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사무관 · 부단체장 ‘낙하산’ 기초단체 속앓이

광역단체 인사 ‘갑질’ 논란

  • 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입력2015-12-21 17: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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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에서 시·군에 내려보낸 5급 ‘낙하산’ 수두룩
    • 전남 신안군, 사무관 4명 ‘인사 보류’로 저항
    • 226개 시·군 219개 부단체장이 ‘광역 낙하산’?
    • 행자부 “인사교류 협의 없으면 시정 대상”
    사무관 · 부단체장 ‘낙하산’ 기초단체 속앓이

    (왼쪽부터) 전남도청 신안군청 지호영 기자

    우리나라에서 섬으로만 이뤄진 유일한 행정구역 전남 신안군. 사람이 사는 섬만 72개, 무인도까지 합하면 1000여 개에 달한다. 주민 대부분이 어업이나 수산업에 종사한다. 교통사정이 열악하다보니 육지에서 1시간 걸릴 거리가 이곳에선 하루가 걸린다. 2007년 말 한국 지방행정연구원이 전국 232개(현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생활서비스지수 조사 결과 전국 꼴찌였다.
    종합병원이나 영화관은 꿈도 못 꾼다. 비디오방 같은 것도 없고, 그 흔한 약국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 주민이 노령화하면서 이들을 도와줄 공무 인력은 갈수록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신안군을 떠난 공무원이 81명이나 된다. 현재 신안군에 근무하는 공무원 수가 707명이니 10%가량의 인력이 떠난 셈이다.
    형편이 이런데도 고길호 신안군수는 2015년 8월 31일, 5급 사무관 4명에 대해 전격적으로 인사 보류를 단행했다. 단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뭘까. 고 군수는 이렇게 설명한다(상자 인터뷰 참조).
    “정상적으로 인사교류를 하려면 기초단체의 필요인력도 재고하고 최소한 협의를 거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전남)도는 인사교류라는 명목으로 그동안 일방적으로 5급 사무관을 4명씩이나 파견했다. 그게 부당하니 다시 도청으로 데려가라는 의미로 인사보류 조치를 했다.”
    ‘지방공무원법’과 ‘전라남도 지방공무원 인사교류 규칙’ 등에 따르면 광역단체와 기초단체는 인사교류협의회를 구성하고 매년 1회 이상 회의를 열어 인사교류를 협의해야 한다. 1대 1 인사교류가 원칙이다. 또한 행정자치부의 ‘지방공무원 인사교류 운영지침’에는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간 인사교류 과정에서 인사상 우대와 원 지자체 복귀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인사교류 협약을 체결하도록 규정했다.
    신안군 측에 따르면 그동안 전남도와 신안군은 인사교류협약을 체결한 적도 없고, 심지어 인사교류협의회 회의 한 번 한 적이 없다. 이는 비단 신안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남 22개 시·군뿐 아니라 일부 광역단체도 사정이 비슷하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이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조사한 ‘전국 시·군·구별 낙하산 인사현황’을 보면 5급 사무관 파견자가 가장 많은 곳은 84명에 달하는 경기도였다. 전남이 53명으로 그 뒤를 이었고, 경북 47명, 경남 27명, 전북 14명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등 광역시와 강원, 충북, 충남, 제주 등에서는 파견자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군 기초단체에서 광역단체의 5급 사무관 파견에 불만을 품는 것은 인사적체 때문이다. 5급 사무관 1명이 내려오면 6급 이하로 줄줄이 4명의 인사 적체가 발생한다는 것. 일선 시·군에서 9급으로 시작해 30년 넘게 근무하고도 읍·면장(5급) 한 번 못해본 채 정년퇴직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은 이유다.
    경기도는 이 같은 시·군의 불만을 해소하려 최근 5급 사무관을 포함해 시·군에 파견된 도 인력 모두를 복귀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경기도와 시·군간 인사교류 제도개선을 위한 업무협약서’도 체결했다. 업무협약서에 따르면 앞으로 시·군이 원치 않으면 도와 인사교류를 하지 않기로 했다. 기초단체에 인사자율권을 부여한 셈이다.

