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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1+1이 1.5 됐다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1+1이 1.5 됐다

  • ● 아시아나와 중복 운항 ‘알짜 노선’ 내놓아야
    ● 당장은 유럽 노선 내놔도 가져갈 국내 저비용항공사 없어
    ● 한국 항공사 세계시장 점유율↓
    ● 조건대로라면 구조조정 없는 통합 어려울 것
2021년 12월 29일 서울 김포공항 계류장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소속 여객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뉴스1]

2021년 12월 29일 서울 김포공항 계류장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소속 여객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뉴스1]

“공정거래위원회가 항공 독점 기업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무리수를 둔 것 같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지난해 12월 29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조건으로 공항 슬롯(비행기 이착륙 횟수) 반납과 운수권 재배분을 내건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공정위 조건을 그대로 따른다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중복 운항하던 노선을 내놓아야 한다. 이 중에는 ‘알짜 노선’이라고 불리는 인천-미국 LA·뉴욕·시애틀·프랑스 파리·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이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1월 11일 대한항공 측에 1000쪽 분량의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이 보고서에는 파리, 바르셀로나 등 유럽 노선을 일부 반납하라는 요구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며 항공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는 것을 예방하려는 조치”라고 밝혔다.

공정위의 조건대로라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짜 노선을 포기하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대한항공이 얻는 이득이 크지 않아서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국적항공사라지만, 그 이전에 기업이다. 빚더미에 앉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며 알짜 노선까지 내놓을까. 조건을 쉽게 수용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조건대로 M&A가 이뤄지면 한국 항공사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알짜 노선을 맡길 국내 항공사가 없어서다. 특히 인천국제공항과 유럽 주요 도시를 잇는 장거리 노선이 문제다. 저비용항공사(LCC) 중에는 장거리 노선을 운행할 대형 비행기를 보유한 곳이 드물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 노선을 맡을 만한 업체가 거의 없다고 해서 노선이 외국 항공사로 넘어갈 가능성은 낮지만 운행하지 못하는 노선이 생기는 만큼 한국 항공사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떨어진다.



유럽 노선 내놔도 당장은 받을 회사 없어

티웨이항공은 1월 5일 유럽·미주 노선 운항이 가능한 중·대형기 도입을 시사했다. [티웨이항공 제공]

티웨이항공은 1월 5일 유럽·미주 노선 운항이 가능한 중·대형기 도입을 시사했다. [티웨이항공 제공]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LCC들은 공정위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조건 발표 직후 장거리 운항 준비에 나섰다.

티웨이항공은 1월 5일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등 주요 유럽 노선과 LA, 뉴욕 등 미국까지 운항 가능한 중·대형기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티웨이항공은 2월 에어버스사의 A330-300 1호기를 시작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순차적으로 총 3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신생 LCC 에어프레미아는 1호기로 운항거리가 1만5500㎞ 이상인 중장거리 항공기 보잉 787을 보유하고 있다. 에어프레미아는 향후 2, 3호기를 추가로 도입해 미주 노선에 투입할 예정이다. 대한항공을 제치고 지난해 국내선 승객 1위(651만 명) 기록을 세운 제주항공은 “코로나19 유행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라 중대형 항공기를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지만 운수권과 슬롯을 배정받는다면 중·장거리 노선 운항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LCC가 중·장거리 노선 운항이 가능한 기종을 도입한다고 해도 실제 운행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항공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항공기를 사들이고 파일럿을 채용한다고 해서 바로 운항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수리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며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와 달리 LCC는 중대형 항공기 수리·보수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항공기는 일정 거리를 운항하면 반드시 보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유지보수 시설을 두고 직접 수리·보수를 해오고 있다. 대부분의 LCC는 이 같은 시설을 운영하지 않고 외주업체에 맡긴다. 문제는 현재 국내 항공정비 외주업체 중 중·대형 항공기 수리·보수를 할 업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항공정비업계 관계자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관련 장비와 대형 항공기를 수납할 정비 공장이 없다”며 “그동안은 LCC들이 중·대형 항공기를 보유하지 않아 정비업계도 관련 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완벽한 인프라가 갖춰지는 데까지 적어도 2~3년은 걸린다”고 밝혔다.

운수권 제한 시 항공산업 경쟁력 약화

2021년 12월 27일 인천 중구 영종순환로 대한항공 엔진 테스트셀에서 정비사들이 항공기 엔진을 정비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외에는 대형 항공기 관리 역량을 가진 항공사가 없다.  [뉴스1]

2021년 12월 27일 인천 중구 영종순환로 대한항공 엔진 테스트셀에서 정비사들이 항공기 엔진을 정비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외에는 대형 항공기 관리 역량을 가진 항공사가 없다. [뉴스1]

대한항공이 내놓은 장거리 노선을 소화할 한국 항공사가 없다면 외국 항공사가 이 노선을 가져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임일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항공산업은 태생적으로 글로벌 경쟁이 불가피한 구조”라며 “국적항공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국내시장 경쟁 제한 해소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운수권은 관련법령상 국내 항공사에만 재배분이 가능하기에 외국 항공사에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항공업계와 국토교통부 등 관련 정부 부처에 문의한 결과 외국 항공사가 노선을 일부 가져갈 수는 있다. 항공업계의 노선은 크게 ‘운수권’과 ‘슬롯’으로 구성된다. 운수권은 말 그대로 해당 노선을 사용할 권리다. 슬롯은 이 노선을 사용하는 시간이다. 가령 2월 25일 오후 3시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다면 해당 항공사가 그 시간대의 슬롯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다.

