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마을운동 동력은 ‘시대별 맞춤형’ 진화
- 공공부문 역할 지원해 재정기반 강화할 것
- ODA는 ‘먹이사슬’, 새마을운동은 ‘가치사슬’
이 방대한 조직의 새 수장(首長)을 현직 대학교수가 맡았다. 소진광(61) 가천대 행정학과 교수다. 그는 3월 15일 열린 2016년 중앙회 대의원총회에서 지난 2월 임기를 2년 남긴 채 사임한 심윤종(75) 전 회장에 이어 제23대 회장(임기 2년)으로 선출됐다. 회장 자리는 무보수 명예직이다.
소 회장은 서울대 출신의 행정학 전문가. 가천대 대외부총장, 한국지방자치학회장, 한국지역개발학회장, 새마을운동중앙회 이사, 지구촌새마을운동 성과관리위원, 대통령 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 대통령 직속 지방이양추진위원회 실무위원 등을 지냈다.
그간 주로 국무총리·장관 출신 등이 맡은 이 자리에 소 회장이 선출된 건 이례적이다. 전임 회장들에 비해 나이도 적은 편이다. 당초 심 전 회장의 돌연한 사임 배경에 의문이 제기됐지만, 이후 그가 “글로벌 새마을운동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젊은 분이 회장을 맡는 게 옳다고 판단해 사임했다”고 밝혀 새마을운동 재도약 및 세계화를 위한 소 회장의 역할에 대한 기대치는 한층 높아졌다.
5월 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소 회장을 만났다.
“가정부터 바로 서야”
▼ 3월 29일 취임 직후 “이 시대 상황에 유용한 새마을운동의 교훈과 실천논리를 펼치겠다”는 지론을 밝혔다.“‘새마을운동’ 하면 1970년대의 역사적 유물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시대별 상황과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진화해왔다. 1970년대 빈곤 탈피를 위해 경제공동체 형성에 기여했다면 1980년대엔 산업화 이후 사회의 여러 범죄 등을 해결하는 사회공동체 형성으로 지역사회와 나라 발전에 기여했다. 물론 새마을운동의 성격이 시대별로 분명히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두드러진 특징이 그렇다. 1990년대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좋은 문화를 유지·확산·전파·계승하는 문화공동체로도 기능했다. 21세기 들어선 문화·환경공동체를 가꿔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앞으론 지구촌 평화공동체의 토대를 만들어 정치와 이념으로 닫힌 세계를 여는 데 활용해야 한다. 새마을운동은 어느 시대, 어떤 환경,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그 동력은 시대별 상황에 걸맞은 기능을 다하며 진화를 거듭해온 데 있다.”
4월 22일은 ‘새마을의 날.’ 새마을운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공감과 참여를 통한 지속적 추진을 위해 새마을운동이 태동한 이날이 2011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올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제창 46주년, 제6회 새마을의 날 기념식’에서 소 회장은 ‘가정새마을운동’을 주창했다.
4대 공동체운동
▼ 취지와 배경은.“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잘살기 운동’을 성공시키면서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산업화·정보화·세계화에 따른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핵가족화(저출산·고령화), 가족해체, 인간소외, 세대갈등이 심화했다. 오늘날의 각종 사회문제 대부분은 공동체의식 부족과 나눔·봉사·배려의 실천 덕목 약화에서 비롯된다. 특히 신뢰 등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축적하는 최소 단위인 마을공동체가 붕괴된 탓이 크다. 따라서 마을을 구성하는 가정부터 바로 서야 지역사회가 건강해지고 나라가 번영할 수 있다. 가정새마을운동을 강조한 건 그런 연유에서다. 가정공동체 회복은 새마을운동이 여전히 효과적이란 점을 현 시대에도 증명하는 것이다.”
▼ 좀 더 부연하면.
“가정의 기본은 부부와 자녀다. 그런데 요즘엔 유달리 이혼율이 높고, 부부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가 많다. 그래서 부부 간 덕목을 새마을운동을 통해 실천할 수 있도록 확산하려 한다. 가족 간에 도덕의식과 윤리적 행동을 바탕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효(孝)’ 정신을 실천하고, 나눔과 배려로 따뜻하고 건강한 가정문화를 일궈나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가정새마을운동이야말로 새마을운동의 뿌리를 튼튼히 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꼬마전구 감듯 줄기만 화려하게 치장한다면, 그걸 뿌리 깊은 나무라 할 수 있겠나.”
▼ 그 밖에 역점을 둔 주요 사업은.
“시대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구상으로 국민정신 함양과 공동체운동을 중심으로 한 ‘제2 새마을운동’의 방향을 정립하려 한다. 제2 새마을운동은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 행복한 국민을 목표로 기존 새마을운동의 기본정신인 근면·자조·협동에 나눔·배려·봉사 등 이 시대에 필요한 사회적 덕목을 더한 것이다. 추진 방향은 문화·사회·경제·지구촌공동체운동 등 4대 공동체운동에 중점을 둔다. 우리가 46년 전 새마을운동을 시작해 나라를 이만큼 발전시킨 분들에 대해 감사하듯, 다음 세대도 50년 뒤 우리 세대에게 감사할 수 있게끔 지속가능한 새마을운동을 펼치자는 것이다.”
▼ 새마을운동과의 인연은.