    협의 없는 인사는 ‘규정 위반’

    하지만 전남도에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고길호 군수는 5급 사무관 4명에 대한 인사보류 조치를 풀고 업무 복귀시켰다.
    전남도 측은 그동안 사무관급 인사에서 철저히 1대 1 인사교류 원칙을 지켰다고 주장한다. 전남도 총무과 관계자는 “민선 지방자치 이후에는 철저히 1대 1 교류를 한다. 도에서 일방적으로 시·군에 내려보낸 경우가 없다. 신안군에 사무관급 4명이 내려간 대신 똑같이 4명이 도로 올라왔다”면서 이름까지 댔다.
    신안군 측에 확인해보니 신안군에서 도로 올라간 4명 중 2명은 애초 도에서 채용한 지방고시 출신이었다. 기혁 신안군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그동안 전남도에서 사무관급 인사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도 지방고시 출신은 원래 도 소속이다. 그런데 수습이라면서 시·군으로 내려보내 1, 2년 근무시킨 뒤 도로 복귀시키면서 그 자리에 도 사무관을 또 내려보낸다. 도에서 신안군에서 올라온 사람이라고 주장한 4명 중 2명이 그런 경우다. 이렇게 확보한 사무관급 4개 자리는 사실상 도에서 관리한다. 우리 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때 되면 내려왔다 때 되면 올라간다.”
    그렇다면 전남도와 시·군 간에 인사교류협의회가 열리지 않은 이유는 뭘까. 전남도 측은 “도와 시·군 간 교류는 대부분 개인 희망에 따라 이뤄지는 전출입 형태여서 인사교류협의회 심의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일정 기간 파견 형식으로 이뤄지는 ‘계획교류’만 인사교류협의 대상이라는 이야기다. 정말 그럴까. 행정자치부 실무책임자에게 물어봤다.


    ▼ 인사교류협의회를 통한 인사교류 대상은 어디까지인가.
    “동일 직군과 직급끼리 2년 정도 파견 형식으로 갔다가 복귀하는 ‘계획교류’는 물론 적(籍)을 완전히 옮기는 인사교류도 모두 협의회를 통한 인사교류 대상이다.”

    ▼ 지방공무원 인사교류 규칙에 따르면 매년 인사교류협의회를 개최해야 하는데 열지 않아도 되나.
    “인사교류협의회를 열지 않고 (인사교류를) 했다면 규정 위반이다. 하지만 협의회를 열지 않고 인사교류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확인되면 시정조치 하겠다.”

    ‘낙하산’ 거부했더니 ‘보복’?

    기초단체 부단체장(부시장·부군수) 인사권을 둘러싼 광역단체의 낙하산 인사 ‘갑질’ 논란도 여전하다. 민선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되기 전에는 기초자치단체장은 물론 부단체장까지 광역단체에서 내려보냈다. 하지만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는 부단체장 인사권은 선거로 선출되는 기초단체장에게 넘겨졌다.
    지방자치법 제110조에는 ‘시의 부시장, 군의 부군수, 자치구의 부구청장은 일반직 지방공무원으로 보하되, 그 직급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며 시장·군수·구청장이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2014년 말, 강원도 속초시는 부시장을 내부에서 자체 승진시켰다.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지던 강원도의 인사교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그러자 강원도가 ‘보복성’ 조처를 단행했다고 한다. 취업박람회 도비보조금 제외, 6급 장기교육자 배정 제외, 속초 부시장의 부단체장 회의 참석 배제 조치 등이 이어졌다는 것.
    당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강원지역본부 측은 “그동안 강원도는 인사교류라는 명목을 내세워 관행적으로 시·군 부단체장 자리를 독점했다”면서 “속초시가 관행을 깨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인사를 했는데 이를 빌미로 보복하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갑질’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신안군의 상황도 비슷하다. 그동안 부군수는 도에서 사실상 결정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신안군 측은 관할 행정구역이 대부분 섬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해 그동안 수차례 수산정책 전문가를 부단체장으로 희망했지만 도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전남도 총무과 관계자의 주장은 다르다.
    “전남지역의 시·군에서 부단체장이 내부에서 승진한 사례는 없다. 부단체장은 광역시·도에서 내려가는 걸로 돼 있다. 대부분의 시·도가 그렇지 않나? (광역)시장·도지사가 추천하는 공무원을 시장·군수가 임명한다. 일방적인 게 아니라 도지사와 시장·군수가 다 협의한다. 지방공무원법에 도지사는 시장·군수에게 인사교류를 권고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시장·군수가 따라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낙하산은 있을 수 없는 일”

