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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9개의 다리’ 문재인 정부 북방정책

“‘재탕 삼탕’ 유라시아철도” “정치적 립 서비스와 허접한 내용”

  • 윤성학 고려대 러시아CIS연구소 교수 | dima7@naver.com

‘9개의 다리’ 문재인 정부 북방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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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러시아 비중 높여 역대 정부와 차별화”
    ● 극동과의 농업-수산 협력 긍정적
    ● “‘동북아 전력공동체’로 활로 뚫어야”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7년 9월 6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언론발표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7년 9월 6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언론발표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12월 7일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을 상징하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유라시아 국가들(러시아·중앙아시아·몽골·중국)과의 교통-물류-에너지-인프라 연계를 통해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고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신북방정책을 공약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 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3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제 임기 중 러시아와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그것을 한국은 신북방정책의 비전으로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신북방정책이 선언되고 추진 기구가 설치됐지만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신북방정책의 핵심인 ‘9개의 다리’는 과거 정권 정책의 재탕, 삼탕에 가깝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 문제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여기에다 신북방정책의 잠재적 협력 파트너인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북방경제협력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신북방정책은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는 대상지역, 범위, 전담기구, 사업진행 방식에서 많이 다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아시아와 유럽 등 광범위한 지역과의 협력을 목표로 삼은 반면, 신북방정책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인접한 북방지역과의 실질 협력 증진에 우선순위를 둔다. 대상 지역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 캅카스 지역, 우크라이나 등 CIS국가들, 몽골, 중국의 동북 3성이다.

文 대통령이 직접 챙겨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외교에 중점을 둔 반면 신북방정책은 경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신북방정책은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연계를 통해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것을 강조한다. 북방지역을 ‘번영의 축’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라시아 지역으로 경제 영토를 확장해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자는 건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청와대의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간사로 참여하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 유라시아 정책이 주로 외교부 소관인 것과 달리 신북방정책은 일관되고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특별 기구를 둔다. 유관 부처 간 조율 및 민관협력을 촉진하는 컨트롤타워로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라는 전담기구를 두는 것이 과거 정부와 확연하게 다른 점이다. 여당 중진인 송영길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무게감을 더해준다. 

북한과의 협력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현실 여건을 무시한 채 남-북-러 삼각협력을 추진한 것과 달리 신북방정책은 단계적으로 협력 가능한 사업부터 시작한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출범식 보도자료를 보더라도 남-북-러 협력은 다 빠져 있다. 남북 긴장 완화 등 관련 여건 개선 시 추진될 수 있도록 서두르지 않는 모양새다. 

가장 우선적인 협력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의 한-러 협력이고 다음으로 한-중앙아시아 협력이다. 2017년 11월 23일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국빈 방한과 100억 달러 규모 경제협력 체결은 신북방정책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극동 간 9개의 다리

시베리아 횡단철도 상·하행선이 러시아 하바롭스크 인근에서 교차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시베리아 횡단철도 상·하행선이 러시아 하바롭스크 인근에서 교차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신북방정책의 핵심은 문재인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밝힌 ‘한국과 극동 간 9개의 다리’에 잘 나타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 극동개발과 우리 북방 개발을 연계해 가스, 전력, 조선, 북극항로, 철도, 항만, 일자리, 농업, 수산 등 9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는 ‘9개의 다리(9 Bridges) 전략’을 제시했다. 일본의 아베 정부가 러시아와 8대 협력 분야를 정한 것보다 한 가지가 더 많은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9개 분야별 태스크포스 팀을 운영하면서 러시아 극동개발부와 공동으로 구체적 협력과제를 발굴할 계획이다. 9개 분야를 ‘긍정적, 중립적, 부정적’이라는 세 척도로 전망해봤다. 

