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일자리 증발 일용직, 고시원 월세도 못 낸다

“월 평균 23일 일했는데, 지금은 7일”

  •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0-04-22 17: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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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기승을 부리던 3월 4일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기승을 부리던 3월 4일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뉴스1]

    “고시원 업주 처지에서 요즘 같은 때는 일용직 거주자보다 기초생활수급자 거주자가 낫죠. 기초생활수급자는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오기에 경기가 나쁘다고 방세가 밀리지는 않거든요.” 

    서울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인근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변모(51) 씨는 이렇게 말했다. 50개 방이 있는 이 고시원에는 현재 43명이 산다. 변씨에 따르면 고시원 거주자의 60%인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월세를 연체한 적이 없다. 30%를 차지하는 일용직 근로자 중 일부가 최근 월세를 내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일용직 근로자가 집중 타격을 받고 있다. 17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46만 명 증가한 상용근로자와 달리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는 각각 42만 명, 17만 명 감소했다. 

    변씨가 운영하는 고시원은 월세가 24만 원 안팎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일용직 근로자 4명이 월세를 연체했다. 변씨는 “월세를 못 내도 3개월까지는 쫓아내지 않기에 아직까지 퇴실 조치를 취한 사례는 없다. 이전에 지속적으로 월세를 연체해 강제로 퇴실시킨 사람이 노숙자로 전락한 경우를 많이 봐 웬만하면 쫓아내고 싶지 않다. 상황이 잘 풀리길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상황 개선될 기미 보이지 않아”

    이 고시원에 거주하는 일용직 근로자 오모(61) 씨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오씨는 두 달 전만 해도 월 평균 23일간 이른바 ‘건설현장 잡부’로 일했으나 3월 이후 출근한 날은 월 7일 정도다. 일자리 소개 수수료를 제한 일당이 12만 원이어서 아직까지는 월세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건설 현장 분위기가 많이 삭막해졌다. 작업이 끝나도 동료들과 술을 마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때는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하루 2갑씩 피우던 담배도 1갑으로 줄이는 등 나 나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날마다 인력사무소로 출근해도 허탕 치기 일쑤다. 오전 5시 20분 버스를 타고 인력사무소를 찾지만 이틀에 하루 꼴로 일거리가 없어 고시원으로 되돌아온다. 

    “건설 현장에서도 코로나19에 대비해 작업 현장 간 1m 간격을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일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전보다 줄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이면 소주 1병을 사 집에서 마시고 잔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절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20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건설 산업 영향과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건설투자 전망치를 기존 1.8% 감소에서 3% 감소로 낮춰 잡았다. 고시원에서 만난 일용직 근로자들도 하나같이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자리 구하지 못해 빈손으로 되돌아가”

    정모(53) 씨는 “운 좋게도 가을까지 실업급여 수급 대상이 돼 당장의 걱정은 내려놓았으나 수급 기간이 끝나면 다시 건설 현장에 나가야 하는데 일자리가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층에 사는 지인은 한 달에 18일 일하다 4일 밖에 일하지 못했다. 대학생인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이 짠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진모(44) 씨는 “하루 30~40명에게 건설현장 일자리를 소개해주는데 최근 두 달 경기가 죽어 15명 안쪽으로만 일자리가 나와 빈손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많다”며 “건설 현장에서도 1m 간격 맞추기 등 각종 제한이 생겨 인력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 추세”라고 했다. 

    고시원 실장으로 일하는 김모(74) 씨는 두 달 전부터 일감이 끊긴 세입자 한 명을 종로구 교남동주민센터로 안내했다. 고시원비가 두 달 동안 밀린 터라 긴급지원을 받아보라고 한 것이다. 김씨는 “세입자는 구두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금전 상황이 이렇듯 나쁜지는 몰랐다”며 “코로나19가 얼른 끝나야 고시원도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재정 지원 정책만으로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직면한 고용대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독일은 초단시간근로인 미니잡 제도를 통해 일용직 근로자들이 여러 일자리에서 일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특정 업종의 불황에 유동적으로 대처했다. 독일의 사례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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