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년 다진 지역구 포기
- 당 대표는 악한 상대도 끌어안아야
- 非盧도 親盧 패권 욕할 자격 없다
- 창조하기 전 혼돈 극심한 법
지호영 기자
이런 와중에 호남지역 4선인 김성곤 의원의 지역구 불출마 선언은 당 안팎에 파장을 일으켰다. 비록 지역구 불출마지만 야당의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그것도 자신이 16년간 다져놓은 지역구를 포기한다는 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얼마 후 3선의 신학용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신 의원의 경우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입법비리 사건에 이어 불법 정치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돼 실형 선고를 앞뒀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연 탈당을 선언하기 5일 전인 12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성곤 의원은 이미 이 같은 사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분당 가능성을 묻자 “해서는 안 되지만, 이대로 가면 (분당)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주승용 의원이 당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것에 대해서도 “문재인 대표가 비주류 쪽을 포용하지 못하니 주 의원도 더 이상 협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문 대표를 비판했다.
“당 중진으로서 책임져야”
김 의원은 당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문 대표를 도와 당 혁신안을 통과시킨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호남지역 의원이면서도 친문(親文)계로 분류된다.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선당후사(先黨後私)’의 결단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김 의원이 문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어서 이목이 집중된다. 먼저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한 솔직한 이유부터 들어봤다.“이유는 두 가지다. 19대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때 제1 공약이 여수박람회장 사후활용이었다. 그게 성공하면 다시 신임을 묻고, 공약을 못 지키면 물러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9월 말 여수박람회장 사후활용 및 매각 임대공고가 있었는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 또 하나는 당이 혼돈에 빠진 것에 대해 당 중진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5명이나 불출마를 선언하는데, 야당은 한 명도 없느냐는 기사들을 보고 스스로 압박을 느꼈다.”
▼ 당 혁신안대로 공천할 경우 하위 20%에 걸려 탈락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건 아닌가.
“솔직히 공천 보장을 누구인들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역 주민이 4선 이상 다선 의원들에 대해 피로감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역 의원이고 당 조직이 튼튼해서 경선하면 이길 것이다. 후진들과 경선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박수 칠 때 물러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서 불출마를 결심한 것이다.”
▼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 문 대표를 만났는데, 뭐라고 하던가.
“(문 대표는) 당에 대한 여러 가지를 걱정했다. 그러면서 ‘결단해줘서 고맙다’ ‘당을 수습하는 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뭐,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외 특별히 내게 부탁한 것은 없다. 그냥 ‘당을 끌고 가기 참 어렵다’거나 주로 본인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 왜 지역구 출마만 포기했나.
“그냥 불출마를 선언하면 사실상 정계 은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그동안 외교통일 쪽에서 4년 정도 일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비전도 나름 갖고 있고, 통일을 위해 뭔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려면 우리 당이 2016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에서 정권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당을 떠나지 않고 다른 지역에 출마하든, 아니면 다른 기회를 찾든 뭔가 역할을 하고 싶었다.”
▼ 비례대표를 염두에 둔 건 아닌지.
“지금 당이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어디에 나가겠다’거나 ‘비례대표로 나가겠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도리가 아니다. 지금 당에서 재외동포위원장을 맡고 있다. 당 분열을 막고, 재외국민 투표 독려에만 최선을 다하려 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文
▼ 당 중앙위의장으로서 직접 통과시킨 혁신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가장 큰 쟁점이 국회의원들을 평가해서 하위 20%를 잘라낸다는 것인데, 난 반대했다. 다만 그것 때문에 다른 혁신안까지 반대할 수 없어 결국 통과하는 데 협조했지만, 평가 부분은 합리적이지 않다. 평가를 아무리 정교하게 하더라도 선거구마다 사정이 다 다르고, 상대에 따라 또 다르다. 탈락 대상이긴 한데 그 사람이 아니면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을 정무적 판단으로 구제한다면 다른 후보들이 뭐라고 하겠나. 민심이 천심이다. 결국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오픈프라이머리를 보완한 안심번호 오픈프라이머리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 그 혁신안을 놓고 지금 당이 위기에 빠졌다.
“문 대표는 착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이분법적인 선악관이 상당히 강하다. 설사 상대가 악하더라도 당 대표라면 어떻게든 끌어안고 설득해서 함께 가야 하는데, ‘너는 악이니까 빠져야 한다’면서 쳐내려 하는 건 리더로서 문제가 있다.
