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호

심층취재

적폐청산과 문무일 식물(?) 검찰총장

“피곤하면 (검찰총장) 안 하시면 되지. 할 사람 많아” 〈여권 고위인사〉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7-12-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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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개 조직원 한 사람이…”

    • 문무일, 쫓겨나거나 고립되나?

    • “‘여권+윤석열 검찰’을 검찰 수장이 들이받아”

    • ‘적폐청산 3인방’ 임종석-백원우-윤석열

    • “하명수사, 청부수사, 보복수사, 사감(私感)수사”

    • “문무일 공감 여론 확산”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7년 12월 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7년 12월 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은 2017년 12월 5일 ‘적폐 수사의 연내 마무리’를 천명했다. 문 총장은 “각 부처에서 넘어온 개혁 적폐 부분 사건 중 중요 부분에 대한 수사는 연내에 끝내겠다” “사회 전체가 한 가지 이슈에 너무 오래 매달리는 것도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라 했다.

    ‘여권+윤석열 검찰’의 태동

    검찰 수장의 이 발언은 여권을 당혹하게 혹은 진노하게 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노타임’으로 언론에 “연내 마무리는 불가능하다. 내년 봄까진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축하려 했다. 검찰에 ‘이거 수사해라 저거 수사해라’ 해오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문무일 성토’에 나섰다. 

    몇몇 검찰 관계자는 문무일 발언이 ‘큰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중 한 관계자는 “여권+윤석열 검찰’이라는 거대한 빙하를 검찰 수장이 들이받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여권+윤석열 검찰’ 세력의 태동과 눈부신(?) 활약상에 관한 이 관계자의 설명이 그럴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천명했다. 이어 박근혜에게 한(恨)이 있는 ‘좌천된 검사’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적으로 앉혔고 윤석열은 박근혜 특검의 자기 손발들을 서울중앙지검 요직에 임명했다. 이렇게 ‘여권+윤석열 검찰’ 연합세력이 세팅됐다. 

    청와대 주도로 국가정보원 등 정부 부처마다 적폐청산위가 만들어지더니 윤석열 팀에 방대한 수사 거리가 넘겨졌다. 이 검찰은 150일 넘게 서울중앙지검 전체 검사의 무려 35%인 87명의 검사를 동원해 19개 적폐사건을 뒤졌다. 그 결과 박근혜-이명박 정권 인사들 위주로 40명 안팎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해 대략 70%를 구속했다. 이 과정에서 적폐가 이 나라 최대 이슈이자 시대적 과제쯤이 됐다.” 



    지금 여권은 거의 매일 윤석열팀엔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보수 진영엔 ‘적폐 낙인’을 찍는다. 봄까지 이 수사가 계속되면 6월 지방선거 압승도 가능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보수정치권 전체가 말 그대로 누적된 폐단으로 규정돼 종말을 고하고 이대로 쭉 20년 집권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새 나온다. 그런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분위기에 다른 사람도 아닌 ‘검찰 수장’인 문무일 총장이 “연내 수사 마무리”를 얘기하면서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여권에서 문 총장에 대한 분노는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총장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철성 경찰청장은 문 총장에 비해 정권에 훨씬 고분고분한 것으로 비친다. 여권 고위 인사는 문 총장을 ‘일개 조직원’으로 지칭하면서 사퇴를 압박했다. 

    “일개 조직원 한 사람이 국민 피로감이 쌓였으니까 그만합시다 하는 건 그분 개인의 입장이겠지, 개인이 피곤하면 (검찰총장) 안 하시면 되지. 그 자리 그냥 놓고 가면 다른 사람 할 사람 많죠. 할 의지가 없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고.” 

    다른 여권 관계자는 “적폐청산은 청와대에선 임종석 비서실장과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주도하고, 검찰에선 윤석열 지검장이 맡은 것으로 알려진다”고 말했다. ‘적폐청산 3인방이 임종석-백원우-윤석열이라는 설은 일부 문서에 의해 뒷받침되기도 한다.

