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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없는 건축이 집결된 ‘돈의문 박물관 마을’

기억의 적층 위에 켜켜이 쌓은 서민적 건축

  • | 글·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진·지호영 기자 f3young@donga.com

족보 없는 건축이 집결된 ‘돈의문 박물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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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소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완공 2017년 8월
    설계 민현식·건축사무소 기오헌·노바 건축사무소
    문의 033-730-9000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종전 풍경.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종전 풍경.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새 단장한 이후의 풍경. 마을 자체가 20세기 서울 주택가 골목풍경을 담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신축하거나 개조한 부분은 차별화를 위해 회색 페인트로 구별했다.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새 단장한 이후의 풍경. 마을 자체가 20세기 서울 주택가 골목풍경을 담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신축하거나 개조한 부분은 차별화를 위해 회색 페인트로 구별했다.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골목길. 담장과 담장 사이 좁은 통로로 검둥이가 쏜살같이 튀어나올 것 같다. 야트막한 담장 위에선 야옹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을 법하다. 박수근 그림 속 겨울나무를 떠오르게 하는 정원수 아래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추위를 녹였다. 겨울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노란 담벼락에 그림자 되어 어른거린다. 하지만 도통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다 어딜 간 걸까. 돌림병이라도 돈 걸까. 건물은 놔두고 생명만 앗아간다는 중성자탄이라도 터진 걸까. 그것도 아니면 외계인이 다 납치해 간 걸까.

농담이다. 이곳은 서울시에 공원 부지로 기부채납된 저층 건물 68동 중 15동은 철거하고 5동은 신축, 나머지는 원형을 보전하는 대수선을 통해 43개 동의 마을로 새롭게 태어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다. 

경희궁과 인접한 마을 북서쪽은 개량한옥촌으로 변신했다.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경희궁과 인접한 마을 북서쪽은 개량한옥촌으로 변신했다.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경향신문 사옥 맞은편 서울삼성병원과 경희궁 사이 오르막에 위치한 마름모꼴의 이 마을은 중장년층 서울시민에겐 추억의 음식점이 몰려 있던 곳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데이트를 즐기다 맥주를 곁들인 이탤리언 요리를 즐길 수 있었던 ‘비스’(‘아지오’로 상호가 바뀜)와 정갈한 개성식 한정식으로 인기 많았던 ‘미르’, 비좁은 다락방 같은 3층 구조여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드럼통 위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던 ‘깡통’…. 이름만 들어도 침샘을 자극하는 이들 식당이 들어선 곳은 대부분 일반 주택이었다. 


개량한옥의 내부 구조.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개량한옥의 내부 구조.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 6·25전쟁 후 1960년대까지 도시형 주택의 대명사였던 개량한옥, 1970~80년대 유행한 ‘슬라브집’(벽돌을 쌓고 콘크리트 철골 판상으로 층을 쌓아 평평한 옥상을 갖춘 양옥)과 ‘불란서집’(박공지붕 아래 발코니와 테라스가 설치된 국적 불명의 양옥), 목욕탕이나 여관처럼 외벽에도 타일을 붙인 ‘타일외벽집’이다. 슬라브집과 불란서집은 ‘집장사 집’으로 통칭된다. 당시 유행하는 양식에 맞춰 뚝딱 지은 집이란 소리다.




1970~80년대 집장사 집으로 유행했던 ‘슬라브집’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1970~80년대 집장사 집으로 유행했던 ‘슬라브집’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건축학계에선 이런 집을 ‘건축가 없는 건축’이라 한다. ‘어번 버나큘러(urban vernacular)’라는 전문용어도 있다. 개별 도시 고유의 대중적 건축양식을 지칭한다. 국내에선 살짝 비하의 의미를 담아 ‘사생아 건축’이니 ‘서자(庶子)건축’이라고 번역해 쓰기도 한다. 한마디로 ‘족보 없는 건축’이란 소리다. 

20세기 근대건축의 아버지들로 불리는 르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 같은 건축가들은 이런 건축이 겉멋에 취해 건축 본연의 목적과 기능을 망각했다고 경멸하면서 ‘창조적 파괴’를 주장했다. 그들에게 도시는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것을 기록하는 ‘빈 서판(타블라 라사)’이나 다름없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세우자는 이런 생각이 곧 개발의 논리로 이어졌다. 


평평한 옥상에 박공지붕을 얹어 ‘불란서집’ 풍으로 개조된 ‘슬라브집’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평평한 옥상에 박공지붕을 얹어 ‘불란서집’ 풍으로 개조된 ‘슬라브집’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1960년대 들어 서구에서 이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건축을 공간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시간과 결부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 대두한 것이다. 도시는 건물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기억의 적층 위에 다시 새로운 욕망이 덧씌워져 가는 연속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사무소 기오헌의 민현식 대표는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다음 문장으로 이에 대한 설명을 대신한다.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로 서술하지는 않습니다. 그 과거의 기억들이 거리의 모퉁이에, 창문의 창살에, 계단의 난간에, 깃발 게양대에, 피뢰침의 안테나에, 그리고 모든 부분 부분에 흠집으로 각인되고 무늬같이 새겨져 마치 손에 그려진 손금과도 같이 담겨져 있을 뿐입니다.”


