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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독립투쟁 불사” “외세 업고 反中행위”

‘원수지간’ 치닫는 홍콩인-중국인

  • 홍순도 | 아시아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mhhong1@daum.net

“무장 독립투쟁 불사” “외세 업고 反中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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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출산, 교통지옥

“무장 독립투쟁 불사” “외세 업고 反中행위”

홍콩 도심 야경.

양측이 이처럼 같은 나라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날카롭게 대립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홍콩인들은 중국에 귀속되기 전까지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만끽했다. 그런 홍콩인들은 기본적으로 통제 위주인 중국의 전체주의 시스템에 본능적으로 저항감을 갖는 것이다. 조금 과장되게 비유하자면, 오늘날 서울 시민들이 군부독재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홍콩인들은 영국 통치 시절에 뼛속 깊이 경험한 민주주의에 대해 깊은 향수를 갖고 있다. 팡창핑 런민(人民)대 정치학과 교수는 “홍콩 사람들은 156년 동안 영국의 통치 아래 있었으니 사회주의 체제에 길들기가 쉽지 않다. 영국 통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금 홍콩에선 ‘식민지 시절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중국에 주권이 반환된 이후 홍콩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불편을 겪고 있다. 본토 중국인 상당수는 자녀들의 홍콩 거주권을 노리고 홍콩 원정출산을 감행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연 3만~4만 명에 달한다. 이에 따라 홍콩 내 병상(病床)이 부족해졌다. 홍콩 정부는 급기야 2013년 원정출산을 금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연평균 1000명 가까운 솽페이(雙非, 부모 모두 非홍콩 시민인 중국인) 아이가 홍콩에서 태어난다.

700만 홍콩인의 처지에선 20만에 달하는 솽페이 아이들이 커다란 사회적 부담이 된다.  이 아이들은 홍콩 거주권을 갖고 있어 홍콩에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닌다. 당연히 여러 문제가 빈발한다. 10년 전 자녀를 홍콩에서 출산한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의 쉬즈화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재 선전 등지에서 홍콩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솽페이 아이가 5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이 집에서 홍콩의 학교로 통학하는 데는 보통 4~5시간이 걸린다. 부모 중 한 명이 따라다니면서 등하교를 보살펴야 한다. 이로 인해 선전-홍콩 도로는 그야말로 교통지옥이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홍콩인들이 입고 있다. 홍콩의 상당수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솽페이 아이들 탓에 교실 부족을 겪는다. 오죽했으면 홍콩의 학부모들이 화가 나서 시위에 나서겠나. 이런 현상이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지속될 듯하다.”



2008년 본토인들은 홍콩에 와서 분유를 몽땅 사들였다. 본토인들에 의한 이런 싹쓸이 쇼핑도 홍콩인들에겐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2008년 당시 중국에선 먹으면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 멜라닌이 함유된 분유가 시중에 유통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30만 명에 달하는 영유아가 피해를 보았다. 중국에서 자국산 분유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경제력이 있는 본토 부모들은 홍콩으로 눈을 돌렸다.



같은 민족 맞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분유가 바로 품절된 것이다. 가격도 폭등했다. 영유아를 둔 홍콩의 부모들은 분유를 구하느라 과거 경험해보지 못한 생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홍콩 시민 궈위안타이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지금도 치가 떨린다. 둘째 아이가 당시 태어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본토인들이 분유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분유를 찾아 온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생업은 뒷전이었다”고 분노했다.

본토인들은 홍콩의 부동산도 앞다퉈 사들였다. 1970~80년대 서울 강남의 복부인 열풍은 저리가라였다. 이 바람에 홍콩의 집값과 임대료가 폭등했다. 10년 전에 비해 평균 200%가 올랐다고 한다. 웬만큼 잘산다는 홍콩의 중산층도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가 됐다. 20~30대 젊은층은 임차해 살 집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홍콩의 서민들은 닭장 같은 집에서 사는 게 일상이 됐다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이게 다 본토인들 탓’이라는 반중, 반본토 정서를 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주권 반환 이후 홍콩 경제는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부유한 홍콩인 중 상당수는 돈을 싸들고 해외로 이주했다. 지난 3년 동안 해외 이민 신청자는 해마다 20~25%씩 증가하면서 연 10만 명을 훌쩍 넘겼다. 자본 유출이 두드러졌다. 지금도 상황은 좋지 않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4%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1~2%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홍콩인은 “앞으로 거시경제를 비롯한 모든 부문이 중국에 더 종속될 것이고 그러면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관한다. 향후 홍콩인들이 경제 침체의 책임을 중국에 돌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홍콩인과 본토인 간엔 원래 이질적인 요소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중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홍콩인과 본토인은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중국인인데 뭐가 다르단 말이냐”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홍콩인과 본토인은 같은 민족이 맞나 싶을 만큼 체형이나 생김새가 다르다. 어떻게 보면, 민족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홍콩인의 상당수는 역사적으로 한족(漢族)에 의해 오랑캐 취급을 받던 광둥성 출신이거나 그들의 후예다. 언어도 다르다. 중국 표준어(普通話)와 광둥어를 쓰는 본토인과 홍콩 토박이가 만나 대화하면 중간에 통역이 있어야 한다. 이 정도면 언어가 같다고 하긴 힘들다.

‘10리를 가면 풍경이 다르고, 100리를 가면 풍습이 다르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홍콩과 베이징의 문화적 차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평균적으로 본토인들은 느긋한 데 비해 홍콩인들은 다혈질에다 직선적인 스타일이다.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 홍콩인은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 서구 문화의 영향 속에서 자라왔다. 반면 본토인은 통제, 공산당 독재, 사회주의, 중화사상에 물들어 있다. 결정적으로 홍콩인은 자신을 피해자로, 본토인을 가해자로 여긴다. 홍콩인이 본토인에게 동질감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중국 정부와 본토인들이라고 홍콩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없다. 대표적인 불만은 ‘여전히 많은 홍콩인이 중국의 품에 안기기를 거부하고 영국 통치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점이다. 한 베이징 시민은 “입양 보낸 자식을 되찾아왔더니 친부모보다 양부모를 더 좋아하는 셈”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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