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 용지 101장에 담긴 ‘이국종의 진심’
비망록,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기억으로 읽히길 바란다.
학회 장사꾼들과 예산 따먹기 프로들
병원 적자 주범으로 몰려 사직 압력받아
하수 새는 지하 2층 연구실에서의 5년
중증외상센터는 사회안전망(Safety Net)
[박해윤 기자]
“이건 아닙니다. 아니에요.”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나 그는 힘들어했다.
“담배 있습니까?”
그의 왼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다. “담배 태우면 눈이 더 나빠지는데…”라면서 그가 불을 붙였다.
“어젯밤 외상환자가 계속 밀려와 10분도 못 잤습니다.”
“피눈물이 난다”
그는 “피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그는 속 얘기를 쏟아냈다.“예산이 저 같은 말단 노동자까지 안 내려옵니다. ‘이국종의 꿈이 이뤄졌다’고 말하는 분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12월 5일 국회는 북한 귀순병 사건을 계기로 중증외상 관련 예산을 정부안(400억 원)보다 201억 원 늘린 601억 원으로 확정했다. 언론은 증액된 201억 원에 ‘이국종 예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예산이 나와도 가져가는 사람은 따로 있다”면서 “엉뚱한 곳에 쓰일 공산이 크다”고 했다.
“예산 200억을 증액해준다고 하니 보건복지부는 헬리콥터 5대 이야기부터 먼저 했습니다. (증액된 예산의) 헬기는 우리 병원 것도 아닙니다. 외상환자 살리는 데 헬기를 도입했을 땐 정신병자 취급하더니….”
그는 닥터헬기(응급의료전용 헬기)가 무전 장비를 갖추지 못해 의료진과 카카오톡으로 연락하는 현실을 토로했다.
“헬기만 있고 무전기가 없어 달라고 한 지 7년이 넘었는데 아무리 높은 분에게 얘기해도 헬기는 문제없지만, 다음은 절대 안 된다고 하더군요. 200억 원 예산은 고사하고 무전기 달라고 한 것이 7년째예요. 이것은 진정성의 문제죠.”
그는 7년째 무전기 없는 닥터헬기를 타고 있다.
“나눠먹기식 일회성 예산 증액이 아니라 권역외상센터가 왜 필요한지 이해해야 합니다. 석해균 선장 때와 상황이 똑같아요.”
2011년 1월 ‘아덴만 여명작전’ 때 소말리아 해적에 피격된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면서 중증외상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일었으나 그는 “딱 거기까지였다”고 한탄했다.
“밥숟가락만 얹는 게 아니라 밥상 들고 가”
외상외과 의사는 일상이 응급이다. 예상하지 않은 시간에 계획되지 않은 수술을 한다. [박해윤 기자]
그가 노트북으로 2011년 9월 23일 자 신문기사 하나를 찾아 보여줬다. ‘이국종 꿈 이루어지다’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다. 1면 머리기사로 응급의료전용 헬기와 그의 사진이 실렸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의 꿈이 이뤄지고 있다. 중증외상환자가 발생하면 5분 안에 출동하는 전용 헬기인 에어 앰뷸런스 두 대가 9월 23일 운행을 시작한다. 각종 첨단 장비를 갖춰 ‘하늘의 앰뷸런스’(대당 150억 원)로 불린다. ○○병원과 ○○병원에 배치됐다.”
‘이국종 꿈 이루어지다’ 제목과 그의 사진이 실렸으나 닥터헬기는 그가 일하는 곳이 아닌 다른 병원으로 갔다. 예산이 다른 곳으로 갔다고 탓하는 게 아니다. 외상센터 본연의 임무에 비켜선 곳에 돈이 쓰인다고 생각해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헬기 낙하 훈련 등을 할 때는 의사와 간호사의 목숨을 담보로 쇼를 한다고 비난하더니 이제는 이송 장비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입니다. 닥터헬기가 중증외상환자 실어 나르는 게 얼마 안 돼요. 용도가 바뀌어버리는 겁니다.”
권역외상센터는 ‘이국종법’으로 일컬어지는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치료법 개정안’이 2012년 5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설치됐다. 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 환자만을 위해 나랏돈으로 지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 이렇게 설립된 권역외상센터들이 본연의 역할과 다르게 운영된다는 언론의 지적이 해마다 나왔다.
