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기밀 분류체계상 한국에 불리
- 日, 한국 승인 없이 한반도 개입 여지
- 한미동맹의 ‘동북아 지역軍’ 시발점
- 다음 정부는 협정 연장 거부해야
지난 11월 23일 많은 논란에도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됐다. 이는 한국이 광복 후 최초로 일본과 맺은 군사협정이다. 2012년엔 체결 직전에 무산됐는데, 이번에는 국정 공백 상황에서 졸속으로 추진·결정되고 말았다.
협정 체결을 주도해온 국방부와 이를 지지하는 측의 논리는 3가지로 모아지는 것 같다. △점증하는 북한 핵무기 및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의 정보자산을 제공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우수한 대북 정보자산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다른 32개 국과 유럽연합(EU)을 포함해 총 33건의 군사정보보호협약을 맺었기에 일본과도 맺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 각각의 논리는 심각한 허점을 내포했으며, 상호모순도 발견된다. 먼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의 첨단 정보자산을 제공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논리는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다른 목적을 가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손해 보는 교환관계
게다가 한일 양국은 군사기밀 등급 분류 방식이 달라서 교환할 정보의 수준이 다를 수 있는데, 현재 양국의 분류체계상 한국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일본이 제공할 방위 관련 비밀정보는 한국의 대외비 정도 수준으로 저급에 해당하는 데 비해 한국이 일본에 제공할 정보는 고급 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을 만한 정보는 큰 실익이 없는 반면 한국이 일본에 제공하게 될 정보의 수준은 높은, 손해 나는 교환관계가 성립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본의 정보자산이 한국의 그것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은 일부분 타당하지만, 이런 주장을 대북 정보엔 적용하기 어렵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대북 정보는 한국이 우위에 있다. 정보자산은 기술적 정보자산, 지리적 정보자산, 인적 정보자산 등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일본이 우리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기술적 정보자산에 한정된다. 일본의 군사위성 4기, 자체 개발한 탐지거리 1000km 이상의 지상 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77대 등이 그 토대다.
하지만 단순한 양적·기술적 비교보다 그 이면을 봐야 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일본의 정보자산이 우리보다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을 우리가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기술적 대북 정보는 굳이 일본이 아닌 미국으로부터 제공받을 수도 있다.
또한 대북 지리적 정보자산은 북한과 지리적으로 근접한 한국이 우위에 있으며, 기술적 열세는 이러한 근접성으로 상쇄, 보완할 수 있다. 인적 정보자산은 두말할 나위없이 한국이 우위에 있다. 한국이 확보한 탈북자, 북·중 접경지역의 인적 네트워크 등은 일본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을 정보는 별로 없거나 낮은 수준인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정보를 일본에 제공하는 것이 어떻게 북핵 위협에 대한 효과적인 대비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일본이 협정에 적극적인 이유를 추적하면 의문은 쉽게 풀린다. 일본이 한국과 정보협정을 맺는 이유는 한·미·일 통합 미사일방어(MD) 체계 구축과 함께 자위대가 한반도에 개입하는 통로를 열어주는 계기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협정과 다르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2015년 4월 개정된 미일 안보 가이드라인의 일본 집단자위권 발동 조건에서 한반도를 명시하지 않고 ‘제3국’으로 애매모호하게 규정한 것 역시 북한 돌발상황이 닥쳤을 때 한국의 승인 없이 개입할 여지를 두려는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
한국이 이미 33개국과 협정을 체결했으므로 일본과 맺는 것이 문제될 게 없다는 국방부의 설명에도 반박의 여지가 있다. 우리 국민의 반일감정, 반성 없는 전범국가 일본과는 협정을 체결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협정으로 대단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그처럼 통상적인 협정이라면,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목적 때문에 체결을 서둘렀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통상적 협정이라고 하면서 일본의 고급 정보자산을 수집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모순이다.
또한 다른 국가들과 맺은 협정과 ‘틀이 같다’는 말이지, ‘체결하는 이유와 목적이 같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2001년 러시아와 맺은 협정의 목적은 무기 거래와 통상 확대였고, 2009년 아랍에미리트와 맺은 협정은 원전 수출이 그 목적이었다. 협정 체결 당시의 목적이 희미해진 지금은 이들 국가와 군사비밀 교환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한일 협정이 다른 나라들과 맺은 협정과 동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협정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 발생한다.
