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중국인은 어떻게 부를 축적하는가소준섭 지음, 한길사, 372쪽, 1만8000원
중국 푸단대 유학 시절, 저장성 이우(義烏)라는 도시에 있는 중국인 친구 집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다. 소도시인 그곳 사람들은 집집마다 한 가지씩 ‘가업’을 일구고, 그 완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당시 내 눈에 비친 중국인은 욕심이 크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생산해내고 그걸 매매하려는 본능으로 충만했다.
그때부터 중국인의 상업적 기질과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국 상업사에 대한 서적을 읽고 관련 논문을 수집했다. 특히 사마천 ‘사기(史記)’의 화식열전에서 중국 상업 전통의 단초를 발견하게 됐다. 우리는 대개 ‘상업’ 하면 ‘장사’라는 좁은, 그리고 폄하하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상업’은 좀 더 광의의 의미로서 사업 혹은 경제·경영과 동일한 함의를 지니는 용어다.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 밤낮으로 정지하지 않으며, 물건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가서 찾지 않아도 백성들이 스스로 가지고 와서 무역을 한다.” 놀랍게도 무려 2000년 전에 이미 사마천은 생산과 함께 반드시 유통이 결합돼야 하며, 그럴 때만이 완정(完整)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파했다. “재부(財富)를 추구할 때 농사가 공업보다 못하고, 공업은 상업에 미치지 못한다”며 돈을 벌기 위한 가장 쉬운 방도가 상업에 있다고 분명하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마천은 “가장 좋은 정책은 자연적인 추세에 순응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정책은 백성과 다투는 것”이라고 주창했다.
“있어야 할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다”는 ‘응유진유(應有盡有)’와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나라 중국은 역사상 20~30년 동안이라도 전쟁 없이 평온한 상태가 유지되면 반드시 성세를 이뤘다. 사마천이 주목한 것은 자신들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산과 유통을 실천하는 대중의 자발성이며, 덩샤오핑이 붙잡은 것도 바로 불굴의 의지로 생산과 교역에 매진한 대중의 자발성이었다. 상공업을 극도로 억압함으로써 중국이 정체되는 원인을 제공한 명나라 시기, 그 억압 체제에서 끈질기게 경제의 불씨를 살려 번영시켜낸 것도 민간 대중이었다.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알리바바를 비롯해 후발주자이면서도 일약 세계적 강자의 반열에 오른 샤오미 스마트폰,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 위안화의 국제기축통화 편입으로 표현되는 금융굴기에 이르기까지 중국 경제의 부상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 준비된 힘, 예측된 부(富)다.
중국 역사상 의로운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이웃과 나눌 줄 알았던 부자들과 아울러 그 부가 국가와 견줄 만큼 많았지만 끝이 좋지 못했던 탐관 열전도 기술했다. 또한 초절정의 신출귀몰한 사업전략을 통해 전쟁 같은 치열한 경쟁을 끝내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비결’을 소개하고자 했다. 무협지가 바로 진상(晋商, 산시(山西)성 지역을 근거지로 한 상인들)과 휘상(徽商, 안후이(安徽)성을 근거지로 한 상인들)으로 대표되는 상인들의 상행위 과정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소준섭 | 국회도서관 중국담당 조사관 |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_ 김영란 지음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저자는 재임 중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해 ‘소수자의 대법관’으로 불렸다. 저자가 대법관으로 참여한 중요한 판결 중에서 10개를 선정해 판결의 의미와 배경, 논쟁의 과정을 꼼꼼히 되짚고 개인적인 견해와 반성까지 솔직하게 담았다. ‘존엄사’ ‘삼성그룹 지배구조 논란’ ‘양심적 병역거부’ ‘새만금, 천성산, 4대강’ 등은 판결 당시에도 커다란 사회적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다른 판례와 입법, 정책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쳐 우리 사회의 향방을 좌우한 결정적인 사건들이다. 저자는 각각의 판결을 현재 관점에서 꼼꼼하게 다시 읽으면서 판결에 담긴 법의 논리뿐 아니라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과 논의, 판결 이후의 변화 등을 분석했다. 창비, 308쪽, 1만5000원
