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엉터리 후보들로 어떻게 이기느냐” 김종인을 위한 변명

  • 곽대중 시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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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04-16 15: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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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당 복’ 타고난 文, ‘코로나 복’까지…

    • 선거는 8할이 바람

    • 김종인도 ‘바람’의 벽 넘지 못해

    • 차명진 세월호 막말의 혁혁한 공로

    • ‘직진 선생’의 마지막 도전?

    [동아DB]

    [동아DB]

    21대 총선이 2월 25일쯤 실시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코로나19 확진자가 갑작스레 수백 명 단위로 쏟아져 나오고,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영화 ‘기생충’ 관계자들을 청와대에 불러 이른바 ‘짜파구리 파안대소’를 한 직후에 총선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혹은 3월 5일이나 10일쯤 실시됐으면 어땠을까.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국민은 분노하며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서던 바로 그때 말이다. 

    결과는 완전히 반대로 뒤바뀌지 않았을까. 통합당이 너끈히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민주당은 100석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일을 금방 잊는다. 복기해 보자. 3월 초쯤 민주당은 총선에 희망이 없었다. 통합당 일부 성급한 의원들이 “총선 승리 후 대통령 탄핵”을 운운할 정도로 민심이 기울어져 있다고 봤다. 오죽했으면 민주당이 개헌저지선을 확보해야 한다고, 대통령 탄핵소추만은 막아야 한다고, 그들이 그토록 비난하던 위성정당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명분을 찾던 때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한 달 뒤, 입장과 처지가 들배지기를 하듯 바뀌었다. 민주당이 “과반을 넘어 180석도 가능하다”고 큰소리를 치고 통합당은 “100석도 힘들 것”이라며 개헌저지선을 확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국민에게 읍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달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선거는 8할이 바람이다. 물론 인물과 공약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훌륭한 인물, 야무진 공약도 ‘바람’의 벽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면 허무하다. 4년간 열심히 지역구를 누비며 민심을 챙기고 공약을 개발해 봤자, 바람의 공세 앞에 4년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간혹 인물로 승부를 겨뤄서, 혹은 열심히 발로 뛰는 선거운동을 통해 승리를 일궈낸 후보들이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건 ‘사람이 개를 물어’ 화제가 된 격이다. 대체로는 바람이 승부를 가르는 결과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 선거판이다. 그래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는 일이란 도박판에 승부수를 던지는 일과도 같다. 한 달이나 보름이면 정반대로 출렁거릴 수도 있는 여론의 롤러코스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일이다.

    풍운아 對 풍운아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모로 풍운아가 아닐까 싶다.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어쨌든 현직 대통령이 갑작스레 탄핵을 당하는 헌정사 최초의 행운(?)을 안고 얼떨결에 대통령이 됐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권을 잡아 숱한 정책이 말썽을 빚고 측근의 비리와 문제가 드러났지만 지리멸렬한 야당을 둔 덕택에 ‘야당 복을 타고났다’는 말을 내내 들어왔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는 ‘코로나 복’까지 만났다. 거창하게 이야기하길 즐기는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문 대통령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려고 애써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있었는데, 그것이 복으로 승화했다고 할까. 가히 천운을 타고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 좌충우돌하다가 언론에 집중포화를 맞고 모든 것을 조용히 시스템에 맡겨놓은 것이 오히려 득이 됐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번 총선은 ‘킹메이커’ 김종인이 단연 화제였다. 그 역시 문 대통령 못지않은 풍운아. 우리 정치사에 두 명의 대통령이 태어나도록 돕고, 두 명의 대통령과 모두 맞선 인물이 누가 있을까. 2012년 19대 총선에서 김종인은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라는 최대 이슈를 선점할 수 있도록 돕고, 그리해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길을 열었다. 4년 뒤 20대 총선에서 김종인은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를 맡아 민주당을 제1당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그것은 결국 박근혜 탄핵의 정치적 동력을 제공했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김종인은, 어쩌면 자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사람과 맞서기 위해 다시 선봉장으로 나섰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결과적으로 김종인도 ‘바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운에서는 문 대통령이 김종인보다 훨씬 나았다고 봐야 할까. 비록 선거에는 졌지만, 승패를 떠나 김종인이 이번 총선 과정에 보여준 일련의 전략과 전술은 향후 크고 작은 선거를 이끌어나갈 사람들이 반드시 참고할 만한 ‘선거의 정석’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김종인은 내내 ‘직구’만 던졌다. 일단 그것을 살펴보자. 


    ‘공식’대로만 움직인 선거

    김종인의 첫 번째 직구. 선거는 보통 프레임+인물+이슈+캠페인의 4요소로 구성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프레임. 대통령 임기 중반 이후에 실시되는 선거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다. 이런 선거에서 여당이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6공화국 이래 대통령 취임 2년차 이후 실시된 선거에서 여당이 야당을 이긴 경우는 딱 한 번밖에 없었다.) 여당으로 치르는 선거, 야당으로 치르는 선거가 서로 다른데, 야당으로서의 선거는 무척 쉽다. 계속해서 정부를 비판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야구로 말하면 우리 편이 공격하는 타임이다. 그냥 배트만 들고 있어도 동점은 이룬다. 원래 그것이 정석이고, 김종인은 그것에 충실했다. ‘정권 옹호 vs 정권 심판’의 프레임을 설정한 것이다. 역병 창궐이라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구태의연한 프레임이 아니었나 비판할 수도 있지만, 달리 다른 프레임을 설정할 시간 여유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우왕좌왕하는 것보다는 직진이 낫다. 오로지 정면 승부를 택한 것이다. 

