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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직 1명 모집에 149명 몰려 ‘근로빈곤층’ 내몰리는 중년여성

여성 재취업 현장의 눈물

  • 김건희 객원기자 | kkh4792@hanmail.net

청소직 1명 모집에 149명 몰려 ‘근로빈곤층’ 내몰리는 중년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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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자리가 중년여성을 울린다. 연령제한에, 임시직 처지에, 부당한 근무환경에 눈물을 흘린다. 왜 이렇게 됐을까. 중년여성들이 경쟁력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전문가들은 “문제는 노동시장에 있다”고 지적한다.
12월 8일 아침 서울 노원구 월계동행(行) 버스 안. 40대로 보이는 중년여성들이 화장을 곱게 하고 손에는 서류봉투를 든 채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버스가 대형마트 A점 앞에 정차하자 5명의 여성이 우르르 내렸다. 이들이 향한 곳은 A점 2층 직원휴게실. 단기 판촉행사 근무자 면접을 보기 위해서다. 이곳엔 이들 연배의 중년여성 구직자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단기 판촉행사 근무자는 주로 시식이나 시음행사를 통해 고객을 유도하고 제품 구매를 권하는 단순 노무직, 행사 기간에만 일하고, 하루 9시간(식사시간 60분, 휴식시간 30분 포함) 근무한다. 급여는 1일 단위로 정산한다. 수당은 6만~8만 원. 임시직이라 고용보험(급여의 3.3%)만 공제한다.
면접은 오전 10시부터지만 30분 전부터 휴게실은 구직자들로 가득 찼다. 뒤늦게 도착한 구직자들은 휴게실 밖 통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섰다. 대다수는 30~40대 중년여성이고 20대 젊은 남녀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50대 이상 여성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구직자들은 제품의 특징, A점 내 매장 및 편의시설의 위치, 판매사원의 동선(動線), 근무 준수사항 등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했다.
유모차에 태운 아기를 어르면서 와인의 특징을 달달 외우던 30대 중반 여성은 “9월 말엔 추석 연휴가 있고 10월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행사를 진행하느라 11월에는 대부분의 업체가 단기 판촉행사를 마련하지 않았다”며 “오늘 면접에 붙어야 한 달 만에 다시 일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시험공부 하듯 면접 준비

수산 코너에 지원한 30대 여성은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제품 설명서를 보여주면서 “학창 시절 시험공부 하듯 면접을 준비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 여성은 “단기 판촉행사는 3~4일 동안 진행하는 게 보통”이라며 “이번처럼 6일(12월 18~20일, 24~26일)이나 행사를 벌이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꼭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채용대행사에서는 대형마트 근무 경험이 없거나 적은 ‘초짜’ 구직자를 위해 면접 모의평가를 한다. 대형마트 근무 경험이 없다는 40대 초반의 여성 구직자는 “2시간 동안 제품의 특성과 셀링(판매) 방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육받았는데, 이곳에 와보니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며 “그야말로 불꽃 튀는 현장”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A점 측은 이날 오전에 면접을 실시하고, 면접에 합격한 구직자를 대상으로 오후에 교육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직자들은 채용대행사를 통해 단기 판촉행사 근무 일정을 잡았어도 면접을 통과하지 못하면 근무할 수 없다. 구직자들이 면접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대형마트 단기 판촉행사 근무자를 뽑는 면접은 2차에 걸쳐 진행된다. 1차 면접에서는 판매원이 얼마나 제품을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홍보하는지를 중심으로, 2차 면접에선 서비스 수행능력을 집중적으로 평가한다. 제품의 특징을 제대로 홍보하지 못하거나 자세가 불량하면 탈락한다.
A점 CS(친절교육)팀 담당자는 “크리스마스와 연말로 이어지는 12월은 설과 추석 다음으로 판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즌이라 단기 판촉행사 근무자를 평소보다 2~3배 이상 채용한다”며 “올해 마지막으로 매출 신장을 이룰 수 있는 시기인 만큼 면접을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상당수 여성이 면접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 목소리가 작거나 제품에 대한 특성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령제한에 걸린 경우도 적지 않다. 면접장에서 만난 30대 후반 여성은 “경기 동두천에서 서울 월계동까지 오가는 데 3시간이 걸리지만 지금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다”며 “단기 판촉행사가 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연말연시에 집중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3시. 서울 광진구 구의동 H용역업체에서는 중년여성을 대상으로 면접을 치렀다. 모 대학의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교직원 건물 전체를 청소할 여직원 1명을 뽑기 위한 자리였다. H용역업체에 따르면, 사흘 동안 접수된 이력서가 149통에 달한다.