선비처럼 _ 김병일 지음
도산서원 원장 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인 저자가 안동에 기거하며 쓴 글과 강연 원고를 모았다. 퇴계 선생과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정신문화 기근에 있는 한국 사회에 참신한 대안을 제시한다. 예부터 선비정신은 우리의 정신문화였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왜곡되기 시작, 점차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 하지만 저자는 선비와 선비정신에 담긴 ‘배려와 섬김’을 현대에 맞게 다시금 불러내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관으로 삼고자 한다. 자칫 고리타분하다고 여길 수 있는 내용을 호흡이 짧은 글로 담박하게 담았다. 또 생활을 예로 들어 ‘온고(溫故)’를 현대의 눈높이에 맞춰 서술해 지루하지 않게 술술 넘어간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옛 선비들의 고결한 정신을 깨우쳐 생활 지침으로 삼는다면 풍요로운 정신문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남, 420쪽, 1만8500원
다시 강철로 살아 _ 김영환 지음
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과거 주사파의 대부였다. 한국 학생운동에 주체사상을 전파한 ‘강철서신’의 저자로 운동권 주류 이론인 NLPDR(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을 만들었다. 그는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해 김일성을 만나기도 했고, 반체제 전위조직의 수장으로 이석기(내란선동혐의 등으로 구속된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을 이끌기도 했다. 민혁당 결성에서 해체까지의 스토리, 주사파 대부에서 북한민주화 운동가로 전향한 과정을 비롯해 전향 후 14년 동안 매진해온 반북한정권 활동 등을 진솔하게 담았다. 1990년대 후반 동료들과 중국에서 지하조직을 결성해 중국 내 탈북자와 조선족을 교육했으며, 민주주의 교육을 한 뒤 이들을 다시 북한으로 보내는 활동을 하다 중국에서 감청과 살해 위협에 시달린 내용도 담겨 있다. 시대정신, 392쪽, 1만5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미디어 공정성 연구윤석민 지음, 나남, 896쪽, 3만8000원
“미디어는 사사롭지 않고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단순하고 자명하면서도 오랜 기간 현장의 언론인 및 언론 연구자들을 곤혹스럽게 한 원칙이 또 있을까. 애초 갈등과 시비를 줄이고자 하는 취지에서 등장한 원칙이지만 이처럼 많은 갈등과 시비로 얼룩진 원칙이 또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 공정성 원칙이 갖는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시기를 2000년대 이후로 국한해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방송의 불공정 시비, 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논란, ‘나꼼수’ 방송의 허위사실 유포 시비, 2011년 방송 공정성 회복을 기치로 내건 MBC 노조 파업,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사건에 대한 은폐ㆍ축소ㆍ불공정 보도 의혹,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주요 방송의 수준 이하 보도 논란, 그리고 포털 뉴스 서비스의 공정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례는 부지기수다.
언론이 공정하자는, 편들지 말자는 원칙은 일각에서 주장하듯 정치권력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옥죄고 언론인에게 재갈을 씌우는 통제의 수단에 불과한가. 권력이 언론을 통제하는 현실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언론은 처음부터 명확한 반권력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것이 차라리 공정한 것인가.
