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호

특집 | 촛불정부 원년, ‘나라다운 나라’ 얼마나?

적폐 수사 | 불법관행 공직 사회 경종, 미운 야당만 조준타격

  • 김경국 국제신문 서울본부장 thrkk@hanmail.net

    입력2017-12-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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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촛불민심’ 받든 정의로운 수사?

    • ‘코에 걸면 코걸이’ 부실·정치 수사?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7년 11월 12일 바레인으로 출국하는 길에 인천국제공항 귀빈실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7년 11월 12일 바레인으로 출국하는 길에 인천국제공항 귀빈실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문재인 정권의 ‘1호 공약’인 적폐청산 작업이 집권 8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적폐 수사의 최종 타깃이 전(前) 정권을 넘어 전전(前前) 정권의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향하자 ‘정치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식이다. 1993년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군부의 거대한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할 때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말로 저항을 일축했다. 집권 초반 여론을 등에 업은 힘 있는 정권의 밀어붙이기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2017년 5월 2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대검차장 이임식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2017년 5월 2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대검차장 이임식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그뿐이다. 대항할 힘이 없다. 구심점도 없다. 언론은 보수야당의 불만을 무시하다시피 하고 있다. “뭘 잘했느냐?”는 말만 돌아온다. 적폐 수사나 인사 난맥상 등에 대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시비에도 여권이 꿈쩍하지 않을 수 있는 배경이다. ‘내로남불? 좋아. 그렇지만 너희의 불륜이 훨씬 심해.’ 70%를 넘나드는 대통령 지지율의 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초 당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적폐청산’을 들고 나왔고,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당시 경쟁자인 안희정 충남지사는 적폐청산에 대해 문 후보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가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 경쟁에서 밀려났다. 

    이때부터 적폐청산은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집권한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100대 국정과제 중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적폐청산은 집권을 가능케 해준 민심을 받드는 일”(박범계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적폐청산을 하지 않는 것은 지지층을 배신하는 것이고 대선 승리의 원동력이 된 촛불민심을 거스르는 것이다. ‘정치보복’이라는 야권의 온갖 비난에도 밀어붙이는 것은 그만큼 지지층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범계 위원장은 “연인원 1700만 촛불민심의 요구로 적폐청산이 제1호 공약이 됐다”면서 “범죄행위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근거가 있는데 수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직무유기가 아니냐?”는 말로 적폐 수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보수야당은 지리멸렬하다. 힘을 규합하지 못하고 각자도생에 급급하다. 바른정당은 문재인 정권이 아니라 자유한국당을 공격하고, 국민의당은 내부 분열로 정신이 없다. 그나마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페이스북에 한마디씩 하지만 그때뿐이다. 

    적폐 수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이은 최순실과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의 상상도 못 할 국정농단으로 인해 탄력을 받았다. 무제한의 범위를 넘나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안보실세’로 불리던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수사대상이 됐다. 칼날은 이 전 대통령의 코밑에까지 왔다. 

    박범계 위원장은 “국민의 관심은 지금 박근혜 국정농단을 넘어 그 원인이 된 이명박 정부 당시의 여러 적폐에 대한 수사에 있는데, 그 정점은 이명박 전 대통령” “현직 대통령조차 잘못을 하면 탄핵하는데 전직 대통령이라고 성역이 있을 수 있겠느냐”면서 최종 단계가 이 전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제2롯데월드 인허가, 자원외교, 채동욱 전 검찰총장 개인정보 유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관여, 보수단체 지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의혹은 수사의 주 타깃이다.

    실제론 인적청산 앞세워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적폐 수사가 전임 정권에 대한 ‘핀셋 수사’라고 본다. 김성태 신임 원내대표와 함께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장 수석대변인은 “댓글 몇 개로 전임 대통령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우는 등의 사태에 대해서는 당력을 총결집해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김대중 정권 당시 국정원 자금의 사적 유입과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특활비 등의 불법 사용 근거를 제시했음에도 같은 잣대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적폐청산이 제도·시스템·관행의 개혁으로 흘러가지 않고 인적청산을 앞세우는 데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적폐청산은 명분이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정치보복으로 비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여권은 “제도와 관행,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과정”이라고 반박한다. 

