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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市場, 북한을 바꾸다

로또 같은 외화 벌어 기고만장 돈 갈 데 없어 ‘건설’로 몰려

김병연 서울대 교수가 ‘경제학의 窓’으로 본 북한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로또 같은 외화 벌어 기고만장 돈 갈 데 없어 ‘건설’로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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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北 권력 원천은 外貨, 인민 생명줄은 市場
  • ● 시장화는 가스와 같아…경협으로 점화시켜야
  • ● 北 권력 돕는 게 아니라 경제구조 바꾸는 것
  • ● 南, ‘경제’ 빠진 정책 失機 탓 기회비용 치러
김병연(54)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북한 경제는 변했다”고 강조한다. “현실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더 이상 폐쇄경제가 아니다. 시장이 인민의 생명줄이 되고 있다. 북한 경제는 진화하는데, 대북정책은 진화가 없다. 변화된 경제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대북정책은 성과를 낼 수 없다.”
정통 경제학을 공부한 학자 중 북한을 학문 주제로 삼은 이는 찾기 어렵다. 북한에 대한 김 교수의 학문적 천착은 경제학자로서는 이례적이다. 주류(主流)의 지위에 오른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가정(假定)은 차갑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합리성은 완전하다. 쾌락과 성공을 추구하는 공리적 존재로 경제적 이익에 몰두한다.
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에섹스대와 서강대 교수를 거쳐 2006년 9월부터 서울대에서 후학을 가르쳐왔다. 2014년 7월부터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경제분과 간사 겸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신동아’ 인터뷰 요청에 난색을 표한 그에게 11월 24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정치인 혹은 정치학자의 시각에서 대북정책이 입안되다보니 정책 수립 과정에서 경제구조의 변화라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는 듯합니다. 일부 정치인은 20년 전 식량난 시기를 현재와 등치해 평양을 들여다봅니다. 식량난 이후 ‘시장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북한 경제가 어떻게 변해왔으며, 그것이 북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변화에 따라 어떠한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하는지 묻고자 합니다.”
그는 이튿날 “아는 것이 적고 인터뷰를 잘 하지 않지만, 문제 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여겨 응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12월 1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서 그를 만났다.



“‘인간’보다 ‘구조’를 봐야”

▼ 북한의 시장화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동유럽 국가의 경제체제 이행 단계와 비교하면 어떤 수준입니까.
“북한이 체제 이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북한 경제는 과거에도 특이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 경제는 중앙계획에 입각한 비교적 과학적인 사회주의였어요. 북한의 경제 운영은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북한을 이해하려면 북한이 내뱉는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라 숫자로 된 통계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라는 코드로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의 북한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얼개가 그려진다.
급상승한 지하자원 가격에 힘입어 수출을 통해 북한으로선 로또 같은 돈을 벌기 시작했다→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했다→지하자원 수출 황금기 동안 확보한 외화 덕에 기고만장했다→러시아, 중국 등으로 인력을 수출해 벌어들인 외화도 상당했다→2013년 3차 핵실험은 외화 수입으로 인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확보한 외화를 마식령스키장 같은 전시성 사업에 낭비하면서 살림이 쪼그라들었다→2014년부터 지하자원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이 감소했다→이를 메우기 위해 일본, 러시아와 접촉했으나 한계에 부딪히자 남측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2015년 노동당 창건일 때 핵실험을 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시장에서 부를 축적하는 세력은 핵실험에 반대하는 것이 합리적 행동”이라고 말했다.  
▼ 정치의 관점이라는 ‘외눈’으로 보는 것과는 분석이 사뭇 다릅니다. ‘겹눈’으로 북한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학문의 방법론 혹은 관점 차이일 수 있습니다. 정치학에서는 의사결정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경제학자는 경제구조가 바뀌면 다른 사회구조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치인은 이 변화된 구조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고 봅니다. 이익과 손해의 관점에서 볼 때, 경제구조 변화에 맞지 않는 정책을 펼치면 통치자는 손해를 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권을 잃을 것이고요. 김정은도 경제구조를 외면하는 정책을 펴면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죠.
경제학은 이처럼 ‘구조’를 ‘인간’보다 중시합니다. 경제학자가 대북정책을 수립할 때 주요한 의사 결정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학이나 국제관계 전공자들이 대통령직인수위는 물론이고 그전의 스터디 그룹에서도 대북정책에 대해 큰 목소리를 냅니다. 그 결과 대북정책을 짤 때 경제적 관점이 고려되지 못했어요.”


