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제트여객기 2種 수백 대씩 수주
- 蘇 지원 끊긴 후 전투기 독자 개발해 기술 축적
- 핵심 부품 국산화 R&D에 10조8000억 투입
- 中 항공기 정비부문 亞太 1위
- 정부가 항공산업 장기 프로젝트 주도
블랙이글스 이벤트를 시작으로 개막된 싱가포르 에어쇼는 2년마다 열리는 세계 3대 에어쇼의 하나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항공산업 전시회다. 올해엔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1000여 개 항공업체와 각국 정부 무기획득부서 책임자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그런데 정작 에어쇼가 시작되자 우리의 T-50 계열 항공기는 각국 항공산업 바이어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세계 민영 항공기업계의 양대 축인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두 회사는 2014년 에어쇼에서 300억 달러(약 35조850억 원)에 달하는 수주 계약을 챙겼다. 하지만 올해 보잉은 중국 민간 항공사 오케이(奥凱)와 737 12대, 액수로는 13억 달러(약 1조5200억 원) 계약에 만족해야 했다. 에어버스도 필리핀 항공사와 대형 항공기 A350-900 6대를 18억 달러(약 2조1050억 원)에 계약하는 데 그쳤다.
올해 에어쇼에서 가장 주목받은 항공기는 일본 미쓰비시(三菱)의 MRJ와 중국상용항공기그룹(COMAC, 코맥)의 ARJ21, C919다. 세계 여객기 시장은 몇몇 절대강자가 나눠 갖고 있다. 중소형은 브라질의 엠브라이어와 캐나다의 롬바디아, 대형은 보잉과 에어버스가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런 마당에 코맥과 미쓰비시가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ARJ21, C919 인기몰이
미쓰비시는 싱가포르 에어쇼가 개막하자마자 미국 항공기 임대업체 에어로리스에 MRJ 20대를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MRJ는 일본의 첨단 기술력을 결집해 만든 최초의 제트 여객기로, 지난해 11월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길이 35m, 좌석 70~90석, 항속거리(주어진 조건에서 이륙 순간부터 탑재된 연료를 전부 사용할 때까지의 비행거리) 3400㎞로 근거리 노선에 적합하다. 미쓰비시는 에어쇼 이전에 이미 전일본공수(ANA)와 미국 항공사 등으로부터 407대를 주문받았다. 납품은 양산체제를 갖추는 2018년부터 이뤄진다.이번 에어쇼를 달군 또 하나의 주인공은 코맥이다. 코맥은 에어쇼 전시장 한가운데에 미쓰비시보다 2배 큰 전시공간을 확보했다. 전시장에는 거대한 ARJ21 모형기 3대와 C919 모형기 1대를 설치했다. 에어쇼 개막 직후 코맥은 타이 항공사, 이란과 콩고공화국 정부로부터 ARJ21을 주문받았는데, 정확한 수주 내역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에어쇼 개막 전 코맥은 310대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ARJ21과 C919는 중국이 자체 개발한 최초의 제트 여객기다. ARJ21은 ‘21세기를 위한 첨단 역내 제트기(Advanced Regional Jet for the 21st Century)’를 뜻한다. 길이 33.4m, 좌석 78~90석, 항속거리 2220~3704㎞ 등의 제원을 지녔다. 2002년 중국 정부의 개발 승인을 받아 2008년 11월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최근 양산체제를 갖췄다. 지난해 초 코맥은 중국 민용항공국의 운항자격을 취득해 11월 29일 첫 상용기를 청두(成都)항공에 인도했다. 지금은 산둥(山東)항공도 여객기를 인수해 시험운항 중이다.
C919의 ‘C’는 ‘차이나’와 ‘코맥’의 영문 첫 글자에서 따왔다. 중국을 대표하는 대형 항공기라는 의미다. 순항속도 마하 0.785, 길이 38.9m, 하중 20.4t, 좌석 158~190석, 항속거리 4075~5555km로 이는 보잉 737, 에어버스 A320과 비슷한 제원이다.
지난해 11월 2일 코맥은 상하이(上海) 본사에서 C919 출고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일본보다 한발 앞서 대형 여객기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C919는 오는 9월부터 시험비행에 들어갈 예정. 코맥은 2008년 11월 C919 개발을 시작했고, 이 프로젝트를 위해 국내외 47개 연구소에서 468명의 연구원을 선발했다.
