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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일 열애 끝 서울로 “저, 미친 거 맞죠?”

북한식당 女종업원과 서울대 출신 엔지니어 그 운명 같은 사랑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180일 열애 끝 서울로 “저, 미친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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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이다, ‘그녀’가 ‘그’를 만난 것은. ‘그녀’는 중국의 북한음식점에서 일했다. ‘그’는 서울대 공대 출신 대기업 엔지니어. 해안도시에서 나눈 180일간의 사랑은 불처럼 뜨거웠다. “나와 함께 한국 가서 살래요?” ‘그녀’는 북한식당을 탈출해 서울에 왔다. “미쳤었나 봐요. 저, 미친 거 맞죠?” ‘그녀’의 서울 살림은 행복해 보였다.
북한 여인과 한국 사내의, 180일간의 운명적인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같았다. 그녀는 중국 상하이(上海) 북한음식점에서 일했다. 강원도 원산이 고향이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재원. 앳된 얼굴을 가졌다. 미인이다. 목소리도 찰랑찰랑하다. 서울에 산다.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국경의 남쪽’ ‘따뜻한 남쪽 나라’로 몸을 옮겼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서울대 공대 출신 엔지니어. 대기업 A사 상하이지사에서 일했다. “나와 함께 한국 가서 살래요?”라고 말한 후 상하이 북한음식점에서 다롄(大連)으로 그녀를 탈출시켰다. 아내가 될 여인의 위조 여권을 만들었고, 그녀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렸다.

2016년 5월 그녀는 서울의 한 대안학교에서 탈북 어린이들을 가르친다. 대학원에서 공부도 한다. 남자는 A사를 나와 사립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의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는 그녀의 지인도, 남편의 친구도 잘 모른다. 신분 공개를 꺼린 터라 이 글에선 ‘그녀’ ‘그’로만 표기한다. 정확한 탈북 시점도 밝히지 않는다.

4월 5일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북한음식점 ‘류경’에서 일하던 종업원 13명이 탈출해 4월 7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의 집단탈북 이전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음식점 여종업원은 앞의 ‘그녀’와, 팝페라 가수로 활동하는 M씨 단 두 명이다. 4월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뒤뜰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와 ‘그녀’의 스토리가 공개되는 것은 이 기사가 처음이다.





“서울대가 뭐하는 덴데요?”

“70억분의 1의 인연이래요, 남편이. 자기를 하늘같이 모시라면서요. 땅같이 모실 생각 하지 말라나, 뭐라나. 아무튼 좋은 사람이에요.”  

▼ 지금은 그때처럼 설레지 않죠?

“그렇진 않아요. 남편, 못생겼어요.”

그녀가 스마트폰을 꺼내 대학교수 남편의 사진을 보여줬다.

“처음엔 남자가 저렇게 단순해도 되나 싶었어요. 공대 나오면 다 그래요? 한국 사람 아닌 줄 알았어요. 러시아 사람처럼 몸이 다부지고 코도 크거든요.”  

엄살이다. 사진 속 사내는 어딜 가든 눈에 띌 미남이다.  

▼ 멋쟁이신데요.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이가 처음에 북한식당에 와서는 ‘할아버지가 중국인’이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거의 매일 왔는데 처음엔 저 보러 온 건지 몰랐죠. 서울대 나왔다고 자랑을 막 하는 거예요. ‘거기가 뭐하는 덴데요?’ 하고 되물었죠. ‘나는 김대(김일성종합대)밖에 모른다’고 했더니 김대하고 똑같은 학교래요. 그래서 ‘김일성종합대학 명예를 훼손하지 마십시오’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렸죠.”

▼ 서울로 가자는 얘기는….   

“서울이라곤 안 했어요. ‘한국 가서 함께 살자’고…. 올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한국 경치를 보여줬어요. 여름에 오면 여름 풍경, 겨울에 오면 겨울 경치를요. 남산이 특히 예뻤어요. 하나원(북한이탈주민의 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소속기관)에서 나오자마자 남산에 가보자고 남편을 졸랐죠.”

▼ 가보니 어때요.