총 15개에 달하는 방대한 논의를 통해 필자가 내세우는 주장을 요약하면, 미디어 공정성 원칙은 사회적 소통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제도적 실체인 미디어에서 지켜져야 하는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규범이라는 것이다. 공정성 원칙은 인간 소통에 수반되는 근원적인 편향성, 자기검열, 소통 불안의 문제로부터 소통의 가능성을 지켜내기 위한 공식적·비공식적 규범의 총체다. 자신의 관점을 넘어 타인의 관점을 인식하고, 나아가 하나의 논쟁적 사안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가능한 한 폭넓게 인식할 것을 요청하는 이 규범은 다양한 층위의 사회적 소통 및 미디어 영역에 다양한 형태로 편재하면서 사회적 소통행위가 성립하고, 유지되며,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이 원칙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으로 간주되거나 금기시되는 사안을 정당한 논쟁의 대상으로 만들고, 이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이러한 시도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성을 갖게 해주는 수단이다. 공정성 원칙은 표현의 자유와 상충하지 않고 그에 비례해 강화되며, 실질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고 확장하는 전제조건이자 실행 규범에 해당한다. 시민민주주의 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위기’로까지 진단되는 사회적 소통의 파행 현상을 겪는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 원칙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더욱 크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 및 경제 권력이 사회적 소통과 언론을 통제하는 논리로 공정성 원칙을 악용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를 방지하는 길은 공정성 원칙을 폄훼 내지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원칙을 내용 차원에서 정교하게, 그리고 실행력 차원에서 공고하게 정립하는 데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윤석민 |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심경부주 _ 진덕수·정민정 지음, 이한우 옮김
‘심경부주’는 송나라 학자 진덕수가 서경, 시경, 주역, 논어 등 유교 경전과 송대 유학자 주희, 주돈이, 범준 등이 마음의 본질과 운용 방법을 설명한 글을 선별, 발췌해 엮은 ‘심경’에, 명나라 유학자 정민정이 다른 유학자들의 해석을 인용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 고전이다. 동양적 학문법과 사유 방식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조선 중종은 서연(書筵, 왕세자에게 경서를 강론하던 자리)에서 강독하라고 전교를 내렸고, 영·정조는 신하에게 권하거나 경연에서 직접 강론했을 정도로 조선 후기를 이끈 통치 철학이었다. 조직과 사회를 이끄는 리더가 가져야 하는 리더십의 근본과 구체적인 실천법이 담겨 있다.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풀어 썼으며, 읽기 순서에 맞춰 한자의 음을 달아 가독성을 높였다. 민음사, 580쪽, 3만2000원
도연명전 _ 첸즈시 지음, 이규일 옮김
중국의 대표적 시인 도연명의 생애와 작품을 다뤘다. 어떤 이는 모든 기교를 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그의 시를 좋아했고, 어떤 이는 그의 진솔한 성품을 사랑했으며, 또 어떤 이는 조국에 대한 그의 뜨거운 충성심을 존경했다. 이는 도연명의 여러 측면이긴 하지만, 그의 풍부한 정신세계를 모두 포괄할 수는 없다. 중국 베이징대 교수인 저자는 이상과 낭만을 지닌 문학인으로서,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본 사회인으로서, 가난하고 힘겨운 노동의 인생을 보낸 생활인으로서, 생활 속에서 인생의 가치를 되새기고 생명의 끝을 사색했던 철학인으로서의 도연명을 재조명한다. 시간 순서에 따라 인물의 경력, 사상, 주제, 예술성 등을 소개하는 통상적 구성에서 벗어나 작품을 중심에 두고 이를 통해 그의 사상과 생활, 예술의 역정을 보여준다. 글항아리, 464쪽, 2만5000원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_ 조경란 지음