C919가 시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0년 11월 주하이(珠海) 에어쇼에서다. 이 에어쇼 때만 100대 구매계약을 체결한 코맥은 지난 3월 초까지 517대의 추가 사전주문을 받았다. 에어차이나(國航), 동방항공, 남방항공, 하이난(海南)항공 등 중국 4대 항공사가 구매를 주도했지만, 고객 리스트에는 세계 최대 항공기 임대업체 지카스(GECAS), 독일 신생 항공사 푸런, 태국 항공사 시티에어웨이 등도 포함됐다.
800m 날아간 복엽기
중국 항공산업은 어떻게 이처럼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을까. 그 초석을 다진 선각자는 재미화교 펑루(馮如)다. 1903년 펑루는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로 동력비행기를 조종해 비행한 소식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접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펑루는 자신도 비행기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화교들의 후원을 받아 1909년 미국 오클랜드에 광둥(廣東)비행기회사를 차렸다. 1909년 9월 그가 조종한 복엽기(複葉機)가 대지를 박차고 힘차게 떠올랐다. 이 비행기는 수십 초를 날다가 이륙지점에서 800m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중국인이 개발하고 조종한 비행기가 최초로 하늘을 난 기록이다.펑루의 비행기는 이듬해 안정적인 이착륙이 가능해졌다. 수많은 관중을 모아놓고 묘기 비행을 펼칠 정도였다. 1911년 펑루는 많은 비행기 제작사와 항공사의 유혹을 뿌리치고 조국으로 돌아와 신해혁명군 비행대장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1912년 8월 광저우(廣州)에서 묘기 비행을 벌이던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그는 28세에 불과했다.
펑루는 요절했지만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중국 항공산업은 이후 발전가도를 달렸다. 1913년 중국 최초의 조종사 양성기관인 난위안(南苑)항공학교가 베이징(北京)에서 문을 열었다. 난위안학교는 1928년 폐교될 때까지 167명의 조종사를 배출했다.
1920년은 항공산업 발전사의 전환점이 된 해다. 먼저 베이징-상하이 첫 정기 노선이 개설됐다. 뒤이어 전국 각지에 항공학교가 설립됐고, 중국 최초의 항공잡지 ‘항공’이 창간됐다. 조종사와 정비사들은 중화항공협회라는 전문직단체를 조직했다. 1924년 소련과의 제휴로 조직을 개조한 국민당은 국민혁명군 산하에 공군을 창설했다. 정부 부처로 민간항공국도 설치했다. 1928년 국민당은 각지의 군벌(軍閥)을 토벌해 대륙을 평정했다. 이듬해엔 중국 최초의 민간항공사인 국가항공공사(CNAC)가 설립됐다.
CNAC는 중국 철도청과 미국 커티스(Curtiss)사가 각각 55%와 45%의 지분을 가진 합작회사였다. 설립 후 오랫동안 상하이-청두, 상하이-광저우, 난징(南京)-베이징 등 여러 국내 노선에 취항했다. 하지만 운영주체 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서 커티스가 빠지고 그 자리에 팬암(Pan-Am)항공이 참여했다. 이에 따라 1945년부터는 상하이-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국제 노선이 개설됐다. 1948년 CNAC는 세계 12대 상업항공사로 성장했지만, 이듬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운명을 다했다. CNAC 국제선 지분은 미국 시빌항공이 사들여 합병했다.
젠-8 개발로 ‘自主創新’
사회주의 정권은 항공산업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모든 민항사를 해체하고, 민간항공국은 민용항공국으로 이름을 바꿔 공군 산하에 뒀다. 무엇보다 소련의 지원 아래 전투기 개발에 중점을 뒀다. 중국은 1930년대 이래 단엽기(單葉機) 개발에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모든 항공기를 미국, 독일, 영국 등에서 수입해야 했다.이후 중국은 냉전 상황을 적극 활용, 소련의 지원으로 미그(MIG)기를 개조해 젠(殲)기를 개발했다. 1956년 7월 선양(瀋陽)비행기제작소가 제작한 젠-5가 한 공군기지의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비행기 옆면에는 중국 최초의 초음속기를 의미하는 ‘중(中)0101’ 로고가 선명했다. 젠-5는 소련으로부터 엔진 등 대부분의 부품을 조달받아 조립한 데 불과했다. 한데 변변한 전투기 한 대 없이 중일전쟁과 국공(國共)내전을 치른 인민해방군 처지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 ‘대사건’이었다. 1950년 참전한 6·25전쟁 당시 중국군은 미 공군 폭격기의 폭탄 세례에 엄청난 인명손실을 입은 바 있다.