아주대병원은 2012년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기관 1차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이국종법’에 정작 ‘이국종’은 없었던 것이다. 2차 공모에 재지원해 선정됐으나 1차 공모에서 탈락했을 때 그가 입은 상처는 컸다.
인구 1000만 서울 중증외상센터 全無
이국종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가 응급 수술을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2012년에도 ‘이국종법’이라는 법을 만들고 저는 효용이 끝났습니다. 이번에도 이송 수단 구입하는 것과 연구비, 연구용역비 등으로 쓰고 중증외상환자 치료에 들어오는 예산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학회 장사꾼들과 예산 따먹기 프로들이 있습니다. 외상센터가 개판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지난번에 (예산을 증액해) 도와줬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하겠죠.”
그는 2016년 9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권역외상센터 사업이 유명무실해질 소지가 커요. 정부 지원을 따낼 때까지는 각 병원이 다 열심히 했죠. 현재는 외상환자가 별로 없어 의사들이 놀고 있다면서 다른 수술이나 일을 하게 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요구합니다. 보건복지부도 황당할 겁니다. 서로 하겠다고 나서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니까요. ‘불꽃놀이’가 끝나면 정부 지원으로 지은 외상센터 시설이 ‘심장센터’ ‘산부인과센터’ 같은 돈 되는 진료를 하는 곳으로 바뀔지도 모릅니다.”(신동아 2016년 9월호 ‘응급환자 깔아두다 죽이는 게 병원이 할 짓입니까’ 제하 이국종 교수 인터뷰 참조)
‘이국종법’에 따라 전국에 권역외상센터 16곳이 지정됐는데 현재 운영 중인 곳은 9곳에 그친다. 중증외상 치료는 의료수가 문제 등으로 인해 환자를 치료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다. 이른바 빅5 병원 어느 곳도 외상센터를 운영하지 않는다. 국립 서울대병원도 마찬가지다. 1000만 명이 사는 수도에 중증외상센터가 단 1곳도 없는 것은 국격에 맞지 않는다.
2016년 기준으로 서울의 경우 외상환자가 이송된 후 처음 치료를 받기까지 7시간 14분이 걸린다(국립중앙의료원 자료). 반면 900만 명이 사는 영국 런던은 중증외상 환자 6068명 중 98.5%가 1시간 이내에 런던 내 4곳의 중증외상센터로 이송됐다.(영국 NHS 자료·2016년 3월~2017년 4월 기준)
‘골든아워’는 1시간 이내
교통사고, 자상(刺傷) 등으로 인해 생기는 출혈성 중증외상환자는 1시간 이내로 병원에 도착해야 살 확률이 높아진다. 심한 외상 후 15분 안에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대부분 살고, 30분이 지나면 50%가 사망하고, 1시간이 넘으면 대부분 목숨을 잃는다.“사고 난 후 1시간 이내가 골든아워(Golden Hour)예요. 미국의 경우 중증외상환자의 82%가 1시간 이내에 수술을 받습니다. 메릴랜드처럼 의료 시스템이 잘돼 있는 주는 100%에 육박하고요.”
골든아워는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할 때 초반 금쪽같은 시간을 가리킨다. 살 수 있는 사람이 의료 체계의 미비로 죽는다면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닐 것이다. 그는 살 수 있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구축해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살아온 듯 보였다.
신동아는 그가 쓴 A4 용지 101장(10만9000자) 분량의 비망록을 읽었다. 언젠가 책을 내려고 골자를 적어둔 것이다. 비망록 첫 문장은 이렇다.
‘이 글은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기억으로서 읽히길 바란다. 의료진은 모두 실명이며 환자는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가명으로 처리했다.’
10만9000자 분량 비망록과 2017년 12월 7일, 2016년 7월 29일 인터뷰를 토대로 한국의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의 현실과 이국종 교수의 진심을 들여다보자.
중증외상센터에는 몸이 찢어지고 부서져 죽음의 절벽에 선 이들이 실려 온다. 낮과 밤이 나뉘지 않고 맞물려 돌아간다. 손가락 끝에서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외상외과 의사는 일상이 응급이다. 그는 비망록에서 외상외과의 일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병원에서는 낮과 밤이 늘 맞물려 돌아갔다. 저무는 해가 마지막 노을을 걷어가면 외래는 깜깜하게 어두워졌고 중증외상환자가 밀물같이 응급실로 모여들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내 시선은 죽음의 절벽을 마주한 이들에게 향한다.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밤길에서 몸이 찢어지고 부서져 버린 환자들이 또다시 앰뷸런스에 실려 온다. 나는 사고가 생기는 근거를 알 수 없었고 환자를 어느 의료기관에 이송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의사는 힘들고 환자는 죽어 나가는 상황이 가득했으나 나에게는 피곤함만이 있고 인력은 없었다.’
