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영 기자]](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5a/4d/eb/07/5a4deb070ae9d2738de6.jpg)
[지호영 기자]
“이사하면서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울까 고민하던 차에 화분을 들이게 되었어요. 이전에도 식물을 키워본 적은 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식물이라고 받아 와도 막상 키우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 죽거나 썩어버리기 일쑤였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잘 키워보자 결심하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알음알음 공부해요. 이웃에 있는 꽃집에 들러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요.”
그가 이사하면서 처음 들인 식물은 ‘아이비’와 ‘신고니움’. 화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는 데다, 수경재배까지 가능해 요즘 같은 겨울철, 건조한 실내를 쾌적하게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식물이다. 그의 베란다 식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테이블야자’다. 5년 전 줄기가 두 개뿐이던 작은 것이 이제 굵은 줄기가 6, 7개까지 자라나 큼지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과 식물의 ‘교감’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식물 키울 것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호영 기자]](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5a/4d/eb/0b/5a4deb0b1ce4d2738de6.jpg)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식물 키울 것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호영 기자]
집 안에서 기르는 동물에 ‘애완’이란 말 대신 ‘반려’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된 것이 불과 몇 년 전.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과 유대에 대한 공감대로 이어졌다. 최씨는 반려동물 입양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동물 대신 식물을 길러볼 것을 권한다.
“특히 직장을 다니는 싱글족이라면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만큼은 말리고 싶어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고려해야 할 게 많거든요. 하루 종일 혼자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동물이 받게 될 스트레스와 외로움도 문제지만, 여행을 가거나 집을 비워야 할 때마다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 천덕꾸러기가 되기 일쑤고요. 책임지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최악의 경우도 배제할 수 없죠.”
물론 식물이라고 마냥 방치하거나 반대로 애정 공세를 과하게 하는 것도 금물이다. 물 주는 시기를 놓치면 회복 불능 상태로 말라버리고, 반대로 물을 듬뿍 주면 뿌리까지 썪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려동물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에 비해 주인이 받게 되는 심리적 충격과 공포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은 장점”이라는 게 최씨의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식물을 키운다는 것’이 지금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유난스러운 일은 아니다. 화단에 식물을 키운다거나 난을 가꾸는 모습은 어느 가정에서나 예전부터 쉽게 볼 수 있던 장면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식물을 키우는 행위보다 ‘반려식물’이라 부를 만큼 식물의 순기능에 더욱 주목하는 대중들의 심리다. 식물에게나마 마음을 주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변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레옹’에 등장했던 화분처럼 말이다. <2018 대한민국 트렌드, 최민수 외, 한국경제신문사>
그 외에도 식물은 공기를 정화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며, 반려동물에 비해 관리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장점이다. 온·오프라인 리서치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58%가 현재 직접 키우는 식물이 있고, 27%는 현재는 아니지만, 과거에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주로 키우는 것은 ‘군자란’ ‘스투키’ 같은 공기정화 식물이 55%로 가장 많다. 선인장 등의 다육식물이 52%, 그 외 나무 44%, 난 29%, 허브 29%, 넝쿨 식물 24%로 조사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현재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74.1%가 ‘주변 사람들에게 식물을 키울 것을 추천하고 싶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밝아진 집 안 분위기,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기쁨, 힐링 되는 느낌 등 식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정서적인 효과가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식물 마니아끼리 거래 활발
“식물은 언제나 집에 함께 있는 좋은 친구죠.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단절’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그래도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친구 아니겠습니까. 과거에는 직접 만나서 부대끼면서 유대감을 가졌다면,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대화하고 친분을 쌓는 사례가 늘어났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지요. 그런 가운데 사람의 좋은 친구로 등장한 것이 식물이 아닐까 싶어요.”식물오픈마켓 심폴(www.simpol.co.kr) 이종민(55)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식물을 반려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확산되는 동시에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를 뜻하는 ‘플랜트 인테리어’가 인기를 얻으면서 식물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인구 또한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선은 올해로 16년째 식물 판매·유통 사이트를 운영하는 그부터가 식물 재테크의 산증인인 셈이다. 온라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를 운영하던 그는 삭막한 사무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화분을 들여놓다가 온라인으로 손쉽게 화분을 구매할 방법을 강구하게 됐고, 이것이 사업 아이디어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사업 초기에는 문제가 많았어요. 온라인으로 식물을 구매하는 것부터가 생소한 일인 데다, 택배에 적합한 포장법도 개발되지 않아 배송 중에 식물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요즘엔 포장 시스템이 잘 갖춰진 데다 판매사와 고객 상호 간의 의식 수준도 높아져 한층 대중화된 느낌입니다. 동네 꽃집은 사라지는 추세지만 온라인 거래는 늘고 있어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변화는 과거 전문 판매자와 일반 소비자 간에 이뤄지던 거래가 ‘식물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집 안에서 키우기 쉽고 공기 정화 효과가 큰 관엽식물이 주로 거래됐지만, 최근에는 재테크 효과가 큰 다육식물은 물론 실내에서 키우기 까다로운 야생화까지 다양하게 거래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식물을 관상용으로만 생각했다면, 근래에 들어서는 취미를 넘어 직업으로도 여기는 분이 늘고 있습니다. 그저 취미 삼아 하나둘 키우기 시작했다가 어느 정도 물량이 늘어나면 ‘아, 이걸 팔아 이윤을 남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아파트처럼 좁은 공간에선 어렵지만 그렇다고 꼭 비닐하우스 같은 넓은 환경이 필요한 것도 아니거든요.
