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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軍人’ 육군헌병 황◦◦

“소수의 악행보다 다수의 침묵이 아팠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소수의 악행보다 다수의 침묵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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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는 사람이 타고난 마음은 선하다고 말한다. 측은지심(惻隱之心, 다른 사람의 어려운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미워하고 부끄러워함), 사양지심(辭讓之心,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해냄). 유가(儒家)는, 사람은 이 네 가지 착한 마음을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는 도덕으로 구현한다고 가르친다.

사내는 상관의 명령으로 비위를 저지른 부하(박모 소령)의 어려운 처지를 불쌍히 여겼다. 정의로워야 할 군(軍) 조직에서 벌어진 정의롭지 못한 행위가 부끄러웠다. 옳고 그름을 따졌다. 겸손하고 의연했다. 인·의·예·지를 몸으로 실천한 이 사내의 미담(美談)은 다음과 같다.   

첫눈에 이 사내가 ‘그’라는 것을 알았다. 사복 차림인데도 매무새가 딱 군인이다. 골격이 큰 데다 몸도 다부지다. 육군사관학교 45기. 육군 헌병 병과의 선두주자였다. 1989년 소위로 임관한 후 초등군사반·고등군사반을 전(全) 병과 통틀어 수석으로 마쳤다. 장교들이 소령 때 등록하는 육군대학을 전체 차석으로 졸업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그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  



부정의에 밀려난 정의

수은주가 영하 14℃로 급강하한 지난 1월 19일 서울의 한 골목길에서 ‘그’와 마주쳤다. 그와 나는 저녁식사 장소로 가던 길이었다. 대학교수로 일하는, 기자와 그의 겹치는 지인이 밥자리를 주선했다. 그는 내가 나오는 걸 몰랐다. 명함을 받았다. ‘육군헌병 황◦◦.’ 부대 이름도 계급도 적혀 있지 않았다. △△부대 헌병대장. 계급은 중령이다. 올해 50세. 동기들이 ‘별’을 달기 시작했다.  



이모 전 준장이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 재직 때 저지른 일은 ‘비리 백화점’ 격이다. 병사들이 먹을 빵 구입비마저 횡령했다. 뒤탈을 걱정했는지 부하들에게는 “무조건 현금으로 확보하라”는 지시까지 했다. 이 전 준장이 나랏돈을 횡령할 때 사용한 수법은 비용 부풀려 지급한 후 되돌려받기, 리베이트 받기, 장병 격려금 가로채기, 헌병 수사관 활동비 빼돌리기 등이다.

황 중령은 이모 전 준장의 비리를 문제 삼은 내부고발자(whistle-blower)다. △△부대 헌병대장은 진급이 누락된 헌병 장교가 맡는 한직(閒職)이다. 청와대를 경호하는 33헌병대 제대장, 육군참모총장 경호대장, 국방부 조사본부 범죄정보1과장, 3군사령부 헌병대 수사과장, 51사단 헌병대장을 지낸 촉망받던 헌병장교가 불이익을 겪은 이유는 단 하나다. 정의롭지 못한 일에 눈감지 못하고 정의로운 길을 택해서다.

‘신동아’ 2013년 8월호는 ‘정의는 처벌, 부도덕은 면죄부’라는 제목으로 ‘황 중령 사건’을 보도했다. 신동아 보도 이후 “의인을 보호해야 군이 산다”는 제목의 칼럼(‘경향신문’ 2014년 10월 28일자) 등 다수의 기사가 황 중령 사건을 보도했으나 정의는 아직도 부정의에 밀려나 있다.  

대학교수 지인에게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그의 목소리’로 정의가 핍박받고 부정의가 득세한 목불인견의 사건을 ‘날것 그대로’ 알리고 싶어서다. 그는 ‘그 사건’으로 언론인을 만난 적이 없다. 그간 나온 기사들은 재판에 제출된 기록과 변호사의 증언을 토대로 삼았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면서 “한풀이할 생각 없다” “명예롭게 전역하겠다”고 했다. 밤늦도록 그와 정의와 부정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와 헤어진 뒤 그의 많은 얘기 중 딱 세 문장만 취재수첩에 적었다. 그중 하나가 “소수 악인(惡人)의 악행보다 다수 선인(善人)의 침묵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는 문장이다. 다수의 선인이 침묵하지 않고 행동할 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범의 눈빛으로 소처럼 걷다  

이◦◦ 전 준장 :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대령)으로 복무할 때 비리를 저지른 황 중령 사건 장본인. 비리가 고발됐는데도 육군 중앙수사단장으로 진급했다. 축소 수사 의혹이 불거진 후 육군 지휘부는 이 전 준장의 옷을 벗기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고발을 음해로 몰아붙이던 헌병 수사와 다르게 군 검찰은 “의혹이 제기된 횡령 부분에 대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으나 대부분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면서 “범죄 혐의가 드러난 이 전 준장은 민간 검찰에 이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 검찰이 확인한 횡령액만 4700만 원이었다.

이 전 준장이 군복을 벗으면서 사건은 검찰로 이첩됐으나 증거 불충분 등으로 내사 종결됐다. 비리 행위 관련자 대부분이 군에 있는 데다 자료가 불충분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 군 검찰이 이원화한 탓에 벌어진 일이다.