    ‘강성 운동권 출신’ 백원우와 이명박

    이명박 정부 시절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행위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2017년 12월 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행위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2017년 12월 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청와대는 2017년 7월 20일 16개 정부부처에 ‘국정과제 추진 부처별 TFT 구성 현황 및 운용 계획 제출’ 공문을 보냈다. 적폐청산을 위한 부처별 TFT 현황과 운용 계획을 7월 24일까지 회신하라는 내용이었는데, 발송자는 임종석 비서실장이었고 작성자는 백원우 민정비서관이었다. 여권 내부 사정을 잘 안다고 하는 한 정치권 인사는 “최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제한적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적폐청산을 비롯해 여러 영역에서 백 비서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백원우 비서관은 청와대의 학생운동권 출신 핵심 그룹 내에서도 ‘강경파’로 통한다. 그는 전대협의 핵심인 연대사업국장을 지낸 ‘강성 운동권 인사’였고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향해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을 해”라고 고함치기도 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백 비서관 측을 사찰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여권이 적폐청산의 최종 목표를 ‘이명박 구속’으로 잡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엔 백 비서관의 의중이 반영됐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문무일 총장이 ‘여권의 보배’인 ‘적폐청산 수사’에 흠집을 냈으므로 향후 문 총장과 여권의 관계가 한층 껄끄러워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문 총장이 검찰 수장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지금보다 더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문 총장이 ‘식물 총장’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윤석열 팀 측은 언론에 “최선은 다하겠지만 시한을 정해놓고 수사하긴 어렵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총장을 정점으로 한 검찰의 상명하복 지휘 체계상 이례적인 일로 비친다.

    “야당 한 놈만 팬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017년 12월 25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차량에 오르고 있다. [뉴스1]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017년 12월 25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차량에 오르고 있다. [뉴스1]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검찰 안팎에선 “문 총장의 ‘연내 적폐 수사 마무리’ 발언이 검찰의 직업윤리에 부합하는 적절한 내용”이라는 옹호론이 적지 않다. 이는 윤석열 팀의 적폐 수사에 대해 같은 검찰 내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나오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적폐 수사로 잡혀가는 사람들이 보수진영 인사 일색이자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은 “하명수사” “청부수사” “보복수사” “사감(私感)수사”라 반발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윤석열 팀의 적폐 수사가 과도하게 진행된 측면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안대희 검찰은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을 수사하면서 ‘노무현 캠프 대선자금’도 공정하게 파헤쳤다. 그래서 ‘국민 검찰’이란 칭송을 얻었다. 반면 지금의 윤석열 검찰은 영화의 한 대사처럼 ‘야당 한 놈만’ 패고 있다. 외견상 중립이나 균형을 현저히 잃고 있다. 

    나아가, 야당 성향 인사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줄줄이 기각되거나 구속된 야당 성향 인사들이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특히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에 대한 영장기각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석방은 수사팀에 타격이 컸다. 또한, 주류 언론사 사장을 지낸 김재철 전 MBC 사장에 대한 영장기각은 언론자유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수사팀이 ‘보복 의도를 가진 무리한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수사팀이나 여당 의원들이 영장 기각에 대해 ‘법리도 상식도 아니다’라면서 판사들까지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모양새도 좋지 않다. 이런 식의 대응은 ‘적폐 수사에 사감이 들었다’는 의심을 더 키울 뿐이다. 

    이로 인해 검찰 전체를 ‘망나니’ ‘권력의 시녀’에 비유하는 목소리도 다시 공론화됐다. 적폐 수사에 가담하지 않은 몇몇 검사는 ‘적폐 수사 때문에 검찰 전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느냐?’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변창훈 검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정원 관계자들을 구속했으니 국정원에 파견된 검사도 형평성 차원에서 구속하려 했는데 이게 다소 무리한 영장 청구여서 자살로까지 이어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특히 변 검사 유족들이 윤석열 팀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실제로 법조계에선 변 검사가 국정원에 법률적 자문을 해준 행위에 대한 위법 논란 정도이므로 영장 청구가 과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변 검사 자살 이후에 윤석열 팀은 전병헌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비리 혐의를 끄집어내 전 전 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석열팀이 문재인 정부의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전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되면서 이마저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높아지는 피로감과 스트레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변 검사 자살에 대해 “적폐청산 미명하의 권력형 살인”이라고 말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병헌 전 수석 영장 기각에 대해 “적폐 수사가 구(舊)여권 인사들에게만 집중되고 검사까지 자살하자 스스로도 부담을 느낀 수사팀이 현 정권 실세를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었다가 사달이 난 것이 아니냐?”고 해석했다. 

    여권의 주요 인사들은 적폐청산을 제도개혁 차원에서 접근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러면서도 적폐 수사는 그대로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여권은 이런 양동작전을 구사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적폐청산에 검찰을 앞장세웠다고 할 수 있다. 

    검찰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전대미문의 검찰개혁으로 인해 기득권을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검찰의 입장에선, 자기 조직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검찰개혁의 칼자루를 쥔 여권의 수사 주문에 적극 응해준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무일 총장과 같은 검찰 지도부는 ‘검찰이 여권의 주문에 이 이상 더 응해주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적폐 수사로 인한 검찰 조직 내부의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문 총장은 적폐 수사에 적절한 제동을 걸어 완급을 조절할 수 있을까. 몇몇은 문 총장의 발언에 공감하는 여론이 확산 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쪽이 보기엔, ‘식물 총장’이고 ‘식물 여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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