오늘의 중국을 만든 근현대 사상의 주요 흐름과 쟁점을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열두 명 인물의 라이벌 구도로 살펴봄으로써 근현대 중국 지식의 계보를 그리고 있다. 캉유웨이, 옌푸, 량치차오, 쑨원, 루쉰, 후스, 천두슈, 리다자오, 마오쩌둥, 량수밍, 저우언라이, 덩샤오핑은 중국 근현대사의 격랑 한가운데서 중요한 문제들과 대결하며 현실에 개입한 대표적 지식인이다. 저자는 이들의 삶과 사상을 인물 간 대결 구도로 접근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각 인물이 처한 시대 상황과 더불어 오늘의 시각에서 여전히 유효하거나 새롭게 제기될 수 있는 문제도 같이 살폈다. 시대적 맥락을 배경으로 핵심 쟁점과 라이벌 구도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생동감을 주고, 각 인물 쌍이 보여주는 사유의 갈등과 소통을 통해 그 시대의 사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책세상, 392쪽, 1만8000원
번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해외문견록송정규 지음, 김용태·김새미오 옮김, 휴머니스트, 252쪽, 1만5000원
2010년 ‘한국한문학 자료에 나타난 베트남 인식의 몇 가지 갈래’라는 제목으로 논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남극관(南克寬·1689〜1714)이라는 문인의 시화집에서 “송정규는 ‘해외문견록’을 찬술했는데, 그 가운데 안남(베트남)의 풍속이라든지 복건성 선박의 제도를 기록한 부분은 문자가 빼어나고 정밀해 우리나라에 드물게 있는 글이다”라고 언급한 대목을 발견했다. 그때까지 ‘해외문견록’이라는 자료는 학계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놀라운 마음에 조사해보니 원본이 일본 덴리대(天理大)에 소장돼 있는데, 국립중앙도서관의 해외한국학자료수집사업에 의해 그 복사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와 있었다. 서둘러 자료를 확인해보니 그 내용은 더욱 놀랄 만했다.
저자 송정규는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관료문인이다. 당시 조선은 임진·병자 양란 이후 모든 면에서 위축된 상태였다. 특히 대외적으로는 청나라를 황제의 나라로 섬기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소중화’를 자처하며 분열적 상태 속에서 외부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줄어들어만 갔다. 이러한 점은 주체적으로 대외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선 조선 초기의 상황과 완전히 상반되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조선이 외면한 17세기 동아시아의 바다는 매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선 무역의 물동량이 어마어마했음이 최근 동양사학계의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 주로 중국 남부, 일본, 대만, 베트남을 연결하는 무역 루트는 오늘날과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바닷길을 통해 일본은 중국의 최신 학술과 문화를 직수입하고 네덜란드 상선을 통해 서구 문물을 차근차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정규는 조선도 이 바닷길에 참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1704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그는 당시 제주관아에 보관돼 있던 자료를 조사하고 또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를 통해 동아시아의 바다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나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우선 제주도에 표착했던 외국인들을 조사한 자료를 통해 당시 동아시아의 무역이 어떤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파악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물품이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관심을 뒀다. 또 외국으로 표류했다 송환된 제주민 증언을 통해 일본, 대만, 유구, 중국 남부, 베트남의 지리와 사회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자세한 탐문을 통해 중국 선박의 구조를 상세히 밝혀놓았다. 당시 조선의 평저선(平底船)은 수심이 얕은 연안 항해에는 유리하지만 원양 항해에는 적합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귀중한 자료를 발굴하고 번역하게 된 것은 연구자로서 크나큰 기쁨이다.