“케이블카 있고, 사람도 많고. 옥탑이 동그란 식당에서 밥 먹었어요. ‘맛없어, 너무 비싸’ 투덜거렸죠.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야경이 굉장히 예뻤어요. 남편이랑 전주, 여수 같은 관광지를 시간 날 때마다 쏘다녔어요. 한번은 남편이 프랑스엘 가재요. 흥분돼서 ‘나도 외국 가보는 거야?’ 했더니 한국에 프랑스가 있다는 거예요. ‘내가 바보냐’고 흘겼더니 정말로 있다는 겁니다.”

▼ 프랑스식당?

“가평에 ‘쁘띠프랑스’라고 테마파크가 있어요. 웃기죠.”  

▼ 서울 사니 좋아요?

“처음엔 후회했죠. 그놈의 ‘타이레놀’ 때문에….”  

그녀는 북한에서 중학교 국어 교사로 일했다. 한국에 와서는 서울의 한 공립초등학교에서 탈북 학생 담당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현재는 한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탈북 학생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노동당 입당 위해 중국으로

▼ 왜 북한음식점으로 일터를 옮겼나요.

“김일성 시대 때는 선생님이란 직업이 아주 좋았다고 해요. 경제가 곤두박질친 뒤 교사들이 못 먹고 못살았습니다. 배급제가 무너졌는데도 장마당에 나갈 수가 없었어요. 북한 경제가 좋아지면서 요즘엔 좀 괜찮아졌다더군요. 월급보다 과외비가 쏠쏠하대요. 잘사는 집 아이들 과외공부 해주고 돈 받는 거죠. 한국에선 초등학교 선생님이 최고 직업인 것 같아요. 오후 4시 30분이면 퇴근하던데요.”

▼ 북한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한국 애들은 말을 잘 안 들어요. 북한에선 학교에서 못 떠들거든요.”  

▼ 원래 질문으로 돌아갈게요. 돈 벌러 중국 간 거네요.

“아뇨. 노동당원 되려고 간 거예요. 먹고살 만한 이들이 해외에 나가 일합니다. 북한음식점에 파견되는 사람들이 누구라고 꼬집어 말할 순 없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선발되거든요. 대학 갓 졸업한 친구도 있고, 예술단 출신도 있고요. 다들 목적은 단 하나예요, 노동당 입당. 해외에서 일하면 국가에 공을 세운 거잖아요. 우선순위로 입당 추천을 해줘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목표는 입당밖에 없었어요.”

▼ 입당하면?

“승진 기회가 생기죠. 입당 못하면 ‘평민’이에요. 그냥 아줌마죠. 해외에 나가 일하려는 로비가 치열해요. 북한은 선발 과정에 공정성이 없거든요. 북한식당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거의 다 로비해서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북한의 정보기관과 노동당·내각·군 산하 기관 및 무역회사는 중국, 러시아,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의 관광지, 한국 교민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100개 넘는 북한음식점을 운영한다. 주요 고객은 한국인 사업가와 교민, 관광객이다. 중국인 손님도 적지 않다.

북한음식점은 기념품 코너를 두고 북한산 예술품(그림, 도자기)과 건강식품, 주류 등도 판다. 여성 종업원들은 ‘장군님의 노래’ ‘장군님 백마 타고 달리신다’ ‘강성부흥 아리랑’ 등의 노래를 부르며 체제를 선전한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선서한 이들이 바글대는 곳이다. 당국이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돈을 벌어 호구하고 상부에 돈을 바친다. 북한식당의 운영 시스템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타지에 나와서 일해도 월급은 없습니다. 한국에 오니 ‘인건비’라는 말이 있더군요. 북한에선 ‘노임’이라고 하는데, ‘생활비’란 표현을 더 많이 써요. 국가는 먹고살 만한 만큼의 생활비만 주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요. 해외에서 번 돈은 조국에 바쳐야 한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품은 적이 없어요. 양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와보니 인건비도 사람마다 차등화해 있더군요.”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어느 날 그이가 한국에 북한 사람이 많이 산다고 했어요. ‘흥, 이상한 소리 하네’ 하고 안 믿었죠. 조국을 배신하는 행위는 양심 있는 사람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죠.”

▼ 팁을 나눠 쓰진 않나요.

“그런 일 없어요. 고스란히 내놓죠. 10달러씩 떼어놓았다가 이따금 회식은 해요.”

▼ 매출은 얼마나?