그러나 몇 년 뒤 위기가 닥쳐왔다. 1950년대 말 중소분쟁이 일어나면서 1960년 소련이 원조를 중단한 것이다. 소련은 중국에 파견한 군사고문단과 과학기술자도 철수시켰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중국은 소련인들이 놓고 간 도면을 바탕으로 1964년 젠-6, 1967년 젠-7을 개발했다. 1969년 시험비행에 성공한 젠-8은 미그기를 ‘복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자체 설계한 기체와 독자 개발한 엔진을 장착, 이른바 ‘자주창신(自主創新, 외국에 기대지 않고 독자기술로 혁신을 이룸)’을 달성했다. 젠-8은 1980년 일선에 보급돼 2011년 완전히 퇴역할 때까지 오랫동안 중국을 대표하는 전투기로 활약했다.
1978년부터 시작된 개혁·개방은 중국 항공산업의 면모를 일신했다. 먼저 공군의 부속기관으로 격하된 민용항공국을 1980년 국무원 산하로 편입했다. 관리감독기구와 항공사를 병행하던 민용항공국을 개조했다. 이에 따라 민용항공국은 1987년 6개 지역관리국으로 분리됐고, 이듬해 단일 항공사 체제는 6개 항공사로 나누어졌다. 이때 설립된 항공사가 베이징에 본사를 둔 에어차이나, 상하이의 동방항공, 광저우의 남방항공, 청두의 서남항공 등이다. 당시에는 에어차이나가 국책 항공사로 모든 국제 노선을 수년간 독점했다.
비행기 생산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는 전투기를 생산하는 데 치중했지만, 1980년대 들어 수송기 설계와 개발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비행기 개발을 독점하던 선양제작소 단일 체제도 다원화됐다. 청두에 611연구소가 세워져 전투기 설계를 분담했다. 민항기 연구와 설계는 상하이와 시안(西安)에서 진행됐다. 비행기 제작과 조립은 시안, 하얼빈(哈爾濱), 스자좡(石家庄) 등지에 조성된 산업기지에서 이뤄졌다.
이 가운데 시안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2004년 옌량(閻良)구에 중국 최초로 설립된 국가항공첨단기술산업기지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덕분이다. 시안항공산업기지에는 시안항공기공업공사(XAC), 시안항공기엔진공사(XAEC) 등 유수의 항공기 제조회사가 포진했다. 중국 신규 항공기의 3분의 1이 여기에서 생산된다. 2008년 코맥이 설립되기 이전까지 모든 군용 수송기와 프로펠러 여객기의 제작을 이곳에서 도맡았다.
윈(運)-7 승객 51명 즉사
기지는 총면적 40㎢, 입주 기업 250여 개, 연구개발 인력 2만6000명 등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대표 기업인 XAC는 3㎢ 부지에 2만여 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1958년에 문을 연 XAC는 군용 및 민영 항공기를 제작하는 국유기업. 초창기에는 수송기 개발에 주력했지만, 선양제작소가 도맡던 전투기 제작 업무의 상당 부분을 이양 받았다.
XAC가 생산한 대표적인 전투기가 젠훙(殲轟·JH)-7이다. 젠훙-7은 젠 시리즈와 달리 전폭기 성능까지 갖춘 다목적 전투기다. 1973년 개발에 들어가 1988년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1993년 일선 배치됐다.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젠훙-7의 성능에 반해 중국에 제공 요청을 했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XAC가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민항기 윈(運)-7과 신저우(新舟)-60의 실패는 XAC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윈-7은 1970년 개발해 1984년 시험비행에 성공한 중국 최초의 상용 여객기다. 1986년 정식 취항을 개시해 최다 60명의 승객을 태웠다. 이후 꾸준한 기술 개발을 통해 업그레이드 버전을 잇달아 내놓았다. 수송기로도 각광받아 지금껏 인민해방군에서 사용하고 있다. 신저우-60은 XAC가 윈-7의 성능을 대폭 향상시켜 개발한 프로펠러 여객기다. 1999년 취항한 이래 2005년부터는 중국 최초로 수출도 했다.
그러나 2000년 6월 후베이(湖北)성 언스(恩施)에서 우한(武漢)으로 가던 우한항공의 WU343(윈-7 기종)이 기상악화로 추락했다. 승무원과 승객 51명은 모두 즉사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던 중국 당국은 운항 시스템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 사고 후 윈-7 여객기는 생산을 중단했다.
