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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市場, 북한을 바꾸다

“남양유업 커피믹스 갖다주시라요”

北-中 접경지역 르포

  • 단둥=김유림 | 채널A 기자 rim@donga.com

“남양유업 커피믹스 갖다주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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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국 파견 北 노동자 월급 40만 원
  • ● “한국 밥솥 살 사람은 벌써 다 샀다”
  • ● 자녀 몫으로 중국 주택도 구입
  • ● “5·24조치 탓 중국인만 신났다”
편안한 차림으로 식탁에 앉자 김치, 멸치볶음, 콩자반 같은 익숙한 음식이 우리를 반겼다. 식탁에 둘러앉은 한국인 투자 희망자와 조선족 기업가, 그리고 북·중 경계를 연구하는 연구자 등이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눴다. 북한에서 태어난 화교 출신 아주머니가 식은 국을 데워줬고, 어제 막 북한에서 기차를 타고 친척을 만나러 왔다는 북한 촌로(村老)는 긴장한 채 묵묵히 수저질만 했다.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와 육로로 이어진 중국 동북지역의 단둥(丹東)은 북한에 큰 의미가 있다. 북·중 무역의 70~80%가 이 도시에서 이뤄진다. 북한 장마당에서 팔리는 중국산 생필품 대부분이 단둥 지역을 통해 전달된다.  북한 사람과 한국 사람, 조선족과 북한 출신 화교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저마다 이익을 좇아 모여들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단둥에 머무는 북한 사람은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취재진은 7박8일간 단둥 등 북·중 국경 지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나온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



김일성 배지 거의 안 달아

하루 날을 잡아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여오는 물자의 뒤를 쫓아보았다. 출발점은 이른바 ‘압록강철교’다.
11월 16일 월요일 오전, 구슬비가 쉴 새 없이 내리는 동안에도 ‘평북’ 번호판을 단 화물차들이 끊임없이 철교 위를 지났다. 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철컹철컹 불안한 쇳소리가 강가에 울려 퍼졌다. 1943년 개통돼 낡을 대로 낡은 압록강철교는 도로 곳곳이 파여 있고 차가 한 차선으로밖에 다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사고도 잦다. 그럼에도 압록강철교는 북·중 간 물자와 사람, 돈이 오가는 가장 중요한 통로다.
압록강철교에서 5분 남짓 떨어진 단둥 세관. 왕복 8차선 도로는 세관에 들어서는 차와 나가려는 차가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북한에서 단둥으로 들어온 차들은 모두 세관에 들러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세관 안에는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북한 여성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3~4개월 단위의 중국 거주 비자를 갱신하고자 잠시 북한에 다녀오려는 근로자들이었다.
특기할 점은 세관을 가득 메운 북한 사람 중 ‘김일성 배지’를 단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 탈북자 출신으로 북·중 국경 지역 교류를 연구하는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은 “이전에 북한 사람들은 모두 배지를 착용하고 제한된 행동만 했다. 한국 사람과 대화하거나 교역하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전했다.
세관을 통과한 북한 화물차의 뒤를 쫓아 차로 20분쯤 가니  화물 하차장이 나타났다. 차마다 가득 실어온 물자를 내리는데, 까맣고 하얀 가루 무더기였다. 북한 운전기사는 “신의주에서 들여온 철광석”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14년 북한이 가장 많이 수출한 품목은 석탄, 철광석 등 광물성 생산품이다. 15억6800달러를 수출했는데 그중 97.4%가 중국으로 들어갔다.



“한국 제품 사진 찍어 주문”