“정확히는 모르죠. 돈을 아주 잘 벌었어요. 지배인이 만날 ‘간을 뽑아야 한다’고 했어요. ‘돈’을 뽑으란 소리예요. 손님이 북한에 대해 엉뚱한 얘길 하면 인상 쓰게 되거든요. 그럴 때 ‘인상 쓰지 말라’고 교육하죠. 배 관련 일하는 한국 사람이 팁을 팍팍 줬어요. 상하이항에 배를 댄 선장들은 100달러, 200달러씩 주죠, 팁으로만. 팁을 빼돌리려고 마음먹지도 않지만 돈을 숨겨둘 곳도 없어요.”


종업원 수집 자료, 평양에 보고

▼ 한국 드라마도 봤어요?

“네. 봤어요. 음식점에서 일하는 이들은 사상 단련도 하지만 문화교육도 해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눠 ‘간을 뽑으려면’ 말이 통해야 되잖아요. 요즘이라면 ‘송중기보다 유아인이 더 좋더라’는 식으로 대화하는 거죠.”  

정부는 2월 “해외 북한식당 출입을 자제해달라”고 국민에게 당부했다. 정보 당국은 북한음식점에서 벌어들인 돈이 북한 당국으로 흘러드는 데다 남측 인사를 상대로 한 정보 수집 공간으로도 악용된다고 관측한다. 국가안전보위부, 정찰총국, 225국 등 북한의 대남 공작기관이 일부 북한음식점을 직영한다고 설명한다. 정보 수집, 포섭 활동을 하는 대남 공작 거점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음식점 한 곳의 연평균 수익은 10만~30만 달러로 알려졌다. 이렇게 확보한 외화는 소속 기관에 ‘충성자금’으로 납부하거나 북한 공관 운영비로 사용된다. “룸을 갖춘 북한식당이 많다. 룸에서 새벽 2~3시까지 유흥을 즐긴다. 여성 두 명이 들어와 한 명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다른 한 명은 말벗 노릇을 한다”는 게 정보당국의 설명이다.

▼ 한국 정보 수집도 한다면서요.

“한국인 특기가, 술에 취하면 가족사부터 다 말해요. 스마트폰에 보관한 사진도 보여주고. 우리 아들은 어디서 일하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어떤 곳이고…. 한국 사람과 함께 사진 찍는 게 허락됐어요. 한국 손님들이 앞다퉈 사진을 찍는데, 그게 다 음식점 홍보잖아요. 무슨무슨 회사를 다닌다는데 우리가 알게 뭐예요. LG, 삼성쯤 돼야 ‘아, 그렇구나’ 하는 거죠.”

정보 당국은 “북한 식당이 CCTV, 도청장치 등을 활용해 각종 대남 정보를 확보하고 한국인의 명함, 사진, 언행을 수집해 평양으로 보고한다”고 밝힌다. 대화 내용은 물론 정치인에 대한 인물평, 여론 동향 등을 종업원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일보(日報) 형식으로 작성한다는 것이다.  



VIP 상대 ‘꽃값’ 영업

▼ 일일·주간·월간 보고를 한다고 들었어요.

“다 보고했어요. 접촉한 사람이 누군지 일일이 적어요. 그런데 정보 수집 활동의 기준이 뭐죠? 한국 사람들은 묻지 않아도 스스로 말하거든요. 명함 주면서 회사가 뭐하는 곳인지 다 말해줘요. 이름, 연락처, e메일 주소 등을 적은 후 명함을 딱 끼워 보고하죠. 손님을 국적별로도 나눠 정리해요. 어느 나라 사람이 많이 오는지, 특정 국가 사람은 어떤 음식을 주로 주문하는지 등을 통계 내는 겁니다. 예컨대 한국인은 술값과 팁, 중국인은 음식과 술이 주 관심사죠. 중국인의 테이블 당 매출이 더 많아요. 한국 사람은 딱 먹을 만큼만 주문합니다. 새로운 요리를 개발할 때도 보고한 내용이 활용되고요.”  

▼ 적극적 정보 수집은 아니다?

