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중국 증시는 폭락세를 겪었다. 중국 경제가 추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다. 2016년 미국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중국 경제의 팔·다리가 부러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비웃듯 최근 중국 위안화가 세계 3대 통화로 등극했다. 금융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 세계 경제를 뒤흔들 미·중 통화전쟁의 막전막후를 들여다봤다.
미국이 주도하는 IMF가 위안화의 SDR 편입을 허용한 것은 중국의 경제력과 금융 파워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1조2119억 달러로 18조1247억 달러인 미국의 61.8%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세계 수출 비중에선 중국이 12.71%로 미국(8.79%), 독일(7.65%), 일본(3.75%), 네덜란드(3.56%), 한국(3.12%) 등을 여유 있게 제치고 1위다.
위안화가 바스켓 통화가 됐다는 것은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됐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앞으로 위안화가 무역결제나 금융거래,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보유통화로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면 그제야 국제 준비통화 또는 기축통화가 된다. 하지만 일단 그럴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세계 무역결제에서 위안화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자본거래를 통제하고 있다. 중국 내 채권이나 주식투자도 당국으로부터 인가받은 적격 기관투자가로 제한한다. 따라서 금융거래통화로서 위안화의 기능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1.1%로 미미한 수준이다.
‘상품 장사’에서 ‘돈 장사’로
금융거래통화로서 기능을 하려면 금융거래에 대한 규제가 없어야 한다. 보유통화로서 기능을 하려면 통화가치가 안정돼야 하고 투자처가 많아서 유사시에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경제는 불확실한 면이 많고 심지어 경착륙 우려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금융시장 발전도 아직은 미흡한 수준이다. 위안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갖기에는 많은 여정이 남아 있다. 중국은 2020년 상하이 국제금융시장을 완성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중국의 2014년 말 외환보유액은 3조 430억 달러에 달하는데 그중 60% 정도가 달러화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중국 처지에서 달러화 가치 하락은 막대한 평가 손실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거래 시 위안화의 활용도가 높아지면 외화준비자산을 보유할 필요성은 줄어들고, 그 결과 대외부문에서 오는 국내 유동성 관리 부담도 줄어든다.
또한 기업들도 환전비용 절감, 환율변동 리스크 완화 등 무역투자 환경이 개선된다. 많은 신흥 시장국이 외환위기 원인 중의 하나로 지적하는 이른바 ‘원죄론(original sin)’에서 그만큼 자유롭게 된다. 특히 중국 금융기관으로서는 자국의 통화를 역외에서도 사용하게 됨으로써 지금의 미국, 영국 금융기관들처럼 국제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상하이가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새로운 국제금융의 중심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중국 통화 당국 처지에서는 위안화의 국제화 정도에 따라서 얻어지는 주조차익(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으로 얻는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만약 위안화가 동아시아 지역에서만이라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면 주조차익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이 주조차익은 중국에 막대한 부의 증가를 가져다줄 것이다. 근년 들어 중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통화전쟁 관련 저작물들은, 중국이 부국으로 가려면 상품을 만들어 파는 장사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결국은 돈 장사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4년 현재 7572달러에 불과해 일반 국민의 생활수준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 가운데 부동산 가격 상승, 저임금 지속 등으로 인해 국민의 불만이 비등할 소지가 크다. 이런 부분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쉽지 않다. 중국 당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중 하나로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화 국제화엔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빈번한 자본 출입으로 거시경제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중국은 자본거래와 환율을 경직적으로 운용하거나 점진적으로만 자유화 정도를 높여나가면서 제한적인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당국엔 경제 안정이 우선이고 국제화는 그다음이다.
中, 금융과 금으로 세계 지배?
아직 국제 보유통화로서의 기능은 미미하지만 위안화의 SDR 편입을 계기로 미·중 간 통화전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위안화를 국제화해 적어도 아시아 지역 통화로 만들려고 한다. 나아가 미국 중심의 IMF 체제에 대항하는 자본금 1000억 달러 규모의 긴급외환보유지원기금(CRA) 창설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 주도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출범하고 세계은행에 대항하는 신개발은행(NDB)도 출범한다. 미국·일본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항하는 중국 중심의 역내경제포괄적동반자협정(RCEP)도 추진되고 있다.CRA는 메가톤급 폭탄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지금 미국 유럽 일본 중심의 세계 금융질서를 허물고 중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 금융질서를 창조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여러 나라에서 외화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경우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CRA라는 당근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IMF로부터 200억~3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느라 갖은 굴욕을 감내해야 했던 국가들로서는 요구조건이 약한 CRA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좀 비약적인 가설이긴 하지만, 국제통화금융체제는 완전히 미국 중심 체제와 중국 중심 체제로 양분될 수 있다.
중국은 각국 중앙은행에 대해 위안화 금 태환을 제시할 수도 있다. 2차 대전 후 파운드에서 달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미국이 사용한 방식이다. 세계경제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파운드에서 달러로 대체된 것이다. 중국은 그간 전 세계의 금을 긁어 모았다. 이것 역시 중국의 원대한 전략의 일환이 아닌가 싶다. ‘화폐전쟁’의 저자로 잘 알려진 쑹홍빙은 “금 태환이 기축통화로 가는 첩경”이라고 주장한다. ‘기축통화전쟁의 서막’의 저자 장팅빈도 “중국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예리한 무기는 금 구매”라고 말한다.
