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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땐 ‘예방주사 증명서’ 필참, 냉면 판매 금지!

코로나19 데자뷔, 광복 후 콜레라 유행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외출 땐 ‘예방주사 증명서’ 필참, 냉면 판매 금지!

  • ● 1946년 콜레라, 6개월간 확진 1만5615명 중 1만191명 사망
    ● 인도서 시작, 중국발 귀국선 승객이 전파
    ● 통행증 겸 신분증 ‘콜레라 예방주사증명서’
    ● “미군이 준 사탕에 콜레라균” 좌익 선동에 민심 흉흉
    ● “감염 우려 탓, 가족 배웅도 없이 화장터로 간 희생자들”
일상에서 ‘데자뷔(deja vu·기시감)’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는 과거에서 잉태됩니다. 오늘의 뉴스 속 이슈 역시 지난 역사에서 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동백늬우스(동아백년으로 본 뉴스)에서 옛 동아일보·신동아 기사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비춰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제공, 미디어한국학 제공, 한국사진기자협회 제공]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제공, 미디어한국학 제공, 한국사진기자협회 제공]

“몰상식한 의사의 환자 은폐로 호열자 환자 속출! 11일 오후부터 12일 밤 사이에 시내 중림정과 봉래정 3정목 일대에는 호열자 환자가 대거 18명이나 발생하여 이○○ 외 4명이 사망하였는데 원인은 전기 사망자 이○○이 충남 공주로부터 돌아와서 발병한 것을 봉래정 3정목 백○병원 의사 조○○와 전○의원 가의사 오○○이 환자를 은폐한 것이다. 이에 당국에서는 곧 전기 조 의사와 오 가의사를 체포하여 엄중 취체를 하고 있는데 일반의사에게도 이러한 일이 또다시 없도록 경고를 발하고 있다.”


“의사의 은폐로 환자 속출!”

[미국국립문서기록청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미국국립문서기록청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의사가 감염병 환자를 숨겨 지역사회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놀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호열자’라는 낯선 질병의 이름과 ‘중림정’ ‘봉래정’ 등의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코로나19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1946년 9월 14일자 동아일보 보도 기사입니다. 지금의 서울 서대문구 중림동 일대인 중림정과 봉래정에 호열자, 즉 콜레라가 창궐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한반도는 광복의 기쁨도 잠시, 이내 또 다른 적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바로 콜레라라는 병마와의 싸움이었습니다. 1945년 인도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상륙했습니다. 1959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콜레라로 인해 인도와 중국에서 각각 25만 명과 2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pandemic·세계적 감염병 유행)은 아니나 에피데믹(epidemic·국지적 감염병 유행) 정도의 피해 규모인 셈입니다. 

이에 미국 태평양육군 총사령부 군의감실은 1945년 11월 15일자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예하 부대에 ‘콜레라 경계령’을 내렸습니다. 한반도 38도선 이남을 통치하던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미군정)도 사태를 예의주시했습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인구이동이 활발한 때였습니다. 중국과 일본 등지에 체류하던 한국인 ‘귀환 동포’들도 속속 귀국했습니다. 이들이 탄 선박에서 콜레라가 발생해 승객들이 인천·부산항에 내리지 못하고 격리 조치되기도 했습니다. 영국 선적의 여객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2020년 2월부터 코로나19 감염자가 대거 발생한 탓에 일본 요코하마항에 발이 묶인 것과 닮은꼴입니다. 



