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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박정희 시대 100년

“박정희 버려야 보수 정치가 산다”

박정희와 박정희의 유산을 향한 시선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박정희 버려야 보수 정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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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생 100년…근대화 혁명 주도자
  • ● “박정희도 옳고, 우리도 옳았다”
  • ● “땅을 덮는 업적, 하늘을 찌르는 죄악”
  • ● 민주·공화의 ‘2017년 체제’ 구성해야
양은 냄비를 손에 든 아이들이 사진 속에서 옥수숫가루 배급을 기다린다. 땟국으로 얼굴이 꾀죄죄하다. 빛바랜 사진 위에는 ‘1960년대 초 우리나라는 해외 원조 없이는 국가 재정을 지탱할 수 없었다’고 적혀 있다. 맞은편에는 5·16군사정변 때 혁명공약을 적은 액자가 걸려 있다.

지난 12월 6일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은 평일인 데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방문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박정희 100년’은 신화(神話)로 격상돼 있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고 청렴했으며 열심히 일했다”(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86).

“박정희가 없었다면 한국은 산업국가로 일어서지 못했다”(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1923~2015).





박정희가 없었다면…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은 △수출 주도형 경제 발전 △고속도로 건설 △새마을운동 △중화학공업 육성 △인간 박정희와 육영수 등 16개 범주로 나눠 박정희의 업적을 전시한다. ‘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라는 친필 휘호가 대미(大尾)다.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다. 2017년이 탄생 100돌이다.  

2016년 11월 2일 서울 종로구 세종홀에서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 정홍원(72) 전 국무총리는 출범식에서 “2017년 11월 14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리고 추억하는 축제의 장, ‘감사해요, 박정희’를 가슴에 새기는 희망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좌승희(69)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은 “난제에 부딪힌 국정의 해답을 박정희에게서 얻어야 한다”면서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이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고 주장했다.



절대 빈곤 돌파

이렇듯 박정희 100년을 기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박정희와 그의 시대’가 수난을 당한다.

12월 6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 박정희 흉상 주변은 을씨년스러웠다. 흉상의 박정희 얼굴에 빨간색 페인트가 뿌려져 있다. 전투복 깃의 소장 계급장 좌우와 가슴 부분에도 빨간 칠을 했다. 코는 둔기로 맞은 듯 흠집이 나 있다. 흉상을 떠받치는 좌대엔 ‘철거하라’는 빨간 글씨가 적혀 있다.

문래근린공원은 1961년 박정희가 5·16군사정변을 모의한 제6관구(수도방위사령부 전신) 터다. 1.8m 높이 좌대 위에 세워진 흉상은 소장 계급장을 단 박정희의 40대 때 모습을 재현했다. 이 지역에 사는 김민하(70) 씨는 박정희 흉상 훼손을 두고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분에게 뭐하는 짓이냐”면서 개탄했다.   

박정희는 한국 사회의 진영 다툼과 지역 대결의 중심에 서 있었다.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두고 나뉘어 다퉜다.

“대한민국 5000년 역사에 최초의 번영의 역사를 쓰신 불세출의 세계적 지도자”(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 “박정희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합친 정도의 위인”(언론인 정재욱) 같은 찬사, “공포와 욕망의 정치를 한 독재자”(한홍구 성공회대 교수·57) “일본군 장교에서 공산주의자로,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한 악마적 이기주의자”(최상천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65) 같은 악평이 엇갈린다.

소설가 김훈(68)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 시대는 그 업적이 온 땅을 덮는 동시에 그 죄악이 하늘을 찌른다고 생각한다. 땅을 덮는 업적과 하늘을 찌르는 죄악은 한국 현대사에 각인돼 있고, 또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윤성식(63) 고려대 교수는 “박정희 신화는 독재가 만든 역설”이라고 본다. 그는 “박정희 신화라는 미몽에서 벗어나자”면서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박정희는 분명 좋은 리더의 자질이 있고 경제 발전의 업적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박정희 신화에 걸맞은 사람은 아니다. 18년간 정권을 잡을 수 있었기에 업적을 남길 수 있었지, 헌법대로 8년만 대통령을 했더라면 박정희의 업적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독재로 장기 집권을 했기에 경제 발전의 업적을 몽땅 누릴 수 있었다. 박정희가 8년만 대통령을 하고 물러났더라면 후임 대통령과 경제 발전의 업적을 나눴어야 하고, 박정희 신화는 결코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 신화는 장기 독재가 만들어낸 역설이다.”

1979년 YH무역 노동자 신민당사 농성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인명진(70) 목사는 “박정희도 옳았고, 박정희에 반대한 우리도 옳았다”고 했다. “오늘날의 풍요가 박정희의 공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평중(60) 한신대 교수도 “박정희가 굉장한 객관적 성취를 남긴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 “근대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절대 빈곤을 돌파한 빛의 영역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은 근대화 혁명에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140개 가까운 나라 중 근대적 경제성장, 민주화, 교육의 고등화, 과학기술 선진화, 문화예술 다양화, 사회 다원화를 이뤄낸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자면서 근대화 혁명의 기획자, 주도자다. 다음은 남재희(82) 전 노동부 장관의 설명이다.


