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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해물질에 포위됐다

못 믿을 방향제, 세정제, 섬유탈취제…

  • 임종한 |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우리는 유해물질에 포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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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살생물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정부가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있지만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 우리 주변 생활용품에도 가습기 살균제 못지않은 유해 화학물질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화학산업의 발전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화학제품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화학물질은 세계적으로 약 10만 종이 유통되고, 한국에서도 4만 종이 사용된다. 한국에는 매년 400여 종이 새로 진입하며, 국내 화학산업은 제조업 생산액의 14%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크다.

화학물질 및 제품 산업의 발전은 산업경제 활동을 비롯한 첨단 기술 개발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화학물질의 독성과 물리화학적 특성으로 인해 예기치 않은 사고 발생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화학물질 관련 피해예방 시스템은 아직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않은 실정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산업 발달과 소비자 보호 시스템 구축 속도의 격차 탓에 발생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제조물 피해 사건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살생물제(殺生物劑, biocide) 사건이다. 다시 말해 미생물이나 해충을 죽이려고 사용한 제품이 외려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다. 건강해지려고 사용한 제품 때문에 많은 사람이 숨지거나 치명적인 건강 피해를 본 안타까운 일이다.

기업은 가습기를 보다 위생적으로 관리하려는 시민들의 심리를 파고들어,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시장에 내놓았다. 가습기 살균제는 한국의 SK케미칼과 같은 대기업이 생산하거나 외국에서 수입한 원료로 옥시레킷벤키저 등의 외국계 기업과 롯데마트 등의 주요 대형할인점들이 만들어 판매했다.

1994년 첫 제품이 나온 뒤 2011년까지 20여 종이 시장에 선을 보였으며 18년간 800만 명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관련 제품을 사용한 사상자는 230여 명으로 확인된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 인구를 고려하면, 그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폐 이외의 장기(臟器) 피해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의 본질은 사용량이 증가한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새로운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노력하고 있지만 안심할 수 없다. 방향제, 섬유탈취제, 세정제 등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독성을 지니는 유해 화학물질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 유해성은 연구로도 증명되고 있다.  



31개 제품 ‘위험도 최상’

2006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의과대 존 밤스 박사 연구팀은 “실내에서 방향제에 오랫동안 노출될 경우 호흡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문제가 되는 물질이 바로 ‘파라디클로로벤젠’인데, 이 성분은 공기와 접촉하면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만들어내며 사람이 자주 접할 경우 폐가 손상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방향제에 함유된 인체 ‘유해물질’로는 무엇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포름알데히드’와 ‘프탈레이트’ 등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프탈레이트는 동물이나 사람의 호르몬 작용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알려져 있다. 방향제는 향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이 성분을 활용한다. 이 물질 또한 가습기 살균제처럼, 아주 미세한 입자 단위로 인체에 많은 양이 유입될 경우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

프탈레이트의 종류로는 DEHP, BBP, DBP, DEP 등이 있다. 특히 DBP는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사용이 금지됐다. DBP 프탈레이트에 자주 노출되면 여성은 자궁이 손상될 수 있으며 남성은 호르몬 교란으로 정자 수가 감소할 수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방향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울렁거림과 두통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다.

국내 일부 탈취·방향제의 원료로 쓰인 MIT는 흡입하면 인체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환경부의 ‘유독물질’로 지정돼 있다. 방충·탈취제의 원료인 클로록실레놀은 들이마실 경우 심폐 정지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방향·탈취·소독제 성분인 시트릭애시드도 피부, 호흡기를 자극하고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살균세정제가 미세한 입자로 만들어져 흡입을 통해 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프레이나 연막 형태의 에어컨 및 히터 살균세정제, 살충제, 냉장고 항균탈취제, 의류 방수 스프레이 등도 위험할 수 있다. 2014년 9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화장품, 살충제, 방향제 등 스프레이 생활용품 100개의 위험도를 조사한 결과, 위험도 최상인 제품은 31개에 달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생활용품 제조에 살생물제 사용을 사전에 허가받아야 한다. 외국에는 방향·탈취제에 살생물제를 넣지 않는다. 방향·탈취제에 살생물제를 넣는 순간 바이오사이드 제품(살균제)이 된다. 그런데도 국내에선 생활용품 방향·탈취제, 세정제, 청결제 등에 살생물제를 사용해왔다.  

