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호

Interview

“상식 밖 수사, 여론재판 억울하다”

류원기 회장의 ‘여대생 하모 양 살인사건’ 항변

  • 최재필 | 뉴스웍스 기자 jpchoi@newsworks.co.kr

    입력2016-05-20 17: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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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부살인 아니라는 증언 많아”
    • “호화 수감? 사실과 다르다”
    • “피해자 가족에 배상금 8억 줬다”
    • “아내의 결백 지금도 확신”
    2002년 3월 발생한 ‘여대생 하모 양 살인사건’은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길자 씨는 법조인 사위와 그의 사촌동생인 여대생 하모(당시 22세) 씨의 불륜을 의심해 자신의 조카와 그의 고교동창에게 돈을 주고 하씨를 청부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하씨는 실종 열흘 만인 3월 16일 하남시 검단산에서 공기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윤씨는 2004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7년부터 유방암 등을 앓아 수차례 형 집행 정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윤씨가 이 처분을 받아내기 위해 의사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 받았다는 의혹이 보도됐다. 윤씨에 대한 여론의 공분이 일었다. 지난 2월엔 윤씨가 모범수 복역 교도소에서 특혜를 누린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류 회장은 최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특혜 수감 논란을 직접 취재한 몇 안 되는 기자라 내 말을 바르게 써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사건이 알려진 2003년 이후 언론 노출을 꺼려왔다. 이 사건은 사법제도의 틀 내에선 사실상 막을 내린 셈인데, 그는 “지금도 일부 언론이 마녀사냥 식으로 보도한다. 내가 아는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  



    진술 번복한 납치범

    ▼ 부인은 요즘 어떤가요.



    “몸이 더 안 좋아져서….”

    그는 심신이 지친 듯 말을 잘 잇지 못했다.

    ▼ 이 사건은 법적으로 종결됐는데….

    “법적으론 끝났지만 언론은 이 사건을 어제 일처럼 보도하면서 계속 여론재판을 하고 있지 않나요? 정말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류 회장은 “집사람이 사위의 불륜을 의심해 피해자를 미행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자를 납치하거나 살해하라고 청부하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어느 날 집사람과 사위가 부산에 함께 있는데 미행하는 사람이 집사람에게 전화를 했어요. ‘사위가 어느 골목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다’고 보고했어요. 집사람이 허위 보고를 한다면서 돈을 돌려달라고, 미행도 끝내라고 했어요. 미행하는 사람들은 당황했겠죠. 이들은 하양을 윽박질러 불륜을 자백하는 음성을 녹음한 뒤 이를 집사람에게 제공하면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해 하양을 납치한 것으로 보여요. 집사람은 하양의 납치와 살해엔 관여하지 않았어요.”

    하양을 살해한 납치범들은 경찰 최초 조사에선 윤씨가 살해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으나 두 번째 조사에서는 윤씨로부터 살해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을 바꿨다고 한다. 류 회장은 “아내가 청부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언이 많은데도 검찰은 여기에 눈을 감았다”고 주장했다.  

    “납치범 중 한 명은 ‘살해 사주를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의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내며 진술을 번복했어요. 이를 근거로 납치범들을 위증죄로 고소했죠. 담당 검사가 납치범들과 같은 교도소에 수감된 수형자들을 조사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납치범이 교도소 안에서 살해 지시를 받은 적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진술했어요. 그래서 검사가 위증 혐의로 기소 의견을 냈죠. 그런데 당시 검사장이 공소심의위원회를 열어서 기소 반대 4명, 찬성 3명으로 불기소 처분을 했죠.”

    류 회장은 위증죄 고소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대전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은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그 당부를 가려달라고 직접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다. 대전고법은 2008년 7월 류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뒤집고 “살인교사 시점에 의문이 든다”며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것. 그러나 법원은 하씨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복역 중인 납치범들이 이전 재판에서 살인교사 진술을 위증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류 회장은 “검찰이 내세운 핵심 증거는 사실상 납치범들의 진술뿐인데 이 진술이 오락가락한 것이다. 검찰과 법원 일각에서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보기에 이 진술은 허위 진술이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결국 원래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돌아갔다. 억울하다”고 말했다.