1946년 5월 15일 남한에서 결국 첫 콜레라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부산항으로 들어온 ‘윌리엄 왓슨’호 승객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따라 콜레라가 서울·부산·대전·목포로 전파돼 보름 만에 97명이 감염됐습니다(사망자 38명). 이후 약 6개월간 1만5615명이 감염돼 이 중 1만191명이 숨진(치사율 약 65%) 1946년 남한 콜레라 유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콜레라는 콜레라균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물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 감염병입니다. 나쁜 위생 상태가 주된 원인입니다. 콜레라는 이미 19세기 초 조선에 유행해 괴질(怪疾)로 불렸습니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들어서도 호열자(虎列刺)·호역(虎疫) 등의 이름으로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지금도 질병관리본부가 지정한 20종의 제2급 법정감염병 중 하나입니다. 1946년 6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한건숙 미군정 보건후생부(지금의 보건복지부에 해당되는 방역 주무부처로 1945년 9월 창설) 보건위생국장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호열자는 물 또는 파리의 매개로서 음식물에 따라 사람의 위 속에 들어갑니다. 호열자 환자는 설사와 토하는 것이 특징이고 열이 있다가 점차 내려 나중에는 차갑게 됩니다. 보균자 즉 호열자 균을 체중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과 같이 여러 곳을 드나드는 동안에 균을 전파하는 것이므로 퍽 위험합니다. (중략) 만약 불행히 이 병에 걸리고 또는 걸린 의심이 있으면 의사의 진찰을 받든가 경관, 검역원에게 보고하기 바랍니다.(후략)”


예방 위한 ‘콜레라 9계명’

1946년 부산항에 도착한 귀환 동포들이 미군의 안내로 배에서 내리고 있다. 철저한 방역과 격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불행히도 귀환 동포들은 전염병 창궐의 시발이 됐다.  [미국국립문서기록청 제공]

1946년 부산항에 도착한 귀환 동포들이 미군의 안내로 배에서 내리고 있다. 철저한 방역과 격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불행히도 귀환 동포들은 전염병 창궐의 시발이 됐다. [미국국립문서기록청 제공]

일제의 식민 지배와 광복 후 혼란으로 한국인 대다수가 빈곤과 불결한 환경에 노출된 때였습니다. 미군정은 우선 위생 상태 개선에 힘썼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를 보면 냉면이나 익히지 않은 음식의 판매를 금지하고(1946년 6월 1일자) 우물과 수돗물 등 식수원을 소독했다(1946년 6월 2일자)는 기사가 여럿 보입니다. 당국은 이동제한 조치도 취했습니다. 미군정 당국은 시민들에게 부산·인천·대전·목포·마산 등 콜레라 피해가 심한 지역으로 여행을 자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서울 시내의 기차역과 자동차 정거장에는 검역소가 설치돼 의심 환자들을 가려냈습니다.(1946년 6월 1일자) 

당국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콜레라 9계명’도 발표했습니다. 동아일보 1946년 5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예방주사를 반드시 맞을 것 ② 환자가 사용한 의류 기타를 가까이하지 말 것 ③ 파리를 잡을 것 ④ 냉수와 생수 해산물 야채 등을 생으로 먹지 말 것 ⑤ 과음 과식으로 위를 해하지 말 것 ⑥ 음식점 요리점 여관에서는 생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하지 말 것, 위반하면 허가를 취소한다 ⑦ 의심스러운 환자가 있을 때는 꼭 당국에 보고할 것 ⑧ 사람 많은 곳에 자주 출입하지 말 것 ⑨ 당국의 방역시설에 협력할 것. 

②와 ⑦·⑧·⑨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코로나19 예방대책과 유사합니다. 특히 ⑧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일맥상통합니다. 다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1에서 알 수 있듯이 1946년 당시 콜레라 예방백신은 이미 개발된 상태였습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 세균검사소를 모체로 한 조선방역연구소가 하루 10만 명이 접종할 수 있는 분량(약 5만~15만cc)의 백신을 생산했습니다. 

