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30분쯤 달리면 전형적인 시골 마을에 다다른다. 마을은 꽃으로, 나지막한 집들은 덤불로 장식돼 있다.
-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말밖엔 떠오르지 않는 이곳, 담쟁이덩굴로 덮인 2층집은 최첨단 현대미술관이다.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젠센은 사업가였지만 예술과 문화에 미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치즈 도매업으로 큰돈을 벌어 20세 때부터 독일,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영국 등지를 순회할 수 있었다. 덕분에 어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예술적, 문화적 견문도 쌓았다. 특히 미술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다. 23세 때부터 20여 년간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다가 42세인 1958년부터 1995년 은퇴할 때까지 40여 년간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인생을 바쳤다. 줄곧 관장을 맡았으며 미술관에 온갖 열정을 쏟아부었다.
젠센은 코펜하겐 북쪽의 바닷가에 땅을 마련한 후 풍광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곳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건축가들에게 자문했다. 이들은 젠센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미술관을 제안했다. 곧 3채의 건물을 지었는데 이것이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첫걸음이다. 1958년의 일이다. 이후 확장 공사를 거쳐 1991년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다.
‘루이스’들이 살던 곳
미술관은 미국의 루이지애나 주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곳에 빌라를 지은 땅 소유자가 세 여자와 결혼했는데, 특이하게도 아내들의 이름이 모두 루이스(Louise)여서 빌라 이름을 루이지애나로 했다는 것이다. 이후 새 주인이 된 젠센도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런 사연이 미술관을 기억하기 쉽게 만들었다.미술관을 처음 열었을 때는 덴마크 작품만 취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몇 년 경영하면서 젠센은 생각을 바꿨다. 취급 대상을 국제적인 작품으로 확대해갔다. 예술에는 국경이 없고, 이처럼 폭넓게 다룸으로써 덴마크의 예술 수준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봤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이곳은 덴마크를 넘어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화가들은 이 미술관에 자기 작품이 전시되거나 소장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긴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작품 3500여 점을 소장했다. 소장품의 핵심은 그림과 조각이다. 전시실도 많고 상설 전시 작품도 많다. 끊임없이 새 작품을 사들일 뿐만 아니라 특별전과 기획전도 연이어 개최한다. 소장품이 늘어 중요 작품만 상설 전시하고 나머지는 순환 전시한다. 전시 작품이 계속 바뀌는 데다 미술관의 분위기도 새로워지므로 와본 관람객도 다시 찾는다.
‘선물’이자 ‘모델’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철로변의 시골 풍경이 차창을 스치고 지나간다. 동북 방향으로 30여 분을 달리면 덴마크의 전형적인 작은 시골 마을에 다다른다. 훔레벡(Humlebaek)이라는 역이다. 마을은 온통 꽃으로 장식되고 집들은 한결같이 나지막한 덤불로 담장을 둘렀다.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말 외에 딱히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은 왜 이렇게 가꿀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마을을 가로질러 10여 분 걸어가니 담쟁이덩굴로 덮인 2층집이 나타났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이라고 쓰인 작은 간판이 미술관임을 알려줄 뿐 겉모습은 여느 주택이나 큰 차이가 없다. 집 앞에 놓인 몇 점의 조각품이 미술관이라는 것을 암시할 뿐이다.
건물 입구를 거쳐 뒤편 정원으로 가자 상황이 돌변했다. 별천지였다. 푸른 잔디가 드넓게 펼쳐지고 그 끝 언덕 너머로 파도가 철석거렸다. 잔디밭에는 알맞은 장소에 조각 작품들이 배치돼 있었고, 언저리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었다. 바다 건너편은 스웨덴이다.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기차역에서 이곳에 이르는 마을 길에도, 미술관 정원에도 관람객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1년에 7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은 세계인이 많이 찾는 미술관 목록에 들 뿐만 아니라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힌다. 알렉산더 칼더, 헨리 무어 등 유수의 조각가, 로이 폭스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 쟁쟁한 현대 화가들은 물론 동시대 작가들 작품을 물릴 정도로 감상할 수 있는 최첨단 현대미술관이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국가가 지원하는 민간 미술관이다. 국가 지원금이 예산의 4분의 1이고 나머지는 자체 수입과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미술관의 발전은 자체 수입 확보에 달렸다. 소장품을 늘려가면서 미술관의 품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돈이 끝없이 들어간다.