먼저 가스의 경우, 문재인 정부는 러시아산 가스 수입 확대 및 에너지 개발 참여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은 세계 2위의 천연가스 수입국으로, 세계 2위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로부터 2009년 이래 매년 150여만t의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 송영길 위원장은 남-북-러 가스협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북한의 도발과 러시아의 모호한 자세로 실질적 추진은 당분간 힘들어 보인다. 세계 최대 야말 가스전에 중국이 대규모로 참여한 마당에 한국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우리 정부는 파이프라인 가스는 어렵지만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물량 확대와 러시아 천연가스 플랜트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의 연간 천연가스 수입 물량에서 러시아 사할린 물량의 비중은 6% 정도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사할린 물량을 확대하고 나아가 야말, 사할린의 해상 신규 가스전 및 플랜트 참여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러 가스 협력은 정부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으므로 ‘중립적’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3차 동방경제포럼에서 동북아 경제 번영과 평화 협력 기반 마련을 위해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을 제안했다. 풍력이나 천연가스 같은 극동, 시베리아, 몽골 고비사막의 풍부한 청정 에너지를 한국과 관련 국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전력망을 갖추자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정부 간 협의 채널을 조속히 마련하고 공동조사 등을 거쳐 2022년 일부 구간 착공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한국과의 전력망 연결보다는 일본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러시아 사할린 섬과 일본 홋카이도 해협 사이 43km 구간에 해저케이블을 매설하고 사할린, 홋카이도에 각각 발전소 1기를 건설해 양국 간 전력망을 잇는 60억 달러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향후 문재인 정부가 러시아, 중국, 일본을 어떻게 끌어들이냐에 달려 있다. 

조선의 경우, 한국은 러시아의 야말 프로젝트 이후 총 29척의 에너지 수송 선박을 수주했다. 최근 자체 선박 건조를 목표로 하는 즈베즈다 조선소의 현대화에 한국 조선사들이 기술협력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즈베즈다 조선소 현대화를 계기로 부품·기자재 공급을 추진하고 러시아 어선 개조사업에 우리 중소 조선사들이 참여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수주 물량에 목마른 한국의 중소 조선업체들은 러시아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 향후 한국과 러시아가 ‘윈윈’할 수 있는 긍정적 프로젝트다. 

북극항로는 최근 북극해 해빙과 북극 자원 개발에 따라 상업적 활용 가치가 증가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기존 아시아-유럽 항로를 약 7000㎞ 단축할 수 있는 최단 항로이지만 현재 물동량 부족과 짧은 운항 기간 때문에 국제적 이용은 저조한 실정이다. 해양수산부는 북극항로 운항 참여를 위한 물동량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북극해 정기 컨테이너선 항로 연구를 위해 국적선사와 러시아 극동개발부 간 실무 작업반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국제 해양 운임 요금 동향에 달려 있는데, 러시아가 북극해 운임 요금을 대폭 인하해야 한다.

통일돼도 유라시아철도 어렵다?

철도의 경우, 시베리아철도에 대한 우리 기업의 이용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현재 큰 요금 등락폭, 복잡한 통관 절차, 화차 부족 문제로 이용 활성화엔 한계가 있다. 국토교통부는 한반도-유라시아철도 연결 가능성을 감안해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회원국 가입도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 가입국인 북한의 반대로 회원국 가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장기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철도와 시베리아철도를 연결해 부산에서 파리와 런던까지 이어지는 철도물류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선 단절된 동해선(강릉-제진 105km) 및 경원선(백마고지-군사분계선 12km) 복원이 필요하다. 철도 연결 프로젝트는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 사항이었지만 손도 대지 못하고 끝났다. 