北 배부를 때 5·24조치

▼ 경제학의 관점이란 어떤 것인가요.
“경제학자는 사람은 안 바뀐다고 봅니다. 사람은 손해-이익을 계산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김정은 같은 독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 유지겠지요. 독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오늘부터 인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태도를 바꾸는 경우는 없어요. 햇볕정책을 통해 김정일을 바꿔보겠다? 대북정책을 통해 김정은을 바꿔보겠다? 경제학 교과서엔 없는 얘기입니다. 그런 식의 접근은 맞지 않습니다.”
▼ 경제구조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다?  
“경제학은 경제구조가 다른 사회구조의 밑바탕에 있다고 봅니다. 바로 그 밑바탕에서 권력이 나옵니다. 북한의 현 경제구조에서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원천이 뭐겠습니까. 외화입니다. 외화를 확보하면 경제적 생존도 가능하고 성과도 과시할 수 있겠지요. 외화 획득은 북한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 수단입니다.”
▼ 3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봉쇄, 제재를 통해 외화 획득을 막으려 했지만….
“중국이 존재하는 한 제재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5·24조치(2010년 천안함 폭침에 대응해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류를 중단한 방침)가 북한의 변화된 경제를 고려하지 않은 대표적 사례예요. 북한이 북·중 무역을 통해 로또 같은 외화를 벌던 때였거든요.  
북한과 교역하는 180개 중국 기업을 조사해봤습니다. 북·중 무역에는 킥백(kickback·리베이트, 뇌물)이 오고 갑니다. 킥백으로만 북한에 들어간 외화가 많을 때는 연 4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를 들면 북한이 중국 기업에 국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무연탄을 팝니다. 중국 기업은 시세와의 차액 중 일부를 킥백으로 북한 측에 줍니다.
킥백은 보통 매출의 7%입니다. 북중 무역 규모가 6조 원이라고 하면 킥백이 4000억 원에 달합니다. 중국 경기가 좋고 무연탄 가격도 폭등해, 북한 권력집단이 등 따뜻하고 배부를 때 5·24조치를 취한 겁니다. 중국, 러시아에 파견한 근로자가 획득하는 외화도 쏠쏠했고요. 한국에서 들어오는 외화는 북한에서 보면 오히려 작은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 잘될 때 북한에 지급되는 돈이 한 해 500억 원 정도였으니까요. 봉쇄와 압박이 북한에 큰 충격을 주기는 어려웠습니다.”