신저우-60도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켰다. 추락사고는 없었지만, 조종장치와 브레이크 문제가 심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05년 이후 수출된 신저우-60 57대 중 최소 26대는 안전 우려와 정비 문제로 격납고에 보관돼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14조 투입해 항공 인프라 구축
지난해 하반기 중국 정부는 몸집이 너무 커진 AVIC의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지난 3월 AVIC 내 엔진 제조기업 중항동력(動力), 중항동공(動控), 중항중기(重機) 등과 코맥의 엔진 개발부서 등 40여 개 기업을 통폐합해 총자산이 1450억 위안(약 25조9960억 원)에 달하는 중국항공엔진그룹(AAEC)을 설립했다. AAEC는 항공기 엔진기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그런데 세계 항공산업이 AAEC의 행보를 주목하는 건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이 자체 엔진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 사실 ARJ21과 C919는 온전한 중국산이라고 하기 머쓱하다. C919은 부품 국산화율이 50%에 못 미친다.
더욱이 핵심 부품은 거의 미국과 유럽 업체에 의존한다. 가장 중요한 엔진은 제너럴일렉트릭(GE)과 프랑스 합작사 CFM인터내셔널에서 만든 터보제트 엔진이다. 운항통제 시스템, 비행기록시스템 등도 GE 제품이다. 통신·감시시스템은 록웰 콜린스 제품이다. 이처럼 17개 외국 업체가 핵심 부품을 공급한다. 당초 중국 정부는 이 기종에 자체 개발 엔진을 장착하려 했지만 기술력 한계를 실감하고 글로벌 협력체계로 돌아섰다.
엔진과 핵심 부품 국산화를 이뤄내지 못하면 지속적인 성장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경제일간지 ‘21세기경제보도’는 “과거에는 한 기업이 기체 개발에 착수하면 그에 맞는 엔진 개발이 시작됐다”면서 “이 과정에서 기체 생산이 취소되면 엔진 개발 작업도 백지화하면서 기술력을 쌓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역량을 AAEC 한 곳에 집중시킴으로써 기술력을 끌어올리려 한다. 중국 정부는 향후 20년간 엔진, 재료, 부품, 시험장비 등의 R&D를 위해 600억 위안(약 10조757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 민용항공국은 “올해 770억 위안(약 13조8600억 원)을 투자해 대대적인 항공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베이징, 청두, 칭다오(靑島), 샤먼(廈門), 다롄(大連) 등지에 11개 신공항을 건설하고, 52개 공항을 확장하겠다는 것. 이 가운데 베이징 제2공항은 2014년 12월 착공해 2019년 완공 예정이다. 106만㎡ 부지에 무려 840억 위안(약 15조5400억 원)의 공사비를 쏟아붓고 있다. 활주로가 7개나 돼 연인원 1억 명의 승객을 소화하게 된다. 베이징 제1공항인 서우두(首都)공항은 현재 연 8200만 명이 이용해 미국 하츠필드 잭슨 공항에 이어 세계 2위다.
중국 정부가 공항 투자에 관심을 두는 것은 허브 공항을 건설해 항공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다. 허브 공항이 많아야 항공사가 발전하고 여객기 수요가 늘어난다. 게다가 항공산업은 광범위한 전후방 연관 업종을 추동하는 종합제조업이다. 기체 설계, 부품 개발과 생산, 동체 제조와 조립, 항공기 판매와 정비, 공항 설립과 운영, 조종사와 승무원 교육, 구매 할부금융과 항공기 리스, 사고대비 보험 등 관련 업종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항공업은 조선해양업에 견줄 만큼 경제적 효과가 큰 산업이다.
항공업 사슬체계 만든다
항공기 정비 부문도 주목된다. 중국은 이 업종에서 뛰어난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췄다. 항공산업에서 안전은 절대선이다. 동체와 부품을 사용 가능 상태가 유지되도록 끊임없이 수리, 개조, 검사해야 여객기와 화물기를 쉴 새 없이 운항할 수 있다. 중국은 2000년부터 아시아·태평양지역 항공기 정비업에서 2위를 이어가다 2010년 1위로 올라섰다. 그 이전 수십 년간 부동의 1위는 싱가포르였다. 이에 비해 한국은 국적기 정비도 벅찬 수준이다.