비노(非盧)나 비주류 쪽도 문제다. 문 대표가 호남에서 인기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당 대표로 뽑아놓고 특정 지역에서 인기가 없다고 물러나라는 게 말이 되나. 그럴수록 ‘당 대표로 뽑았으니 같이 가야 한다’면서 호남 민심을 다독이고 설득해야 하는데, 호남에서 인기 없다고 내려가라니….”
▼ 비노 측에선 혁신안에 대한 불만보다 친노 계파에 대한 불신이 더 큰 것 같다.
“친노가 패권적이라고 그러는데, 그건 비노도 똑같다. 이종걸 의원이 원내대표가 된 이후 인사(人事)하는 걸 보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노 의원들로만 채웠다. 친노 패권을 욕했으면 자신들은 인사를 할 때 균형 있게 안배해야지…. 친노를 욕할 자격이 없다.”
▼ 친노와 비노의 차이가 뭔가.
“친노는 잘 모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동료의식’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서로 연대하는 끈끈한 힘이 있다. ‘친노 패권’이란 건 비노 측에서 하는 말이지, 실제로 친노끼리만 독식하지는 않는 것으로 본다. 어쨌든 단결이 잘되니 패권적이라고 표현하는지는 모르겠다. 반면, 비노는 모임은 열심히 갖는데 수장이 많아 힘이 뭉쳐지지 않는 것 같다.”
▼ 김 의원은 어느 쪽인가.
“중도다. 친노와 비노, 주류와 비주류가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반대라기보다는 음양의 관계처럼 보완적이어야 한다. 서로 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당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지금 적대적인 관계가 돼버렸다. 안타깝다.”
기자와 인터뷰 중인 김성곤 의원(왼쪽). 지호영 기자
호남표와 혁신표 함께 가야
▼ 현재의 당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안철수 의원과 호남 비주류 의원들이 문 대표를 상대로 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별개다. 비주류가 안 의원을 업었지만, 안 의원은 비주류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기 싸움을 하는 것이다. 혁신안 자체에 반대하는 비주류와 안 의원을 같은 세력으로 보는 것은 일종의 착시다. 오히려 혁신이라는 면에서는 안 의원과 문 대표가 더 연대해야 하는 관계다. 안 의원은 문 대표보다 근본적으로 더 혁신적이다. 비주류 측에서는 안 의원과 상의해서 움직인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아니다. 따로 움직인다.
문제는 영남 출신인 문 대표와 안 의원이 갈등을 벌이면서 호남지역의 목소리가 배제된 것이다. 우리 당이 총선에서 이기려면 호남표도 있어야 하고, 혁신표도 있어야 한다. 문 대표는 혁신표를 대표하고, 비주류는 호남표를 대변한다. 그런데 지금 같이하기 어려워졌다.”
▼ 지역에서 접하는 호남지역 민심은 어떤가.
“호남을 대변하는 대선주자가 없는 것을 굉장히 아쉬워한다. 야당이 분열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천정배 의원이 당선된 것은 호남지역 사람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지, 신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신당 지지도가 결코 높지 않다. 하지만 호남 민심을 제대로 잡으려면 현 문 대표 체제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 같다. 지금 이대로라면 호남 민심은 떨어져 나갈 것이다.”
▼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글쎄…,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아직 현실정치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이상적인 세계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같이 가져야 한다’고. 그런데 안 의원에겐 선비의 이상만 있고, 상인의 현실감각이 부족한 것 같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땅에 발을 딛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김 의원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평소 자주 읽는 ‘중국철학사’를 꺼내들고 한 대목을 소개했다. ‘極高明而 道中庸’이라는 글귀다. 매우 높고 맑은 것을 추구하지만, 길은 중용을 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바로 이것이 정치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
“‘일시적 분당’은 있을 듯”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한 당이 깨진다면 어떨까. 김 의원에게 분당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물어봤다. 잠시 침묵하던 김 의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분당) 해서는 안 되지만, 이대로 가면 가능성이 있다. 결국 총선을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다시 연대하든지 통합하든지 할 텐데, 중간 과정에서 과거 열린우리당이 문을 닫으면서 이합집산한 것처럼 일시적인 분당은 있을 수 있다. 그때 김한길계가 중도개혁통합신당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나갔다가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왔다. 흩어지면 다 죽는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다시 합쳐질 것이다.”
▼ 전철을 밟는다면 이번 총선은 어렵지 않을까.
“아직은 비관적이지 않다. 창조하기 전에는 혼돈이 극심한 법이다. 이 혼돈 속에 창조의 씨앗이 숨어 있다고 본다. 총선 직전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질서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