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괴물여지도] 정감록 비밀을 홍국영 집안에 전한 사슴과 곰

녹정(鹿精), 웅정(熊精) : 지리산 일대

  • 곽재식 소설가

    gerecter@gmail.com

    입력2020-05-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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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과 사슴이 사람으로 변해 시사(時事)를 논했다”<조선왕조실록>

    • ‘조선왕조실록’ 1785년 3월 기록에는 당시 조선에 떠돌던 이상한 풍문 하나가 실려 있다. 수백 살 된 사슴과 곰이 사람 모습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지금 같으면 동화책에나 어울릴 법한 내용인데, 정조가 임금으로 있던 당시 조선에서는 이 이야기가 무시무시한 역모 사건과 연결됐다.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워크룸프레스 제공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워크룸프레스 제공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역모 혐의 때문에 뒤주에서 최후를 맞았다. 정조 사망 직후에는 누군가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조 생애 전체에는 역모에 관한 흉흉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번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흔히 ‘홍복영 옥사 사건’이라고 하는 1785년 사건에 관한 것이다. 

    홍복영은 홍국영의 친척이다. 그러나 정치계에서 세력을 자랑한다고 할 수는 없는 인물이었다. 홍국영은 정조 집권 초기 세상을 손아귀에 쥔 풍운아로 불렸다. 그 결과 반대파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머잖아 실각했고 이후 비참한 모습으로 귀양살이를 하다 30대 초반 세상을 떠났다. 1785년이면 홍국영이 사망하고도 4년이 지난 시점이다. 홍국영 친척이 세력가를 포섭해 반란을 일으키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홍복영 옥사 사건’은 군사 작전이나 암살 계획과 연결돼 있지 않다. 대신 주술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느껴지는 괴이한 내용이 가득하다.

    신선 마을에 나타난 도깨비

    조선 화가 김시의 ‘선록완월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 화가 김시의 ‘선록완월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른바 ‘홍복영 옥사 사건’에 연루된 많은 인물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기록을 남긴 사람은 문양해다. 문양해는 그 무렵 경남 하동과 지리산 일대에서 주로 활동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기록을 종합하면 당시 조정은 홍복영을 비롯한 몇몇 사람이 이상한 주술을 믿던 지리산 일대 세력과 힘을 합쳐 역모를 꾀했다고 의심한 것 같다. 이들이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조정을 흔들려 한다고 봤다. 문양해는 이 일을 꾸미던 무리 중 한 명으로 지목됐다. 조선왕조실록 1785년 3월 12일자에는 사건 수사 과정에서 문양해가 진술한 내용이 정리돼 있다. 

    문양해는 자신이 지리산 ‘선원촌(仙苑村)’이라는 곳에서 ‘녹정(鹿精)’과 ‘웅정(熊精)’을 만났다고 밝혔다. 선원촌은 글자 그대로 옮기면 ‘신선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앞뒤 정황을 보면 이곳은 신비한 도술을 부릴 수 있다거나, 예언 및 주술에 정통했다거나, 신비한 이치를 깨우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모여 사는 산골 동네인 것 같다. 정확한 위치 얘기가 없는 것을 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문양해는 그곳에서 녹정과 웅정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한자어를 풀이하면 녹정은 ‘사슴의 정기’, 웅정은 ‘곰의 정기’를 각각 의미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17세기 말 출간된 사전 ‘역어유해’를 보면 이 표현의 의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역관이 사용한 이 책에는 ‘유수정(柳樹精)’ ‘호리정(狐狸精)’ ‘야차정(夜叉精)’ 등의 단어가 모두 한글 ‘독갑이’로 번역돼 있다. 세 단어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각각 ‘버드나무의 정기’ ‘여우나 살쾡이의 정기’ ‘야차(불교 문헌에 등장하는 괴물)의 정기’다. ‘독갑이’는 도깨비의 옛 표기다. 조선 후기에는 ‘정(精)’이라는 한자어가 도깨비의 의미로 쓰인 셈이다. 이에 비춰 보면 녹정과 웅정은 ‘사슴 도깨비’ ‘곰 도깨비’ 같은 어감을 가진 단어다. 