지난해 5월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업(中國制造) 2025’를 발표했다. 향후 20년간 3단계로 나눠 10대 산업의 구조를 고도화하겠다는 장기 프로젝트다. 그 하나가 항공·우주장비산업이다. 항공 분야에서는 △대형 항공기 개발과 생산 △중형 헬리콥터 생산 △중소형 항공기·헬리콥터·무인기 등의 상용화 △터보프롭 엔진과 고(高)바이패스비 터보팬 엔진 개발 △항공기 탑재장비 및 시스템 개발 등을 구체적인 목표로 내걸었다. 산업 사슬체계를 구축해 미국,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항공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것이다.
산업 혁신의 흐름은 전 세계적 조류다. 독일 ‘Industry 4.0’, 미국 ‘Making in America’, 한국 ‘제조업 3.0’ 등 각국은 앞다퉈 청사진을 선보였다. 세계 최대 제조업 대국인 중국도 이 대열에 합류해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차세대 먹거리 산업을 선정했다. 중국이 꼽은 10대 산업에는 항공·우주장비산업 외에 △차세대 정보기술 △고정밀 수치제어 및 로봇 △해양장비 및 첨단기술선박 △선진 궤도교통설비 △에너지 절약 및 신에너지 자동차 △전력설비 △농업기계장비 △신소재 △바이오 의약 및 고성능 의료기기 등이 포함됐다.
중국은 이처럼 국가의 강력한 주도 아래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와 자본 유치, 엄청난 자원과 인력의 활용 등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주도한다. 해외 글로벌 기업들과 합작해 선진 기술을 습득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부족한 기술력을 인정하되, 노하우를 쌓은 뒤 독자 개발에 나선다.
이런 노력을 통해 중국은 항공산업에서만 매년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와 함께 과거 싸구려 상품을 박리다매로 수출하던 ‘세계의 공장’에서 ‘첨단산업의 총아’로 탈바꿈하고 있다. 세계 무대 진출을 본격화한 중국 항공산업이 어디까지 날아오를지 주목된다.
인터뷰황재원 KOTRA 시안무역관장
◈ “여객기 개발, 공항 확대로 항공굴기”
4월 20일 시안에서 황재원 KOTRA 시안무역관장을 만나 중국 항공산업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황 관장은 1995년 KOTRA에 입사한 뒤 15년 동안 다롄, 칭다오, 샤먼, 베이징 등지에서 일한 중국 산업·시장 전문가. 2009년에는 지린(吉林)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중국이 잇달아 중대형 여객기를 개발했다. 국내외 항공사가 이런 수요를 흡수할 여력이 있을까.
중국 민용항공국도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앞으로 20년간 중국 내 각종 여객기 수요가 1만~1만2000대에 이르고 항공산업 규모는 2조 위안(약 358조56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했다. 코맥은 20년간 2000여 대를 판매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는 1조 위안(약 180조 원) 규모로 중국 전체 민용항공기 시장의 절반에 해당한다. 중국이 제트 여객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자국의 이런 황금시장을 외국 기업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 중국은 일본보다 먼저 제트 여객기를 시장에 내놓아 충격을 줬다.
“코맥은 올해부터 진행하는 C919 시험비행이 끝나면 미국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운항안전허가를 받을 예정이다. C919 개발은 중국 항공산업과 제조업이 업그레이드됐음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초대형 여객기 C929도 개발 중이라는 점이다. C929는 항속거리가 훨씬 길고 최다 35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다. C929 개발에 성공한다면 중국은 미국의 보잉, 유럽의 에어버스가 양분하던 대형 민항기 시장을 삼분하게 된다.
일각에선 안전성 문제 때문에 중국이 보잉, 에어버스와 경쟁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고속철도의 사례에서 보듯 중국은 방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응용기술을 시도해 품질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능력을 갖췄다. 에어버스와 보잉의 투자는 중국 항공산업의 기술 수준을 높이고, 중국산 대형 여객기 개발에도 큰 자극이 될 것이다. 에어버스는 톈진(天津)에 조립공장을 설립해 가동했고, 보잉도 저장(浙江)성 저우산(舟山)에 투자할 예정이다.”
▼ 중국 정부가 전국 각지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중국은 내년부터 시작되는 13차 경제개발계획 기간에 66개의 새 공항을 짓기로 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공항은 현재 206개에서 2020년 272개로 늘어난다. 13억 인구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국내 각지와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국제 노선 개설도 서두르고 있다. 특히 국제 노선이 부재한 2~3선 도시, 철도로 접근하기 힘든 오지에 공항을 건설해 발전을 촉진하려 한다. 여객기 개발, 그리고 공항 확대 및 노선 개발을 양 날개로 ‘항공굴기(航空崛起)’를 본격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