서울의 옛 골목길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단층 슬라브집.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서울의 옛 골목길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단층 슬라브집. [건축사무소 기오헌 제공]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그러한 기억의 저장고로서 조성됐다. 20세기를 관통하는 서울의 다양한 ‘서자건축’ 양식을 보전하면서 거기에 결부된 서울시민의 기억 내지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을 표방한 것이다.


1 중정이 있는 일본식 2층 목조주택
2 금속 손잡이를 붙인 목조현관
3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목조 복도
4 인천제철 서울사무소였던 공간을 개축해 재탄생시킨 서울도시건축센터

아직까지는 정체성이 모호하다. 해당 부지는 인근 교남동 경희궁자이 아파트 등 ‘돈의문 뉴타운’ 개발에 고층아파트를 허용해주는 대신 서울시에 공원 부지로 기부채납이 약정됐다. 뉴타운 입주와 정산이 끝나는 2019년경에나 서울시로 소유권이전 등기가 완료된다. 그래서 새 단장을 마치고 2017년 10월 28일~11월 5일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기간 비엔날레 관련 전시 공간으로 첫선을 보였지만 당분간은 시범 운영 형태로 느슨하게 운영될 예정이다. 

서울시의 마스터플랜상으론 크게 문화시설과 편익시설로 나뉜다. 문화시설은 다시 셋으로 나뉜다. 첫 번째, 과거 인천제철 서울사업소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한 서울도시건축센터 및 건축전시관이다. 서울시 공공건축사업 관련 홍보, 전시, 교육, 세미나, 자료 수집 및 보관과 연구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또 하나는 ‘돈의문 전시관’이다. 과거 ‘아지오’와 ‘미르’가 입주해 있던 건물을 중심으로 예닐곱 개 대형 건물동을 연결해 서울역사박물관의 분원으로서 돈의문 일대의 과거 모습과 개발 과정을 소개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서울도시건축센터 뒤쪽 한옥 밀집 구역으로 한옥을 유스호스텔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시설을 제외한 절반의 건물은 음식점과 카페, 서점, 소매점으로 임대해 편익시설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유스호스텔로 예정된 한옥 건물을 여기에 포함하자는 의견도 검토되고 있다고 건축사무소 기오헌의 김남형 이사는 전했다. 편익시설로 임대하기 위해선 소유권이전 등기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당분간은 서울시와 연계하는 예술가들의 전시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는 43개나 되는 건물 관리 문제와 직결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건물은 금방 풍화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 건물 자체를 둘러보면서 서울의 기억과 개인적 추억을 돌아보기에는 건물이 비어 있는 지금이 적기다. 가운데 중정을 두고 아궁이가 장착된 부엌 옆의 ‘식모방’과 별도의 ‘사랑채’를 둔 2층짜리 일본식 목조건물은 가장 마지막까지 사람이 살던 공간이라 하는데 영화나 드라마 로케 장소로 쓰일 법하다. 기와지붕이 이웃집과 다닥다닥 붙은 ㄷ자 형태의 개량한옥, 불란서집 흉내를 내기 위해 박공지붕을 붙인 슬라브집,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의 추억이 담긴 옛 음식점들을 건축으로 마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마을에 들어서면 시각보다 후각이 먼저 작동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마을의 기구한 역사와 운명까지 더듬어보면 감회가 더욱 새롭다. 이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서울 도심과 가깝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가 적용되는 사각지대였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돈의문) 사거리 가는 중간에 위치한다. 하지만 인왕산 자락을 따라 형성돼 터가 좁은 데다 성밖과 성내의 경계지대에 위치하다 보니 조선 시대에는 중심지와 동떨어진 촌락이 됐다. 고교 시절 인근에 살았던 민현식 대표에 따르면 전차가 다니던 1960년대까지도 주택단지라 밤에 전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유독 이 마을 앞만 어두컴컴했다고 한다. 1968년 고려병원(현재의 강북삼성병원)이 개원한 뒤에는 의수의족 점포와 접골원이 잔뜩 들어서 다소 으스스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 문화방송 정동사옥(현 경향신문 사옥) 등 주변에 고층건물이 들어섰지만, 돈의문 박물관 마을 일대는 역시 입지 조건이 좋지 않아 고층건물이 들어서지 못했다. 대신 주변 건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선 것이다. 이곳에 들어선 건축양식을 빼닮은 ‘서자의 운명’을 타고난 공간인 셈이다. 옛 추억을 더듬는 건축 투어를 마친 뒤 이곳에 딱 어울리는 대중가요가 떠올랐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지만, 궂은비 맞을 때마다 귀밑머리 쓰다듬으며 이별주 나누던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던 ‘번지 없는 주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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