밝은 곳으로 끌어낸 뒤…
관전 포인트는 미국이 이런 중국의 전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다. 198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통화전쟁을 치렀다. 이때 미국은 금융에서 국제결제은행(BIS)의 은행 자기자본 비율(BIS 비율) 제도를 도입했고, 통상에서는 종합통상법(슈퍼 301조)으로 압박을 가해 일본에 완승을 거뒀다. 슈퍼 301조는 미국 재무부로 하여금 주요국의 환율정책 동향을 조사해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미국 무역통상대표부로 하여금 주요국의 통상정책 동향을 조사해 의회에 보고하게 하고 있다. 의회가 환율 조작국이나 불공정 통상정책 국가로 지정하면 미국 정부는 해당 국가와 환율협상이나 통상협상을 하도록 돼 있다.미국의 이러한 조치로 당시 일본 기업들은 수익이 악화되거나 부도가 났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일본의 20년 불황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대응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측면이 있다.
이런 미국이 중국에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아마 중국의 취약점을 집중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자본거래 통제와 엄격한 관리변동환율제도의 장막 뒤에서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막대한 외환을 축적해왔다. 미국은 이런 중국을 글로벌 규범 속으로 유도하려 할 것이다. 미국이 위안화 SDR 편입을 용인한 배경에도 ‘중국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 거기서 컨트롤하자’는 전략이 깔린 것으로 비친다.
기본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고는 중국처럼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쌓을 수 없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선 외환시장에 조금만 손을 대도 ‘환율 조작국’이라며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선 4조 달러 가까운 외환보유액을 쌓아놓고 있어도 별 대응을 못했다. 결국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G2로 등장했다. 한국이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한 반면 중국은 관리변동환율제도를 선택해 미국도 어쩌지 못한 것이다. 미국은 위안화 SDR 편입을 계기로 IMF 규범 변경이나 중국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현재 SDR 통화편입 5개국 중 중국만 유일하게 관리변동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자본이동과 관련해, 중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아니어서 자본이동 자유화 조항의 규제도 받지 않는다. 중국은 대체로 규제는 안 받고 이익만 향유하는 편이다. 미국은 위안화 SDR 편입을 계기로 이 문제도 다룰지 모른다. 중국은 G20 회원국이므로, 미국은 다른 G20 회원국들과 공조해 중국의 자본 이동 폭을 확대하는 문제를 들고 나올 수 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은 “위안화가 세계 3대 통화가 됐지 않냐” “중국은 언제까지 장막 뒤에 돈만 쌓아두려는 거냐”라고 주장할 수 있다.
미국은 아예 중국을 자본이동 자유화를 의무화한 OECD에 가입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한국이 1996년 OECD에 가입할 때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를 갓 넘었다. 중국은 2018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으로선 위안화 국제화에 나선 마당에 언제까지 자본이동을 통제하고 있을 순 없다. 다만 중국은 자국의 경제체력을 보강하고 금융시장을 키울 때까지 최대한 늦추고 싶은 것이다.
2016년부터 엄청난 시련기?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가 2015년 11월 30일 중국 위안화의 기반통화 편입을 발표하고 있다. 신화통신
실제로 지난 11월 한 달간 중국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11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런 추세가 단선적으로 지속되는 건 아니겠지만 당분간 이어질 수도 있다. 1년이면 1조 달러가 넘게 빠져나간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3조4000억 달러로 충분히 많다고 해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현재 0~0.25%인 미국 연방기금 금리가 정상 수준인 3% 수준까지 오르려면 앞으로 2~3년간 인상이 이어져야 한다. ‘슈퍼 달러’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기간이 중국엔 엄청난 시련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아시아 국가들에 외화 유동성 위기가 와서 중국이 CRA를 제시하는 경우 미국은 훨씬 조건이 완화된 IMF 구제금융안을 제시해 CRA를 무력화하려 할지 모른다. IMF 내부에서도 1997년 동아시아 위기 때 IMF의 이행조건이 너무 가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과거 일본을 주저앉힌 슈퍼 301조의 칼끝으로 중국을 겨냥할 수도 있다. 중국의 자국 통화 절하는 교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최근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추락했고 가동률이 60%로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통상 문제에 휩싸이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환경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중국은 아직 공장의 탈황시설 등 환경보호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있다. 이것으로 생산원가를 떨어뜨려 수출시장에서 비교우위를 유지한다. 그러나 중국발 대기오염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베이징의 스모그로 만든 벽돌은 공포감을 안긴다. 한국을 비롯한 인접국에까지 큰 해악을 끼치고 인류적 위협이 된다. 사실 미국이 뭐라고 하기 전에 중국은 스스로 대기오염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처지다.
중국의 위안화 기축통화 추진을 계기로 미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이렇게 환율, 자본 이동, 금리, 통상, 환경 등 다양하다. 게다가 이들 카드는 하나같이 위협적이다. 따라서 2016년부터 중국 경제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까딱 잘못하면 중국은 1980년대 일본처럼 한방에 ‘잃어버린 20년’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