北 1인당 GDP 750달러

▼ 최근에는 중국 경기가 과거만 못하고 지하자원 가격도 떨어졌습니다.
“북한의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것도 문제입니다. 김정은은 모던(modern)한 나라가 되려면 건물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초고층 아파트도 짓고, 거리에 잔디도 깔고요. 초고층 아파트는 북한 경제의 업적이 아니라 북한이 앓고 있는 병의 징후입니다. 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해요. 돈이 갈 곳이 없어 건설로 몰렸습니다. 신흥 자본가가 권력기관과 결탁해 아파트를 짓고 그 기관에 일부를 상납하고 나머지는 분양하는 독특한 형태예요.”
▼ 오피니언 리더 중에도 20년 전 식량난 시기를 고려해 남북관계를 들여다보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당시의 북한 경제와 현재는 아주 달라요. 북한을 폐쇄경제라고 여기면 변화된 모습을 못 보는 것입니다. 아주 잘못 보는 거예요. 북한 경제의 무역 의존도가 50%에 달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슷한 수치죠.”
경제학자들은 ‘거울통계’(북한이 교역하는 상대국의 통계)를 이용해 북한의 무역 규모를 측정한다.  
“제가 추정한 북한의 1인당 GDP는 750달러입니다. 1인당 GDP에 북한 인구를 곱하면 북한의 GDP는 19조 원입니다. ‘광주광역시 절반’ 규모의 아주 작은 경제예요. 교역 상대국의 통계로 보면, 2014년 남북 교역을 합한 무역 규모는 10조 원가량입니다. GDP가 워낙 낮은 데다 내수시장도 작아 무역의존도가 높은 거죠.
무역의존도가 50% 넘는 개방경제의 북한을 다루려면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게 많습니다. ‘북한에 현금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주장을 살펴봅시다. 폐쇄경제일 때는 이 주장이 옳을 수 있죠. 핵개발 같은 곳에 쓰일 테니 현물을 주라는 것인데, 개방경제 아래선 현물을 팔아 현금으로 바꾸면 그만입니다. 현물을 받은 만큼 그 현물을 수입하지 않으면 되니 그만큼 외화를 확보하는 셈이고요. (이유식, 라면 같은) 현물을 지원하는 것은 괜찮고 현금은 안 된다는 건 북한이 폐쇄경제일 때에만 통하는 얘깁니다.”
▼ 봉쇄, 압박을 강조하는 정치학자들은 현금 원조가 독재집단에만 이득을 준다고 봅니다.
“개방경제를 잘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북한에 시장이 워낙 많이 펼쳐졌습니다. 시장 교환 덕분에 굶주리는 주민도 현저히 줄었고요. 시장, 무역이 들어간 북한과 그렇지 않은 북한은 구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차이예요. 청동기 시대에 구석기 시대에나 맞는 대북정책은 안됩니다. 대북정책은 종합예술이어야 합니다. 정치, 국제관계를 아는 사람들과 경제를 아는 사람들이 팀을 이뤄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경제학자들은 이미 짜인 대북정책의 설거지 당번 노릇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시기에 맞지 않는 잘못된 대북정책 때문에 우리가 치른 경제적 비용이 상당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북한 경제구조를 이해하고 대북정책을 세워야 해요.”   김 교수는 “한국 경제가 ‘북한 붕괴→흡수통일’을 버텨낼 체력을 갖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재정 충격’ ‘환율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통일 후 서독에서 동독으로 간 이전 지출이 3000조 원에 달합니다. 서독과 동독의 인구 비율은 4대 1, 남북한은 2대 1입니다. 북한의 1인당 소득은 한국의 3%에도 못 미쳐요. 독일 통일보다 한반도 통일이 재정에 미칠 충격이 훨씬 클 겁니다. 북한이 붕괴해 급진적으로 통일이 되면 금리와 환율이 큰 충격을 받을 거고요. 원화 가치가 폭락하고 금리가 폭등해 한국 경제 전체가 망가질 수 있어요. 북한 주민이 남한으로 이주하는 것을 강제로 막는다면 경제적 충격을 줄일 수 있겠죠. 그러나 국제사회가 ‘통일 대박이라더니 이주도 못하게 한다’며 비판할 겁니다.  
점진적 통일이야말로 대박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통일 후 북한에서 살아도 미래가 있겠다고 여기게끔 지금부터 병원, 학교, 사회 인프라 같은 기반 시설을 닦아주는 방향으로 북한 거주 인센티브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요즘 탈북자 중엔 자식 교육 때문에 한국행을 선택한 사람도 있습니다. 북한에 좋은 대학이 없으면 한국으로 이주해 자식을 서울대에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죠.”