    광역단체의 ‘갑질’이라고 주장하는 기초단체와 관련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광역단체. 과연 어느 쪽 이야기가 맞는 걸까. 행자부는 기초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다음은 행자부 실무책임자와의 일문일답.
    “기본적으로 부단체장을 포함해 모든 인사권은 단체장에게 있다. 인사권한이 없는 광역단체에서 부단체장을 내려보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광역단체에서는 시·군 부단체장을 추천하거나 권고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가 없을 텐데, 설사 있다 하더라도 기초단체장이 거부할 수 있다.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제도 자체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부단체장은 단체장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 그렇다면 왜 부단체장 대부분이 도에서 내려온 사람들인가.
    “대부분 기초단체장이 보내달라고 해서 영입한 사람들일 것이다. 기초단체는 예산이라든지 광역단체와 업무협조를 해야 할 것이 많다. 광역단체에서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부단체장을 영입하면 아무래도 유리하지 않겠나. 광역단체에서 일방적으로 내려 보내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기초단체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광역단체 쪽에 요구한 사람들이 99%인 것으로 안다.”
    행자부 실무책임자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기초단체의 주장이 맞지만 광역단체의 ‘갑질’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부단체장을 내부 승진시켰다가 보복성 조치를 당했다는 속초시나 수산정책 전문가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신안군의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서 인용한 공노총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6개 기초단체의 부단체장 중 219명이 광역단체에서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단체 내부에서 자체 승진한 경우는 고작 7곳밖에 되지 않는다. 



    ▼인터뷰 | 고길호 신안군수▼

    “광역단체가 기초단체 인사 ‘섭정’ 한다”
    사무관 · 부단체장 ‘낙하산’ 기초단체 속앓이

    지호영 기자


    고길호 신안군수는 2006년 민선 3기에 이어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당선됐다. 그는 “광역단체가 기초단체의 예산과 인사에 지나치게 관여한다”면서 “일정 부분 ‘섭정’을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도와 인사교류협의회를 한 적이 없나.
    “한 번도 없다.”

    -도에서 부군수를 내려보낼 때는 어느 정도 협의했다던데.
    “협의라면 서로 필요한 인력을 조율해 인사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수산 발전을 위해 수산정책 전문가를 보내주면 좋겠다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런데 결국 도에서 보내고 싶은 사람을 보냈다. 협의가 아니라 일방적이다. 부군수는 군내 모든 공무원의 평가 권한을 갖고 있다. 직원들 업무는 물론 성향도 파악하지 못한 부군수가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안 받을 수도 있지 않나.
    “예산이나 정책 입안 등에서 도가 많은 권한을 가졌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일선 시·군에서는 거부할 엄두를 못 낸다.”

    -신안군 연간 예산 중 도에서 지원하는 규모가 얼마나 되나.
    “한 해 군 예산이 4500억 원 정도 되는데, 이 중 자체 사업비는 400억 원밖에 안 된다. 대부분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이고, 도에서 지원받은 것은 5%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도에서 모든 예산을 감사한다.”

    -도와 시·군 간 5급 사무관 인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우리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도에서 결정한 사람이 내려오고 올라가고 그런다. 도의 인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자리밖에 되지 않는다. 5급 사무관이면 면장급이다. 그런데 관내 현황이나 지역 주민의 성향을 전혀 모르니 면으로 보낼 수도 없다. 경험도 적어 주요 부서에 근무할 역량도 안 된다. 결국 의회 쪽이나 단순 행정업무 이외에는 맡을 업무가 없어 지방자치를 성숙시키는 데 걸림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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