그는 김훈 소설 ‘칼의 노래’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단독자’다. 그의 문장은 ‘칼의 노래’를 닮아 있다.
“중증외상센터는 국가의 의무”
이국종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는 주한미군과 15년간 협업해왔다. [박해윤 기자]
“환자 대부분이 블루칼라예요. 끗발 좋은 이가 거의 없어요. 외제 승용차 타는 분은 사고가 나도 에어백이 6개씩 터집니다. 탑차, 다마스, 오토바이, 봉고차 타는 분, 나라를 떠받치는 중화학공업, 건설, 플랜트 등 기간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분이 실려 오죠. 권역외상센터는 국가가 국민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사회안전망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예요.”
비망록에는 이렇게 썼다.
‘이른바 블루칼라(Blue Collar) 계급은 외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굴착기에 끼어 사망하거나 지게차에 깔리거나 높은 곳에서 추락하거나 고속으로 회전하는 기계에서 튀어나오는 볼트나 파편이 몸을 뚫고 지나가 총에 맞은 듯한 부상을 입으며 사망한다.(…) 중증외상은 병원 경영 측면에서 보면 수익을 내기는커녕 적자이기에 대학병원들은 중증외상환자 치료보다는 암이나 심장혈관질환 치료와 같은 만성병에 집중하므로 중증외상환자의 치료를 담당할 시설 확보는 고사하고 적절한 의료진 양성도 힘들다.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국가적 외상 치료 시스템을 기존의 일반적 응급실 운영체계와 분리해 구축하나 한국에서는 논의가 더는 진행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노동자 계급에 집중된 이러한 죽음을 알지 못한다. 소위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하는 정당조차도 모른다. 극소수의 의사들과 보건복지부의 관료들만이 참상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의료 선진국에서는 골든아워가 중요한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외상센터와 응급실을 분리해 운영하는 데 비해 한국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중증·경증 환자가 뒤섞여 북새통인 경우가 많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오가다 길에서 죽거나 적절하게 치료받지 못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했다”
외상외과는 병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4000억 원 넘는 매출을 올리는 대학병원 임상과목 체계에서 전임이라고는 달랑 그 혼자인 외상외과가 병원의 저수익·고지출 수익 구조와 임상 과목 간 갈등의 주범으로 몰렸다. 사직 권유와 압박이 거셌다. 언제 병원에서 쫓겨날지 몰라 고속도로 톨게이트 쿠폰을 60장 살지, 30장 살지 고민하던 그가 명의가 된 것이다.‘사직 압력을 받는 수년 동안 식당 하수배관 누수로 하수도 물이 새어 벽으로 스며드는 지하 2층 연구실에서 지내는 시간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했다. 나는 낡은 거울에 비치는 내 몰골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비망록에 ‘지하 2층 하수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창고 방에서 5년을 지냈다’고 썼다.
‘2004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외상외과를 계속할 마음이 없었다. 언제나 다른 전공을 찾아 도피할 생각만 했다. 외상외과라는 이상한 전공을 벗어버리고 그럴듯한 틈새 전공을 찾아 지속 가능한 직장생활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2011년 1월 오만에 갔고 그때부터 갑자기 유명한 의사가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병원 적자의 주범이자, 적정 진료 방침과도 맞지 않고, 대학병원에서 가장 쓸데없는 전공이라는 취급을 받으며 사직과 전직만 생각했는데 ‘명의’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나온다고 하자 어이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거의 예능 프로그램에 가까운 방송까지도 출연을 지시했지만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방이 아니라 창고예요, 창고. 그냥 뭐 괜찮았어요. 조용하고 좋았어요. 혼자 지냈으니까요. 2004년 이후 단 한 번도 의과대학 교수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파견 용역직원이라고 여겼죠. 동료, 후배들과 비교하지도 않았고요.”
비망록을 더 읽어보자.
선장 석해균, 병사 오청성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옥상에 설치된 헬기 착륙장(왼쪽). 경기 남부 권역외상센터는 매년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참 여한다. [박해윤 기자]
외상외과 의사가 뭐 하는 사람인지 되묻지 않는 사람은 주한미군 군의관밖에 없던 시절의 얘기다.
