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돌며 압승 견인, 당내 기반 다지기
안정감 있는 국정운영, 여권 ‘투사’들과 차별화
벌써부터 ‘NY(이낙연)계’ 자처하는 의원들
김부겸·김두관, 黨權 징검다리 삼아 大權 가능성
‘원조 친노’ 이광재, 몸 푸는 박원순·이재명
‘경남의 아들’ 김태호·홍준표의 生還
‘야권 재편 核’ 안철수, ‘보수혁신’ 유승민의 선택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대책위원장이 4월 15일 당선이 확정되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4·15 총선 결과 여야 권력 구도가 재편되면서 2022년 3월 대선을 향한 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여기에 당장 당권 경쟁이 시작되면서 대권 주자들은 당권과 대권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선거 참패로 지도부가 몰락한 야당은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압승한 여당은 ‘포스트 이해찬’ 시대를 짊어질 새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 당내 안정적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대권 주자들로서는 어떻게든 지도부 구성에도 관여할 수밖에 없다.
‘대권 시동’ 건 이낙연
대선레이스에서 관심의 대상은 단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대책위원장이다. ‘미리 보는 대선’이라는 평가를 받은 ‘종로 대첩’에서 야당 수장인 황교안 통합당 대표를 18.4%포인트(1만7308표 차, 이낙연 58.3%, 황교안 39.9%) 차이로 무너뜨리며 대권 가도에도 추진력이 붙었다.총선 전만 해도 두 사람은 여야를 상징하는 1순위 차기 대권 주자였지만 총선 성적표에 따라 운명이 엇갈렸다.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달라진 이 위원장의 위상이 느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4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마련된 상황실에서 이해찬 대표가 이 위원장에게 출구조사 결과에 대한 소감 발표를 양보하더라. 당연히 이 대표가 할 줄 알았는데 단독 과반의석이라는 큰 공(功)을 이 위원장에게 돌리는 모습이 ‘친문’에서 ‘NY(이낙연)’로 권력이 이동하는 상징적인 장면처럼 보였다. 이번 총선에서 이 위원장의 도움을 받은 의원들은 벌써부터 ‘나는 NY계’라고 말하기도 한다(웃음).”
그의 말처럼, 이 위원장에게 이번 총선은 ‘대권으로 가는 길’이었다. 자신의 지역구에서의 대승은 물론, 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거사령탑을 맡아 전국을 돌며 총선 압승을 견인했다. 접전 지역 후보들을 지원사격하며 적잖은 우군을 확보했고, 그가 후원회장을 맡은 총선 후보만 40여 명에 달해 ‘NY계’의 뼈대를 세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호남 지역에서 이 위원장의 인기를 감안하면 27명의 호남 지역 당선인도 든든한 후원 그룹이다. 허약한 당내 기반이라는 약점도 극복했다는 평가다.
당권 도전 vs 대권 직행
운동권 인사가 많은 민주당에서 보기 드문 대권후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자 출신으로서의 꼼꼼함과 전남지사·국무총리 재임 시절, 감정을 다스리고 안정감 있는 국정·도정운영 모습은 ‘투사’ 중심의 여권 후보들과 차별화된다는 평가다. 그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도 “황교안 대표를 미워하지 않겠다”며 통합의 메시지를 던지면서 유권자의 표심을 얻었다.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30% 안팎을 넘나드는 고공 행진을 지속하는 만큼, 차기 레이스에서 독주체제를 굳혔다는 분석이다.다만 호남 출신 대권후보라는 이미지는 본선 확장성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여전히 당내 주도권을 친문 진영이 장악한 상황인 만큼 친문계와의 관계 설정은 그가 넘어야 할 산이다. 여권 관계자는 "이낙연 대통령? 달콤한 유혹이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당내 최대 관심사는 이 위원장의 8월 전당대회 출마 여부다. 인물과 위상으로 보면 이 위원장이 당권을 맡는 게 순리처럼 보인다. ‘차기 레이스’에서 독주하는 상황에 당권까지 꿰찰 경우 전국적인 기반을 확보하면서 단일 대오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대선 1년 전 당권·대권 분리 규정으로 당 대표로 선출되더라도 내년 3월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여기에 당장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국민이 재석 3분의 2를 몰아준 만큼 더 이상 ‘남 탓’을 할 수도 없다. 국회나 국정운영에 대한 책임도 그의 몫이 된다. 흔히 집권 후반기에 터져 나오는 ‘권력형 비리’ 등 통제 불가능한 변수로 자칫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당권과 대권의 방정식을 잘 풀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총선에서 재선 고지에 오른 한 친문계 의원은 이 위원장에 대해 “‘국무총리 출신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어렵다’는 정치권 징크스를 깨뜨리는 최초 정치인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문 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운 만큼 친문계와의 관계 설정도 비교적 매끄러울 걸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현재로선 어떤 상황도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리더십 한계 드러낸 황교안
4월 15일 대표직 사퇴를 선언한 뒤 미래통합당 선거상황실을 떠나는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 [동아일보 장승윤 기자]
‘호떡 공천’이라는 비아냥을 들은 공천 문제나 선거기간 막말 파문에 대한 미온적 대처는 그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당장 보수 내부에서도 “야당의 공천은 사생결단으로 필승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배부른 여당식 공천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번 선거를 통해 “박근혜 정부 마지막 총리로는 ‘중도 확장’이 어렵다”는 학습효과가 생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황 대표는 총선 당일 “약속한 대로 총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모든 당직을 내려놓겠다”며 “일선에서 물러나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저의 역할이 무엇인지 성찰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동안의 정치 행보 반성을 통해 향후 역할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다.