    다시 조선왕조실록을 보자. 문양해는 자신이 만난 녹정과 웅정 내지는 사슴 도깨비와 곰 도깨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녹정, 웅정이란 곰과 사슴의 몸이 수백 년 동안 지나오면서 변화해 사람이 된 것인데, (이들은) 글자를 압니다. 신이 선원촌 이현성의 집에서 ‘녹정’을 만나 보았는데, 얼굴은 길고 머리털은 희었으며, 웅정은 얼굴이 흐리고 머리털은 검었습니다. 녹정은 스스로 500살이라고 말하고, 웅정은 스스로 400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는 1000년 묵은 여우가 사람 모습으로 변해 나그네를 홀렸다는 식의 전설이 많이 전해졌다. 딱 그런 얘기를 떠올리게 한다. 문양해는 이들 도깨비의 탄생에 대해 좀 더 세밀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 대목에는 신라시대 실존 인물 최치원이 등장한다.

    사슴이 들려준 ‘정도령’ 예언

    최치원은 뛰어난 글재주로 당나라에까지 명성을 떨친 작가이자 대학자다. 정치 개혁의 꿈을 품었으나 뜻이 이뤄지지 않자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속세와 인연을 끊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후대에는 최치원이 신선이 됐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고려시대 출간된 ‘파한집’에는 최치원이 가야산에 들어가 신발과 모자만 남긴 채 영영 사라졌으며 신선이 된 것 같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해동전도록’ 등 조선 후기 문헌에는 최치원이 후대에 신선술을 전수한 스승으로 기록돼 있기도 하다. 

    문양해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최치원도 이런 모습이다. 먼 옛날 가야산에 숨어든 최치원은 깊은 산중에서 홀로 글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슴 한 마리가 그의 곁에 다가왔는데 책상 밑에 머리를 숙인 모습이 마치 말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고 한다. 최치원이 공부할 때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최치원은 “도를 흠모하는 태도가 기특하다”면서 사슴의 수명을 연장해 줬다. 핵심만 요약하자면 최치원이 산중 짐승에게 신선술을 전해 줬고, 그것이 이후 수백 년을 살다 사람 모습을 한 채 문양해와 만났다는 것이다. 

    당시 조정은 문양해를 비롯한 사람들이 퍼뜨리는 소문의 실체를 조사하다 그 배경에 ‘정감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정감록은 조선시대에 등장한 예언서다. 공식 판본이 전해지지 않아 무엇이 원본이고 어떤 부분이 후대에 덧붙여진 것인지 알기 어렵지만, 조선 후기 어느 시점에 만들어진 뒤 계속 내용이 바뀌며 수백 년간 인기를 끈 것은 분명하다. 


    조선 후기 등장한 예언서 ‘정감록’. [한국역사연구회 제공]

    조선 후기 등장한 예언서 ‘정감록’. [한국역사연구회 제공]

    매우 많은 종교 창시자나 자칭 예언가가 정감록을 입에 올렸다. 역사상 굵직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감록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1785년 역모 사건 당시엔 이 책이 어떻게 등장했을까. 조선왕조실록 1785년 3월 12일자를 다시 보자. 문양해가 조정에 올렸다는 문서에 이런 대목이 있다. 

