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박형준 “우파 교조주의 탓 청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정당 돼”

“김종인 외에 보수 혁신할 사람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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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0-04-22 09: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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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부 인사 막말, 김종인 메시지 초점 흐려

    • 우파 교조주의가 청년 밀어내

    • 황교안, 재도전하려면 콘텐츠 채워 와야

    • 안철수, 3석 갖고 한계…통합당에서 경쟁해야

    • 의원 당직 배제, 사무총장 등 외부 전문가 맡겨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미래통합당이 산산조각 났다.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4월 15일 치러진 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이 180석을 석권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단일 정치 세력이 의석의 60%를 차지한 건 유례없는 일이다. 통합당·미래한국당은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121개 지역구에서 통합당은 고작 16석을 챙겼다. 

    박형준(60) 전 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보수야권의 의중을 반영하는 핵심 전략통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부터 범중도·보수 통합의 밑그림을 그렸고, 이번 총선에서는 통합당의 선거 전략을 짰다. 4월 17일 그에게 총선 소회와 보수 재건 전략을 물었다. 

    - 보수는 왜 참패했나. 

    “통합은 했지만 혁신을 제대로 못 한 결과다.” 

    - 통합당은 ‘경제를 살릴 것이냐, 조국을 살릴 것이냐’면서 조국 프레임을 앞세웠지만 신통치 않았다.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환기하는 코드로 조국 문제는 어느 정도 유효했지만 어떤 전략이건 코로나19 위기를 능가할 이슈는 없었다. 지지층 결집에는 성공했지만 중도가 민주당을 택했다. 통합당에 아직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이미지가 남아 있다. 그 이미지를 소환하는 몇 가지 장면이 나타나 다시 탄핵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들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가장 카리스마 있어”

    이 대목에서 박 전 위원장이 문제 삼은 ‘몇 가지 장면’은 일부 정치인의 막말과 강성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어서 물었다. 



    - 그런 색채를 지우기 위해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김종인 효과’가 먹히지 않은 것 아닌가. 

    “중도 확장성을 보여주기 위해 김 전 위원장을 영입하고 통합 이후 다양한 사람을 공천했지만 그런 모습이 유권자에게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통합할 때 당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더 확실히 바꿨어야 했다. 선거 과정에서 과거 (새누리당·한국당)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담론이나 구호가 너무 많이 나왔다.” 

    - 김 전 위원장에게 전권을 주지 않으니 그의 역할이 제한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뒤에 와서 하는 얘기다. 김 전 위원장에게 전체 메시지에 대한 권한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막말 등 예기치 않은 실수들이 나와 메시지 초점을 흐리게 만들었다.” 

    박 전 위원장은 “보수가 이번에도 자기희생이 부족했다”면서 말을 이었다. 

    “무소속이건 통합당 후보건 보수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단일화에 응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다. 저쪽(민주당)은 민병두 의원처럼 자신이 불리하면 던지지 않나(후보 사퇴). 유권자에게는 여전히 보수가 자기 이익과 기득권에 연연하는 세력으로 비친다.” 

    - 통합당이 김 전 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통합당이 갖고 있는 관성을 바꾸지 못하면 앞으로 큰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게 확인됐다. 김 전 위원장이 가장 카리스마 있는 분이긴 하다. 과감한 혁신을 이끌어낼 사람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김 전 위원장에게 전권을 주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파 교조주의로는 매력 못 줘”

    2016년 이후 치러진 네 차례 전국 단위 선거에서 보수는 모두 패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9일 기자에게 “민주당이 21대 총선까지 승리하면 혁명보다 더 큰 혁명을 이루고,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속살의 사회 질서까지 바꿔낼 수 있다”고 했다. 5개월 후 이 원내대표의 공언은 현실이 됐다. 박 전 위원장에게 물었다. 

    - 보수 스스로가 주류라는 인식부터 버려야 하지 않나. 