4월 16일 기자와 만난 한 통합당 의원은 “선거 결과는 황교안 리더십의 참패”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치는 결국 세력과 전략 싸움이다. 총선 같은 전국 선거는 안정적으로 당선할 수 있는 인사들을 주요 자리에 배치해 ‘내 일’처럼 일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통합당 선대위에는 ‘선수(선거 전문가)’가 전무해 네거티브 대응 등 ‘공중 화력전’이나 박빙 지역을 지원사격하는 ‘국지전’은 생각도 못했다. 황 전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황 전 대표의 정치 활동 재개는 당분간 어렵다고 본다.”
‘노무현 벤치마킹’ 김부겸·김두관
대구 수성갑에서 낙선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월 15일 지지자를 위로하고 있다(왼쪽). 경남 양산을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4월 16일 인터뷰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 최대 험지인 대구 수성갑에서 출마한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4선의 주호영 통합당 후보와 일전을 벌여 큰 표 차(3만1556표 차이, 김부겸 39.29%, 주호영 59.80%)로 졌지만 대권 후보로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카드다. 당명(黨命)을 받들고 ‘험지’ 경남 양산을에 출마해 당선한 김두관 의원도 대권 가도에 파란불이 켜졌다.
이들은 ‘지역주의 타파’를 자산 삼아 대망(大望)을 이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잠룡들로 평가받는다. 수도권과 호남을 거의 싹쓸이한 민주당에서 영남후보가 갖는 표의 확장성을 고려하면 두 사람의 본선 경쟁력은 무시할 수 없다.
우선 김 전 장관은 “지역주의 극복과 통합의 정치를 향한 제 발걸음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비록 실패한 농부지만 영남이 문전옥답(門前沃畓)이 되도록 더 많은 땀을 쏟겠다”고 낙선 인사를 해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의 낙선에 대한 당 안팎의 동정론도 상당하다. 이 때문에 김 전 장관이 총선 이후 정치적 휴지기를 거쳐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권을 징검다리 삼아 대권에 도전한다는 의미다. 차기 당 대표에 오른다면 그의 정치적 존재감도 유지할 수 있다.
김두관 의원은 2012년 대선 출마를 위해 경남지사직을 던지면서 당 안팎의 비판에 시달린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앞두고 당의 요청으로 당선이 유력했던 자신의 지역구(경기 김포갑)를 던지고 ‘험지’에서 생환하면서 그동안의 부정적 시선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산을 지역은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어 정치적 상징성이 큰 곳인데다, 4·15 총선 PK(부산·경남) 최대 승부처인 ‘낙동강 벨트’를 사수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선 직후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 것도 차기 대권 가도 의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 ‘친문 비주류’라는 점이 부담인 만큼 오는 8월 전대 출마를 통해 당 안팎의 기반을 강화하는 ‘공격적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행보도 관심사다. 애초 이번 선거에서 서울 종로 출마가 거론된 임 전 실장은 민주당 후보들의 전방위 지원 유세에 나서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며 사실상 정계 은퇴 의사를 밝혔지만,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정강·정책 방송 연설 첫 연설자로 나서며 정치 행보를 재개했다. 그의 이런 행보를 차기 대권이나 서울시장 선거 도전 가능성과 연계 짓는 시선도 많다. 그러나 정치적 운신의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에 연루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때문이다.