문제는 통일이 되어도 이 프로젝트가 사실상 실현되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천문학적 비용 대비 효율성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부산항을 통해 극동 항구로 연결하든지 차라리 중국 철도를 연결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항만의 경우, 러시아 극동지역 5대 항구(보스토치니, 블라디보스토크, 나호드카, 바니노, 포시에트) 현대화 사업에 한국이 적극 참여하면서 이 5개 항구와 우리 항구 간 연계에 노력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우리 기업이 러시아 극동지역 항만 개발 및 현대화 사업 참여(단독 또는 합작), 러시아 항만 터미널 운영권 확보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만 개발에 소요되는 천문학적 비용, 복잡한 지분 관계, 그리고 러시아식 까다로운 무역 규제를 고려한다면 쉽게 투자하기 힘들다. 항만 운영 등 소프트웨어 분야는 한국이 참여할 수 있으나 하드웨어의 경우, 한국이 참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일자리의 경우, 용어 사용에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산업단지로 정리되고 있다. 국토부는 러시아 연해주 내 한국 기업 전용 산업단지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임금 수준이 높고 사람 구하기도 힘든 러시아 극동을 제조업 기지로 활용할 의사가 전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적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폐기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가장 전망이 밝은 분야는 농업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농업생산 여건은 불리하나 한-중-일 소비시장과 인접해 있고 철도를 통해 다른 유라시아 시장에도 쉽게 진출할 수 있다. 현재 7개 한국 농업 기업이 진출해 연 5만t 이상의 곡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극동지역에서 농업 분야 협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세부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려인 동포 농장에 한해 한국으로의 농산물 수입 규제를 풀어주면 시너지 효과가 클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수산이다. 한국 기업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약 1100억 원 규모의 수산물류가공 복합단지 투자를 위해 러시아 측과 세부 추진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이 단지는 냉동창고, 부두, 가공공장, 유통시설이 통합된 수산물류 콤플렉스다. 현재 부지 사용과 관련된 복잡한 지분 문제가 남아 있지만 양국 정부가 지원하고 있어 1호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들의 목소리 반영 안 돼

해양수산부는 양식업, 사료 공장, 수산 기자재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극동지역 진출을 위해 러시아 측과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러시아의 풍부한 수산자원과 우리나라의 자본·기술이 결합하면 국내 수산산업의 신성장동력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명태, 대게 등 다양한 어(魚) 자원을 대상으로 하는 한-러 협력이 기대된다. 최근 러시아에서 가공 수산물에 대한 선호도가 상승하고 있어 이 분야에 노하우를 갖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9개의 다리’ 프로젝트들은 이미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어온 사업들이지만 실질적인 성과가 거의 없었다. 그동안 왜 사업이 안 되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다시 레코드를 돌린 것이다. 청와대가 사업 추진을 위한 20억 달러 한-러 투·융자 플랫폼을 강조했지만 이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때 이미 합의된 사안이다. 

백화점식 접근 정책도 문제로 지적된다. 많은 사업을 제안하기보다 하나의 사업이라도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극동 개발 참여는 더 실행 가능한 것으로 대체돼야 한다. 실질적 프로젝트가 있어야 가동되는 투·융자 플랫폼보다는 동북아 국제협력은행이 훨씬 현실적이다. 또한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을 전제로 한 몇몇 북방사업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9개의 다리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로 남-북-러 협력을 전제로 사업들을 제안했는데 러시아에는 ‘당장 추진하자’는 뜻으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주장하면서 남-북-러 사업을 주장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푸틴 대통령은 지금은 러시아와 한국 간에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다양한 민간교류, 특히 올림픽과 월드컵을 앞둔 문화, 체육 행사를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러시아의 반응이 냉랭한 것은 한국이 항상 말만 앞세운다는 경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인사들은 한국을 MOU(양해각서)만 좋아하는 NATO(No Action Talk Only) 정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마다 극동포럼 등 한-러 간에는 다양한 경제협력 채널이 열린다. 러시아 경제사절단의 요구는 한국 기업의 투자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對)러시아 투자는 2011년 이후 연간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규모 투자를 추진할만한 정치적 의지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러시아는 소비 시장으로서는 성장의 한계가 뚜렷하며, 이미 한국의 전자, 자동차, 식품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완료했다. 제조 기지로서 러시아는 열악한 투자 환경(특히 통관)과 높은 근로자 임금이 약점이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은 러시아를 중국과 동남아를 대체할 매력적인 곳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한국의 대러시아 투자는 자원 및 인프라 관련 투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노무현 정부의 캄차카 유전 개발, 이명박 정부의 남-북-러 가스관 연결, 박근혜 정부의 나진항 공동개발은 실패로 끝났다. 러시아도 ‘9개의 다리’가 5년 임기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가스관이나 전력 연결 등 인프라 프로젝트는 연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러시아의 열악한 투자 환경에도 불구하고 야말 가스전 개발, 시베리아 힘 가스관 사업 등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3차 동방경제포럼에서 한·러 두 정상은 6차 북한 핵실험에 대한 우려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해 공감했지만 북한에 대한 제재 방안에 대해선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석유 공급 중단과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의 철수를 푸틴 대통령에게 요청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文의 말씀자료, 외교부 사무관 수준”