독버섯 함께 자랐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했다. 민주주의를 깨버리는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다른 것으로 보상해줘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로 근무할 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만주국 경제 개발의 총책임자였다. 만주국을 단순히 괴뢰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그 나름대로 새로운 국가 건설 이상이 있었다. 조선족, 만주족, 한족, 몽골족, 일본족 5족이 이상향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만주국에서 국가 건설 과정을 지켜봤다. 또한 장면 내각이 쿠데타 이전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놓은 게 있었다. 부도덕한 일에 대한 보상, 만주국에서의 경험, 장면 내각의 계획이 결합해 경제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면서 이병철, 정주영 같은 사람을 거점으로 키우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재벌이 적당히 큰 다음에 체크 앤드 밸런스(check & balance)를 할 장치를 만들어놓지 않은 상태에서 10·26을 맞았다는 점이다. 평생 집권할 줄 알았으니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종인이 설파하는 경제민주화라는 게 박정희가 마무리하지 못한 체크 앤드 밸런스를 하겠다는 것이다.”

근대화, 산업화의 뒤안에서 정경 유착과 인권 탄압의 독버섯이 자랐다. 체크 앤드 밸런스는 이뤄지지 않았다. 윤평중 교수는 △관료-재벌의 기득권 동맹 △권위주의적 통치 △구조화한 부정부패 △사회 양극화 △결과 지상주의 등이 지금껏 이어진 박정희 모델의 부정적 유산이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의 일탈 탓에 보수 정치가 흔들린다. 보수 정치 위기의 중심에도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영국 보수주의 철학자 로저 스크러튼은 “보수는 쓸모 있는 것을 지키려는 인간의 본능(‘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에서 인용)”이라고 설명하면서 “더 좋은 것을 찾는 것도 본능이기에 보수는 끊임없이 진보를 흡수한다”고 덧붙인다.   



악성 변종의 국가 공동화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 정치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인명진 목사는 “국정농단 사태로 박정희 패러다임이 소멸했다”고 단언하면서 “박정희주의를 버려야 보수 정치가 산다”고 강조했다.

윤평중 교수의 시각도 비슷하다.

“어마어마한 객관적 성취 탓에 지금껏 이어져온 박정희 모델이 촛불 혁명으로 붕괴했다. 박정희 모델을 넘어서지 못하면 박근혜와 같은 역사의 변종이나 기형이 재생산된다. 박정희의 빛은 빛대로 남기고 민주와 공화의 2017년 모델을 구성해야 한다.”   

김진현(80)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은 “박정희 체제와 함께 ‘87년 체제’도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고 본다. 그는 신동아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착적 근대화가 전개되면서 악성 변종의 국가공동화가 나타났다. 동양 전통의 혈연연대와 서양 근대의 개인주의, 자유주의가 만나 ‘자유로운 개인의 가족 같은 연대로 이뤄진 합리적, 다원적 사회 공동체’가 구축된 게 아니라 재벌왕조, 독선적 이념왕국, 혈연왕국으로 도착되고 변질됐다. 짧은 시간에 근대·현대로 돌진하면서 생긴 변종 현상인 도착적 근대화의 질주를 막아야 한다.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으로 미화하고, 민주화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미화하는 작태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기적 찬양론자들이 양극단에서 다툰다. 과거의 길, 즉 5·16(산업화), 6·29(민주화)의 길을 걷는 것은 죽는 길이다. 산업화, 민주화의 기적에 매달리는 현상 연장의 길은 죽은 길이다. 대한민국은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참회의 무대를 거쳐 대안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윤평중 교수도 “박정희 모델을 부수는 동시에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수 정치는 박정희 모델의 위계질서 사고, 성장 지상주의, 관(官) 주도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87년 체제 또한 재벌 권력의 확대와 검찰 권력 팽창을 견제하지 못했다. 성숙한 민주 공화정의 2017년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관념이 아닌 실제를 보자” 

화쟁(和諍)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도법 스님의 견해도 박정희를 평가하면서 귀담아들을 만하다.

“박정희가 진짜인가? 김대중이 진짜인가? 박정희가 가짜인가? 김대중이 가짜인가? 한쪽은 무조건 나쁘고, 한쪽은 무조건 좋다는 것은 관념일 뿐이다.

한국 사회는 실제가 아닌 관념을 두고 다툰다. 그렇다면 실제는 뭔가? 두 사람 다 장점, 단점이 있고, 공과(功過)가 있다. 제3의 지대가 넓어지면 각 진영이 실제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논쟁에 나서면서 관념으로 다툼하는 이들을 극단으로 쫓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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