‘9년 만의 컴백’ 이광재, ‘장외 주자’ 박원순·이재명
4월 10일 사전투표를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부부(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등 ‘장외 주자’들도 대권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 시장과 이 지사는 ‘코로나 총선’ 국면에서 긴급재난지원금 논의를 주도하며 정치적 주가(株價)를 끌어올렸다. 특히 박 시장은 이번 총선을 거치며 이른바 ‘박원순계’로 불리는 10여 명이 21대 국회에 입성해 차기 행보에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 3선에 성공한 남인순·박홍근 의원에 더해 기동민 의원이 재선 고지를 밟았고, 김원이·진성준 당선인 등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 인사들과 천준호·허영 당선인 등 비서실장 출신 인사들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여의도 경험이 전무한 박 시장의 취약한 당내 기반을 이들이 어느 정도 다져줄지 관심사다.
반면 이 지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최대 감염지인 신천지 교단에 대한 초강경 대응으로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는 배달앱 1위 업체인 ‘배달의민족’ 수수료 인상에 맞서 ‘경기도형 공공배달앱’ 개발을 추진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2018년 당선 이후 각종 추문으로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비관적 전망도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는 평가다.
‘일격’ 당한 오세훈·나경원, 부활한 홍준표·김태호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 [뉴스1]
오세훈 전 서울시장. [뉴시스]
결국 통합당의 당권·대권 경쟁 양상은 춘추전국시대가 예상된다. 현재 통합당 내 최다선 의원은 5선 고지에 오른 정진석(충남 공주부여청양), 주호영(대구 수성을), 서병수(부산 진갑),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 4명. 이들과 함께 주목할 변수는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의 행보다. 이들은 당 공천에서 낙천하면서 무소속 출마를 감행해 여의도로 살아 돌아왔다. 이번 총선을 거치며 당 지도부가 붕괴된 상황인데다 여러 대권 잠룡도 고배를 마시면서 이들의 정치적 무게감도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뉴스1]
김태호 전 경남지사. [뉴스1]
현재 1석이 아쉬운 통합당 처지를 감안하면 이들의 복당 문제는 곧 해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선거 기간 내내 당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복당 불허’를 천명한 만큼 언제 어떤 식으로 복당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합당론’ 안철수, ‘재부상’ 유승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 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 [뉴스1]
통합당의 참패 원인에 대해선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스팔트 우파’를 지나치게 의식해 중도층 외연 확장에 실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따라서 총선에서 190여만 표(189만6719표)를 얻어 존재감을 드러낸 안철수 대표와 수도권 지역 유세 지원에 나서 중도 표심을 공략한 유승민 의원에게 눈길이 쏠리는 상황. 안 대표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아내 김미경 교수와 조용히 대구를 찾아 의료봉사를 했고, 4월 17일 선대위 해단식에서 “거대 정당들은 선거가 끝나면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이 시작”이라며 잔잔한 감동을 줘 화제가 됐다. 통합당에 부족한 ‘공감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각에선 안 대표가 야권 재편의 핵으로 떠오를 것으로 관측한다. 개헌을 제외하고는 모든 입법 활동이 가능한 180석 ‘슈퍼 여당’에 맞서려면 보수진영의 새판 짜기는 불가피하다. 안 대표 역시 독자 행보로는 차기 대권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벌써부터 야권 연대설, 합당설이 피어나고 있다. 1992년 대선에서 3당 합당을 통해 대권을 차지한 김영삼(YS) 전 대통령 사례처럼 안 대표가 통합당과의 전략적 연대를 통해 중도·보수 통합의 대표 주자로 나설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승민 의원의 ‘재등판’ 가능성도 거론된다. 당 일각에서는 ‘통합당 구원투수’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함께 유 의원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유 의원이 전면에 나서면 강력한 쇄신 드라이브로 환골탈태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조해진, 유의동, 하태경 등 이른바 ‘유승민계’ 의원 10여 명이 여의도로 생환한 것도 그에겐 ‘플러스 요인’이다.
유 의원 역시 4월 16일 “백지 위에 새로운 정신과 가치를 찾아 보수를 재건하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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