승◦◦ 전 소장 : 육군 중앙수사단장(준장) 시절 황 중령의 제보 편지를 수신한 인물로 군 검찰은 “이 전 준장의 범죄 혐의를 인지하고서도 적시 수사에 착수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방부 장관에게 대상자를 의원 전역하는 조치로 사건 조기 종결을 유도하는 부적절한 건의를 했다”면서 “승 소장을 법령 준수의무 위반으로 징계 의뢰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범죄 수사에 나선 게 아니라 오히려 제보자를 속출해 처벌하는 데 열을 올린 승 전 소장은 국방부 조사본부장(소장)으로 영전해 명예롭게 전역했다. 전역 후 국방부 산하기관에 전관예우 격의 자리(국방과학연구소 전문위원)를 얻었으며 미국 헌병연대협회로부터 ‘마흐쇼세 훈장’을 받았다. 마흐쇼세 훈장은 헌병 관련 업무 수행 능력이 특출한 군인에게 수여한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황 중령 사건 때 국방부 장관이었다. 1차 조사에서 비리 당사자인 이 전 준장을 비호한 승 전 소장에게 2차 조사를 맡겼는데, 이는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 전 준장을 처벌하기는커녕 승 전 소장의 건의대로 이 전 준장을 상응하는 처벌 없이 전역시킨 것은 직무유기라는 지적이다. 덧붙여 공익 제보자를 징계하면 안 된다는 건의도 무시했다.

요컨대 정의를 추구한 이는 징계를 받고, 부도덕한 이들은 면죄부를 받은 황 중령 사건의 최고책임자인 것이다.

김관진 실장은 이 사건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걸쳐 국방부 장관을 지냈으며 현재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일한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했다”는 황 중령의 말이 ‘육군헌병 황◦◦’ 명함의 앞면에 적힌 좌우명 ‘虎視牛行(호시우행)’과 함께 뇌리에 오랫동안 남았다. 호랑이의 눈빛을 간직한 채 소처럼 우직하게 간다…. 그는 “밥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행복한 삶”이라고 했다.



 ‘공익 위한 불가피한 선택’

3월 9일 그를 다시 만났다. 앞서의 지인이 초청해 여럿이 모인 자리인데, 그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가 오는 줄 몰랐고, 묻지는 않았으나 그도 내가 오는 줄 몰랐을 것이다. 수오지심과 측은지심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육군헌병 황◦◦’ 명함의 뒷면에 적힌 ‘仁義禮智信’ 다섯 글자가 떠올라 명함지갑을 뒤적였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仁·義·禮·智 4단에 믿음(信)을 더한 것을 오상(五常)이라고 한다. 仁義禮智信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가 얼마나 될까.

2013년 신동아 보도 이후 그는 대법원에서 징계(육군은 정의로운 이를 처벌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짓을 했다) 취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적으로’는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이 전 준장의 지시를 거스르지 못하고 ‘범죄 행위’에 가담한 박모 소령이 고뇌 끝에 그간 있었던 일을 자신에게 털어놓은 것을 듣고(박 소령은 직접 제보할 자신이 없어 황 중령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측은지심, 수오지심을 느끼면서 이 전 준장을 고발한 황 중령은 “군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국방부와 육군은 “황 중령은 공익제보자”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의견도 무시했다.

다음은 황 중령 징계 사건을 다룬 법원 판결문의 한 대목이다.

“횡령 범죄자인 이○○(전 육군 준장)은 징계 회부되지 않고 국방부 검찰단 수사 이전에 의원 전역했고, 횡령 사실의 제보를 받고도 수사에 나아가지 않은 승○○(전 육군 소장)는 징계회부 됐으나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데 비해 원고는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경미한 규정 위반을 이유로 견책 처분을 받아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게 되는 처지에 놓인 바 (…).”

황 중령의 징계 사유는 “개인 노트북으로 투서 작성” “지휘 계통에 따라 제보하지 않음” 등이다. 황 중령은 한국투명성기구가 주는 제13회 투명사회상을 받았다. 법원 판결과 수상 등으로 최소한의 명예회복은 했으나 정의는 아직도 외롭다. “다수 선인의 침묵이 나를 힘들게 했다”는 그의 말처럼 일부 군(軍) 선배들은 그를 마음으로는 아끼면서도 겉으로는 외면한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징계가 유효했기에 그는 진급 심사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정의로운 장교가 중령 계급으로 군문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부정의한 이들 탓에 말도 안 되는 징계를 받고 군인으로서의 앞날이 막히는 현실은 잘못됐다. 20대 국회에서 황 중령 사건이 다시금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당선인 중 일부가 이 사건을 재론하려 한다.



“자랑스럽다”

중령의 계급정년은 53세다. 그가 진급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워 보인다. 진급하지 못하면 3년 후 군복을 벗어야 한다. “사회 각 분야의 공익제보자 중 정년까지 복무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할 것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으니 “밥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행복한 삶” 아니겠는가.

황 중령에게 이 전 준장 비리를 제보한 박 소령은 올해 계급정년으로 군복을 벗는다. 박 소령도 ROTC 출신의 촉망받던 육군장교였다.  

황 중령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의 전형 격이다. 의인(義人)은 보복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다. 모른 척 눈감아야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간다. 그렇다고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버려야 성공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신동아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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