선장 석해균의 생명을 살려낸 이가 이국종이라면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을 구한 이는 석해균이다.
‘오만에 가는 것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엇갈렸다. 나는 내게 왜 그런 연락이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은 내가 가는 것으로 최종결정된 것을 알고 제일 먼저 통화한 복지부 관료이자 의사다. “국종! 잘못되면 너 완전히 끝장인 걸 알지?” 국종. 그는 다급해지면 나를 이렇게 불렀다. 이번에는 감정이 고조될 때 나오는 사투리 억양까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의사 선배로서 뿐만이 아니라 그만큼 나와 가깝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그만 할래요. 지겨워서….” “네가 완전히 끝나버리면 우리나라 외상 시스템은 어떻게 하냐?” “우리나라는 무슨….” 나는 이렇게 물어봐주는 ○○○이 고마웠다. “어쨌든 가서 좀 상황을 볼게요.”’
그는 “누구나 인생을 참 모를 일이라고 한다”면서 이렇게 적었다. 그가 오만에 날아갔으며 석해균 선장을 살려냄으로써 ‘이국종법’이 국회를 통과해 권역별로 중증외상센터가 들어섰다. 북한군 병사 오청성(24) 씨가 2017년 11월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하다 총상을 입고 그에게 수술을 받으면서 중증외상 관련 예산이 늘어났다. 북한군 병사 수술은 석해균 선장 때와 똑같이 그가 먼저 치료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다.
“외상환자를 실은 주한미군 헬기는 무조건 저한테 옵니다. 미군과 일한 지 15년이 됐습니다.”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도 참여한다. 그는 해군, 주한미군과 작전을 함께 해왔다.
환자 살리려 年 250회 헬기 타
이국종 교수가 외상환자 보호자에게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중증외상체계를 국가적으로 만들어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자 발버둥 쳤던 의료인 출신 관료들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수많은 통상적인 정부 사업 중 하나가 됐다.’
‘불쏘시개처럼 전국적으로 중증외상센터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시동만 걸어놓고는 정작 본 사업이 시작되자 뒤로 나앉게 됐다.’
‘중증외상센터는 대통령 지시 사항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중증외상센터에 걸린 정치적 상징성에 목말라했다. 보건복지부는 중증외상센터를 일단 오픈해놓고 현판식을 가지면서 파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팀원들을 바꿀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이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들을 따르지는 않았다. 나는 즉각 욕을 먹었다. 학회장이 나를 문제 삼았고 보건복지부 관리들은 집요하게 나를 탄핵했다. 복지부에서 심사를 받는 동안 나는 심사위원들이 누구였는지를 비로소 알게 됐다.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병원 옥상에 헬기가 착륙하는 방식으로 응급환자를 옮기게 된 것도 ‘이국종법’ 덕분이다.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권역외상센터가 설치된 병원은 헬기 착륙장을 둬야 한다. 헬기를 활용한 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다.
‘비난이 하늘을 가득 메운 화살들처럼 쏟아져 박혔다. 나는 그 비난의 화살 벼락을 맞으며 마치 영화 ‘300’의 화살이 쏟아지는 장면과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첫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보다 더 잔인한 점은 나는 아무런 방패도 없이 그대로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판의 주요 내용은 내가 싼값은 고사하고 무료로 의사로서 소방헬기를 타고 설쳐댐으로써 의사의 값어치를 똥값으로 만듦과 동시에 같이 근무하는 동료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목숨을 담보로 쇼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응급환자를 살리고자 1년에 250회가량 헬기를 탄다. 한국은 살릴 수 있는 환자가 골든아워를 넘겨 죽는 비율이 35%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헬기를 닮은 ‘깎아내는 삶’
“보건복지부에서 보수적으로 계산한 수치예요. 선진국 기준을 적용하면 사망률이 더 올라갑니다. 병원에서 사망한 것뿐 아니라 사고 현장, 이송 단계에서 목숨을 잃은 것까지 살펴봐야 해요. 그렇게까지 계산하면 사망률이 너무 높아지기 때문에 겁나서 통계를 못 냅니다. 일부 연구자는 70%가 넘는다고 주장해요.”사망 비율 35%도 미국이나 일본 등이 15~20%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그는 외상환자를 살리고자 헬기 안에서 응급수술도 한다. 비망록에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헬기에 빗댄다.