콜레라 예방접종을 받았다는 ‘콜레라 예방주사 증명서’나 채변 검사로 체내 콜레라균이 없다고 증명하는 ‘채변증’이 통행증 구실을 했습니다. 서울시내 50인 이상을 수용하는 극장·음식점·공회당 등에 출입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이런 증명서들이 필요했습니다. 조치를 위반할 경우 법적 처벌도 뒤따랐습니다. 증명서를 미소지한 이를 체포하고 보니 북한(소련군정하의 북조선공산당)의 스파이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군정은 요원들을 검역관으로 위장시켜 방첩 활동에 나섰습니다. 당시 콜레라 예방주사 증명서는 일종의 신분증 역할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망자가 속출하며 유언비어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미군정의 모체인 미 육군 24군단 정보참모부는 당시 남한의 민심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군정 물품마저도 공산주의자들의 먹잇감이 됐다. 쌀 이외의 식품에 대한 한국인들의 거부감 및 그들의 무지함 등이 최근 콜레라 유행과 더해져 지하 공산당 활동가들은 미군정이 제공한 사탕이 콜레라 박테리아로 오염되었다는 유언비어 공작을 시작했다. 이런 사기 행위가 많은 한국인들을 죽여 미국에 의한 식민지화를 쉽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중략) 전주의 전화 시설에는 한국인들에게 감염된 사탕을 먹지 말라고 경고하는 포스터가 나붙었다.”


대구·경북 민심에 불붙인 콜레라

외출 땐 ‘예방주사 증명서’ 필참, 냉면 판매 금지!
특히 당시 경북 지역(대구 포함)의 민심이 흉흉했습니다. 1946년 7월 17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이 지역이었습니다(표 참조). 특히 대구는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대구는 사망자만 해도 700여 명에 달했습니다. 

고(故) 박희명 경북대 의대 명예교수는 당시 대구의과대학 부속병원(현 경북대학교병원)에서 콜레라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는 ‘수련의가 겪은 1946년 대구 콜레라’(‘사진과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 의료문화사’(웅진지식하우스)에 수록)라는 글에서 당시 참상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파출소에 환자발생 신고를 하면 경찰관이 나와서 환자를 병원으로 보내고 그 집 주위에 새끼줄을 치고 소독약을 뿌린 다음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그런데 환자가 병원에 올 때는 덮개도 없는 짐차 바닥에 짐짝처럼 실려서 왔다. 보호자는 전염이 두렵고, 경찰관의 제지도 있고 해서인지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환자가 죽어도 가족들이 시체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환자들은 올 때도 트럭, 죽고 난 뒤에도 트럭에 실려서, 단 한 명의 가족도 없이 화장터로 갔다.” 

최근 제대로 된 장례 절차도 생략한 채 코로나19로 숨진 가족을 떠나보내는 이들이 적잖습니다. 1946년 콜레라 유행 당시 대구의 현실도 오늘과 아프도록 닮아 있습니다. 

당시 대구는 콜레라 방역을 위한 교통 차단으로 식량과 의약품 부족에도 시달렸습니다. 이미 1945년 미군정의 ‘미곡 자유화 정책’의 난항으로 쌀값이 폭등한 터였습니다. 미군정의 실정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 그리고 이에 편승한 좌익의 선동은 결국 ‘대구 10·1 사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미군정은 1946년 11월 남한의 콜레라 유행이 사실상 종식됐다고 판단했습니다. 감염병의 여파 속 해방 직후 한반도는 빈곤과 갈등으로 여전히 빈사 상태였습니다. 감염병 앞에 무능한 당국, 사회 혼란을 틈탄 유언비어와 이를 악용하는 세력까지. 예나 지금이나 그 피해는 오롯이 대다수 선량한 시민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 참고자료
-『동아일보』
-GHQ/SCAP, 『Summation of Non Military Activities in Japan and Korea』 13·14·17, 1946~1947.
-GHQ/AFPAC Office of the Chief Surgeon, 「Prevention and Control of Cholera」, 15 November 1945.
-USAFIK G-2 Historical Section, 「The Cholera Epidemic of 1946」, 1947.
-S.Swaroop·R.Pollitzer, “Cholera Studies 2. World Incidence”(Bulletin of the World Helath Organization Vol.12 No.3, 1959.)
-미국 육군 24군단 정보참모부 군사실, 『국역 주한미군사』Ⅰ-Ⅳ, 1945~1948. (Ⅰ: 국사편찬위원회, 『주한미군사 1』, 국사편찬위원회, 2014 / Ⅱ-Ⅳ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서울역사편찬원, 『국역 서울지역 관할 미군정 문서』, 서울역사편찬원, 2017.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사진과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 의료문화사 1879-1960』, 웅진지식하우스, 2009.




신동아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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