그런데 한 가지 소회가 있다. 그동안 연구와 번역 작업을 하면서 지리정보 확인을 위해 항시 ‘구글지도’를 참고했다. 우리나라 포털이 제공하는 지도는 한반도 남반부와 제주도가 한계였다. 새삼 세계 인식에 서 한국과 미국의 수준차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리가 17세기 이후 조선의 폐쇄적 태도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는지 객관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김용태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
당신은 어떤 리더입니까 _ 조지프 마셔리엘로 지음, 신민석 옮김
리더십의 가치와 인본주의적인 경영 철학을 설파한 피터 드러커의 저작을 총망라한 집약본이다. 전체를 52개 주제로 나누어 피터 드러커 경영 철학의 핵심적인 부분을 소개하고 있으며, 각 주제는 효율적인 리더로 성장하게끔 돕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피터 드러커는 “리더란 보통 사람에게서 흔치 않을지도 모를 강점을 끌어내고 효과적으로 엮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미처 엄두 내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냄으로써 시스템의 약점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피터 드러커의 오랜 동료인 저자는 그와 함께 연구했을 뿐 아니라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 실천편’을 함께 저술했다. 번역자 역시 저자를 지도교수로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경제신문, 524쪽, 2만2000원
인간의 품격 _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김희정 옮김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는 게 미덕인 시대다. 하지만 저자는 ‘나 자신은 특별하다’는, ‘빅 미(Big me)’ 정신에 문제를 제기한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쌓기보다는 겸손과 절제를 바탕으로 하는 내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하며, 자신의 결함을 딛고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 분투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 최초의 여성 각료인 프랜시스 퍼킨스,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인 도로시 데이, 비폭력 인권운동가인 필립 랜돌프, 영국 여류 소설가 조지 엘리엇, 육체적 장애와 극심한 가난을 이기고 위대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새뮤얼 존슨 등은 ‘나만이 특별하지는 않다’는 ‘리틀 미(Little me)’로 자신을 낮추고 자아와 투쟁해 인격을 완성했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와 사회에 기여한 인물이었다. 부키, 496쪽, 1만6500원
지하디스트의 여정 _ 파와즈 게르게스 지음, 장지향·신지현 옮김
이슬람 무장세력 지하디스트 조직원 개개인의 생생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담았다. 지하디스트가 혼란과 모순으로 점철된 여정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나아가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출신의 무슬림이 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고난과 역경의 길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한다.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이자 중동연구센터 소장인 저자는 “원래 지하드는 ‘열심, 노력’이라는 뜻이다. 좋은 의미의 단어가 서구 기독교권의 이슬람 공포증을 유발하는 대명사가 되기까지에는 ‘꾸란’에 대한 해석의 차이와 문명 간의 갈등 등이 드리워져 있다. 지하드는 신의 뜻을 받들고 기리기 위한 전쟁을 의미하며, 이는 무력을 강조한 오사마 빈 라덴의 해석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산정책연구원, 294쪽, 1만3000원
편집자가 말하는 “내 책은…”
다시 보는 역사의 현장최맹호 지음, 나남, 396쪽, 1만7000원
이 책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동유럽 공산정권이 붕괴하는 격변기의 현장을 다룬 르포르타주다. 시대가 뒤바뀌는 역사의 현장 한가운데 선 저자는 스스로 이르듯 역사의 공저자(共著者)인 기자(記者)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꾸밈없이 담백하게 글로 옮겼다.
1988년 12월, 동아일보 기자이던 저자는 동유럽 출장 명령이 떨어지자 무작정 동유럽으로 향했다. 이 출장에서 헝가리 공산당 개혁 주도의 핵심 인물인 레조 니에르스 정무장관과의 인터뷰에 성공하며 엉겁결에 동유럽 순회특파원이 됐다. 경쟁지가 동유럽 순회특파원을 파견한다는 사고(社告)를 실을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와 동유럽은 외교 관계가 없던 터라 고난의 연속이었다. 동유럽 국가를 방문할 때면 언제나 입국 허가부터 문제였고 안전을 장담치 못해 아내에게 통장을 맡기고 집을 나설 때도 있었다. 종종 만나는 북한 사람은 동유럽에서 겪은 위험 가운데 하나였다.
취재도 쉽지 않았다. 체제의 감시를 피해 도둑처럼 취재원을 만나거나 동아일보사 회장의 명의를 도용하기도 했다. 체제가 무너지는 그 중심에서 총탄을 피해가며 시민들을 쫓아다녔다. 철의 장막이 걷히는 순간을 취재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갔다. 폴란드 자유노조를 이끄는 레흐 바웬사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이나 눈길을 헤쳐 갔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그 길에서 동유럽 국민의 삶을 봤고, 그곳에서 만난 인사들이 대통령이 됐다. 시간이 나면 동유럽 국가의 민낯을 보기 위해 사람이 사는 모습을 쫓아다녔다.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동유럽을 떠날 때 가족과 함께한 추억 사진 한 장도 없음을 알고 공항 가는 길 여기저기에서 추억을 급조해냈다는 일화는 치열했던 취재기의 마침표다.