    “쌀 포대 잃어버리다니…”

    류 회장은 이외에도 검찰 수사 및 법원 판결과 관련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 살해 일시와 장소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납치범들은 2002년 3월 6일 새벽 5시 37분쯤 하씨를 납치한 후 새벽 6시 10분쯤 등산로 옆에서 하씨를 살해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는 사망 추정 시간을 ‘사체 발견일로부터 이틀 이내’로 추정했다. 사체가 발견된 날은 3월 16일.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망 추정 시간과 검찰 공소장의 사망 추정 시간이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윤길자 씨의 변론을 맡았던 문강배 변호사는 이 부분에 대해 “검찰은 납치범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했다. 살인범들이 살인 일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살해 시점을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을 검찰과 재판부가 무슨 이유에선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류 회장은 쌀 포대 총알 자국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 그의 설명과 재판 기록에 따르면, 당시 검찰은 납치범이 하씨 몸에 쌀 포대를 뒤집어씌우고 등산로 입구에서 70m쯤 올라간 지점까지 메고 가 얼굴 부분에 공기소총을 쐈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쌀 포대에는 총알 자국이 없었다. 국과수도 총알 자국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자 검찰은 “하씨의 몸 위쪽과 아래쪽으로 2장의 쌀 포대가 사용됐는데 국과수에는 아래쪽에 씌운 쌀 포대를 잘못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그렇다면 위쪽에 씌운 쌀 포대도 국과수에 의뢰해 조사하자”고 했다. 그러자 검찰은 “그 쌀 포대를 잃어버렸다”고 답했다고 한다. 류 회장은 “검찰의 주장을 입증해줄 결정적 물증인데 어떻게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느냐.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돈거래도 석연치 않다고 설명한다.

    “집사람이 납치범에게 5000만 원을 줬어요. 납치범은 자기 계좌에 그 돈을 넣어뒀어요. 살인청부 대금이 아니라 미행 대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수사 기록에 따르면, 납치범들은 집사람으로부터 어떻게 납치 및 살인을 청부받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어요.”

    윤씨가 납치범들에게 도피자금을 준 것은 윤씨에게 불리한 정황이다. 이에 대해 류 회장은 “당시 내가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집사람은 재벌이 사위의 불륜을 의심해 미행을 사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론이 악화될까 우려해 돈을 준 것 같다. 어찌 됐든 오판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암 걸렸고 한쪽 눈 잃어”

    윤길자 씨는 수감 중 형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아내기 위해 의사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허위 진단서를 받아 제출했다는 의혹에도 휩싸였다. 그러나 세브란스병원 주치의 박모 교수가 윤씨로부터 허위 진단서 발급을 대가로 1만 달러를 받은 혐의에 대해 서울고법은 2014년 10월 무죄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류 회장은 최근 몇몇 언론에서 보도한 ‘최신식 교도소 수감’ ‘호화 병실 사용’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지난 3월 A 방송사가 내보낸 ‘청부살해 사모님, 최신식 교도소 수감’ 뉴스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가 4월 22일 정정 및 반론 보도를 결정한 조정합의서였다. 이 합의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A 방송사는 3월 14일 윤길자 씨가 의사에게 1만 달러를 주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아 병원에서 6년 동안 호화생활을 했고 현재는 H직업훈련교도소에 수감되는 등 특혜 의혹이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사실 확인 결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윤씨가 병원에 입원했던 기간은 6년이 아니라 허위 진단서에 의해 집행 정지된 29일을 포함해 49개월 24일이었고 윤씨 배우자가 의사에게 미화 1만 달러를 교부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또한 윤씨가 수감된 H직업훈련교도소는 현재 직업훈련을 받지 않는 일반 수형자 및 무기수도 상당수 수감되어 있고, 본인은 어떠한 특혜도 받지 않았다고 알려왔습니다.”

    △대부분의 입원 기간이 허위 진단서에 의한 것이 아니고 △허위 진단서 발급을 대가로 의사에게 거액을 주지 않았으며 △특혜로 직업훈련교도소에 수감된 게 아니라는 것이 류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실제로 집사람은 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고 한쪽 눈이 실명된 상태였다. 그래서 형 집행 정지를 신청했는데 몇몇 언론은 한쪽 면만 보고 선정적 보도를 일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호화 병실에 기거했다’는 보도에 억울해했다.