北 경제 연 13% 성장 가능

▼ 우리 돈 수십억 원에 달하는 외화를 들고 한국에 온 탈북자들도 있더군요.
“외화벌이나 뇌물로 그 많은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위급 탈북자 상당수는 미국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가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제가 지금 10만 원을 드리면 그 돈을 다 가져도 되고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에게 원하는 만큼 나눠줘도 된다고 할 때 얼마를 다른 사람에게 주겠습니까.”
▼ 글쎄요…. 2만 원쯤?
“독재자 게임이라는 경제학 실험인데요. ‘10만 원 중 2만 원’이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주는 평균 금액이에요. 한국 대학생들도 받은 돈의 20% 정도를 익명의 상대에게 줬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갓 온 탈북자들은 받은 돈의 거의 절반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나눠줬습니다. 아주 강한 평등지향적 성향을 보이는 겁니다. 이러한 평등 지향성은 한국에 들어온 지 5년이 지나고 이곳 대학에 다니는 탈북 청년들도 거의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 평등주의 사고가 머리에 박혔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평등주의 의식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아요. 탈북자가 다른 탈북자에게 부조할 때 보면, 형편이 어려운 데도 수십만 원씩 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변한 경우도 있습니다. 부조를 아예 안 하는 거죠. 양쪽 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경제학 실험 얘기를 꺼낸 것은 선거와 관련해 함의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보수, 진보가 반반이라고 가정합시다. 만약 당장 통일이 될 경우, 평등의식이 강한 북한 주민의 표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정권이 그쪽으로 가게 됩니다. 급진통일이 이뤄지면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은 현재의 여당이 상대적으로 급진통일을 선호하고, 이득을 볼 소지가 큰 야당이 점진통일을 지지하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북한 주민의 표를 얻고자 여야가 경쟁적으로 인기영합적 복지와 재분배를 바겐세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죠. 그런 형국이라면 경제는 어떻게 될까요.”
▼ 점진적 통일은 얼마나 대박일까요.
“북한에 특히 대박입니다. 북한이 시장경제로 체제이행을 하고 경제통합을 거쳐 점진적이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가정 아래 제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북한 지역은 연 13%씩 성장합니다. 한국은 연 0.8%씩 추가 성장하고요. 한국의 현재 경제성장률을 볼 때 0.8%는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닙니다. 북한에 사기업이 생겨 5~1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하고 북한 경제의 이행과 경제통합이 이뤄질 때의 가정인데요. ‘평화통일’ ‘점진통일’ ‘체제이행’의 3가지 전제 조건이 갖춰져야 통일은 대박입니다. 급진통일의 경우 단기 비용은 크더라도 30년가량 지나면 편익이 훨씬 커지겠죠. 문제는 한국 경제와 사회가 그 30년 동안 버틸 체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100점 차로 이길 경기를…

그는 “대한민국에 남은 유일한 번영의 동력이 북방 축(軸)”이라고 강조했다.  
“거의 모든 경제학자가 우려하는 바는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주요 성장동력은 시장 개척이었습니다. 1970년대까지 우리의 성장동력은 미국과 일본 시장을 겨냥한 ‘서울-부산 축’이었습니다. 그 후 중국이 부상하면서 서해안 축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축을 이용한 시장이 이제는 포화상태입니다.
마지막 남은 축이자 이전의 축만큼이나 막강한 축이 북방입니다. 한국은 북한에 가로막혀 고립돼 있습니다. 경제통합 이후 추가 성장이 0.8%라는 제 가정은 남북통합만을 고려했을 때의 효과입니다. 만약 동북 3성, 러시아 극동지방, 중앙아시아 등으로 경제통합 범위가 확대되면 성장 효과가 더 커지겠지요.”
▼ 동유럽의 시장화, 자유화는 ‘빅뱅’이라고 불릴 만큼 급진적이었는데, GDP가 엄청나게 쪼그라드는 등 경제 혼란이 컸습니다.
“시장화, 자유화는 충격 ‘요법’이 아니라 충격 ‘파괴’였다는 말도 있었어요. 북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행기 충격을 겪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동유럽은 기존의 사회주의 중앙계획에서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조정 메커니즘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중앙계획경제가 무너졌지만 시장도 채 자리 잡히기 전이어서 제도적 규칙이 없는 기간이 있었어요. 북한은 이미 이 과정을 겪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계획이 무너진 반면 시장은 존재하지 않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부분적이나마 시장이 작동하고 있어요. 그러니 성장을 위한 점화만 잘되면 곧바로 플러스 성장이 가능합니다.”
그는 “대한민국이 지식의 우위에서 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앞서 말했듯 북한 경제 전체가 광주광역시 절반 규모예요. 우리가 충분히 자신감을 갖고 리드할 수 있습니다. 군사, 정치적으로 보면 북한 또한 파워가 있겠으나 경제로는 우리가 북한을 압도합니다. 보이지 않는 팔이 더 막강한데, 보이는 팔인 ‘정치 팔’, ‘군사 팔’로만 경쟁하니 압도를 못하는 거예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목과 관심이 결여됐기에 좋은 정책과 전략적 행동이 나오기 어려운 겁니다. 100점 차이로 이길 수 있는데 10점 차를 놓고 겨루는 격이에요. 세 과목을 합치면 월등한데도, 경제를 몰라 활용을 못하는 겁니다.”