서구 언론은 공산정권의 붕괴를 부른 원인을 체제 경쟁의 전리품처럼 다뤘다. 공산정권의 붕괴 원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보다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이로 인해 공산정권은 경제불안과 생활고, 비인간화 등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단편으로만 각인됐다. 또한 당시 한국 사회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금기처럼 다뤘다. 체제의 안정을 위해 상대 체제의 위험을 과장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산정권의 실상과 점점 멀어졌다.
금강산에서 열린 스무 번째 이산가족 상봉은 체제의 간극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남과 북으로 나뉜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인간적인 마당이었으나 일부 북측 가족의 체제 선전으로 어색한 정치무대가 되기도 했다. 비단 이번 상봉뿐만이 아니다. 상봉 때마다 어김없이 드러나는 모습이건만 그 모습에서 매번 생경함을 느낀다. 우리가 떠올리는 공산정권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공산정권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ein Ordnung.”(주문, 명령뿐이었다는 뜻) 명령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동독군 부사관, 개인 우상화에 집착한 루마니아 대통령 차우셰스쿠의 모습 등에서 공산정권의 민낯이 드러났다. 다시 보는 공산정권 붕괴의 그 날, 그 현장을 목격하는 감동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다.
김민교 | 나남출판 편집부 |
김정은.jpg _ 변영욱 지음
김정은이 북한 정권 후계자로 공식적으로 등장한 지 5년이 넘었다. 그사이에 우리는 신문과 TV, 인터넷 등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김정은을 만난다. 이때 나오는 김정은의 이미지는 모두 북한이 배포하는 사진과 영상에서 가져온 것이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사가 엄선해 제공한 이미지들이다. 사진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저자는 북한이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을 분석함으로써 북한을 분석하고 진단한다. 또한 정교한 사진 연출을 통해 대내적으로 어떤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고, 대외적으로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을 분석해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이 분야 전문가다. 한울, 232쪽, 2만2000원
볼 수 없었기에 떠났다 _ 정윤수 글 사진
누구나 가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마주한 낯선 공간은 알 수 없는 미세한 긴장과 흥분, 불안을 느끼게 하지만, 평소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익명의 공간에 스며드는 순간 온전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문화평론가인 저자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발걸음의 기록이다. 저자에게 여행은 타고난 본성 같은 것이다. 그것을 핑계 삼아 문득, 홀로 기차를 타고 낯선 도시나 소읍, 하다못해 길을 가다 차를 멈춘 어느 국도변에서도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낯선 풍경과 마주한다. 그 풍경 속에서 느끼는 흥분과 불안은 저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터. 그런 공감각이 문인들의 글을 통해 작품 속에 담겼고, 저자의 시선과 문학작품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면서 하나의 공간은 새롭게 재탄생한다. 천의무봉, 448쪽, 1만7000원
전문가들의 사회 _ 이반 일리치 외 지음, 신수열 옮김
1970~80년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저자의 저서들이 2002년 저자 사후 현대의 고전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 책은 ‘그림자 노동’과 함께 ‘이반 일리치 전집’(전9권, 2017년 완간 예정) 1차분으로 출간됐다.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들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를 만들어내고, 그 ‘해결사’를 자처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강화해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렇게 사회의 필요와 충족을 독점하면 시민은 ‘고객’으로, 국가는 전문가들의 ‘기업’으로 전락하게 되며, 개인 스스로 필요를 찾고 충족할 줄 아는 인간 능력이 불구화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전문가 신화의 허구를 철저하게 진단하고 폭로함으로써 가능성의 존재인 인간을 회복하고 자율성과 긍지에 기초한 공동체를 다시 세우기 위한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사월의책, 176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