“젊은 지원자도 많은데…”

이력서를 낸 구직자의 대부분은 40~50대 중년여성이다. 60~70대 여성도 있다. 용역업체는 근무 강도 등을 감안해 40대 초·중반 여성 10명에게만 면접 기회를 주기로 했다. H용역업체 관계자는 “요즘은 건물 청소나 주방 설거지 같은 일자리도 50세 이상 여성에겐 잘 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빠릿빠릿한 젊은 지원자도 많은데 굳이 나이 든 여성을 채용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이제는 40대 후반만 돼도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확 줄어든다. 마트 근무, 청소, 음식점 서빙 같은 일자리에서 밀려난 50~60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가사도우미, 간병인, 베이비시터, 요양보호사 같은 ‘돌봄 노동’ 분야인데, 이들의 일당은 3만~4만 원 수준이다.”
이날 면접에 참여한 40대 여성은 “과거엔 건물 관리나 청소 업무를 50~60대가 도맡았는데, 요즘엔 30~40대들이 몰려든다”며 “월급(100만 원)이 적고 출근시간(오전 4시)이 이른 데다 용역업체에 수수료(월급의 5%)도 내야 하지만 일용직이 아니라는 게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한창 활발하던 2000년대의 신문과 방송에는 가끔 이런 뉴스가 등장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노동시장을 이탈했다가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M커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M커브는 육아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는 30~40대 여성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용어다.




50대는 고령자?

여성이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는 건 요즘도 흔한 일이다. 20~30대 여성의 상당수는 결혼 후 출산과 육아 때문에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일을 그만둔다. 그 결과 경력이 쌓이지 않고 단절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나 2000년대와는 달리 요즘은 재취업에 나선 중년여성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는 더욱 힘들다. 2003년부터 대형마트에서 정규직 사원으로 10년간 일했다는 김선옥(47) 씨는 이렇게 말한다.  “2012년 12월, 체육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10년 동안 일한 게 아까웠지만, 경력이 있으니 언제든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불과 1년 뒤 재취업에 나선 김씨는 희망대로 대형마트 정규사원으로 재입사하기는커녕 비정규직 단기 판촉 일자리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 성장 한계에 직면한 대형마트가 정규직 사원 채용에 부담을 느낀 데다 연령제한까지 뒀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마트는 정규직 사원은 물론 단기 판촉행사 근무자의 연령도 45세 이하로 제한한다.
E채용대행사 관계자는 “요즘 대형마트 단기 판촉행사 근무자의 취업 가능 마지노선은 40대 초반”이라며 “대형마트는 40대 중반만 돼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씨는 “취업 의지와 경력, 능력을 불문하고 단지 나이 때문에 구직 기회를 안 준다는 게 말이 되나. 체력이 떨어져 일을 할 수 없는 처지라면 몰라도…”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연령대별로 분할된 노동시장은 구직활동에 큰 걸림돌이 된다. 공공기관에서 노인 일자리를 소개받은 황순자(55) 씨는 “55세 이상은 고령자로 분류되는 탓에 다른 연령대보다 근무시간이 1시간 적고 보수도 낮다”며 “아직 힘이 남아도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근무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게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멀쩡한 청년들도 직장을 못 구하는 마당에 나이 든 주부가 이런 일자리나마 얻는 게 어디냐 싶어 군소리하지 않고 일할 생각”이라고 했다.



다단계의 유혹

연령제한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몸으로 겪은 일부 중년여성은 ‘연령불문’을 내세운 허위 구인광고에 현혹된다. ‘주부사원 모집’ ‘월수 200만 원 보장’이라며 나이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악성 다단계판매의 술수에 빠져든다.
2012년 다단계업체 구인 광고에 속아 화장품을 판매한 C(35)씨가 이런 경우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화장품회사에 근무하던 C씨는 결혼 후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3년 후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엔 나이가 많고, 경력직으로 지원하기엔 연차가 모자랐다.
갈피를 못 잡던 차에 화장품을 판매하는 다단계업체의 구인광고가 그의 눈에 띄었다. 연령제한이 없을 뿐 아니라 근무시간도 탄력적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건강식품과 화장품을 팔 때마다 60만 원의 기본급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판매활동을 꾸준히 하면 회원 자격을 얻을 수 있고, 나중에 상위 직급으로 올라가면 해외연수 자격도 주어졌다.
하지만 꿈에 부풀었던 C씨가 현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600만 원어치 이상의 제품을 팔아야만 매달 60만 원의 기본급을 받을 수 있었고, 그마저 판매활동을 위해 교통비, 강의비, 전화비, 식비 등을 쓰고 나면 정작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몇 푼 되지 않았다. C씨는 6개월간 근무했지만 돈과 시간만 날리고 회사를 나왔다.
C씨 같은 중년여성들이 몰려드는 다단계회사는 대개 상위 1%가 수익을 독점하는 구조로 돼 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여성들은 고생만 하다 아무것도 못 건지고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다단계업체 판매원 상위 1%는 2014년 한 해 평균 5864만 원을 벌어들인 데 비해 나머지 판매원 99%는 52만 원밖에 벌지 못했다.