2012년엔 미술관 전속 웹-TV 채널, 2013년엔 음악방송도 만들었다. 2010년부터는 문학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세계에서 매년 문학가 40여 명이 참가하고, 관객이 1만 명 이상 모여드는 이 페스티벌은 예술·문화의 종합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술관 대부분은 그림이 핵심이고 조각은 부속물이다. 그러나 루이지애나는 조각공원에 미술관이 붙어 있는 것인지, 미술관에 조각을 전시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건물 안에 들어가려 하면 정원의 걸출한 조각들이 발목을 잡는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바깥의 조각들은 어느덧 잊어버리고 실내의 작품들로 황홀해진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도, 그곳을 벗어날 수도 없게 한다. 특히 헨리 무어(1898~1986)와 알렉산더 칼더(1898~1976) 작품은 유혹의 힘이 거세다. 그중에서도 ‘칼더 테라스’는 관람객을 강력하게 붙잡는 곳이다. 미술관에서 가장 전망이 좋을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칼더 작품 3점이 신비롭게 배치돼 있다. 두 점은 쌍둥이 같은 작품이고, 한 점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바일이다.
이곳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수많은 전시실을 둘러보며 피곤해진 몸에 원기를 준다. 미술관에 카페를 열었을 때 다른 미술관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큼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방문자들에겐 정신적 충만감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육체적 휴식도 필요했다. 루이지애나는 대중에게는 선물이었고, 다른 미술관에는 새 모델이 됐다. 발아래 파도 소리는 남은 전시실도 마저 둘러보라고 재촉한다. 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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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엔 ‘Figure in Landscape, 1977’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크기는 272.5×423cm나 된다. 왼쪽에 여인의 얼굴이 크게 그려진 것 말고는 무엇을 그린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일상에서 접하는 풍경들을 조합했기에 입체파 그림 같기도 하다.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흡인력이 대단한 것을 보면 심혈을 기울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리히텐슈타인은 미국의 팝아트 화가로서 1960년대에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제임스 로젠퀴스트 등과 함께 팝아트 운동을 일으켰다. 만화 같은 그림이라고 비판도 받았지만 “팝아트란 미국식의 그림 사조(思潮)만이 아니라 생활 속의 산업”이라고 반박하며 세상을 풍자했다. 팝아트는 미술 사조로 굳건히 자리 잡았고 미술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다.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의 ‘Nurse’가 1000억 원에 팔렸다.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A Closer Grand Canyon, 1998’도 크기가 205×744cm에 달한다. 한눈에 감상하기 힘든 규모다. 크기에서 벌써 그랜드캐니언이 느껴진다. 이런 작품을 여유 있게 걸 수 있는 미술관은 많지 않을 것이다. 루이지애나 미술관도 대형 전시실의 한쪽 벽에 이 작품만 걸어뒀다. 호크니는 그랜드캐니언을 바둑판처럼 나눈 후 이를 다시 연결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묘사했다.
호크니는 팝아트에 작품의 뿌리를 두면서 피카소, 마티스 등이 지닌 고전적 전통과 연결되는 작가다. 그는 그랜드캐니언의 풍경을 팝아트와 결합하는 시도를 감행했다. 호크니는 이 그림을 2점 그렸는데 하나는 호주 국립미술관에 있다. 이 작품은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루이지애나 컬렉션의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
‘귀족 사회민주주의자’
루이지애나 미술관 설립자 젠센은 덴마크인들에게 늘 미술관에 가보라고 말했다. 덴마크인이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덴마크에는 동시대 미술을 관람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젠센은 수십 년간에 걸쳐 수많은 전시회와 예술 활동을 이끌어내 문화 선진화를 이뤄냈다.
젠센은 엘리트 예술을 거부했다. 누구나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소신이었다. 젠센이 가장 큰 출판사를 인수해 전 세계의 중요한 현대문학 작품을 모두 출간한 것도 누구에게나 현대문학에 접근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귀족 사회민주주의자인 젠센은 모두가 귀족처럼 예술과 문학을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관람객과 예술품이 직접 대화해야 하므로 미술관의 목표는 대중에게 더 많은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walking man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자코메티 갤러리’는 젠센의 생각을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자코메티의 ‘walking man’은 미술관이 움직이는 곳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우리 모두 걷는다. 이것이 작품의 의미이자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개념이다. 걷는다는 것은 변한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우리도 변한다. 미술관도 변한다.
최 정 표
●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 저서 :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 재벌사 연구’ ‘공정거래정책 허와 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