    실제론 인적청산을 앞세움으로써 뒤따라야 할 제도 개혁에 야당의 협조를 얻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상당하다. 한국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이나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이종혁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김영삼 대통령 집권 후 김대중 정치자금 관련 얘기가 숱하게 제기됐다. YS는 DJ라면 이를 갈았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YS는 ‘놔둬라. 사람을 가지고 흔들면 정치보복이 된다. 정책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그 정책이란 게 나중에 금융실명제로 나타났다. 이것이 제도개혁을 통해 적폐를 청산하는 역사적 사례”라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도 “제도와 정책 개선을 통해 청산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성을 평가받는 데 과정상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국민들은 적폐 수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한 70%가 넘는 긍정 평가는 이 같은 호감도가 수치로 나타난 것”이라면서도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정치보복으로 비치게 함으로써 개혁의 추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직권남용죄’에 뒷말 무성

    이번 적폐 수사 과정에서 ‘직권남용죄’가 주로 적용되는 데 대한 지적도 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박민식 전 의원은 “검사들 사이에서는 직권남용죄로 기소하면 수사 부실의 반증이라고 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무죄선고가 많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죄명이다. 과거에는 직권남용죄 단독으로 기소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나도 십수 년간 검사 생활을 하면서 직권남용죄로 기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폐 수사의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차재원 가톨릭대 교수는 “정권을 잡으면 모든 것을 법대로 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부정행위를 하면 정권이 교체된 후 반드시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엄중 경고하는 효과는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차 교수는 “하지만 정치보복으로 비치면서 적폐청산의 원래 목표와는 달리 정당 간의 갈등이 증폭된 부분은 아쉽다”고 말했다. 

    현재 적폐로 내몰리는 일들은 과거에 관행 차원에서 용인돼온 것들이었다. 국정원이나 검찰의 특수활동비,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등 ‘큰 문제의식 없이’ 행해져 온 일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적폐 수사로 앞으로는 조심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도 바짝 긴장한다. 예전엔 특정한 보직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업무를 무심결에 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나 이젠 ‘이렇게 하다간 파면되겠네, 구속되겠네, 자살로 내몰리겠네’ 하는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한 중앙부처 간부는 “규정이나 법에 어긋나면 상급자의 지시라도 일단 이의를 제기하는 풍조가 공직 사회에서 더 진하게 나타나고 있다. 적폐 수사를 보면서 다수 공무원이 ‘상급자가 방패막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승자독식’의 정치 구도를 깨는 것이 급선무란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권력 구조가 개편되지 않는 이상 언제든지 적폐는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총선, 대선까지 연계?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2017년 11월 22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차량에 타고 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2017년 11월 22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차량에 타고 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야권 인사들은 적폐 수사가 아무리 빨라도 2018년 지방선거 이전에는 끝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권도 조기에 마무리 지을 생각은 전혀 없는 듯하다. 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9월 여·야 지도부 청와대 회동에서 “국민 단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지적에 “비리가 불거져 나오는데 못하게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적폐 수사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대선 기간에 언급한 “장기집권”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전 총리는 2017년 3월 한 강연에서 “이번이야말로 우리가 집권해서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영구 집권할 수 있는 기회다. 김대중 5년, 노무현 5년은 짧았다. 적어도 20년은 해야 정착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당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은 “잊을 만하면 드러내고 또 잊을 만하면 끄집어내고 하는 식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수사해서 국민의 눈에 ‘보수 우파는 모두 썩었다’는 각인을 찍으려 하지 않겠느냐”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2018년 지방선거까지 끌고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여권 핵심부에서 보는 적폐 수사에 대한 저항은 ‘청산대상자들의 반발’에 불과할 수 있다”면서 “적폐 수사 강경 드라이브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 여세를 몰아 2020 총선에서 과반의석 내지 개헌의석까지 확보한 후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해 장기집권의 기틀을 다진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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