    “무기징역을 받은 수형자가 2인실이나 4인실이나 6인실에서 일반 환자들과 같이 입원하면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엄청 싫어합니다. 검찰과 병원도 일반 환자들과 분리되면 좋겠다는 입장이었어요. 그래서 1인실에 입원한 겁니다. 형 집행 정지 시 거주지는 병원과 자택이었어요. 자택에 있다 병세가 악화되면 입원실이 나지 않으니 할 수 없이 특실에서 치료받다 1인실이 나는 대로 옮겨간 것을 호화 병실이라 하며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불가피한 부분에 대해서는 귀기울여주지 않은 채 호화 병실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했어요.”



    “청담동 빌라 팔아서…”

    ▼ 억울하다고 느꼈다면 왜 그때그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나요.

    “몇몇 언론은 자기들이 이미 설정해놓은 틀에 맞춰 사건을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은 ‘재벌의 일탈’이라는 특정 프레임으로만 이 사건을 다뤘죠. 그러니 저희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있는 그대로 반영해주지도 않았어요.

    물론 우리도 잘못한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싶어요. 그러나 언론에서 그려낸 모습이 실제 모습은 아닙니다. 이들은 저를 재벌이라고 지칭했지만, 사실 회사 매출 규모로 볼 때 저는 중견기업가라 부르기도 힘들어요.”

    ▼ 그럼에도 이렇게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

    “몇몇 언론이 너무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제 아내는 살인을 청부하지 않았음에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어요. 거기에다 계속 사회적 명예를 침해받고 있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하고 싶은 말, 외면당한 진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 최근 피해자 유족이 국민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는데요.

    “물론 피해자가 사망한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건 아닙니다. 돈을 주고 미행을 시킨 일은 무조건 잘못한 거니까요. 하지만 1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젠 좀…. 피해자 유족에게 배상금도 드렸고요.”  

    ▼ 배상금이란 건 무슨 의미입니까.

    “사건 초기 피해자 유족 측에서 상당한 액수의 배상금을 요구했어요. 너무 큰 액수라 저희가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결국 손해배상소송으로 진행됐어요. 법원은 저희에게 손해배상금으로 8억여 원을 피해자 유족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어요. 변호사 말로는 살인에 의한 손해배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배상금 규모론 매우 큰 편이라고 해요.

    저는 당시 120평짜리 강남 청담동 빌라를 팔아서 그 돈을 마련해 피해자 유족에게 드렸어요(당시 물가 수준으로 볼 때 8억여 원이라는 돈이 적은 돈이 아니었다는 뜻으로 들렸다). 돈으로 보상했으니 됐다는 뜻이 아니라, 저도 제 가족의 일원이 저지른 일에 대해 무겁게 책임을 느꼈고 해야 할 도리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진실은 그 너머에”

    류 회장은 “집사람이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뒤(재정신청 재판 후) 자살을 시도했다. 구급차를 타고 교도소로 재수감될 때 ‘단 하루라도 좋은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 ‘좋은 세상’?

    “‘진실은 이긴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요. 집사람이 미행을 시키고, 어떤 이유든 젊은 분이 죽게 된 것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집사람은 살해 사주를 안 했습니다. 특히 집사람을 조사한 법조계 사람들은 다 압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 더 노력할 힘도 없고 남은 평생을 한스럽게 살다 죽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안타깝고 한이 남습니다.”

    사위를 의심해 애꿎은 여대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윤씨를 옹호하긴 어렵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이성과 상식에 입각해볼 때, 검찰의 공소장과 법원의 판결문에도 불구하고, 윤씨의 살인청부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 살해 시점은 왜 부검 결과와 터무니없이 안 맞고, 쌀 포대는 왜 없어졌으며, 납치범은 왜 살인청부 진술을 나중에 번복했을까. 검찰도 이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류 회장은 “진실은 가끔 판결문 그 너머에, 뉴스 그 너머에 존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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