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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틀리면 기뻐하세요 소화력 키우는 중이니까”

사교육 없이 4자녀 명문대 보낸 전직 사교육업체 CEO 김준희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틀리면 기뻐하세요 소화력 키우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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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본질 오해 말라

아이들은 아빠 회사에서 나오는 학습지 정도는 했다. 학원은 고3 때 수학이나 논술 단과학원을 잠깐 다닌 게 전부다. 김 대표는 “상시적으로 약 달여먹듯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아이들은 집에서 책을 읽었다. 지금은 장성해 부모 곁을 떠난 아이들이 얼마 전 김포 집에 모여 어려서 읽은 책을 세어봤다. 각자 400~500권이나 됐다. 막내인 아들은 “누나들 따라 읽었죠, 뭐” 했단다.
“큰아이가 6학년에 올라갈 무렵, 시골 학교에 남아 있으면 대학 못 간다며 서울로 전학 가는 아이가 몇몇 있었어요. 큰애가 제 딴에는 심각하게 저한테 서울로 위장전입 시켜달라고 요구하더군요. 그래서 동생들까지 주르륵 앉혀놓고 담판 지었습니다. ‘아버지는 책을 열심히 읽는 것만으로도 대학 갈 준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어느 대학 나왔는지 알지?’ 하고 좀 치사한 이유도 댔고요(웃음).”
그는 서울대 법학과 76학번이다.

▼ 독서가 공부다?
“셋째 말로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니까 슬슬 실력 발휘가 되더래요. 친구들은 우선 필기해놓고 무슨 말인가 들여다보는데, 자기는 이해하면서 적었다고요. 독서하는 습관 덕분에 이해력의 깊이가 달라진 거죠. 저는 이것이 독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많이 하면 거친 지식의 덩어리를 쥐여줘도 꼭꼭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거지요. 이런 소화력을 가진 아이들이 공부가 어려워질수록 빛을 발해요. 셋째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점을 4.5점 만점에 4.5점을 받아왔어요. ‘너 미쳤니?’ 했더니 ‘전 공부 좀 하면 그렇게 나와요’ 하더라고요.”

▼ 하지만 어릴 때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불안할 텐데요.
“많은 학부모가 공부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배운 것을 어른이 돼서 써먹을 일 있나요? 어려서 배워야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소화력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점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틀리면 야단을 치지요. 아이는 두려운 마음에 공부가 즐거울 수 없어요.
아이가 틀리면 부모는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아이는 ‘왜 틀렸지?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답답해하다가 ‘아, 이런 거구나’ 하면서 깨달음의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래야 소화력을 키울 수 있는데, 본말이 전도돼 부모가 사교육을 동원해 쉽게 소화될 수 있도록 아이에게 ‘미음’만 먹이곤 해요. 제가 사장을 하면서 신입사원을 숱하게 받아봤는데, 스펙은 다들 비슷합니다. 그런데 소화력은 차이가 커요. 소화력이 뛰어난 직원들은 어떤 업무든 두려워하지 않고 잘해냅니다.”

▼ 소화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독서를 택했네요.
“물론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새 전집이 나오면 판매하는 분들에게 새 전집을 소개하면서 ‘독서 잘하는 아이가 ‘진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곤 했어요. 이 말을 증명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면 나중에 잘됐을 때 학원 때문인지 독서 때문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다행히(?) 집 근처에 학원도 없었고….”

사교육의 ‘반대 증거’

지금은 아파트에 살지만 김포로 처음 이사 가서는 농가주택에서 살았다. 화장실이 재래식이어서 셋째와 넷째가 ‘똥통’에 빠지는 ‘참사’도 겪었다. 시골 아이들이 학원도 안 다니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자 주변에서는 부러움 반, 시기 반 반응이 많았단다(첫째는 이화여대, 둘째는 서울대를 졸업했고, 셋째와 넷째는 각각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예전에 ‘얄미운 년’ 시리즈가 유행한 적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 게 없는데 애들이 대학에 척척 붙는 년’이었어요. 어느 날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그러더군요. ‘왜 내가 한 게 없어? 간섭하고 싶고, 보내고 싶지만 참은 게 얼만데…’ 라고요.”



▼ 부모의 고집이 좋은 결과를 낳았네요.
“우리 아이들이 최고라는 건 아니고, 이 정도면 부모가 비싼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반대 증거가 될 수 있지 않나…. 그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굳이 제가 조언을 드리자면 저희 집처럼 하라는 게 아니라, 사교육 중독을 경계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학원은 무엇이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어요. 그러나 거기에 의지하다보면 소화력이 약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본질적인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틀리면 기뻐하세요 소화력 키우는 중이니까”

에세이집 ‘그림수업 인생수업’에 실린 김 대표의 아내 이현숙 씨의 초상화, ‘시집가던 날’과 ‘시집보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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