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목련 덕분에 봄이면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더 환하게 빛나는 것 같다. 나 또한 해마다 봄이 되면 환하게 꽃을 피운 목련 덕분에 봄의 호사를 누린다. 앞집 뒤뜰에 심어진 목련이 꼭 우리 집 마당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염화미소(拈華微笑)’라는 말이 있다. ‘꽃을 집어 들고 웃음을 띤다’는 뜻인데, ‘말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의미로 쓰인다. 불교에서 선(禪) 수행의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화두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목련을 심은 분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올해도 어김없이 핀 목련을 보면서 나는 ‘염화미소’를 지었다. ‘나 혼자 봐도 좋지만 함께 나누면 내가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집주인이 뒤뜰에 목련을 심은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푸근해졌다.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진다’는 말을 많이 하는 요즈음이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범죄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걱정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때일수록 ‘나 자신부터 상대방을 조금씩 더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조금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데 다들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에 실천을 고민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우유를 고르는 방법
그날도 진열대에 놓인 우유를 보면서 어느 제품을 살까 고르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젊은 주부가 나를 보더니 “어르신, 글자가 잘 안 보이시면 제가 골라드릴게요” 하면서 유통기한이 가장 길게 남은 우유를 골라줬다.
그런데 내가 “고맙지만, 유통기한이 가장 짧게 남은 것으로 한 번 더 골라주시겠어요?”라고 청하자 주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내 부탁대로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우유를 다시 골라주면서 “어르신,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우유가 더 신선한 우유예요. 왜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우유를 고르시는 거예요?” 하고 물어왔다. 내가 “이쪽과 비슷한 일에 종사해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제야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다.
그 주부에겐 자세히 얘기하지 못했지만 이런 선택을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비자 모두가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것을 고르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우유는 곧 반품되고 종국엔 거의 전량 폐기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유통기한이 지나 반품되는 우유가 전체 우유 생산량의 10~1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사회생활 중 40년을 사용 연수, 내용 연수 등 기한이 정해진 제품을 만드는 업종인 제약업과 화장품업에 종사했다. 그렇다 보니 우유를 고르는 남다른 습관을 갖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 환경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이라면 누구나 이런 소비 습관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
일반적으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버려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먹으면 바로 탈이 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유통기한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유통업자가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법적 기간’이다. 이 말은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반드시 식품이 변질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다.전문가들은 “식품의 안전성을 생각한다면 유통기한이 아닌, 믿을 수 있는 품질의 제조사에서 만들었는지, 보관 방법과 유통과정은 어떠한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선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음식이 연간 6000억 원어치에 달한다고 한다.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버려지는 경우까지 합치면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피해를 줄이고자 정부는 일부 식품에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기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소비자는 드물다.
화장품은 제조일자와 함께 사용기간을 표시하고 있다. 또한 화장품을 제조한 제조사와 판매를 하는 판매사가 제조판매업자로 표기돼 있다. 제조일자를 보고 고르는 것보다 사용기간을, 또 믿을 수 있는 제조사를 보고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소비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이 이런 뜻에 공감해서 식품, 화장품, 의약품을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순서대로 사기 시작하면 반품량과 폐기량을 함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지구 환경이 개선돼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힘이 아니라 작은 실천력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씨앗을 심는 지혜가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뒤뜰에 목련나무를 심은 내 이웃사촌처럼.
윤 동 한
● 1947년 대구 출생
● 영남대 경영학과·서울대 대학원 관리회계학과 졸업, 수원대 박사(경영학)
● 농협중앙회 근무, 대웅제약 부사장
● 現 한국콜마 회장, 월드클래스300협의회 회장
● 보건의날 국민훈장(동백장), 다산경영상(창업경영인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