    김종인의 두 번째 직구. 수도권에 올인하는 전략을 택했다. 대한민국 선거는 결국 수도권이 결정한다. 지방은 저마다 고정된 투표 경향이 있고, 거기서 몇 석을 뺏어와 봤자 한때의 이변으로 화제가 될 수는 있으나 전체 판세에는 영향이 없다. 어차피 승부는 수도권이 가른다. 이번 총선에도 지역구 250석 가운데 수도권만 121석이다. 이른바 ‘텃밭’이 있긴 하지만 수도권은 바람에 따라 얼마든 승부를 뒤집을 수 있다. 이번 총선과 같이 제3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견고한 양당 구조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나를 뺏어오면, 곧장 2석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거기서 완패함으로써 이번에 통합당은 졌지만, 수도권에 올인하겠다는 김종인의 의도는 완전한 정석이다. 20대 총선에서 자신의 주도하에 민주당이 그렇게 이긴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승부수를 던져볼 만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김종인의 세 번째 직구. 지역마다 각개전투를 하는 총선에서 전국 규모의 프레임을 설정하고 바람을 몰아가기 위해서는 선대위원장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비록 직접 나서지는 않지만 총선에서 여당은 현직 대통령이 선대위원장인 셈이다.) 통합당이 김종인을 데려오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이유는 ‘경제 심판’ ‘정권 심판’이라는 프레임을 가져오고 싶었기 때문이고, 김종인은 ‘원맨쇼’라고 말할 수 있는 총괄선대위원장을 요구함으로써 이번 총선을 ‘문재인 vs 김종인’의 구도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것 또한 정석이다.

    팔십 노인의 전국 유세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4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4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이긴 이유는 ‘박근혜’의 존재였다. 19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 5년차에 열렸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정권 심판의 성격이 분명한 선거였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은 국민들이 박근혜를 ‘여당 속의 야당’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이 정권 심판의 성격을 상당히 희석시켰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박근혜가 선대위원장이 아니었다면, 박근혜가 새누리당의 ‘원톱’임이 분명하지 않았다면,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19대 총선은 대선 코앞에 실시된 특이한 선거였고, 차기 대선 주자를 전면에 내세운 새누리당이 국민의 눈에는 민주당보다 대안 세력으로 보였던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한명숙이 당 대표였고 대선 후보도 안개 속에 있었다.) 이처럼 총선은 전국 단위 프레임을 이끌고 나가는 ‘얼굴’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데, 이번 총선에서 김종인은 통합당 측에 서서 그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스스로 불길 속에 뛰어든 셈이다. 

    김종인의 왕성한 체력도 화제였다. 팔십 노인이 전국을 누비며 하루 10개가 넘는 유세 일정을 보름 동안 쉼 없이 이어나갔다. 선거운동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정도 일정을 소화해 내는 것은 젊은 사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 나선 모든 후보와 선거운동원을 통틀어 김종인만큼 정력적으로 현장을 누빈 사람이 있을까. 민주당에서는 이낙연 정도가 그 역할을 맡았지만 활동 반경은 김종인의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해찬이나 임종석도 마찬가지였다. 김종인은 대체 무엇을 바라고 그랬을까. 

    김종인의 네 번째 직구. 한번 짜인 프레임은 끝까지 밀고 나갈 것! 선거를 이끌고 나가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이슈에 따라 프레임을 옮겨가는 것이다. 김종인은 보름 동안 지겨울 정도로 경제 실정과 정권 심판만 외쳐댔다. 가히 ‘직진 김종인 선생’이라고 할 정도였다. 평가는 다양하겠지만 이것 역시 정석이다. 선거운동 보름 기간은 짧으면서도 의외로 길다. 그래서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행태가 지겹게 여겨지겠지만, 일반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이슈를 분산하지 않고 하나의 프레임으로 몰고 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김종인은 변화구나 변칙 작전을 곁들이지 않고 오로지 ‘경제’에만 집중했다. 조국 사태를 이야기할 때도 “조국을 살릴 것이냐, 경제를 살릴 것이냐”는 화법으로 결국 경제로 모든 것이 귀결되게 만들려고 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최고’라는 선거의 정석대로만 움직인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어차피 찍을 정당을 정해 놨을 것이고, 오로지 중도층과 무당파만 끝까지 공략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 또한 정석이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바람이 없었으면 김종인의 직구는 분명 통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받아야 할 ‘중간평가’의 결과를 정직하게 얻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천하의 김종인도 바람의 변수는 넘지 못했다. 사실 김종인으로서는 변명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누가 나섰더라도 불가능했을 선거”라고, 혹은 “그나마 내가 나서서 그 정도 성과라도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엉터리 같은 후보들을 잔뜩 공천해 놨으니, 그런 후보들로 어떻게 이기느냐”고 공천을 행한 쪽을 탓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종인은 조용히 사라지는 길을 택했다. 4월 15일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김종인에게 기자들이 향후 행보에 대해 묻자 “여러분을 만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쿨하게 돌아섰다. 승부사다운 퇴장이다.

    김종인의 승부는 여기서 끝일까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득표율은 민주당과 통합당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그럼에도 수도권 지역구에서 통합당이 그야말로 ‘몰락’한 이유는 역시 차명진 세월호 막말의 혁혁한 공로(?)라고 봐야 할 것이다. 4월 9일 김종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세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그러한 망언에 대해 사과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일체의 변명도 없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감동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러는 것일까. 정치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철새라고 쉬이 비난하지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자들이 삼고초려하면서까지 그를 모셔 가려고 애쓰는 이유를 그는 이번에도 공식처럼 보여줬다. ‘직진 선생’의 도전은 과연 이번이 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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