앞으로는 우리 기업들이 외국 기업이 신규 개발한 화학물질을 수입해 새로운 용도로 개발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용도 개발에 따른 제품 안전성을 자신들이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기업의 자체적 물질 및 제품 위해성 평가를 일반화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U, 살생물제 사용 전 허가제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공산품의 함유 성분을 정부 차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천연 향초, 살충제 같은 제품에 위험 성분이 함유될 가능성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방향제나 향초 등 호흡기를 통해 유입될 수 있는 제품에 ‘성분과 함유량 표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지 않은 점이다. 화학물질 관련 현행법에는 특정 부류의 화학물질에 대한 위해성 평가 면제 조항이 있어, 정부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거나 아예 ‘등록 대상에서 면제’되기도 한다. 가습기 살균제 중에서 구아니딘계 고분자 물질은 이러한 특혜 조항에 따라 위해성 평가 자료 제출이 면제됐다.

제조물책임법은 과학기술적 모호성으로 인해 기업의 책임을 묻기 어렵게 돼 있다. 현행법대로라면 기업들은 살균제와 같은 살생물제를 사용하고서도 ‘영업기밀’을 이유로 화학물질의 정보를 밝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살생물제는 예외 없이 당국에 물질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기업이 제품 출시 전에 안전성을 입증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영업기밀’ 이유로 비공개?

신규 화학물질은 제조·수입 누적량이 1t 이상인 경우에 한해 화학물질의 등록과 평가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제조·수입 누적량이 1t 이하인데도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이 있다. 그러므로 일정 기간을 목표로 삼고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가 이뤄지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이른 시일에 모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를 진행할 수 없다면 독성물질 감시체계부터 구축해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 발생 정도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및 약물 등으로 발생한 중독사고 현황 및 원인 물질에 대한 정보 제공체계가 아주 취약하다. 현재 관련 정보를 웹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관으로는 과학기술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등이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와 환경부에는 단일 화학물질의 정보만을 근로자와 전문가 대상으로 제공하고 있어서 자료 활용성이 낮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독성정보제공시스템(Tox-info)’의 화학제품 중독 정보는 단일 물질 정보만을 제공하며, 학술적인 정보가 많아 일반인이 활용하기 어렵다. 정부기관의 화학물질 정보는 전문가 활용 중심의 DB로, 정부 각 부처 법령이 관리하는 일부 화학물질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한계가 있다.  

유럽, 미국 , 캐나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도 오래전부터 독성물질 감시센터를 운영하며, 독성물질 노출 여부 모니터 및 예방대책 마련에 노력해왔다. 미국의 중독관리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Poison Control Center, AAPCC)는 국가중독정보시스템(National Poison Data System, NPDS)을 통해 피해 현황을 모니터링한다.

NPDS에 따르면 2011년 미국 중독사고 신고건수는 362만4063건이며, 5세 이하의 인체 노출 중독사고(human exposure cases)는 비의도적 노출로서 114만4729건(49.1%)에 달한다. 5세 이하의 중독사고 원인물질로는 화장품 및 개인용품 16만6246건(14.0%), 진통제 11만7378건(9.9%), 가정용 클렌징 제품 10만9442건 (9.2%), 이물질·장난감·잡화 8만2197건(6.9%), 국소용 장제(Topical Preparations) 7만8114건(6.6%) 순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대응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시민이 나서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화학산업 국가인데도 그 흔한 독성물질 감시센터 하나 없다.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아 엄격히 제재해야 하는 살생물제 물질 관리방안도 허술하다. 외국 기업이 자국의 엄격한 안전관리 규정을 잘 지키다가, 왜 한국에선 제품 속 유해물질 성분이나 함유량을 공개하지 않았을까. 기업이 소비자의 건강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이윤을 내는 데 몰두하는 ‘한국 기업문화’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닐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는 점이다. 지지부진하던 화학물질 안전관리정책에 대한 개편 논의를 매듭짓고 새로운 화학물질 안전관리정책(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및 화학물질관리법 제정)을 도입하게 됐다. 새로운 화학물질 안전관리제도는 신규 화학물질뿐 아니라 기존 화학물질 모두 안전성 평가를 하도록 하고, 생활화학제품 등을 포함한 위해 우려 제품에 대해 위해성 평가를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정부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유통량과 독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를 추진하고 있다. 살생물제에 대해서는 전수 관리를 하겠다는 대책도 내놓았다. 하나같이 진일보한 대책이지만 여전히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기업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살피고, 정부가 기업의 이런 변화를 강제하는 정책을 세우도록 촉구해야 한다. 이젠 시민들이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제2의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사회 변화를 조직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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