“지역개발 전공자로서 주민자치와 지역발전, 거버넌스(governance, 協治),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인류의 지속가능성 등을 공부하면서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가져 지난 18년간 꾸준히 연구해왔다. 정작 우리 스스로는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데, 외국 학자들이 되레 새마을운동의 진면목을 연구하고 있더라. 그래서 흥미를 갖고 연구를 계속하면서 새마을운동이 다른 어떤 지역사회 발전 이론이나 사례보다 우수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정치색 빼고 재평가해야”
▼ 이전 집행부와 어떤 차별성을 보여줄 건가.“새마을운동을 새 이론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화해야 할 시기인 만큼 이젠 명망가보다 전문가가 필요하다. 챙길 건 챙기고 버릴 건 버리며 새마을운동의 현재화와 현지화를 하려 한다. 학계에서 새마을운동을 거론하지 않을 때부터 필요성을 느끼고 지금껏 연구해온 만큼 새마을운동을 통해 우리 국민과 나라의 격(格)을 높이고, 세계평화와 인류 공동의 복지실현을 이뤄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때 새마을운동을 개발도상국의 발전모델로 전 세계에 보급하겠다고 선언했듯, 새마을운동 경험을 전 세계와 더 적극적으로 공유할 시점이다.”
▼ 현재 중앙회가 당면한 문제와 그 해법은.
“열악한 재정 기반이 문제다. 새마을운동은 공익을 지향하므로 중앙·지방정부가 직접 담당하기엔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적 관리가 어려운 일을 중앙회가 대신함으로써 재정 기반을 키우려 한다. 예컨대 공유지 무단 점거나 쓰레기 무단 투기 등 사회 범죄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하고 감시하는 활동 등에서 지자체가 직접 하기 힘든 부분을 새마을운동 조직에 맡긴다면 적은 비용으로 몇 배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와 협약을 맺으려 한다. 새 조직을 만들어 공공부문 역할을 실행하는 것보다 이미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새마을운동 조직이 맡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나.”
▼ 새마을운동이 정치적 색채를 띤 것 아니냐는 시각이 없지 않다. 대중적 관심도 예전 같지 않은 듯하고.
“태동 배경이나 정치 상황 때문에 새마을운동을 관심 밖에 두는 이가 적잖다. 하지만 정치색을 배제하고 재평가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도 새마을운동을 칭찬했다. 제창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새마을운동을 치하했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께서도 새마을지도자를 상대로 연설했다. 근면·자조·협동이라는 기본정신의 맥락에서 볼 때 새마을운동은 그 어떤 정치와 이념, 종교적·문화적 차이로부터도 자유롭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 운동을 처음 시작한 게 새마을운동 조직이다. 어느 정도 진행하다 범국민적·범국가적 차원에서 전개해야겠다 싶어 운동 자체를 정부에 헌납했고, 그 결과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어느 시대, 어느 정부, 어떤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와 나라를 챙기고 지키는 게 새마을운동의 본질이다.”
‘없는 사람끼리’ ‘약한 사람끼리’
▼ ‘새마을운동 세계화’는 어떻게 추진되나.
“새마을운동은 국제사회에서 ‘더불어 잘사는 인류 평화공동체 건설’을 위해 활용될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 지구촌 빈곤 퇴치를 위한 모범사례이자 유엔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의 효율적 실천수단이기도 하다. 새마을운동 경험을 배우려는 많은 개도국의 초청교육 문의와 요구가 쏟아진다.
이런 지대한 관심은 새마을운동이 공적개발원조(ODA)와 차별화한 방식으로 각국의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얘기다. ODA는 주는 자와 받는 자로 이분돼 장기적으론 원조에 의존케 되는, ‘원조의 덫(aid trap)’과 같은 먹이사슬이 생겨 개도국의 자조 기반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원조국 처지에선 아무리 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원조의 피로감(aid fatigue)’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없는 사람끼리’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발휘해 잘살게 되는 실천논리이고, ‘약한 사람끼리’ 나눔·봉사·배려를 통해 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민주주의 덕목이라 그런 문제가 발생치 않는다. 지구촌새마을운동은 철저히 ‘(현지)주민에 의해, 주민을 위한, 주민의 의사결정’을 통해 이뤄지므로 모두가 함께하는 ‘가치사슬’을 만들 수 있다.”
▼ 새마을운동 세계화의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컨트롤타워가 약했던 건 사실이다. 이를 개선하려고 국무총리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산하에 협업 및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전담조직인 ‘새마을운동분과위원회’가 신설됐다. 행정자치부는 초기 단계에서 소규모 마을 위주로 시범마을 육성사업을 펼친다. 또한 초청연수 관리를 일원화하고, ‘통합 새마을교육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전문가 등이 참여해 표준교재와 매뉴얼을 마련한다. 외교부는 전국단위 패키지 사업을 추진하고, 시범마을 대상국과 마을 등 주요 사항을 시행계획 수립 때 협의하며, 사업 발굴과 선정 땐 재외공관과 사전협의해 추진한다.”
▼ 향후 계획은.
“젊고 유능한 국내외 새마을지도자 육성을 위해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 석·박사학위 과정을 갖춘 대학원대학을 개설해 지구촌새마을운동을 지속할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새마을운동 명예의전당’도 전국에 5곳 정도 건립해 지역사회 및 나라 발전에 힘쓴 국내외 새마을지도자와 선배 회원의 공로와 업적이 후손에게 영원히 전해질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새마을운동은 경제·사회·문화공동체에서 환경·평화공동체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론 풍요로워졌지만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나라라고 장담하긴 힘든 만큼, 새마을운동 조직은 시대의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풀뿌리 조직으로 앞장서겠다.”
특히 소 회장은 “새로운 국제개발 협력은 일방적인 한국의 도움이 아니라 한국과 함께한다는 의미의 ‘With Korea’라는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새마을운동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회발전운동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선지 언제나 새로워질 것을 요구받는다. 새로움은 기회일 수도, 결과일 수도 있다. 새 회장을 맞이한 중앙회의 행보에 한층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