멀지 않은 곳에서는 반대로 북한에 들어가는 물건을 싣고 있었다. 화물차마다 ‘태양열 발전기’가 가득히 쌓였다. 북·중 무역 사업을 하는 ‘북한 화교’ 정모 씨는 “전력난과 겨울철 난방 대란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 옆에는 중국 내륙 지방에서 재배한 귤, 사과 등 과일이 가득 실린 차가 출발을 기다렸다.
화물차는 북한에 생필품도 전달한다. 특히 한국 제품이 인기가 많다. 세관 앞 한 상점에 들어가 “북한 친척에게 갖다줄 한국산 분유를 포장해달라”고 했더니 능숙한 손길로 분유 상표를 벗기고 검정 사인펜으로 브랜드를 지웠다. 북한 운전기사들이 검정 사인펜을 몇 개씩 들고 다니면서 일일이 브랜드를 지우기도 했다. “사실 한국 물품이라는 걸 알면서도 세관에서는 눈감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부유한 이들은 직접 한국산 물품 사진을 찍어 주문하기도 한다. 취재진이 만난 한 무역상은 “최근 남양유업의 커피믹스와 한국산 염색약을 주문받았다”며 “한국에서는 얼마에 파는 제품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최근까지 가장 인기 있던 한국 제품은 전기밥솥. 하지만 요즘은 전기밥솥을 들여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 상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미 한국 밥솥 살 여유가 있는 사람은 다 샀기” 때문이다.



보드카에 조예 깊은 무역일꾼

중국 국경도시의 한 고급 아파트. 경비를 두 번이나 통과해야 하는 이 아파트 로열층에 북한 당 간부 출신 기업소 주재원 박모(가명) 씨의 자택 겸 사무실이 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취재진이 선물로 건넨 외국 술을 흔쾌히 받아들며 반갑게 맞았다.
북한 최고 대학을 졸업하고 당 간부로 근무한 박씨는 2년 전부터 이 도시에서 ‘외화벌이’ 일꾼으로 일한다.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을 중국에 판매하는 것. 자녀들은 모두 북한 유명 대학을 졸업했다.
 북한에서 엘리트 계층이던 박씨는 당이 임명한 주재원이지만 당에서 받는 체류비는 한 푼도 없다. 오히려 매년 5만 달러 이상을 ‘당 자금’으로 바쳐야 하는 상황. 박씨는 “이곳 운영비, 생활비가 매년 5만 달러 이상 들다보니 해마다 10만 달러는 벌어야 적자를 면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박씨의 생활은 호화롭다. 북한 담배의 10배 가격인 외국 담배를 하루에 2~3갑씩 피우고 위스키, 보드카에도 조예가 깊다. 자녀들의 몫으로 주택까지 사둘 정도다. 박씨는 “본인이 능력이 있어서 돈을 만지는 것에 대해서는 당에서도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북한의 현재 사정에 대해 긍정적이다. 제과, 소시지 등 식품뿐 아니라 화장품, 담배 등 가공품도 모두 북한 제조상품이 중국 수입품을 이겼다는 것. 박씨는 “특히 먹거리의 경우 중국산은 가짜가 많다는 인식이 퍼져 북한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선호하는 문화까지 생겼을 정도”라고 말했다.
박씨는 한국의 북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하며 “공장 설비와 원료를 제공하는 대신 원료값을 달러로 받을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5·24 조치로 직접 투자가 불가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조선족 바지사장을 내세우면 될 것”이라고 주저 없이 답했다.



15시간 노동… “그래도 좋아”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주재원들은매주 주말 ‘총화’를 열어 서로 사상 비판을 한다. 국경 지역 곳곳에 있는 보위부 직원들의 눈도 피해야 한다. 박씨는 늘 행동을 조심하면서도 한국 사람이나 북한 화교, 조선족 등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는다. “주머니를 채워 당비를 내려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가리지 말고 무조건 만나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도 많다. 3만~4만 명의 북한 노동자가 중국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취재진은 북한 노동자 100여 명이 근무하는 피복공장을 다녀왔다. 근로자들은 울타리 안 건물 3채와 운동장으로 이뤄진 공간에서 상주한다. 기숙사에서 단체생활을 한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은 노동자들이 김장하느라 한창 바빴다. 낯선 사람의 방문이 신기한 듯 쳐다봤다. 조선족인 이 공장의 사장 황모 씨는 “워낙 폐쇄된 생활을 해서 새로운 사람만 봐도 신기해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북한 근로자의 임금은 우리 돈 40만 원 안팎이다. 하지만 근로자가 손에 쥐는 건 고작 4분의 1. 노동당과 북측 중개 회사에 각각 30%씩 수수료를 내야하고 숙소비, 밥값도 각자 부담해야 하기 때문. 근로자들은 남은 돈 대부분을 북한 측 가족에게 송금한다.
공장 근로자들의 하루 근로 시간은 15시간 이상이다. 이들은 주말에도 공장 기숙사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잡음이 들리면 지역에 상주하는 보위부 요원이 공장을 방문해 조사한다.
황씨는 “아파도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고 상시 서로 감시하며 공동생활을 해야 하지만 북한 근로자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다”며 “몇 년만 고생하면 가족이 윤택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라고 말했다.
압록강철교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개발구(開發區)에 새로운 ‘신압록강대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낡은 압록강철교를 대체할 신압록강대교는 중국 자본이 투입돼 건설을 마쳤다.