    “그렇다. 이제는 보수에 유리한 정치 지형이 아니다. 과거에는 50대 이상이 (보수의) 지지층이었다. 이번에는 50대에서도 주도권을 뺏겼다. 60대 이상의 장·노년층이 주도하는 정당이 미래를 대변하기는 어렵다. 60대 이상의 우파 교조주의적인 목소리, 과거의 인식 틀로 21세기를 규정하려는 행태, 자신의 생각을 공격적으로 표출하는 모습이 (바깥에) 비치면 젊은 세대가 가까이 할 수 없는 정당이 되는 것이다.” 

    - 과거에는 진보가 투사 이미지를 풍겼다. 지금은 거친 이미지가 보수의 몫이 됐다. 

    “지난 3년간 광화문에서 애국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여온 분이 많다. 그분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목소리가 정치에 과잉 투입돼 사안을 교조적으로 진단하고 상대를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규정하는 모습은 지지층 확장에 도움이 안 된다.” 

    - 황교안 전 대표의 내상이 깊다. 보수 재건 과정에서 역할 공간이 있나. 

    “황 전 대표의 장점은 정직함과 본인이 한 말에 책임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둘러싼 환경을 보다 깊이 있게 인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정치에 도전하려면 새로운 콘텐츠를 채우고 나와야 할 것이다.” 

    - 황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 차기 주자들이 낙선했다. 통합당이 불임 정당이 됐다는 말이 돈다. 

    “우려하는 바이긴 한데, 결국 새로운 여왕벌이 필요하다. 기존 정치인들이 자신을 근본부터 바꿔 과거 이미지를 털고 새 인물이 되든지, 아니면 정말 새 인물을 찾든지 둘 중 하나다. 중도와 청·장년 세대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인물이면 대선에서 원외냐 원내냐는 크게 중요치 않다.” 

    - 통합당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열려 있다고 본다. 중도 확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은 다 통합당 안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 안 대표 처지에서도 3석 갖고 무엇을 하겠나.”

    전문 정당과 구닥다리 선거

    일본 정치는 외양은 다당제이되 사실상 자민당이 독주해 1.5당 체제로 불린다. 자민당이 1당이고 야당의 존재감은 0.5당 수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 한국 정치도 민주당 중심의 1.5당 체제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성급한 진단이다. 일본의 1.5당 체제는 60년이 넘은 오랜 역사에서 만들어졌다. 향후 보수 혁신이 어떤 식으로 귀결되느냐가 중요하다.” 

    - 103석으로 180석 거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나. 야당이 또 거리로 나가는 것 아닌가. 

    “여당이 200석을 얻지 못한 이상 개헌을 못 한다. 국회선진화법이 일방적 국회 운영을 저지하는 굉장히 효과적인 수단이다. 야당도 태도를 바꿔야 한다. 여당이 국회에서 관념적 정책을 밀어붙이고 개혁도 아닌 걸 개혁으로 포장해 관철하려 하면 야당은 싸워야 한다. 그러나 여당이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다가올 경제위기에 대한 생산적 대안을 갖고 머리를 맞대려 하면 야당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 민주당이 데이터 활용 등 전문성 면에서 통합당보다 훨씬 앞서 있는 것 같다. 

    “통합 과정에서 혁신안에 당의 전문정당화를 포함했다. 비대위건 혁신위건 (혁신안을) 이행해야 한다. 민주당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캠페인을 전문적으로 준비했다. 통합당은 준비를 전혀 안 했다. 의원들이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당을 활용하는 이상 전문정당화는 불가능하다. 의원들을 당직에서 배제하고, 당을 전문가 손에 맡겨야 한다.” 

    박 전 위원장은 “당 사무총장이 CEO(최고경영자)가 돼야 한다. 정책, 교육, 캠페인을 전문화하지 않으면 통합당은 늘 구닥다리식 선거를 할 수밖에 없다”며 “당 사무총장직도 외부에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당이 파괴적 혁신을 감행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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