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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과잉 벗어나 시민의 욕망 꽃피워야”

진보 통합號’ 이끄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이념 과잉 벗어나 시민의 욕망 꽃피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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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민주노총도 성찰해야 하지만 정부 태도도 잘못
  • ● 안보가 튼튼해야 복지국가도 평화통일도 가능
  • ● 진보는 욕망을 거세하는 정당 아니다
심상정(57) 정의당 대표를 생각하면 들판의 국화가 떠오른다. 국화 향기는 장미처럼 강렬하거나 매혹적이지 않지만, 삶의 오랜 동반자처럼 친근하고 은은하다.
12월 11일 국회 본관 로텐더홀. 네 사람이 팻말을 들고 옹기종기 앉았다.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당직자 4명이다. 팻말에는 ‘비례대표 축소 결사저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따위의 구호가 적혔다. 지나가던 정치인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단식농성 12일째’다. 당대표실 옆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 단식농성은 어떻게 하나.
“릴레이 단식이다. 대표단, 의원단 12명이 매일 교대로 한다.”
▼ 뭘 요구하는 건가.
“현행 선거구제는 승자 독식 구조로 표의 등가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정당 지지율에 비례한 (비례대표) 의석수를 보장하라는 요구다.”
▼ 50% 연동제는 뭔가.
“정당 득표율에 비례한 의석수를 100% 인정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 반이라도 보장하라는 뜻이다.”
▼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동조하나.
“우리와 뜻을 같이한다. 새누리당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공감한다. 최근엔 국회의장까지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그런데 친박계에서 반대한다고 한다. 청와대 쪽에서 완강하게 반대해 진전되지 않는 걸로 안다.”
심 대표에 따르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도 잠정 합의됐다고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노동시장”

최근 ‘본격 노동 드라마’로 화제가 된 JTBC ‘송곳’ 얘기를 꺼냈다. 심 대표는 ‘다시 보기’로 전편을 다 봤다고 했다.
“굉장히 리얼하게 그렸다. 힘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보여줬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에서 월 200만 원을 못 받는 봉급쟁이가 1100만 명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장시간 일한다. 비정규직은 미국, 멕시코와 1, 2위를 다툴 정도로 많다. 게다가 산업재해 왕국이다. 1800만 노동자가 노동조합 밖에서 기본권도 누리지 못한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못 구한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된 노동구조 탓이다. 노동문제는 정치 현안이자 대한민국이 건설적 미래로 나아가는 데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 ‘송곳’을 보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데, 얻는 건 별로 없고 희생만 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헌법에 노동권을 보장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노동자의 희생을 담보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뤘다. 이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데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은 헌법정신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경제를 살리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는 존중한다. 그런데 그분이 보고 배운 것은 재벌을 압박해서 투자하게 하는 방법뿐이다. 재벌이나 대기업 중심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이고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그 낡은 수단으로 다시 노동자들을 압박한다. 이는 양극화를 부채질해 사회적 갈등을 증폭할 것이다.
선진국 지도자들, 오바마나 메르켈, 하다못해 아베까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적극 추진한다. 소득을 늘려 골목시장에 돈이 돌게 하고 내수 활성화로 경제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만 거꾸로 간다.”
▼ 정부와 기업 측에서 말하는 노동시장 유연화에는 전혀 동의하지 못하나.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세계에서 최고로 유연하다.”
▼ 통계로 입증되나. 어떤 지표가 있나.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높다. 저임금 노동자 비중도 높다. 직장 재직기간, 즉 근무연수는 가장 짧다. 그만큼 임시직 노동자가 많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유연성을 얘기하는 건 전혀 설득력이 없다.”