“관광객은 다음에 안 올 사람일 소지가 커 관심을 덜 주죠. 자주 올 것 같은 사람에게는 ‘선생님 회사는 뭘 생산해요?’ ‘월급은 얼마예요?’ 같은 질문을 일부러 해요. 월급이 얼마라고 답하면 ‘돈을 잘 버니 여기 밥값은 아무것도 아니겠네요’라는 식으로 치켜세워주고요. 손님에게 들은 얘기를 보고서에 쓰기는 합니다. 간접적 정보 수집이라고나 할까요.”

그녀가 “다른 형태의 음식점도 있다”면서 덧붙여 말했다.

“공간을 대여해 노래방 형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어요. 음식은 달랑 평양냉면 하나예요. 술만 팝니다. 방 안에 꽃들이 있는데, 그게 다 돈이에요. 공연을 잘해서 손님이 꽃을 하나 건네면 10만 원, 이런 식입니다. 술값 계산할 때 꽃값이 추가돼요.”

▼ 업태가 건전해 보이지 않는데요.

“상당히 예쁘고 모든 게 철저한 애들이 일해요. 어떻게 보면 선을 넘을 지점이 많은 곳이에요. 그래서 가족관계든 사상이든 완벽한 애들만 보냅니다. 얘들이 술은 절대 안 마셔요. 보통 북한음식점이 일반 고객을 상대한다면 그곳은 VIP를 상대한다고 보면 돼요. 새벽까지 공연이 이어지거든요. 그쪽에서 일하는 애들은 중국어도 아주 잘해요.”

▼ 종업원이 몇 명이었나요. 다들 악기를 다룬다던데요.

“스물세 명. 악기는 다 연주할 줄 알죠. 요샌 전자기타, 전자피아노를 많이 써요. 저 같은 경우 사범대는 악기가 필수거든요. 발풍금, 아코디언, 기타, 가야금….”

▼ 4월 초순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탈북해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열세 명이 다 함께 한국에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한 결심을 한 것 같아요.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말하면 가족이 가장 걱정되거든요. 북한에 사는 부모를 한국으로 데려오기가 어렵잖아요. 해외에 자식을 보내는 가정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잘살거든요. 내막은 잘 모르지만, 13명이 함께 대단한 선택을 했다는 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요. 이 대목에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언론에 탈북 사실을 공개한 건 정부가 정말로 잘못한 거예요. 북한에 남은 가족이 피해를 보거든요.”   

‘그녀’는 ‘그’의 도움으로 가족을 모두 한국에 데려왔다.



어머니, 오빠, 올케 탈북시켜

▼ 음식점 얘기는 여기까지만 해요. 서울 가는 비행기에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기억 안 나요. 남편은 저쪽에, 브로커는 이쪽에 앉고, 나는 여기 앉고…. 인천공항 도착하자마자 국정원에 잡혀 갔죠. 남편이 미리 브로커 알아보고 국정원에 알리고 다 했어요. 원산의 가족이 다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다 합쳐 7000만 원쯤 썼을 거예요. 비행기 태워주는 가격만 1000만 원이거든요.”

‘그’는 서울에 ‘그녀’를 남겨두고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서럽더라고요. 시댁에 나만 남겨두고 가버렸어요. 서울에 자주 오긴 했습니다. 남편이 회사에 얘길 했는지, 프랑스·미국 일로 업무를 바꿨어요. 그곳에 주재한 건 아니고 서너 달에 한 번씩 다녀오는 형태였고요.”

▼ 사랑 이야기가 영화 같습니다.  

“한번은, 아팠어요, 많이. 몸살로 아팠는데, 그이가 약을 건네줬어요. 타이레놀. 이게 뭔가 싶었죠. 약을 받아도 보고해야 하거든요. 나쁜 것 같기도 하고, 먹기도 싫은 겁니다. 화장실에 가서 알약 다 뜯고 종이도 찢어서 버렸어요. 또 한번 아팠거든요. 일을 못 나가고 숙소에서 쉬는데, 남편이 음식값을 계산하면서 저를 찾더래요. 사정을 얘기했더니 약을 사러 뛰어가더랍니다. 이번엔 중국 약을 사왔어요. 그다음 날부터 거의 매일 왔어요. 다 나았냐는 둥, 어쨌다는 둥. 한국 와서도 느낀 건데 외래 글자를 너무 많이 써요. 타이레놀이 뭔지 어떻게 알겠어요. 타이레놀 때문에 인생이 이 모양이 됐죠.”