89%가 비정규직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한 중년여성들은 자신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비정규직, 저임금, 시간제 노동과 같은 불리한 조건을 마다하지 않는다. 부당한 근무환경을 감수하는 것이다. 문제는 임시직, 저임금, 용역업체 수수료 등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중년여성의 고용조건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중년여성들이 근로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이유다.
이런 현상은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05~2014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한국의 시간제 여성 실태’에 따르면, 2014년 시간제 여성노동자의 89%가 비정규직(임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제 여성노동자 중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해 퇴직금, 연차휴가, 4대 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비율은 2005년 23.9%에서 2014년 32.1%로 치솟았다.


고학력의 중년여성도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환경의 그늘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결혼 전 6년 동안 대기업에서 회계직으로 근무한 이명희(41) 씨는 2015년 개인사업체의 2년 계약직 경리사원으로 재취업했다. 일자리를 구하긴 했지만 불안정하고 한시적인 데다 급여가 낮다 보니 직장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이씨가 현 직장에서 받는 급여는 과거 연봉의 40% 수준. 이씨의 남편과 친정어머니는 그 돈을 받고 일하느니 육아에 전념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권유한다.



노동시장 구조부터 바꿔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종숙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고학력 경단녀(경력단절 여성)를 위한 취업시장이 발달해 있지 않아 고학력 여성의 취업 희망률이 높은데도 취업을 포기하고 비경제활동인구로 남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렇듯 구조적인 원인으로 경력이 단절된 중년여성들이 근로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비경제활동인구로 머무는 현실,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경제적 손실은 방치해도 되는 걸까. 노동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률 70%를 목표로 경단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한계에 부닥쳤다. 먼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공공보육을 확충해 중년여성을 위한 취업구조부터 정비해야 한다.”
노동시장을 개선하려면 제도의 허점부터 보완해야 한다. 중년여성들이 재취업을 위해 이용하는 대표적인 시설은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다. 새일센터는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새일센터는 재취업 훈련 과정에서 중년여성의 성향과 특성을 분석해 이와 연관성이 높은 기업을 연결해준다(‘기업 매칭 프로세스’). 하지만 새일센터가 제공하는 회사의 정보와 실제 상황엔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회사의 조직문화와 인재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 문제’ vs ‘시스템 문제’

중년여성을 위한 고충처리 기관을 육성하고 여성 멘토링 네트워킹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령 ‘직장맘센터’ 같은 곳을 여러 군데 마련해 이들의 직장생활을 도와야 한다는 것. 김종숙 연구위원은 “이들의 재취업과 직장 적응에 성공사례를 발굴해 매뉴얼로 만들어 보급하고, 인사 및 노무 전담 상담사를 배치해 유관 기관과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년여성이 겪는 직장 부적응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중년 재취업 여성의 직장 적응 실태와 정책과제’에 따르면, 재취업한 여성의 직장 부적응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중년여성 취업자와 기업의 시각이 큰 차이를 보인다. 기업은 중년여성의 직장 부적응 원인을 업무 공백기로 인한 능력 저하 같은 ‘개인 문제’로 보는 데 비해 재취업 여성들은 경직된 회사 근무환경과 출퇴근 시간, 구태의연한 업무처리 방식 같은 ‘시스템 문제’로 인식한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점은 시스템의 문제를 파악한 중년여성들이 웬만해선 개선 요청을 하지 않는다는 것.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 때문인 듯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최영섭 선임연구원은 “기업은 사내 고충 처리 시스템을 통해 중년여성의 직장 부적응 문제를 해소하려 하기보다 여성 친화적이고 근로자 친화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수집해 상담자료로 만들어 활용하면 중년여성의 이탈을 예방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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