▼ 독재집단이 체제 이행에 나설까요.
“햇볕정책은 독재자의 목적함수(objective function)를 ‘독재 유지’에서 ‘인민생활 향상’ 쪽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건 어렵다고 봅니다. 절대 독재를 유지하겠다는 김정은의 생각은 우리가 바꾸기 어렵습니다. 비핵개방 3000은 봉쇄, 압박을 통해 독재자의 목적함수를 바꾸려고 했는데, 그런 시도는 역사적으로 성공한 적이 거의 없어요.
경제학은 목적함수를 바꾸는 대신 그것에 영향을 주는 제약(constraints)을 바꾸려고 합니다. 경제구조가 바뀌면 목적 극대화 결과에 영향을 줍니다. 김정은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서 ‘인민’이라는 말을 97차례 강조하면서 ‘핵’이라는 단어는 한 차례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무역과 시장을 통해 외화를 버는 집단은 핵실험을 싫어하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입니다. 경제구조를 변화시켜 행동을 바꾸는 게 경제학적 접근 방식입니다.”



‘3만 달러’에 막힌 한국 경제

▼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시퀀싱(sequencing)을 제시한다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a에서 b로, 그리고 c로. 즉,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은 좋은데 작은 것을 어떻게 시작할지 전략이 없습니다. 북한에 작은 것을 시작할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면 사후적으로는 비핵개방 3000 정책의 결과와 비슷해질 수 있습니다.”
▼ 현 정부 임기가 2년 남짓 남았습니다.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
“경제교류를 하자고 하면 많은 분이 그 돈으로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정권을 유지한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제를 통해 북한 정권에 제약 조건을 주자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목적함수를 극대화할 때 제약을 주는 전략’입니다. 이걸 잘 이해하지 못하면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겁니다.”
▼ 한국 경제의 행로는 어떻게 봅니까.
“매우 어려울 것 같아요. 위기가 올 수도, 일본처럼 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 한국, 일본의 1인당 GDP가 큰 차이가 없어요. 일본 경제가 후퇴해 격차가 줄었습니다.
“일본은 ‘4만 달러’에 막혀 있고, 우리는 ‘3만 달러’에 막혀 있죠. 일본은 그래도 체력이 튼튼합니다. 경제 규모 자체가 큰 데다 중소기업들도 탄탄해요. 반면 한국은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고요.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 역성장이 일어나기는 어렵겠지만, 활로를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2016년은 2015년보다 낫다는 전망인데, 저는 2015년과 비슷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 리스크 때문에 과연 2016년이 낫겠나 싶어요.”



멋진 신세계

▼ 우리 경제의 험난한 앞길에 북한이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합의를 통해 경로(path)를 점프해서 가장 선진적인 경제를 심을 수 있어요. 아무런 기득권이 없습니다. 토지도 국유고요. 세계 어느 곳에 그런 땅이 또 있을까요. 게다가 요충지에 위치했고요.”
▼ 발전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 성장의 조건을 대부분 갖춘 듯합니다. 2면이 바다인 데다 온대지방에 위치해 기후도 좋고….
“중국이라는 소비시장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장점도 있죠. 우리의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고 여기에 좋은 제도를 잘 만들면 신세계가 열릴 수 있습니다. 예컨대 원격의료 같은 것도 한국에서는 기득권과 규제 탓에 못하지 않습니까. 규제를 만들지 않고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창의와 혁신을 발휘하는 조건을 만들어 최신 첨단의 경제를 꾸릴 수 있습니다.”
▼ 행정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그렇게 볼 수 있죠. 한국의 발전 단계를 답습하는 게 아니라 경로를 뛰어넘어, 상상할 수 있는 최신의, 최고의, 양질의 제도를 갖고 북한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한국 경제에 접목하는 겁니다. 우리에겐 기득권에 발목이 잡혀 못하는 게 많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실험해보고 그 결과를 학습해 성공한 것을 한국에 적용한다면 한국도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 ‘북한 붕괴론’은 어떻게 봅니까.  
“북한 경제의 현재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경제결정론’의 시각에서 나온 오류입니다. 독재체제가 부분적인 자유화에 나설 때가 가장 무너지기 쉽습니다. 경제적 조건은 실내에 꽉 찬 가스와 같습니다. 이 가스를 점화시키는 방아쇠는 연성화한 권력과 부분적인 민주화입니다.”  
▼ 북한 붕괴에 대해서도 준비해야죠.
“붕괴한다면 최선을 다해 대응해야죠. 북한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정교한 전략을 만들고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준비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통일, 즉 점진적이며 평화적인 통일을 만들어 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압박정책의 기회비용