50년 토지 이용권 제공

신압록강대교 개통에 앞서 단둥시는 시청과 세관, 학교 등 주요 시설을 모두 개발구 쪽으로 이전했다. 단둥의 개발구 인근 국경 20km 내 거주자에게 무관세 무역을 허가하는 ‘호시무역구(互市貿易區)’ 개소도 앞뒀다. 북한 역시 총영사관 단둥지부 신청사를 이곳 개발구에 열었다.
북한 측의 사정으로 신압록강대교 개통이 늦어지면서 개발구도 어려움을 겪는다. 건설을 마친 고층 아파트 입주가 늦어지고, 심지어 건설이 중단돼 녹이 슨 건물도 많이 있었다.
북한이 경제특구를 지정하고 개발에 앞장서겠다고 발표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매번 공염불에 그쳤다. 단둥 인근의 ‘황금평경제특구’ 역시 장성택 처형 이후 ‘올스톱’ 상태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이 “북한이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특구를 지정했지만, 갖가지 문제로  완공된 경우가 없다”며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라고 의문을 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환 체제를 맞이하려는 북측의 노력은 끊이지 않는다. 취재진은 국경 지역에서 북한 대외경제성이 2015년 2월 허가한 ‘개발사업권승인서’를 입수했다. ‘조선진한개발회사’라는 북·중 합작회사가 평안북도 신의주시 임도 개발을 하도록 승인한 내용이다. 이 개발회사에는 중국과 북한 기업이 각각 7대 3으로 투자했다고 돼 있지만,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인프라를 제공받는 대가로 개발권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의 지분이 절대적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개발회사의 자본금은 1억8000달러(2000억 원)에 달한다. 임도의 지역 개발과 관광, 농업, 금융, 물류, 부동산 개발 등을 사업 목적으로 한다. 압록강 하류의 섬 위화도 바로 옆에 있는 임도는 면적이 6.2㎢로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다. 북한은 임도를 50년간 이용할 수 있는 토지이용증도 함께 발급했다.
김형덕 소장은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에 투자 유치가 쉽지 않다 보니 50년을 기한으로 개발권을 주는 것”이라며 “이런 투자가 확산될수록 북한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돈에는 국경이 없다”

취재진은 단둥에서 우연히 북한의 노동당 지도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인민복을 입고 배지까지 단 그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백발이 성성했고 손과 목에 주름이 가득했다. 그는 단둥과 지안(集安)에 있는 먼 친척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지안역에 내렸을 때 약속한 친척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할 건지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그에게 북한 분위기를 물었더니 “장군님 덕분에 잘 먹고 산다”며 뻣뻣하게 답했다.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강성대국으로 나아간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에 피복공장을 세우고 싶은데 남한에는 그런 설비를 받을 데가 많지 않으냐”며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단둥 세관 앞 한 상점에서 취재진은 북한 보위부 요원을 만났다. 엄격한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탓에 북한 노동자들에게 악명이 높은 이다. 그런 그도 한국 유명 상표가 달린 내의를 한참 들여다보며 살지 말지 고민했다. 취재진이 다가가자 뒤로 물러서는 듯하면서도 다른 한국 물건들을 들여다봤다.
북한 화교 출신 무역가 한모 씨는 술을 들이켜며 이렇게 답했다.
“북한 사람들도 다 알아요. 돈에는 국경이 없고 돈은 무조건 좋다는 걸. 북한 사람들이 그걸 알아가는데 한국 사람들은 어차피 5·24 대북 제재 때문에 투자도 못하고…. 결국 중간에서 중국 사람들만 신났다 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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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김유림 | 채널A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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