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안부 추모공원 비석 247명 이름 공개 논란
- “추모공원에서 인권침해…모순”
- 日 오키나와 ‘평화의 초석’ 조성 사례 참고할 만
“피해자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이름을 새겼다면 문제가 있다. 피해자들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우리들의 기억을 만든 게 아닐까. 피해자들을 위한 기억인지 피해자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사람들의 기억인지 불분명하다.”
11월 12일 서울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 워킹투어에 참가한 시민들이 이렇게 문제 제기를 하며 기자에게 기억의 터 취재를 요청했다. 기억의 터를 둘러본 이들은 “시민이 돈을 모아 세운 위안부 추모공원에서 위안부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모순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억의 터에는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두 작품이 있다.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의 이름, 할머니들의 시기별 증언, 고(故)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이 새겨졌다. ‘세상의 배꼽’에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글귀를 한글, 일본어, 영어, 중국어로 새겼다. 성금을 낸 시민들을 기억하는 기념비도 있다.
“‘위’자만 들어도 경기”
기억의 터는 국내 최초의 위안부 추모공원(1200㎡ 규모)으로 서울시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세웠다. 서울시는 부지를, 추진위는 국민 1만9755명으로부터 3억4712만 원을 모금해 건립 기금을 마련했다. 2015년 구성된 추진위는 서울시와 부지를 물색해 서울 남산 통감관저 터에 조성키로 확정했다. 이후 2016년 6월 21일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했고 8월 29일 제막식이 열렸다. 한일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1910년 8월 29일을 되새겼다.이날 행사엔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최영희 기억의 터 추진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양준욱 서울시의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민 한국노총위원장을 비롯해 많은 시민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고통스러운 식민통치의 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런 기억의 터를 마련하고 제막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더 한심한 것은 정부의 태도다. 할머니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고 진정한 사과다. 이런 힘으로 우리가 다시 진정한 광복을 찾는 노력이 지속됐으면 좋겠다. 이 공원은 서울시가 잘 관리하고 가꿔가겠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서울시의 ‘소셜방송 라이브 서울’을 통해 추모공원 추진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으로 가장 핫이슈가 된 인권 문제의 상징인데도 그 흔한 메모리얼파크 하나 없다는 양심의 가책이 있었다”며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들께 ‘이것은 우리들의 약속입니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는 약속의 표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위안부 피해자나 가족은 왜 기억의 터에 이름이 각인된 것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당사자들이 기억의 터에 이름이 새겨진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설사 알더라도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나는 걸 꺼려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위안부 피해자와 가족을 수소문했다.
장모가 위안부 피해자라고 밝힌 한 남성은 “나는 간접적인 피해자이지만 집사람은 위안부의 ‘위’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켜 인터뷰가 불가능하다”며 비석에 이름을 새긴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누가 거기에 이름 새긴 걸 좋아하겠나. 정치인, 시민단체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그렇게 해놓은 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당신 엄마가 위안부인데 비석에 이름을 새기면 좋겠나. 이건 유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이다. 집사람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나한테 인터뷰하지 말라고 하더라. 우리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위안부를 잊어주면 좋겠다.”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
하지만 취재 결과, 증언집에는 익명으로 수록된 위안부 피해자가 기억의 터 비석에는 실명으로 새겨진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락이 닿은 또 다른 위안부 가족은 “증언집에 이름을 기록하는 것과 비석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억의 터가 들어선다는 얘기도, 이름을 새긴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면서 절차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시민단체를 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위안부 문제는 몇몇 사람이 주도한다. 생존한 할머니들, 유가족들의 의견이 동일하지 않은데도 하나의 목소리로 나온다. 이 일은 생존자와 유가족의 의사를 묻고 진행했어야 했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 오키나와 ‘평화의 초석’ 조성 사례를 본보기로 들었다. 평화의 초석 추진위 측은 전쟁 중 사망한 군인, 민간인의 이름을 새기기 위해 신문광고를 내고 유족을 직접 만나 동의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비석에 이름을 새겼다. 남 연구위원은 “추모공원을 추진한 분들은 피해자 개개인과 시민 개개인이 만날 수 있는 ‘고리’를 만들기 위해 피해자의 ‘이름’을 적었을 것”이라면서도 “피해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분도 있을 테니 이 문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