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호

트렌드

‘반려식물’ 전성시대

힐링부터 재테크까지

  • 입력2018-01-0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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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한테도 가족, 친구와 같은 애정을 느낄 수 있을까. 1인 가구 500만 시대, 집 안에서 기르는 식물에 정서적 애착을 갖는 인구가 늘면서 식물에도 ‘반려’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면서도 정서적 안정과 조용한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는 반려식물. 최근에는 키우던 식물을 소소하게 재테크에 활용하는 사례까지 늘고 있어 흥미롭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사는 최경선(34) 씨의 집 베란다에는 다섯 개의 작은 화분이 올망졸망 줄지어 늘어서 있다. 5년 전 길을 지나다 우연히 구입한 작은 화분 두 개가 계기가 돼 하나둘 그 수가 늘어났다. 이제는 주변 지인들에게 키우던 식물 화분을 나눠줄 만큼 제법 어엿한 반려식물 전문가가 됐다.
     
    “이사하면서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울까 고민하던 차에 화분을 들이게 되었어요. 이전에도 식물을 키워본 적은 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죠.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식물이라고 받아 와도 막상 키우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 죽거나 썩어버리기 일쑤였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잘 키워보자 결심하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알음알음 공부해요. 이웃에 있는 꽃집에 들러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요.” 

    그가 이사하면서 처음 들인 식물은 ‘아이비’와 ‘신고니움’. 화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는 데다, 수경재배까지 가능해 요즘 같은 겨울철, 건조한 실내를 쾌적하게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식물이다. 그의 베란다 식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테이블야자’다. 5년 전 줄기가 두 개뿐이던 작은 것이 이제 굵은 줄기가 6, 7개까지 자라나 큼지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과 식물의 ‘교감’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식물 키울 것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호영 기자]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식물 키울 것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호영 기자]

    “요즘 ‘반려식물’이란 말을 많이 하잖아요. 참 적절한 표현이다 싶어요. 저에겐 이 화분이 자식 같은 느낌이거든요. 잎이 푸릇푸릇 새로 날 때면 어쩐지 뿌듯하고, 시들해지면 속상하고 마음이 쓰여요. 그러다 식물이 죽으면 모든 게 제 잘못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잊을만할 때마다 한 번씩 물 주고 ‘예쁘게 잘 자라고 있구나’ 칭찬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말은 할 수 없지만, 식물도 우리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란 걸 알고 있을 거예요.” 

    집 안에서 기르는 동물에 ‘애완’이란 말 대신 ‘반려’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된 것이 불과 몇 년 전.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과 유대에 대한 공감대로 이어졌다. 최씨는 반려동물 입양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동물 대신 식물을 길러볼 것을 권한다. 

    “특히 직장을 다니는 싱글족이라면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만큼은 말리고 싶어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고려해야 할 게 많거든요. 하루 종일 혼자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동물이 받게 될 스트레스와 외로움도 문제지만, 여행을 가거나 집을 비워야 할 때마다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 천덕꾸러기가 되기 일쑤고요. 책임지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최악의 경우도 배제할 수 없죠.” 

    물론 식물이라고 마냥 방치하거나 반대로 애정 공세를 과하게 하는 것도 금물이다. 물 주는 시기를 놓치면 회복 불능 상태로 말라버리고, 반대로 물을 듬뿍 주면 뿌리까지 썪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려동물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에 비해 주인이 받게 되는 심리적 충격과 공포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은 장점”이라는 게 최씨의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식물을 키운다는 것’이 지금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유난스러운 일은 아니다. 화단에 식물을 키운다거나 난을 가꾸는 모습은 어느 가정에서나 예전부터 쉽게 볼 수 있던 장면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식물을 키우는 행위보다 ‘반려식물’이라 부를 만큼 식물의 순기능에 더욱 주목하는 대중들의 심리다. 식물에게나마 마음을 주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변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레옹’에 등장했던 화분처럼 말이다. <2018 대한민국 트렌드, 최민수 외, 한국경제신문사>