남조선한테 당했구나…

▼ 연애는 어떻게, 얼마나 했어요.

“180일. 같이 시장도 둘러보고 백화점도 가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걷고요.”

해외 북한음식점에는 ‘외출비’ 제도가 있다.

“주재원이 누구랑 밖에서 식사하고 싶다고 요청해요. 손님이 외출비를 내고 데리고 나가는 거죠. 밥 먹고 들어온다 해놓고 남편이랑 데이트한 거죠.”

▼ 한국 남자도 가능해요?

“아뇨. 한국 남자 이름으로 외출을 신청하진 않죠. 한국 사람은 절대 안 돼요. 중국인을 대타로 내세웠어요.”  

▼ 어떻게 한국에 갈 결심을?

“미쳤었나 봐요. 저, 미친 거 맞죠?”

▼ 도망친 다롄에는 얼마나 머물렀나요.

“석 달. 낮에 외출 나갔다가 음식점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상하이역에서 곧바로 기차를 탔어요. 상하이에서 다롄이 정말로 멀더군요. 스무 시간은 걸린 것 같아요. 기차 안에서 ‘아차’ 싶더라고요.”

▼ 왜?

“남조선한테 당했구나 싶은 거예요. 다롄에 도착하자마자 상하이로 돌려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외출 나갔다가 없어졌는데 그걸 어떻게 설명해요. 그이는 회사 일 때문에 상하이에 남았고, 사람을 한 명 붙여줬거든요. 무서웠죠. 당했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미쳤던 게 맞아요.”

‘그’가 다니던 A사의 지사가 다롄에도 있었다.

“기차 탈 때까지는 미쳤다고 생각지 않았어요. 뭔가에 홀려 판단이 안 된 거죠. 일을 저지르고 난 후에 ‘아, 내가 미쳤구나’ 깨달았습니다. 어머니, 오빠, 새언니 얼굴이 떠올랐지만 되돌리지 못했네요.”

위조여권 만들고, 국정원에 알리고, 하는 일에 석 달가량 걸렸다. 하나원을 나온 후 시집에 들어가 살았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분가했다.    

“급여만 보면 대기업이 더 좋아요. 그런데 임원 진급을 못하면 옷을 벗고 그래야 한대요. 더 올라가는 게 확실하지 않으면 빨리 벗는 게 낫다고 생각해 남편이 직장을 대학으로 옮긴 거예요.”



‘탈북학생 코디네이터’ 1호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한국에서 좋은 분을 많이 만났어요. 북한에서 온 엘리트 분들과도 교류했고요. 하나원에서 나와 한 달 만에 초등학교에 취직했습니다. 교육부에서 자격을 검증했는데 영어 빼놓고는 다 잘 풀었어요. 수학시험도 잘 봤고요. 자랑 같기는 한데, 초등학교 탈북학생 전담 코디네이터 1호가 저예요. 지금은 코디네이터가 22명으로 늘었습니다. 언론은 안 좋은 얘기만 다루는데, 결혼 잘해 잘사는 탈북 여성 꽤 많아요. 아는 동생만 해도 통일부 사무관님과 결혼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남편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책도 한 권 냈다.

“정착 잘 했으니 사람만 만나지 말고 공부하라더군요. 학교 다니는 게 재밌어요. 탈북민 예절에 관련한 책도 한 권 썼습니다. 나중에 책 보여드릴 게요. 탈북민들이 한국 예절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장례식장에 빨간색 옷 입고 온 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탈북민에게 한국 예절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책으로 냈습니다.”

둘 사이에 아이는 아직 없다.  

“처음엔 속상했는데 마음을 비우니 괜찮아요. 학교에 가면 아이들 20명이 있거든요.”

그녀는 지난해 여름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일행과 함께 선양(瀋陽)의 북한음식점에 들렀다.  

“알아볼 사람이 없는데도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이 오락가락 바뀌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모자를 쓰고 들어갔죠. 일행이 ‘음심 값이 너무 비싸다’ ‘여기선 맛만 보고 딴 음식점에 가서 먹자’는데 서운하데요.”

그녀가 국경의 남쪽으로 몸을 옮긴 것은 신념이나 생활고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그’와 “다툰 적이 없다”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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