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호

이슈 현장

월성원전 고준위폐기물 저장고 2020년 포화

추가 건설하거나, 원전 가동 멈추거나

  • 입력2017-12-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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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 기간 2년, 2018년 상반기 결정해야

    • 주민, 환경단체, 정부 의견 제각각

    • 중·저준위, 습식저장조는 여유

    경주 월성원전.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경주 월성원전.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경주 지진 429일 만인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의 지진이 포항을 강타했다. 도로가 갈라지고 건물 벽이 무너졌다. 여진이 며칠째 계속되고 주민들의 공포와 우려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포항 진앙에서 경북 경주 월성원전까지는 직선거리로 45km 정도다. 울산의 새울원전, 부산의 고리원전까지도 100km 안쪽이다. 

    따라서 이 지역 해안가를 따라 몰려 있는 원전 주변 주민들도 지진을 우려하기는 포항시민과 마찬가지였다. 지진으로 원전 건물이 손상될 경우 원전 안에 보관돼 있던 핵연료 등에서 방사능이 밖으로 퍼져 주변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방사능이 가장 강력한 것이 고준위 핵폐기물인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를 별도로 관리할 시설이 없고 원전 임시 저장고에 보관한다. 경주에 들어선 방사성폐기물장에는 중저준위 폐기물이 보관되고 있다. 문제는 월성원전의 고준위 폐기물을 저장할 시설에 여유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2020년이면 포화 상태가 된다. 한수원 측은 임시 저장고 건설 기간이 2년 정도 걸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늦어도 2018년 상반기에는 건설이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추가 건설에 반발하고 있고, 정부도 원전 축소 정책에 따라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상황이다.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월성원전과 원전이 들어선 경주시 양남면 일대를 돌아봤다.

    “방송도 못 믿겠다”

    ‘당신은 방사능 피폭 위험지역에 들어오셨습니다.’ 



    2017년 11월 27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입구.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바람에 펄럭이는 붉은색 현수막이었다.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내건 것으로 보이는 플래카드의 문구는 외지인에게 경계심을 갖게 했다. 

    “운동 삼아 공원으로 산책 나갈 때마다 방사능 수치가 적혀 있는 전광판부터 쳐다봐요. 그렇게 오염된 수치는 아닌데, 자꾸 언론에서는 원전 때문에 암에 걸린다고 하니까 그게 정말 사실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짙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양남면 해안도로변에서 20년째 횟집을 하고 있는 경선희(61) 씨는 “방송도 못 믿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손님이 크게 줄어 이제는 종업원 월급을 챙겨주기도 버거울 정도가 됐지만 그래도 반평생 가까이 살아온 삶의 터전을 선뜻 등지고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대도시 화이트칼라 못지않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발전소가 세워진 덕분이란다. 한수원은 지역 주민 자녀에게 입사 혜택을 주고 있다. 자녀가 한수원에 입사하면 부모들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와 그가 운영하는 횟집에서 한턱을 거하게 내곤 한다. 

    “솔직히 손님이 줄었다고 제가 하소연할 처지가 되나요. 하지만 (이곳에 사는 게) 안 불안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2016년에 지진 났을 땐 집이 흔들리는 걸 나도 느꼈으니까. 그런데 그날 가게에서 식사하던 원전 직원들이, 쉬는 날인데도 숟가락을 놓고 바로 원전으로 달려가더라고요. 그거 보곤 마음을 놨죠. 어찌 되었건 전부가 한배 탄 거니까. 지진 났다고 여기 떠날 생각은 없어요.”

    원전 건설로 지역 발전

    사용후 핵연료 건식 저장고 맥스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사용후 핵연료 건식 저장고 맥스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양남면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는 회사원 김지태(50) 씨는 원전 건설로 지역 경제가 발전하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본 세대다. 도로가 닦이고, 건물이 올라가고, 인부들 밥을 대기 위해 식당들이 문을 열었다. 지금도 인근 지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원전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원전 때문에 살기 불안해졌다고 하기엔 얻은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정작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 불안해하는 거 같습니다. 정부가 원전 폐쇄를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 시각에서 보면 원전 가동이 중단되면 오히려 외부에서 우리 지역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보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정부는 원전이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살아갈 방법을 연구하고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월성원전의 발전량은 317억㎾h로 국내 총 발전량(5288억㎾h)의 약 6%, 국내 원자력발전량(1622억㎾h)의 20%를 차지한다. 그만큼 이곳에서 폐기물도 많이 나오고 있다. 발전소에서 사용된 핵원료는 일정 기간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고와 해수를 활용한 습식 저장조를 거쳐 1차 냉각 후 건식 저장시설인 캐니스터(용기방식)와 맥스터(모듈방식)에 임시 저장된다. 건식 저장시설은 콘크리트나 금속 용기 안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 후 공기 중에 자연 냉각시키는 시설이다. 

    총 300기가 운영 중인 월성원전의 캐니스터 저장시설은 1992년 4월 최초 저장 후 2010년 4월 저장용량 16만2000다발이 다 찼다. 2010년 4월 최초 저장을 시작한 맥스터(모듈방식) 저장시설은 2017년 10월 현재 총 16만8000다발의 저장용량 중 14만7480다발이 저장됐다. 2020년까지 추가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확보하지 못하면 원전 가동 중단은 불가피해진다. 

    하지만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시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한 관계자는 “안전성과 주민들의 입장, 여론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솔로몬의 지혜 필요

    반면 원전시설 폐쇄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로 사용후핵연료 배출량이 줄어드는 만큼 월성의 건식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는 시점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장하는 2020년보다 늦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정부가 2016년까지 반출을 약속한 건식 저장시설부터 이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고준위 핵폐기물을 영구히 저장할 폐기장을 건설하려면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원전 가동을 줄여 핵폐기물 발생을 줄일 것인가, 아니면 임시 저장고를 건설할 것인가.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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