    그 외에도 식물은 공기를 정화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며, 반려동물에 비해 관리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장점이다. 온·오프라인 리서치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58%가 현재 직접 키우는 식물이 있고, 27%는 현재는 아니지만, 과거에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주로 키우는 것은 ‘군자란’ ‘스투키’ 같은 공기정화 식물이 55%로 가장 많다. 선인장 등의 다육식물이 52%, 그 외 나무 44%, 난 29%, 허브 29%, 넝쿨 식물 24%로 조사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현재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74.1%가 ‘주변 사람들에게 식물을 키울 것을 추천하고 싶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밝아진 집 안 분위기,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기쁨, 힐링 되는 느낌 등 식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정서적인 효과가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유명 건축가 최시형 씨는 최근 일고 있는 ‘식물 트렌드’의 선두에 서 있다. 그는 “식물과 밭을 통해 현대인이 잃어버린 삶의 리듬을 찾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유명 건축가 최시형 씨는 최근 일고 있는 ‘식물 트렌드’의 선두에 서 있다. 그는 “식물과 밭을 통해 현대인이 잃어버린 삶의 리듬을 찾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우리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가 저를 지치게 한 것 같아요. 대한민국은 모든 게 빠릅니다. 건축도 예외가 아니에요. 일에 지쳐 업계를 떠나고 싶었지만, 어디를 기웃거려보아도 슈퍼맨과 슈퍼우먼 천지였어요. 어딜 가도 슈퍼맨, 슈퍼우먼이 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거더군요. 그러다가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서양의 ‘가든’은 사색의 공간입니다. 철학자들은 정원을 거닐며 사색에 잠겼죠. ‘느리게 문화’입니다. 이것이 ‘빨리빨리’에 지친 슈퍼맨들의 삶에 리듬을 되찾아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네 텃밭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는 “농촌 풍경을 그리라고 하면 아이들은 죄다 둥그런 비닐하우스만 그린다”며 “우리의 밭에 개성을 되찾아주고 싶다”고 했다. 

    “제가 디자인하고 가꾼 밭을 롤모델 삼아 밭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밭의 가장자리에 예쁜 꽃이 피어나고, 한켠에는 옹기종기 예쁜 화분과 모종삽을 판매하는 정도의 아이디어만으로도 밭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땅’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원두막처럼 오가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더 좋겠고요.” 

    자연을 가까이하고, 식물을 통해 일상의 삭막함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2004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제주도로 사옥을 이전하기로 하고 시작한 공사가 2012년 완료되면서 본격적으로 제주 시대를 열었다. 카카오와의 인수합병으로 사옥 이름은 ‘카카오 스페이스’로 변경됐고, 다양한 형태의 개방을 시도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제주 오름과 화산동굴을 형상화한 카카오 스페이스의 업무 공간 ‘스페이스닷원’에서는 전면 통유리를 통해 한라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북쪽으로는 제주의 탁 트인 푸른 바다가 보인다. 옆면에는 공사 중에 나온 암반을 활용해 인공 오름 ‘카카오 오름’을 조성했다. 직원들이 1년 365일 회사 앞마당에서 자신의 텃밭을 가꿀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하다. 직원들은 텃밭 동호회를 구성해 제철 작물을 심고 수확해 서로 나눠 먹는다. 이들에게 농사는 노동이라기보다는 놀이와 휴식에 가깝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최근 부각되는 식물 재테크에서 특히 인기 있는 대상은 성장과 번식이 쉽고 생명력이 강한 다육식물이다. 키우기 쉽고 공기정화 효과가 큰 관엽식물도 꾸준하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 먼지 등을 흡착하는 효과가 있는 공중식물에 대한 관심도 높다. 좁은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부피가 작은 화분이 선호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종민 심폴 대표는 “식물 키우기에 정을 붙이면 차츰 전문가가 되고 소소한 수익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식물도 동물이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물만 잘 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물을 너무 자주, 많이 주면 식물도 익사할 수 있어요. 며칠에 한 번 주는 룰도 위험해요. 계절과 실내 환경에 따라 흙이 마르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식물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거든요. 가장 좋은 방법은 화분에 손을 대보고 촉감으로 습기를 감지하는 겁니다. 흙이 어느 정도 말랐다 싶을 때 한 번씩 물을 주는 것이 가장 좋아요. 

    그리고 초보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환기’입니다. 식물이 공기를 정화해주니까 창문을 닫고 지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여기지만, 식물도 숨을 쉬는 존재다 보니 공기가 탁하면 질식해 죽고 맙니다. 매일 적절하게 환기하고 햇볕도 적당히 쬐어줘야 식물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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