원내교섭단체라는 높은 장벽

인터뷰 전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 도피를 끝내고 경찰에 출석했다. 노동문제의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과격 투쟁에 대해선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한 심 대표의 의견이 궁금했다.    
“위선은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착한 척하는 것이고, 위악은 힘이 없는 사람이 힘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으로 힘을 발휘하길 바라는 시민의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민주노총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으려면 성찰과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상균 위원장이나 민주노총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매우 잘못됐다. 70만 노동자가 속한 합법 조직의 대표를 폭도 수괴나 테러리스트처럼 토끼몰이 하는 건 상식을 벗어난다.”
정의당은 11월 22일 4자연대 통합진보정당으로 거듭났다. 국민모임, 진보결집 더하기, 노동정치연대가 정의당과 합친 것이다. 심상정·김세균·나경채 3인 공동대표 체제인데, 심 대표가 상임대표를 맡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통합 직후 정의당 지지율은 7.4%로 창당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 통합진보정당 출범의 의미는.
“진보정당이 그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뺄셈정치’를 해오지 않았나. 이제 갈라진 마음을 모아 재도약을 다짐한 것이다. 통진당 세력을 뺀, 합리적 진보 세력이 다 뭉쳤다. 명실상부한 진보 대표 정당으로 거듭난 것이다.”
▼ 한국에선 왜 진보정당이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나.
“객관적 요인과 주체적 요인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분단과 냉전 체제에서 진보의 이념적 수용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반세기 이상 보수 양당 체제가 이어지면서 냉전논리, 색깔론 등이 진보를 억눌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제도적 적대성이다. 선거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아무리 못해도 1, 2등을 할 수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13%였다. 의석수로 치면 40석 가까이 된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가 있었다면 지금쯤 우리가 못돼도 제1야당은 됐을 거다. 또한 힘들게 국회에 들어와도 원내교섭단체라는 더 높은 장벽이 기다린다. 원내 정치에서 배제되니 국고보조금을 비롯한 각종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주체적인 면에선, 첫째, 현실정치의 벽에 대해 대단히 무지하고 순진했다는 점이다. 둘째, 민주적 리더십에 대한 오해로 안정적인 리더십을 구축하지 못했다. 옳고 그름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논쟁을 위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다 보니 국민 눈에 민생을 챙기는 정당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정파 간 대립이나 이념갈등만 도드라지게 보였다. 결정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상식을 넘어선 태도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이런 시행착오는 정의당 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객관적 장벽이 있기에 이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대안정당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것이다. 이는 낡은 양당 체제를 뛰어넘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선진적 정당 체제를 갖추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를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은 정의당을 교섭단체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시진핑은 세 번 만났건만…

심 대표의 말은 논리정연하다. 군더더기도 없다. 진보정당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려 부단히 노력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진보정당이 어엿한 원내세력으로 자리 잡을 경우 한국 정치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이 잘 안 된다. 그의 말대로 오랫동안 기득권 양당 체제에 길든 탓일까. 화제를 현실정치로 돌렸다.
▼ 박근혜 정부가 잘한 점은 없나.
“중국 관계는 잘했다고 본다. 나머지는 평가할 게 없다. 박 대통령은 통치는 잘하는데, 정치는 정말 위험할 정도로 못한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권위로 밀어붙이는 일은 잘하지만, 민주정치에 필요한 일, 예컨대 소통하고 대화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민주정치의 본령과는 거리가 먼 분 같다.”
▼ 대통령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있었나.
“시진핑과는 세 번 만났는데, 우리 대통령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의례적인 행사에서 뵌 것 말고는.”
그가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줬다.  
“대통령이 시정연설 하러 국회에 왔을 때 일이다. 연설 전 정당 대표들과의 티타임 자리가 마련됐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나도 초청해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지 말라는 전화가 왔다. 청와대 측에서 나를 빼달라고 요구했던 모양이다. 정 의장이 몹시 미안해했다.”
▼ 박 대통령은, 부친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반대자들이 뭐라 하든 관철하려는 것 같다. 욕을 먹더라도 후대에 평가를 받겠다는 자세로.
“박 대통령이 자신의 신념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고 관련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는 것은 긍정적 리더십이라고 본다. 중요한 건 그의 신념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공약을 내걸고 표를 받았다면 공약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전부 반대로 한다.”
▼ 예를 들면?
“복지도 그렇고 노동문제도 그렇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기간제법은 정반대로 평생 비정규직을 만드는 법이다. 한국노총과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하고는 약속을 어겨 지금 한국노총 위원장이 국회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한다.”
정의당의 달라진 태도 중 하나가 안보를 중시하는 태도다. 지난 9월 군사안보 전문가 김종대 씨를 영입한 것이 신호탄이다. 김씨가 국방개혁단장을 맡은 이후 정의당은 ‘진짜 안보’를 주창하며 지뢰 부상병사 치료비 공론화, 군 인권 이슈 등을 주도해 화제가 됐다. 또한 국방 예산과 군 인사 비리, 방위사업 비리,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눈길을 끌었다.
▼ 안보 분야를 강화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대안정당으로서 수권 능력을 키우려 한다.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노동, 복지, 생태 등 진보의 주요 의제를 합리적 대안으로 재정비하는 작업이다. 또 하나는 외교, 안보, 국방 등 국가 운영의 중추 기능을 감당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쪽에 소홀하다 보니 권력을 추구하는 정당보다는 압력단체 이미지로 인식된 면이 있다.”