공정위의 해명대로 운수권은 외국 항공사로 넘어가지 않는다. 해당 노선을 운항하지 못한 해외 항공사가 운수권을 가져갈 수는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운수권을 이미 가진 해외 항공사가 슬롯을 가져가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공정위가 재배분하려는 노선의 슬롯은 한국 항공사에 우선 분배된다. 한국 항공사가 가져가지 않는 슬롯이 생긴다면 이를 해외 항공사가 가져가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한국 업체 모두가 포기한 슬롯이 외국 항공사로 넘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외국 항공사가 이들 노선의 슬롯을 일부 가져가도 한국 항공사만큼의 이익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외국 항공사가 운항하는 인천-유럽 노선의 경우 한국에서 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채우기는 쉽지만 그 반대는 어렵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승객 중에는 한국인이 많다”며 “이 노선을 두고 외국 항공사와 한국 항공사가 같은 가격으로 경쟁한다면 대부분의 한국 승객은 언어와 서비스가 익숙한 한국 항공사를 선택한다. 이를 알기에 그간 외국 항공사들이 한국 항공사의 알짜 노선에 대해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외국 항공사에 노선을 뺏기지 않더라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항공사의 노선이 줄어들면 사업 축소는 불가피하다. 현재 대한항공 임직원 수는 1만8000명, 아시아나항공은 8700명이다. 두 회사 통합으로 업무가 중복되는 간접 인력이 1000명이 넘는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도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대한항공 노조는 “운수권과 슬롯을 내주면 고용안정이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도 “운수권을 제한하면 구조조정 없는 통합은 어려울 것”이라며 “한국 항공 시장 경쟁력 약화가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스타-제주는 되고 대한항공-아시아나는 안 돼?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2021년 9월 13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공정위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심사가 지나치게 늦어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동아DB]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2021년 9월 13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공정위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심사가 지나치게 늦어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동아DB]

앞서 언급했듯 이 같은 상황에도 공정위가 알짜 노선 반환을 조건으로 내건 이유는 항공업계 독점 기업 출연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LCC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가지고 있던 노선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라며 “(LCC가 장거리 운항 노선을 받더라도 운항이) 어렵겠지만, 기회를 주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밝혔다.

항공사 합병에 대한 국제 심사가 까다로워진 것도 공정위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올해 캐나다 시장점유율 1위 항공사인 에어캐나다와 3위 항공사인 에어트란셋의 합병을 불허했다. 각각 스페인 1, 3위 항공사인 IAG와 에어유로파는 통합 이후 독과점을 해소할 신규 항공사까지 찾아냈으나 역시 EU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공정위의 조건을 충족해 한국에서 합병 허가를 받더라도 미국과 EU, 중국 등 해외 주요 경쟁당국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위가 아시아나항공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조건부 인수합병 허용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자본 잠식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이 인수하지 않으면 자립이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정위 기업결합 경쟁제한성 심사 규정에 따르면 회생이 불가능한 회사가 합병 외에는 생산설비 등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 예외적으로 경쟁제한성(독점 위험성 등)을 검토하지 않는다. 이 규정으로 합병이 이뤄진 사례도 있다. 2020년 4월 공정위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당시 공정위는 “이스타항공이 자본 잠식에 빠진 상태라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해 경쟁제한성 적용 예외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황용식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현대-기아차 결합심사 당시, 양사의 시장 합산 점유율이 64%에 달함에도 기아차의 ‘회생 불가능성’이 인정돼 합병으로 조속히 이어진 사례가 있다”며 “글로벌 항공수송 점유율 28위인 대한항공과 42위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한다 해도 국제 항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아 해외 경쟁 당국의 반발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합병 실패하면 아시아나 회생 불가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실적이 회복되자 공정위의 생각이 바뀐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독과점 우려에도 양대 항공사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려면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통합되지 않고선 회생할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면서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실적이 흑자로 돌아서는 등 경영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경영공시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상반기 연결기준 31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20년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액이 2554억 원에 육박했지만 1년 만에 그 규모를 8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주도하는 KDB산업은행은 이 같은 의혹을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지난해 10월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회생 가능성을 묻는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면 아시아나항공의 최근 10년간 누적 영업이익이 3032억 원에 불과한 데다 당기 순손실은 1조3740억 원에 달한다. 산업은행은 이 답변서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은) 열악한 재무구조가 지속되는 사실상 회생 불가 기업”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대한항공의 인수대금 납입이 지연되면 언제든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회계사 의견도 비슷했다. ‘신동아’가 3명의 회계사에게 금감원에 공시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제표를 근거로 회생 가능성을 문의한 결과, 3명 모두 “회생이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최근 좋은 실적을 낸 것은 사실이나 악성 채무가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한 회계사는 “재무제표상으로는 아시아나항공이 가진 자산을 전부 처분해야 자본 잠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새 항공사를 차릴 정도의 자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인데 이보다는 매각이 합리적인 처사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조건부 합병 결정을 내릴 때 아시아나항공의 회생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합병 조건은 검찰 구형과 같은 것”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연내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지만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대한항공이 이득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고 본다.

항공업계 고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노선까지 제한하면 두 회사가 합병해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1+1이 2나 3이 돼야 하는데 작금의 상황만 봐서는 1.5도 되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합병 조건이 일부 조정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인수합병을 판결로 비유하자면 공정위가 내건 조건은 검찰 구형에 가깝다”며 “검찰의 구형과 재판부의 판결이 다르듯, 합병 진행 과정에서 이 조건은 일부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신동아 202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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