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흔히 사회적 산물로 일컬어진다. 예술영화뿐 아니라 대중영화도 마찬가지다. ‘부산행’은 좀비라는 괴물이 무수히 등장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것은 과연 우리 사회의 어떤 변화된 현상을 반영하는 것일까.
1998년 ‘여고괴담’이 성공을 거둔 이후 한국 공포영화는 부침(浮沈)을 거듭했다. 해외에도 소개돼 일부 팬들과 평론가들이 ‘케이 호러(K-Horror)’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 ‘흉기로 난도질하는 연쇄살인마들’이 ‘죽은 여고생들’을 빠르게 대체한다. 이는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라는 토속적 신앙과 전통에 기댄 설정이 더 이상 우리 청년 관객들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는 점을 반영한다.
죽은 여고생 → 연쇄살인마
대중은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오원춘 같은 흉악범의 끔찍한 살인행각을 지속적으로 목격해왔다. 미디어는 잊을 만하면 ‘토막 난 변사체 발견’ 같은 소식을 전했다. 대중은 인상이 좋은 아저씨나 평범한 이웃이 어느 순간 살인마로 돌변할지 모른다는 잠재의식을 갖게 됐고, 연쇄살인마 영화는 이런 대중의 잠재의식을 파고들었다.사람이 아닌 괴물도 자주 등장하게 된다. ‘괴물’(봉준호)에서는 양서류를 닮은 거대한 수생동물이 등장하고 ‘박쥐’(박찬욱)엔 한국적 상황에 맞게 변형된 흡혈귀가 나온다. 이 괴물들은 상당히 과학적인 설정에 의해 나타나며, 대개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예기치 못한 재앙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점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행복을 안겨주기보다는 오히려 통제 불능의 심각한 위협을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사회는 미세먼지의 엄습, 메르스의 확산, 동일본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 등을 목도하면서 ‘세상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체감해 왔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서 좀비를 소재로 하는 한국 영화가 등장한다.
연쇄살인마, 흡혈귀, 좀비는 원래 ‘미드’라 불리는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들의 전통적인 소재였다. 한국인은 케이블방송 등을 통해 이런 미드를 자주 접하면서 차츰 좀비 문화에 익숙해졌다. 좀비는 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카리브 해 연안의 주술 문화와 관련이 깊다. 주술사가 시체들을 움직이게 해 큰 돌을 날라 성을 쌓게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런 움직이는 시체가 좀비로 불렸다.
좀비의 일반적 운동법칙
할리우드에서는 1932년에 나온 ‘화이트 좀비(White Zombie)’가 최초의 좀비 영화로 알려진다. 본격적 좀비 영화이자 후대 좀비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화는 1968년에 나온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이다. 좀비에겐 인격과 혼이 없고 오로지 식욕만 있다는 설정,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좀비가 된다는 설정, 좀비가 인간의 내장을 즐겨 파먹는다는 설정 등 영화 속 좀비의 일반적 운동법칙은 대개 이 영화에서 유래했다.이후 환경오염, 세균 감염, 다국적 기업 비밀 생화학실험의 실패, 혹은 인류가 알지 못하는 어떤 문제로 좀비가 나타난다는 설정이 추가돼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시리즈 영화나 ‘워킹데드(Walking Dead)’ 시리즈 드라마가 등장했다. 한국에선 1980년 만들어진 ‘괴시’(강범구)가 좀비 영화의 효시지만 흥행에 성공한 좀비 영화는 ‘부산행’이 최초다.
이혼한 엘리트 남성이 딸을 데리고 전처가 사는 부산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좀비에게 물린 여성이 급히 열차에 뛰어든 다음 폐쇄된 공간에서 승무원들과 승객들이 계속 좀비에게 물려 좀비가 되어간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늘 유사 가족 틀(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공통의 위기 상황에서 서로에게 위안을 얻고 가족애를 느낀다는 틀)을 제공한다. 살아남은 승객들은 계속 살아남으려면 좀비들로 득실대는 칸들을 통과해야 한다.
‘부산행’에서 주목할 만한 알레고리(allegory, 암시적 표현)는 열차와 도시다. 긴급 상황이 발생한 후 열차는 대전에서 정차하지만 대전도 이미 좀비들에게 점령된 것으로 나타난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의 대전은 수도권에 포함된다.
간신히 대전에서 벗어난 열차는 동대구역에서 선로가 봉쇄돼 멈춘다. 기관사는 승객들이 무궁화호 기차로 갈아타게끔 유도한다. 여기서부터는 수도권의 빠른 속도가 아닌 지방 도시의 느린 속도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전까지는 정신없이 버둥거렸지만 동대구역에서 무궁화호로 갈아탄 순간부터 과거를 회상한다. 영화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부산을 영화의 제목으로 올린 건 부산을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유일한 희망 내지 이상향으로 그려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좀비들의 속도다. ‘부산행’에서는 사람과 같은 속도로 달리는 좀비들이 등장한다. 이는 좀비들의 일반적인 운동법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 ‘워킹데드’에 이르기까지 좀비들은 늘 느리게 움직인다. ‘28일후’(대니 보일, 2002)나 ‘월드 오브 워 Z’(마크 포스터, 2013)의 빠르게 날뛰는 좀비는 할리우드 영화에선 예외적인 경우다.
‘부산행’의 ‘빠른 좀비’는 어떤 문제든 한번 흐름을 타면 사회 전반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쉽게 들끓는 사회’로서의 한국 사회를 표상한다. ‘부산행’에선 빠르게 달리는 좀비들로 인해 좀비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인간의 자기방어가 매우 취약해진다. 따라서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되는 감염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이는 개인의 운명과 사회 전체의 운명이 쉽게 동일시되는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맥락’과 닿아 있다. 외국의 영화 팬들은 이러한 한국의 빠른 좀비들,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좀비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영화의 스피드와 긴박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뉴스와 정부에 대한 불신
‘부산행’에서 뉴스는 거리에 가득 찬 좀비들을 폭도라고 말하는 정부 발표를 보도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뉴스와 정부가 현실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잘 보여준다. 승객들은 뉴스에서 자기 삶과의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하며, 얼마 안 가 자신이 뉴스 속 상황에 처한다는 점도 알지 못한다.노광우
● 1969년 서울 출생
●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 논문 :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