▼ 맞다.
“튼튼한 안보의 토대 위에 복지국가 건설도 가능하고 평화통일도 가능하다. 그간 대한민국 안보는 비판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가장 부패하고 낙후된 분야이기에 가장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 접근하기 힘든 영역이기도 하다.
“그간 안보는 보수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져 진보진영에서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제1 야당도 자칫 색깔론 공세를 받을까봐 비판을 못했다. 그 결과 천문학적 비리의 온상이 되고 군 인권은 심각한 수준으로 낙후됐다. 선진국에선 20~30년 전에 끝낸 군 현대화 작업이 아직도 숙제로 남았다. 안보를 얘기하려면 적어도 국방 비리만큼은 철저히 파헤쳐 엄단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서구에서 군은 시민의 군대로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의무나 규율, 제복만 강조한다. 시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과연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게 여기고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겠나.
최근 우리 당에서 지뢰사고로 다친 군인들의 치료비 문제를 제기한 이후 편지가 엄청나게 온다. 공무로 다친 병사를 치료비도 안 대주며 매정하게 내치고 이를 은폐하는 정부가 국방 의무를 강제할 자격이 있나.”
▼ 2011년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만약 그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나.
“당연히 규정에 따라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 그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안보에 무능한 정부였다.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건 통수권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가장 강력한 안보는 평화다. 선제적인 평화에는 강군(强軍)도 포함된다. 도발 예방 차원에서 강군을 만들어야 한다.”
▼ 지난 8월 목함지뢰 사건 당시 전운이 감돌았는데, 양측 특사 협상으로 충돌을 피했다. 그 일은 잘됐다고 보나.
“잘 풀었다고 본다. 대화로 피할 수 있는 전쟁을 하는 정부는 무능한 정부다.”



당 정체성과 야권연대는 별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심 대표의 저서를 찾아봤다. 2008년에 나온 ‘당당한 아름다움’은 절판이라 구하지 못했고, 2013년에 출간한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을 사서 읽어봤다.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무엇이냐. 인간이 처한 삶의 조건에 대해 측은지심을 가졌느냐. 그리고 그것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함께 느끼느냐.’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지금도 이런 구분이 유효하냐고.
“정치는 결국 책임이다. 정당은 정치적 신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다. 레토릭과 공약은 비슷하지만 행동과 실천에서 차이가 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민생의 가치와 시민의 삶을 지키려는 의지가 철저하지 못하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공적 가치에 대한 신념도 확고하지 않고.”
▼ 왜 그런 차이가 날까. 그 당에도 노동운동, 인권운동 한 사람 많은데.
“정치인 개개인을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에도 훌륭한 의원이 많다. 우원식, 은수미 의원 등은 참 열심히 한다. 그런데 당은 정치인 개개인의 연합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정치적 신념과 비전을 가진 주체다. 한 예로 설악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문제를 보면,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라 당론으로 ‘OK’ 했다. 그래놓고 국정감사 때 새정치민주연합 몇몇 의원이 열심히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간사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새정치민주연합 당론을 지켜달라.’ 이렇듯 당리당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중시해 민생적 가치를 뒷전으로 밀어내는 행태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못 받는 것이다.”