‘○○○ 비행대장은 헬기가 비행하는 원리를 깎아내는 것에 비유했다. 헬기의 비행 동력은 바람을 갈라 깎아내면서 얻는 것이다. 주위의 모든 것과 부딪치면서 깎아내는 아픔을 가져야 동체가 움직이고 공중기동이 이뤄지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주위와 부딪쳐 바람을 깎아내 항력을 얻지 못하면 추락하고 만다. 나는 더 이상 비행할 수 없다. 과연 언제까지 힘들게 깎아내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기동을 유지할 수 있나. 주위의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깎아내는 아픔과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면 추락하는 길밖에는 없다.’
강원 태백시에 1800억 원을 들여 지은 ‘365세이프타운’이라는 명칭의 안전체험테마파크가 있다. 그는 개탄한다.
‘안전체험테마파크를 1800억 원 들여 대규모로 지어놓았다. 주말 오전인데 관람객이 10여 명이었다. 하루 평균 입장객 350여 명, 연간 적자 15억여 원. 1800억 원 상당 시설이면 외상센터 전체 건립비용의 두 배에 육박하거나 소방항공대 2~3곳을 창설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놀고 있어도 상관이 없다. 세월호 사건과 중증외상 이슈로 붉어진 ‘안전’ ‘외상’을 테마로 사방에서 해 먹고 싶어 하는 이들은 가득하지만, 핵심 가치는 없다. 한국이 그렇다.’
그는 수술방을 삶의 막장이라고 했다.
‘삶의 막장인 수술방은 삽시간에 유혈이 낭자한 피바다로 변했다. 나는 핏물 속에서 허우적대며 간신히 하나하나를 막아가고 있었으나 막아내는 것보다 터져 흘러나오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패색이 짙어졌다.’
“부모의 울음은 흘러가듯 깊었다”
그가 죽은 환자를 언급한 대목은 처연하다.‘부모들은 대답하지 않고 또 울었다. 부모들의 울음은 뼈와 살이 깎여 흘러가듯이 깊었다. 중환자실 끝까지 들리는 부모들의 울음은 너무나 슬프고도 깊어서 그 깊이를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혼자 중환자실 복판에 서 있었지만 죽음으로 둘러싸인 사방을 혼자 감당하는 느낌이었다.’
‘장기는 으스러져서 죽처럼 흘러내렸다. 숨이 끊어진 환자의 몸을 수술하다 나와서는 울부짖는 그의 식솔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 맑은 물을 들이켜고 싶었다. 그 애는 12살이라고 했다. 눈빛이 호수처럼 맑아서 내가 시선을 돌렸다. 그 아이의 시선을 생각하며 나는 돌아누워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풍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6·25전쟁 때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쳤다. 참전용사 가족에겐 영예보다 상처가 더 컸다. 그는 “아픈 사람에게만큼은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12월 7일 인터뷰에서 그는 “다 끝났다고 기사를 쓰라”고 했다. “왜 이렇게 힘겹게 사느냐”고 묻자 “가만히 있는데 급한 환자가 오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권역외상센터가 세워지는 등 과거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있지 않으냐”고 하자 “의사가 하는 일은 탈장 수술을 해도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면서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비망록에 이렇게 썼다.
‘내가 봉사와 헌신의 삶에 투신했다는 답변을 듣길 원하는 수많은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의사라는 직업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기초의학을 포함하는 어떤 전공을 하든지 이타적인 결과를 가지고 오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안 그런 직업이 어디 있나.’
“전력 다해 가던 길 간다”
살 수 있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계적 표준의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에 대한 그의 열망이 언젠가 꽃피우길 바란다.‘나 스스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목표를 갖고 온 것이 아니다. 버티다 보니까 쓸려서 떠내려온 것뿐이다. 휩쓸려 내려가면서도 빠져죽지 않으려 버둥거렸고 ‘세계적 표준’이라는 좌표를 상실하지 않으려고 방향성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너무 지쳐버렸다. 너무 많이 상해서 적절한 시점에 그만 정리해야 할 것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 어디까지 가야 하나. 그냥 가는 거다. 계속 그냥 가야 한다. 언제까지 가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냥 전력을 다해 가던 길을 간다. 계속 가다가 길에서 정리되더라도 간다. 갈 수 없는 데까지 가다가 더 못 가면 길을 가로막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