또 굳이 전문 농업인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재배해야만 식물 재테크가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작게는 일반 주택의 옥상에서 식물을 길러 판매하고, 작은 화분을 구매해 어느 정도 키운 다음 번듯한 화분에 심어 되파는 분들도 있어요. 식물과 화분을 각각 구입해 옮겨심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윤을 낼 수도 있습니다. 의외로 사람들이 예쁜 화분에 심겨진 식물을 구매하고자 하거든요. 각각 따로 사면 더 저렴한 데도 말이죠.”
식물은 종류와 키운 기간에 따라 많게는 1000만 원을 호가하는 금액으로 거래되는 사례까지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식물 재테크는 최근 재테크 강좌 등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가 됐다.
놀이이자 휴식
![경기 광주에 자리한 ‘파머스 대디’의 텃밭 풍경. [파머스대디 제공]](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5a/4d/eb/11/5a4deb111378d2738de6.jpg)
경기 광주에 자리한 ‘파머스 대디’의 텃밭 풍경. [파머스대디 제공]
경기 광주에 위치한 ‘파머스 대디’는 유리온실로 된 카페뿐만 아니라 카페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 전체가 유럽의 멋진 전원을 연상케 한다. 카페 주인은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비롯해 상암동 듀스빌 오피스텔, 평택 북시티, 인천공항, 용인의 알렉스 더 커피 등을 디자인한 유명 건축가 최시형(61) 씨다. ‘파머스 대디’는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 약 6600㎡를 4년에 걸쳐 손수 디자인하고 일궈 만든 ‘밭’의 이름이다.
“밭도 예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밭에 돈을 내고 구경 오는 사람들이 있도록 하겠다’는 게 당시의 결심이었죠.”
2013년 가을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텃밭문화’ 프로젝트에서 광장 전체를 밭으로 디자인한 그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만든 밭은 정말 예뻤다. 배추, 무, 쪽파, 당근, 부추 등 신선한 먹을거리가 자라는 우리네 텃밭에는 곤충이 싫어하는 꽃인 마리골드와 허브가 함께 심어져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밭의 기능과 정원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기쁨을 동시에 가져다줬다.
‘파머스 대디’는 이러한 아이디어의 확장판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꽃이 피고 열매를 수확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그의 밭에서는 대나무와 색색의 철근이 지지대로, 넝쿨 식물을 잇는 아치로 사용되고 있다.
최시형 씨가 이처럼 밭으로 눈길을 돌린 것은 현대인이 산업화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난파된 배의 난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명 건축가 최시형 씨는 최근 일고 있는 ‘식물 트렌드’의 선두에 서 있다. 그는 “식물과 밭을 통해 현대인이 잃어버린 삶의 리듬을 찾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5a/4d/eb/15/5a4deb150402d2738de6.jpg)
유명 건축가 최시형 씨는 최근 일고 있는 ‘식물 트렌드’의 선두에 서 있다. 그는 “식물과 밭을 통해 현대인이 잃어버린 삶의 리듬을 찾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그는 “농촌 풍경을 그리라고 하면 아이들은 죄다 둥그런 비닐하우스만 그린다”며 “우리의 밭에 개성을 되찾아주고 싶다”고 했다.
“제가 디자인하고 가꾼 밭을 롤모델 삼아 밭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밭의 가장자리에 예쁜 꽃이 피어나고, 한켠에는 옹기종기 예쁜 화분과 모종삽을 판매하는 정도의 아이디어만으로도 밭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땅’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원두막처럼 오가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더 좋겠고요.”
자연을 가까이하고, 식물을 통해 일상의 삭막함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2004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제주도로 사옥을 이전하기로 하고 시작한 공사가 2012년 완료되면서 본격적으로 제주 시대를 열었다. 카카오와의 인수합병으로 사옥 이름은 ‘카카오 스페이스’로 변경됐고, 다양한 형태의 개방을 시도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제주 오름과 화산동굴을 형상화한 카카오 스페이스의 업무 공간 ‘스페이스닷원’에서는 전면 통유리를 통해 한라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북쪽으로는 제주의 탁 트인 푸른 바다가 보인다. 옆면에는 공사 중에 나온 암반을 활용해 인공 오름 ‘카카오 오름’을 조성했다. 직원들이 1년 365일 회사 앞마당에서 자신의 텃밭을 가꿀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하다. 직원들은 텃밭 동호회를 구성해 제철 작물을 심고 수확해 서로 나눠 먹는다. 이들에게 농사는 노동이라기보다는 놀이와 휴식에 가깝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최근 부각되는 식물 재테크에서 특히 인기 있는 대상은 성장과 번식이 쉽고 생명력이 강한 다육식물이다. 키우기 쉽고 공기정화 효과가 큰 관엽식물도 꾸준하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 먼지 등을 흡착하는 효과가 있는 공중식물에 대한 관심도 높다. 좁은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부피가 작은 화분이 선호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종민 심폴 대표는 “식물 키우기에 정을 붙이면 차츰 전문가가 되고 소소한 수익도 낼 수 있다”고 말한다.“식물도 동물이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물만 잘 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물을 너무 자주, 많이 주면 식물도 익사할 수 있어요. 며칠에 한 번 주는 룰도 위험해요. 계절과 실내 환경에 따라 흙이 마르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식물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거든요. 가장 좋은 방법은 화분에 손을 대보고 촉감으로 습기를 감지하는 겁니다. 흙이 어느 정도 말랐다 싶을 때 한 번씩 물을 주는 것이 가장 좋아요.
그리고 초보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환기’입니다. 식물이 공기를 정화해주니까 창문을 닫고 지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여기지만, 식물도 숨을 쉬는 존재다 보니 공기가 탁하면 질식해 죽고 맙니다. 매일 적절하게 환기하고 햇볕도 적당히 쬐어줘야 식물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