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민주당 L의원 발기부전약 돌리다 적발”
- “대선주자급 K의원도 수사선상”
- 정치권 ‘얼음’…朴대통령 비난 급감
- ‘정운호 게이트’ 뜨면 선거수사 실종?
박준영 국민의당 의원(전남 영암·무안·신안)이 내놓은 해명이다. 박 의원은 신민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맡은 김모 씨로부터 모두 3억6000만 원을 받고 비례의원직을 약속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를 받고 있다. 그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일부 자금이 박 의원의 부인에게 흘러들어간 정황도 포착했다고 한다. 박 의원의 부인은 “돈인 줄 모르고 조그마한 박스를 받은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풍문 듣고 물고 늘어져”
검찰은 4·13 총선 두세 달 전 풍문을 입수해 내사했다고 한다. 계좌 추적 등을 통해 김씨가 대가성 돈을 건넸다고 해석할 수 있을 만한 사실을 확인했다. 호텔 명의로 3억6000만 원이 급히 대출된 점도 알아냈다.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풍문을 듣고 나서 물고 늘어진 끝에 김씨를 구속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김씨는 전남 강진 출신으로 수도권에서 관광호텔을 운영하던 재력가다. 정치계 입문을 꿈꿨다고 한다. 서울시의원을 지내기도 했지만, 서울 구청장과 전남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낙마했다. 그러자 당 사무총장직을 맡아 박 의원을 밀어준 게 아니냐는 추정이다.
“박 의원과 별 인연이 없던 김씨가 신민당으로 가는 것을 보며 다들 ‘왜 그러지?’라고 했다. 지금 보니, 아무 조건 없이 간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강진 출신 한 정치인)
검찰은 김씨의 진술도 받아냈다고 한다. 또한 박 의원의 회계 담당자 등 4명을 구속했다. 박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는 영예를 누리자마자 위기로 몰렸다. 여의도 정가에선 ‘총선 위에 총선수사’라는 말이 나온다. 총선에서 당선된 것만으론 안 되고 선거사범 수사를 무사히 통과해야 비로소 진정한 국회의원이 된다는 뜻이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300명의 3분의 1에 달하는 98명에 대해 수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20대 의원이 금배지를 잃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검찰은 신속하게, 그리고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 박준영 의원 수사는 20대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에게 본보기가 된다. 검찰이 ‘고소·고발된 내용만 수동적으로 수사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진실을 파헤친다’고, ‘걸리면 여든 야든 중진이든 초선이든 아주 피곤해진다’고 암시하는 것으로 비친다.
새누리당 20대 의원 중에선 황영철 의원이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홍일표 의원과 박찬우 의원은 선거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받았다. 김종태 의원도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복당 가능성이 있는 이철규 의원과 장제원 의원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경북지역 수사 이어질 듯
친박근혜계의 최고 실세인 최경환 의원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경북선관위는 경북 경산의 한 별정우체국장, 시의회 의장, 당 운영위원을 선거법상의 기부행위 제한 위반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하면서 최 의원의 관련성 여부도 함께 수사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더불어민주당 20대 의원 가운데 김진표 의원은 쌀을 기부한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았고 강훈식 의원도 수사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명된 의원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철규 의원의 경우 검찰은 이 의원의 선거캠프 관계자가 전화 등으로 사전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의심한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은 “한 자원봉사자가 개인적으로 이 후보를 돕고자 한 것으로, 민감한 사안이 결코 아니다”라는 취지로 설명한다. 최경환 의원 측은 “관계없는 행사에 인사차 들렀을 뿐이다. 강력한 경쟁후보도 없는 상황에서 법을 어겨가며 선거운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팀은 선거사범 수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취재했다. 경기도 지역구의 더민주당 L의원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70대 유권자에게 발기부전 치료제를 건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색적인 선물을 받은 이 유권자가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녀 금세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이후 새누리당 후보 측의 한 지지자가 L의원을 고발했다.
검찰은 발기부전약을 받았다는 유권자를 불러 조사했는데, 그에게서 “L의원이 직접 건네는 약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L의원이 준 약은 8개로, 개당 3000~4000원이어서 시가 2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검찰은 L의원이 이 약을 다른 사람에게도 배포한 흔적은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기소해봐야 벌금이 당선무효형(벌금 100만 원 이상이면 국회의원직 상실) 미만인 수십만 원 정도일 가능성이 있어 처리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취재 결과,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K의원도 검찰 조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K의원의 지지자가 식사 자리를 만든 뒤 K의원을 불러 인사시킨 것이 문제 소지가 됐다는 전언이다. K의원은 먼저 자리를 떠났고, 수십만 원이 나온 식사비용은 지지자가 지불했다고 한다. 해당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는 당시 식당 CCTV를 확보했다. 지지자가 식사비를 지불하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는데, 관련 자료를 건네받은 검찰은 K의원의 지시나 관여 여부도 확인 중이라고 한다.
검찰은 특히 경북지역에서 선거법 위반 수사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검찰 관계자는 “새누리당의 압승이 예상되던 경북에서 공천 잡음이 많았다. 이 때문에 내부 제보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칠링 이펙트…말을 아껴라!