美 ‘네트워크 중심 대전략’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게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사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아시아 지역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더 나아가 미국의 대중 봉쇄를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 될 것이다. 결국 미사일방어체계의 관점에서 북한 또는 중국의 미사일 발사나 이동 정보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이 가장 먼저 파악해 일본과 미국에 순차적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이 대목에서, 미국 국방성의 이론가이며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국방장관 중 하나로 평가받는 애슈턴 카터의 2016년 6월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미국이 장기적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 이른바 ‘네트워크 중심의 대전략(Grand Strategy of Network Centrality)’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전 세계를 컴퓨터 통신망처럼 통합하겠다는 구상으로, 미국 미래 전략의 핵심을 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중동, 북아프리카, 유럽의 다양한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쌍무, 3자, 다자체제를 통한 중첩적이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대전략의 핵심이자 출발점이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이다.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통해 이를 구현하려 하고, 그 핵심이 한·미·일을 통합하는 지역 미사일방어이며, 이를 위해 사드 배치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미국은 MD가 독립된 무기체계가 아니라 수많은 촉수를 가진 통합 네트워크의 일부임을 거듭 시인하는데도 한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이를 부인한다. 사드 배치 결정 직전 방한한 프랭크 로즈 미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도 사드가 MD의 일부임을 확인한 바 있다. 그는 2016년 6월 16일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 강연에서 “MD는 미국 안보 공약의 핵심 요소”라며 “한국과 진행 중인 사드 배치 논의도 MD 협력의 일환”이라고 했다. “MD를 따로 떼서 보지 말고 북한과 같은 국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연합 방위능력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도 했다.
미일동맹 하부구조 편입
이번 협정에 대한 미국의 개입 또는 배후 압박을 의심하게 만드는 방증은 또 있다. 지난 10월 20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미·일 미사일경보훈련을 정례화하기로 했는데, 이는 MD와 밀접하게 연결된 훈련이며 그 사전 정지작업으로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체결돼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다. 따라서 한민구 국방장관의 해명처럼 한국의 사드와 한일정보보호협정이 미사일방어와 무관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드 배치 결정과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한미동맹이 대북 억지동맹에서 동북아 지역군으로 본격 전환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루비콘강이 될 수 있다. 또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 노력과 일본의 집단자위권 용인의 연결고리이며,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의 본격화를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한·미·일의 군사협력 강화는 결국 동맹과 통합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압박으로 지역 미사일방어체계와 미일동맹의 하부구조로 편입되는 것이다.
당장은 미군이 일본의 미사일을 통제하거나 미사일 방어를 통합 운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드나 이번 협정이 미사일 방어의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방향으로 가는 시발점이고 마치 영화 ‘부산행’의 좀비 열차처럼, 미일의 대중 봉쇄동맹의 열차에, 그것도 화물칸(미일동맹에 종속되는)에 올라타는 일이 될 수 있다.
더욱이 협정 체결의 필요성에 대해 백번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부적절한 시기에 졸속으로 이를 추진한 것은 정부 스스로 이 협정의 정당성을 부정했다고 볼 수 있다. 안보를 위해 정말 필요하다면 지금과 같은 국정 공백 상태가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 다각도로 따져보고, 위험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이득요소를 최대한 늘려서 하는 게 맞다.
더욱이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지속되고 중국의 대한(對韓) 제재가 본격화한 시점에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조치를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이어 이번 협정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협정 체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국방장관은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신중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안보의 위중함을 내세워 막무가내로 진행했다. 그사이에 북한의 위협이 더 커졌다는 근거가 있는가. 정부는 그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협정 체결 이면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朴 임기 내 기정사실화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의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대중 봉쇄를 위한 MD 기반의 한·미·일 군사협력이라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미래가 트럼프의 당선으로 다소 불투명해졌다. 게다가 한국 정부의 권력교체 가능성이 강력히 대두한 상황에서 미국 군부와 군수업체는 ‘우군’인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 임기 내에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싶었을 것이다.같은 시기에 나온 사드 조기 배치론도 마찬가지다.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매년 재개정이 가능하다. 다음 정권이 연장을 거부하는 것이 부담되겠으나 다각도로 검토한 후 연장 거부로 가야 한다.
김 준 형
● 연세대 정외과 졸업, 미국 조지워싱턴대 석·박사 (정치학)
● 現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장
● 저서 : ‘국제정치,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 ‘좋은정치란 어떤 것일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