“진보에서 거품 빼야”

▼ 그런 못마땅한 정당이지만 2016년 총선에서 필요하면 야권연대 할 것 아닌가.
“민주국가에서 연합정치는 일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당끼리 협치를 잘 구사하는 것이 민주정치다.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야당은 노선과 정책이 달라도 집권세력을 견제할 책무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폭주를 견제하려는 연대와 연합은 충분히 국민적 정당성을 갖는다고 본다.”  
▼ 보통 사람에게 진보라는 개념은 좀 불편하게 다가온다. 책에 보니, 진보정당에 대해 ‘나의 욕망을 거세하는 정당’이라는 표현이 있더라.
“우리 당 지지자가 내게 말한 것이다.”
▼ 그 말에 공감했다. 진보정당 정치인의 일상생활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욕망을 많이 거세당하고 산다(웃음).”
▼ 이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간 진보정당에 이념적 과잉, 감정적 과잉이 있었다고 본다. 진보는 무조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하고 좋은 옷을 입어도 안 되고 맛난 음식을 먹어도 안 된다고 여겼다. 멋도 부리면 안 되고 어쩌다 여행하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 좀 과장하면 순교자적인 삶?
“그런 삶은 이념주의자가 요구하는 것이다. 내게 그 얘기를 해준 지지자처럼 진보 진영 내에 그런 식의 자기검열을 하는 사람이 많다. 노동운동 하는 분 중에도 많고. 그런데 지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돈 많이 받는다. 비정규직이 어렵지.
때로는 삶의 욕망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 좋은 정치의 추동력이 될 수 있다. 요즘 어딜 가나 내가 그렇게 말한다. 진보에서 거품을 빼야 한다고. 삶의 욕망, 시민의 욕망을 꽃피우는 진보정치를 해야 한다고.”
▼ 욕망을 거세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욕망을 거세할 것처럼 보이나(웃음).”
▼ 지도자의 자세는 좀 다르지 않을까.
“물론 지도자는 공익적 가치에 헌신해야 한다. 욕망을 거세하기보다는 진보의 가치를 즐기고 신념으로 여기는 사람이 지도자 자격이 있다고 본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그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대학생 때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구로동맹파업,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 등을 주도했다.  
“대학생 때 야학(夜學)을 해봤는데, 이런 소시민적 방식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회의를 느꼈다. 어느 날 공장 노동자들의 삶을 목격하고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헌법상 권리를 갖고 시민적 권리를 행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평생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25년 이상 한길을 걸었다. 그들과 함께한 시기에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행복했다.”
▼ 지식인으로서의 의무감, 혹은 정의감이었나.
“어릴 때부터 의협심이 좀 강했던 것 같다. 공장에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보고는 ‘여기는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부모가 많이 걱정했겠다.
“수배 중일 때 내 전담반이 3개나 됐다. 사돈에 팔촌까지 뒤졌다. 잡혀가면 고문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내가 쫓겨다닐 때 어머니가 충격을 받아 심장병을 얻고 안면마비가 됐다. ‘신동아’에 인터뷰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최장기 수배자 어머니로서.”
그의 부친은 돌아가셨고 모친은 살아 계신다.
▼ 이제는 자랑스러운 딸로 생각하겠다.
“집 한 칸 없이 형제들 중 가장 못사니 늘 안쓰럽게 여겼다. 오빠들한테 용돈 받으면 우리 집 냉장고 고치는 데 쓰라고 뒤로 건넸다. 국회의원 되고 나서,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이 ‘아, 이제 어머니한테 좀 보상이 됐을까’였다.”
▼ 좋아하시던가.
“좋아한다. 지금도 어머니가 가장 큰 후원자다.”  
그에게 애송시가 있으면 읊어보라고 요청했다. 그가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낭송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나 때문에 심장병까지 얻은 우리 어머니, 내가 국회의원 되고 나서는 아들, 딸, 사위까지 전부 당에 가입시킨 어머니, 또 나를 아껴주시는 시부모와 무한한 지원을 하는 남편. 그분들 덕에 정치에 전념할 수 있었다. 시는 절절하게 다가올 때 비로소 자기 것이 되는 것 같다. 수배 중일 때 어머니에게 이 시를 적어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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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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