일부 20대 의원의 경우 “검찰이 당선무효형을 받게 하려고 작정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울산지검은 무소속 윤종오(울산 북구) 의원이 선거운동 기간에 공식 선거사무소가 아닌 사무실에서 선거 업무를 처리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윤 의원과 선거사무장의 자택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이들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했는데, 압수수색을 세 차례나 벌였다.검찰과 정치권 주변의 일부 인사들은 “윤 의원이 통합진보당 출신이라 검찰이 윤 당선인에게 집착하는 것 아니냐”라고 의문을 품는다. 대검찰청은 “혐의가 있어 수사하는 것일 뿐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선거 수사에 능통한 한 검찰 관계자의 설명은 다르다.
“검찰 공안 라인의 수장은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이다. 정 부장은 신참 검사 시절부터 운동권 세력을 주로 수사했고, 간부가 된 뒤로도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는 역사적인 일에 앞장섰다. 현 공안 라인에 통진당 세력은 척결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대검 공안 관계자도 “통진당 출신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석기 전 의원의 RO(지하혁명 조직) 참석 인물 전원을 확인하지 못한 만큼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종오 의원 수사는 녹록지 않은 분위기다. 울산지검 관계자는 “세 차례나 압수수색을 나갔는데, 한 번에 (증거를) 확보했으면 또 나갔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든 윤 의원을 기소하기 위해 엄청 노력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여의도 정치권에선 “검찰의 선거사범 수사로 20대 의원들이 ‘얼음’이 됐다”는 말이 나돈다. ‘수사가 한창인 민감한 시기에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 한마디 했다가 훅 갈지 모른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친박근혜계 당선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비박계와 야당 소속 상당수 당선인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가급적 삼가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4월 26일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무소속 20대 의원들의 새누리당 복당 문제에 관련해 “새누리당이 앞으로 안정되면 그때 판단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유 의원에 대해선 “자기 정치를 한다고 대통령을 하나도 도와주지는 않고 더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굉장히 비애 같은 것을 많이 느꼈다”며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유 의원의 빠른 복당을 주장하던 비박계 당선인들은 박 대통령의 이런 말에 별다른 반박을 내놓지 않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대통령과 비박계가 각자 자기 말만 하는 분위기다. 총선 수사로 인한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 위축효과) 아니겠나.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의원들이 대통령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고 말했다.
“대법원 말 반신반의”
그러나 검찰 일각에선 “당선무효 건수가 매우 적을 수 있다”고 냉정하게 바라본다. 다음은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19대 총선 때 입건된 당선인은 79명인데 이 가운데 대법원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내놓은 사람은 10명이다. 그 비율(12.6%)을 이번 20대 총선 선거사범에 단순 적용하면 12명 정도가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그동안 선거사범의 주된 유형이 금품 제공에서 여론 조작으로 달라졌다. 여론 조작은 상대적으로 형량이 가볍다. 따라서 이번엔 당선 무효형 선고가 19대 총선 때보다 훨씬 적을지 모른다.
검찰은, 지명도가 높아 부담스러운 상대의 경우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다소 부족하면 기소 여부에 관한 결정을 미룰 것이다. 이로 인해 김수남 검찰총장이 천명한 것과 달리 총선 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법원에 대해서도 흥미 있는 이야기를 했다. 법원은 “최대한 빨리 선거사범 재판을 끝내겠다”고 밝혔는데 검찰 일각에선 반신반의한다는 것이다.
검찰의 ‘밸런스 본능’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독립된 재판부는 위에서 시킨다고 그대로 따르는 조직이 아니다. 또한 1, 2심 재판부가 신속하게 판결한다고 해도 정작 대법원이 사건을 붙들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도 우리지만, 대법원은 진짜 정치 고수(高手)다.”총선 결과가 여소야대로 나온 것도 변수다. 검찰은 정치인 관련 수사에 ‘여야 간 밸런스’를 맞추려 하는 것으로 비쳐 왔다. 좋게 말하면 ‘정치 중립’이고 안 좋게 말하면 ‘눈치 본능’이자 ‘조직보호 본능’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에 못 미치는 의석을 얻는 데 그쳐 민감해진 상황이라 검찰이 ‘여야 황금비율’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당 의원을 많이 기소하면 여권으로부터 “챙겨줬더니 배신하네. 가뜩이나 의석 수도 적은데”라는 볼멘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야당 인사를 많이 기소하면 야권으로부터 “정치 검찰”로 비판받기 십상이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로비 의혹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정 대표를 도운 브로커 이모 씨는 정권 실세들과의 친분을 주변에 과시했다. 허풍일 가능성이 높지만 혹시라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게이트’로 비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정운호 이슈가 확대되면 선거사범 수사 이슈가 묻힐 수 있다. 검찰도 로비 대상으로 의심받는 마당이다. 검찰의 공신력이 실추될 위기다. 총선 수사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김수남 총장이 처음에 하도 서슬 퍼렇게 말하기에 총선 수사가 여의도에 A급 태풍을 몰고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한여름 산들바람에 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낙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