▼ 1990년대 식량난 이후 한국이 ‘퍼줘서’ 살아남았다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많이 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레토릭이 많아요. 햇볕정책의 모든 것이 좋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의도하진 않았으나 햇볕정책이 북한의 초기 시장화에 기여한 부분이 있어요. 시장에 들어갈 물자와 돈이 남쪽에서 흘러들어갔으니까요. 이명박 정부의 압박 때문에 북한에 시장이 커졌다고 주장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건 억지입니다. 경제를 전혀 모르는 분이 많아요.”
▼ 5·24조치는 어떻게 봅니까.
“우리도 손해입니다.”
▼ 사과받아야죠.
“사과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5·24조치는 우리 기업에 손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북한 제품이 중국산으로 둔갑해 들어옵니다. 우리 기업이 북한에 줄 오더를 중국 기업에 주면 중국 기업은 북한에 아웃소싱을 합니다. 예전에는 거간을 한국 사람이 했는데, 지금은 중국 기업이 합니다. 5·24조치로 우리가 또 잃어버리는 게 있습니다. 북한 경제구조를 변화시키고 인적 자본을 키울 기간을 놓치는 겁니다. 통일 후 한국이 번영하려면 북한에 기업가가 생기고 인적 자본이 성장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경제학의 기회비용 개념조차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봉쇄, 압박은 비용이 안 든다고 착각해요. 그러나 압박정책 때문에 중요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 금강산 관광은 성격이 다릅니다. 개발 지원이나 경협과 달리 독재집단에 현금을 직접 주는 거죠.
“금강산 관광이 사회 침투력과 변화력에서 제한적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결국 시퀀싱이겠지요.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게임이니까요. 금강산을 주고 원하는 것을 받아내야 합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경제 과정의 임팩트를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중세가 근대로 바뀐 과정에서도 경제구조의 변화가 핵심입니다. 시민의 자유를 허락하고 정치적 민주화로 나간 과정도 마찬가지고요. 경제구조의 변화는 도도한 파도여서 모든 것을 집어삼킵니다. 파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어야 합니다. 정책 결정자들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 북한의 인적 자본은 어떻습니까. 사회주의 국가답게 의무교육(유치원 1년, 소학교 5년,  초급 중학교 3년, 고급 중학교 3년) 기간은 깁니다만.
“북한에도 우수한 인재들이 있겠지만 인적 자본 측정 툴을 이용해 탈북자를 조사해보면 남북한 간 평균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체로 교육 수준을 올려놓았습니다. 의무교육 기간도 길고요. 그러나 영양 문제 탓인지, 탈북할 때 트라우마 탓인지, 정말 인적 자본 수준이 그 정도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2014년에 실시한 결과를 보면 남한에서 성장한 사람이 24개 맞히는 문제를 탈북자들은 11개 맞혔습니다. 2015년에는 더 쉬운 문제로 바꿔봤습니다. 0과 1로 이뤄진 난수표에서 0의 개수를 맞히는 것이었어요. 성과에 따라 돈을 드렸습니다. 주어진 시간에 0의 개수만 헤아리면 되는 것인데도 18% 차이가 났어요.”


베트남보다 못한 인적 자원

▼ 교육제도 탓이라면 교육의 힘이 정말 무서운 거네요.
“북한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남북 관계가 이 상태로 이어지면 인적 자원을 개발할 기회도 줄어듭니다. 그렇게 되면 남측의 자본과 기술에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시켜 통일 대박을 만든다는 건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노동력 수준이 한국의 자본과 기술에 맞지 않습니다. 의무교육 기간만으로 보면 북한의 인적 자본을 과대평가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 단계 수준으로 봐야 합니다.”
▼ 베트남 등과 비교하면.
“당연히 베트남보다도 낮다고 봐야죠.”
▼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분들은 “손재주는 확실히 북한 여성들이 최고”라던데요.
“그 정도 기술을 소화하는 데는 적합하겠죠. 그러나 삼성전자 같은 곳에서 일할 능력은 안 되는 거예요. 북한이 인구가 적어서 인건비가 중국과 같아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제가 볼 때 싼 인건비의 이점은 15년이면 사라질 겁니다. 이 이점이 사라지기 전에 인적 자본 수준을 남한 자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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