔레타이프 유인물 뭉치 같았다. 

“그런데 선배, 뭐가 그래 열심이요? 뭐. 호외라도 띄워야 할 중대한 단신이라도 넘어온 게 있어요?” 

“조금 전에 옆 공장에서 오늘치 마지막 외신을 넘겨주고 간 건데, 흔한 AP, UPI 단신 같지만 종합해 손보면 제법 국제판 3,4단 기사는 될 만한 토픽이 여럿 되는데요.” 

“예? 어떤 게 그렇습니까?” 

“이를테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 대병력이 드디어 카불까지 들어갔다는 단신 같은 것. 그 속보 중에는 어젯밤 소련군 특수부대가 대통령궁을 기습해 대통령 아민을 사살했다는 미확인 보도까지 있어요.” 

정 기자가 그제야 읽고 있던 텔레타이프 용지에서 눈을 떼며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받았다. 

아직은 그에게도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가 그리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아침저녁 쏟아지는 외국 통신사 단신 속에 근래 무언가 이건 알아두어야겠다 싶은 것이 있었는데, 정 기자 말을 듣자 퍼뜩 기억나는 게 있었다. 자세한 이유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공산주의자 군부의 쿠데타로 집권한 친소(親蘇) 정권의 대통령 타라키가 전통적인 이슬람 반정부세력의 반란에 견디다 못해 소련군의 개입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아민이라니. 

“그 모퉁이 언제부터인가 어수선하더니 기어이 일이 났군요. 스탈린 때 시작된 소련의 제국주의적 행태는 프라하의 봄을 마지막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아프가니스탄이 10년 만에 다시 불러낸 것 같네요. 그런데 웬 아민입니까. 우간다 아민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숨어 사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아민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라니.”

“이형, 요즘 외신 잘 안 보는 모양이네. 우간다의 이디 아민 말고, 아프간의 하피줄란 아민이요. 그 아민이 전임 무함마드 타라키를 죽이고 대통령이 된 지 하마 언젠데. 내 기억에는 벌써 석 달도 넘었을 거요.” 

정 기자가 조금 설명조가 되어 그의 성의 없는 국제뉴스 감각을 바로잡아주었다. 그 딴에는 눈여겨본다고 보았지만, 의식 속에 완강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정치적인 무관심과 둔감은 그의 이해와 기억에 어쩔 수 없는 흠결을 남기고는 했다. 

“실은 취급하는 정보량이 갑자기 늘어나서 그런지, 무엇이든 건성으로 보고, 강렬한 인상이나 자극이 없으면 기억으로 저장하지 못하는 게 점점 습성처럼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그가 그렇게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하고 조심스레 퇴근 전 문화부 김경수 차장과의 논의를 조심스러운 제안 형태로 꺼냈다. 아무 대꾸 없이 그가 한 말을 다 듣고 난 정 기자가 생각 밖으로 선선하게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깐깐함인지 고지식함인지 모를 다짐 한마디는 잊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점검이 있거나 해서 이형이 간 곳을 밝혀야 할 경우가 있으면, 빠질 수 없는 문단 행사가 있어 잠시 나갔다는 사유를 바로 알려주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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