    “녹정은 항상 시사(時事)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가 말하기를 ‘동국(東國)은 말기에 가서 셋으로 갈라져 100여 년간 싸우다가 비로소 하나로 통합된다. 통일할 자는 정(鄭)씨 성을 가진 사람이고, (중략) 어지러운 정세를 바로잡아 반정(反正)하게 될 사람은 유(劉), 이(李), 구(具)씨 성을 가진 세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소위 ‘정도령’이 혼란기 이후 한반도의 영웅이 된다는 정감록의 전형적인 예언과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이다. 조선왕조실록 1785년 3월 16일자에는 ‘정감록’이라는 책 제목도 등장한다. 문양해 아버지 문광겸에 대한 신문 기록에서다. 이때 문광겸은 “정감록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향악이 문양해에게 그 내용에 대해 말하는 것은 들었다”고 말했다. 향악은 당시 역모 사건에 연루된 또 다른 인물이다. 

    1785년 2월 29일자 ‘승정원일기’를 보면 이 무렵 엉뚱한 소문을 믿고 많은 사람이 지리산 아래로 피난을 떠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문양해로부터 비롯된 소문이 당대 가진 영향력을 시사하는 기록으로 볼 만하다. 

    ‘홍복영 옥사 사건’은 정감록이라는 책이 사료에 명확히 등장한 거의 첫 사례로 꼽힌다. 후대 많은 경우처럼 사이비 종교인 같은 사람이 정감록을 들먹이며 지어낸 이야기의 한 자락이 우연히 널리 퍼진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조선왕조실록에 녹정과 웅정의 모습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된 점이 계속 눈에 밟힌다. 

    문양해에 따르면 녹정은 자기를 ‘청경노수(淸鏡老壽)’ 또는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칭했다. 웅정은 스스로를 ‘청오거사(靑烏居士)’라고 했다고 한다. 한자를 풀어보면 녹정은 희고 깨끗한 옷차림을 했고, 웅정은 검푸른 옷을 입었던 게 아닌가 싶다. 각각 사슴과 곰을 연상시킨다. 

    조금 더 따지고 보면 웅정이라는 존재가 등장한 점이 눈길을 끈다. 사슴은 예부터 신선과 흔히 연결됐다. 조선 화가 김시의 ‘선록완월도(仙鹿翫月圖)’나 김홍도의 ‘수노인도(壽老人圖)’ 같은 그림에서도 신선과 사슴 조합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곰이 신선과 함께 등장하는 조선시대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다. 곰 이야기는 오히려 고대 북방 문화를 다룬 사료에서 쉽게 발견된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의 어머니가 원래 곰이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설화에도 ‘웅신산(熊神山)’, 즉 곰 신령의 산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사료에서 곰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면 조선왕조실록 1439년 7월 2일자에 기록된 ‘우지개(亐知介)’라는 북방 이민족 집단의 풍문 정도가 눈에 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산속에 들어간 여자 두 명이 곰에게 붙잡힌 뒤 곰의 아내가 돼 나무 구멍 속에 살면서 자식을 낳았다. 자식은 반은 사람, 반은 곰같이 생겼다. 나중에 곰 사냥꾼이 이들을 발견해 자식은 없애고 여자들만 구출해 돌아왔다고 한다.

    조선에 전래된 곰 전설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저서 ‘신화의 언어’에서 이 설화를 소개하며 기록 속의 ‘우지개’가 러시아 소수민족 우데게이족을 일컫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이야기는 우데게이족 신화와 우리 단군신화 사이에 간접적인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언급했다. 만약 그렇다면 조선 후기에 이르러 문양해가 퍼뜨린 웅정 이야기도 고대 북방 문화 계통 신화가 미약하게나마 조선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지 모른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조는 1785년 한 해 동안 정감록 예언을 믿던 무리를 대대적으로 수사했고, 관련자를 검거해 처벌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녹정과 웅정이 붙잡혔다는 기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녹정과 웅정은 역시 문양해가 혹세무민할 이야기를 꾸며내려고 지어낸 환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혹시라도 그게 아니라면, 230여 년 전 그날 문양해가 만난 이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이후 어디로 가버렸을까.


    곽재식 | 1982년 부산 출생. 대학에서 양자공학, 대학원에서 화학과 기술정책을 공부했다.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며 소설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교양서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한국 괴물 백과’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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