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단독] 신동아 n번방 보도로 경찰 수사 착수… 관련 공무원 피의자 입건

가해자 신상 공개하라 했더니 피해자 신상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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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0-04-20 09: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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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위례동주민센터가 4월 14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명단을 올리겠다고 고지했다.  [송파구청 홈페이지]

    서울 송파구 위례동주민센터가 4월 14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명단을 올리겠다고 고지했다. [송파구청 홈페이지]

    서울 송파구청이 n번방(통칭 박사방) 피해자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는 시민들의 명단을 공개해 논란을 빚었다. 송파구청은 4월 6일 구청 홈페이지 내 위례동주민센터 게시판에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개인) 명단 공고’라는 이름의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한 뒤 14일 다시 게시했다. 

    게시물에 첨부된 파일은 2019년 1월부터 6월까지 개인정보가 유출된 시민 200여 명의 명단, 시민들의 정보 유출 일시와 마지막 글자를 제외한 이름 전체, 생년, 소재지, 성별 등 구체적 사항이 담겨 있었다. 

    n번방 사건의 주범인 조주빈(25)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확보한 뒤 이를 악용해 피해자를 ‘성 착취’ 대상으로 삼았다. 공범의 협조도 받았다. 송파구 한 주민센터의 사회복무요원이던 최모(26) 씨는 유명 걸그룹 멤버, 배우 등의 개인정보를 조씨에게 넘긴 혐의로 4월 3일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최씨가 200여 명에 달하는 시민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고려하면 송파구청에서 게시한 명단에는 n번방 피해자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명단 공개로 인해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 이에 ‘신동아’는 4월 14일 ‘[단독] n번방 피해자 암시 명단 공개한 송파구청’ 제하 기사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한 누리꾼은 해당 기사의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 창에 “가해자 신상 공개하랬더니 피해자 신상 공개”라는 내용의 댓글을 남겼다. 이 댓글은 1만3125개 추천을 받았다. 


    서울 송파구 위례동주민센터가 공개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 시민 200여 명 명단. [송파구청 홈페이지]

    서울 송파구 위례동주민센터가 공개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 시민 200여 명 명단. [송파구청 홈페이지]

    명단을 공개한 송파구 위례동주민센터는 4월 14일 오전 신동아에 “개인정보 조회 자체가 개인정보 유출이라 개별적인 연락이 불가능했고 관련 법령에 따라 명단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어 고지한 것”이라며 “명단엔 이름 두 글자, 출생연도, 시군구까지만 나오기 때문에 개인이 특정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일부 누리꾼은 “개별 고지가 불가능하다는데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등 송파구청 처지를 이해한다는 취지의 댓글을 달았지만 대다수 누리꾼은 “2차 가해가 우려된다” “이름, 출생연도, 시군구 알려주면 다 알려준 건데 특정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같은 동네 사람들은 눈치챈다” “연예인도 있다는데 이 정도 정보면 누군지 다 알 수 있다” 등 송파구청의 행동을 꼬집는 댓글을 올렸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송파구청은 4월 14일 오후 해당 게시글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명단을 내렸다. 누리꾼들이 PDF 파일 형태로 관련 명단을 유포한 뒤의 일이다. 같은 날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송파구청이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명단을 게시한 것과 관련해 위법행위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17일에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송파구청 소속 공무원 2명을 입건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허용된 권한을 넘어서 개인 식별이 가능한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가 있다”며 “앞으로도 박사방 사건의 피해자에 관한 신상을 직·간접적으로 공개하는 2차 가해는 관용 없이 엄정하게 사법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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