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호

특집 | ‘촛불정부’ 원년, ‘나라다운 나라’ 얼마나?

민주주의 | 선별적 소통, 출발 못한 협치, 생색용 숙의… ‘민주주의 발전’ 체감 못해

  • 입력2017-12-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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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사장에선 소통, 인사에선 불통

    • 여야정 상설국정협의체 불발 중

    • 100개 국정과제 중 1개만 숙의

    2017년 8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 대회 모습. [동아DB]

    2017년 8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 대회 모습. [동아DB]

    문재인 정부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이것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로 들렸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를 얼마나 진전시켰을까? 방향을 바로잡아 나아가고 있는지 가늠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집권 직후 문재인 정부는 이전 보수 정부와 차별화해 세 가지를 내걸었다. 소통, 협치, 공론화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이것들을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려고 생각한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다. 그 역할을 대신한 곳이 2017년 5월 22일부터 7월 14일까지 활동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다. 문재인 정부는 이례적으로 그 안에 국민인수위원회를 설치했다. 국민인수위원회는 정책 제안을 받는 플랫폼인 ‘광화문 1번가’를 운영해 16만4912건에 달하는 국민제안을 직접 받아 이 가운데 99건을 국정과제에 반영했다. 8월 20일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인사는 왜 국민인수위에 안 맡겼나?

    “국민들은 선거 때 한 표 행사하는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국민은 정당과 정책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인수위원회 활동이 바로 직접민주주의 구현이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대내외 행사장에서 소탈한 행보로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이런 점은 그의 여론 지지율 고공행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의 이면엔 불통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 초기 내각 인선도 담당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인선 작업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맡기지 않았다. 당연히 국민인수위원회를 통한 인사 추천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인사만은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했다. 

    그 결과, 1기 내각 구성을 완료한 시점이 11월 21일이다. 정권 출범 이후 무려 195일이나 걸려 역대 최장을 기록했다.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불통 논란을 의식해 소통을 지향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내각 인사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 못지않은 불통 논란에 휩싸였다. 

    첫인사로 이낙연 총리 후보를 지명했을 땐 별문제가 없었다. 야권으로부터 환영을 받기조차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대선 때 천명한 위장전입 등 7개 원칙 위반 논란은 갈수록 커졌다. 부실 검증 의혹까지 불거졌다. 뒤로 갈수록 코드 인사가 주를 이뤘다. 이 와중에 장관 후보자 3명이 낙마했고, 장관 3명이 야당의 반대 속에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왜 내각 인선 작업을 국정기획자문위에 맡기지 않았을까? 왜 국민인수위원회에 인사 추천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그렇게 했더라면 오히려 내각 구성 시한을 단축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불통 논란도, 부실 검증 책임도 얼마간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유는 분명하다. 직접 챙겨야 할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선거 과정에서 함께 전략을 수립하고 또 국정운영 계획을 짠 사람들이 집권 이후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직접민주주의를 주창한 대통령답지 않아서 더 그렇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은 ‘선별적 소통’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숙의 ‘상징적 의미’에 불과?

    그렇다면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가 성공적 숙의 사례일까?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측에선 차제에 상설 조직으로 국가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반대 측에선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가 애초에 불필요했다고 비판한다. 문 대통령 측이 공론이 불필요한 사안을 공론이나 숙의에 부쳐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만 지불하게 했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이런 식의 공론화나 숙의가 대의 민주주의에서 해야 할 국회의 역할을 위축시킨다고 본다. 

    문 대통령은 숙의를 간접민주주의를 보완할 유력한 수단으로 보는 듯하다. 그러면 그는 왜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여부만 공론에 부쳤을까?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최종 선정한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나머지 99개 국정과제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일까?
     
    아니다.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자유한국당이 반대한 것만 20개, 20%에 달한다. 그중 상당수가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막판까지 논란을 빚은 8대 쟁점에 해당한다. 공무원 증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 지원 확대,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법인세 인상 등이다. 

    이들 국정과제 또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사안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공론화 과정을 생략했다. 공약사업이라는 이유로 일사천리로 예산에 반영해 실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오직 1개 국정과제에 대해서만 공론화 과정을 거친 것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 정도면 ‘선별적 숙의’를 넘어 ‘상징적 숙의’에 불과했다고 진단 내려야 온당하지 않을까? 

    숙의민주주의를 강조하지 않은 대통령이라면, 기대도 갖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 정도만 해도 잘했다고 칭찬해줄 만하다. 그런데 직접민주주의나 숙의를 한다고 떠들썩하게 홍보한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너무 미약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도 공론화를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각 부처 내 정책자문위다. 거의 국·실 단위로 결성해 전문가와 시민운동가들을 참여시켜 소규모 공론화 절차를 거쳤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런 시도도 잘 보이지 않는다. 국정기획 단계에서 국민인수위를 만든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일까? 아니면 높은 지지율에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는 것일까? 후자라면 공약사업의 후유증에 대해서도 책임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 시동

    문재인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사회는 아주 조금 민주적으로 변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에 시동을 걸었지만, 빠른 속도로 과거 정부의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간접민주주의도 여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나라에서 곧바로 직접민주주의로 가는 것이 애초부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직접민주주의를 말로 주장하는 것과 스스로 모순 없이 실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 점에서 뼛속까지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세대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다음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처럼 젊은 세대로 확실하게 교체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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