블라디보스토크 전경. [참좋은여행 제공, News1]

블라디보스토크 전경. [참좋은여행 제공, News1]

푸틴은 오히려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한 자신의 ‘북한 핵 3단계 로드맵’을 역으로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러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이날 현장에 있던 북한 대표 김영재 대외경제상은 “현재로선 가능성이 없다”고 즉석에서 반박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말씀자료가 외교부 사무관 수준의 허접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청와대 누구도 사실을 검증하거나 전략적인 고민을 하지 않는 데 대해 크게 놀랐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문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도 “당연히 설득력이 없는 문 대통령 주장을 푸틴은 일축해버렸다”고 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북한에 보내는 석유는 연간 4만t에 불과하며 석유 공급 중단은 김정은에 대한 압박보다는 북한 민간에 더욱 큰 고통을 준다고 거절했다. 정상회담의 전문을 보더라도 푸틴은 한국에 대해 상당히 많이 공부한 것으로 비친다. 푸틴은 2017년 6월 평창에서 열린 8차 한-러 청년 대화 사업도 언급하고 무비자의 효과도 수치를 들어 평가했다. 반면 문 대통령의 이야기는 원론과 막연한 비전으로 점철돼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를 통해 북한 문제를 풀려면 북-러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러시아가 말썽꾸러기 북한을 감싸고도는 것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한을 지렛대로 활용해 동북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한국이 주장하는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 긴밀한 북-러 관계가 파탄이 난다. 북한이 러시아를 외면하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약한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입지가 손상된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러시아에 요구하면 러시아가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 외교안보팀에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
 
한국이 러시아와 실질 협력을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동북아경제공동체로 러시아를 끌어당길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3차 포럼에서도 자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러시아 중심의 한-러 양자 간 다이얼로그만 잔뜩 만들어놓았다. 러시아가 주도권을 쥐는 구도에서 한국은 북한 문제의 포로가 되어 러시아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한국이 극동에 대규모 투자를 해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극동은 인구가 약 500만에 불과해 시장가치가 작다. 제조업을 할 만한 인적 자원과 투자 환경을 갖지 못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현대중공업 고압차단기 투자 실패가 대표적 사례다.

북한 ‘갑질’ 허용 않을 방법

그래서 한국이 러시아를 견인하고 장기적으로 북한까지 포함하려 한다면 ‘동북아 공동의 집’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 사업이 동북아 슈퍼그리드다. 유럽연합(EU)이에너지 공동체에서 시작했듯이 동북아는 전력공동체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 전력이 풍부한 러시아와 몽골이 공급자가 되고 한국, 일본, 중국, 북한이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된 북방 협력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북한 문제였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은 북한의 참여가 확정되지 못하다 보니 흐지부지됐다. 박근혜 정부의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북한의 핵 실험으로 중단됐다. 

북한이 핵 개발로 달려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북한에 ‘갑질’을 허용해선 안 된다. 남-북-러 프로젝트는 이미 낡은 구상이 됐는지 모른다. 이젠 동북아 차원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면 북한이 스스로 자기도 끼워달라고 요청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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