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호

특집 | 崔·朴·탄핵 쇼크 이후

“보수세력 위기지만 난세에 영웅 나온다”

권영진 대구시장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16-12-20 15: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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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에게 길 제시해줄 인물 곧 등장”
    • “야당이 대선 승리? 정당보다 사람이 중요”
    • “헌법, 법률 어기면 대통령도 단죄해야”
    • “대구의 도약 위해 전심전력 중”
    요즘 여러 지방자치단체장이 대선 행보에 나선다.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같은 정치인 출신 단체장들은 목소리를 더 크게 낸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정치인(새누리당 의원) 출신 단체장이지만 조금 다른 길을 걷는 듯하다. 그는 대선 행보 대신 시민들과의 정책 토론을 즐긴다고 한다. 한국식 ‘타운홀 미팅’(여러 지역을 돌며 주민들과 직문직답으로 토론하는 모임)의 매력에 빠져 있는 듯했다. 첨단기업을 유치하고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일도 그의 관심 사안이다. 그에겐 ‘대구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도 동향(대구 달성) 출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대해선 단호했다. “새누리당이 너무 못하고 보수 세력이 위기에 처했지만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그의 말이 흥미로웠다. 최근 대구시청에서 권 시장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 다른 단체장도 그렇겠지만, 권 시장께선 자주 민생 현장을 찾아 시민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들었는데요. 지역 언론에서 호평한 것을 봤어요.





    회의실에서 가장 늦게 퇴장

    “날마다 갑니다.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구상하는 것으로는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없어요. 시민들에게 어떻게 수용되는지 늘 확인하면서 현장에 맞게 정책을 수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시민들에게 ‘시가 결정했으니 따르라’고 할 게 아니라 ‘함께 결정하자’고 해야 해요.”

    ▼ 그런 걸 협치(co-governance)라고 하더군요. 문제는 실천이겠죠.   

    “정치권에서 서로 다른 정당이 권력을 나눠 갖기 위해 의견을 맞추는 그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시와 시민들의 협치죠. 그러면 시장과 공무원들의 책임도 강해지지만 시민들의 책임도 커집니다. 자기들이 결정한 거니까 지켜야 할 의무도 커지는 거죠. 결국 좋은 공동체가 됩니다.

    저는 공무원들에게 현장에 자주 가라, 시민들과 협치하라고 말로만 하지 않아요. 제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죠. 63개 민원 현장에 ‘현장 소통 시장실’을 만들어 거기에서 시민들을 모시고 함께 문제를 듣고 토론하고 해결합니다. 때로는 개인적 요구와 시 전체 이익이 충돌할 때도 있지만 같이 경청하고 설득하죠.   

    우리 시 전체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의제들이 있는데요. 이런 걸 시민들과 함께 토론해 방향을 정해나가기 위해 ‘시민원탁회의’를 만들어 정례적으로 회의를 해요. 여기서 결정된 건 정책으로 예산으로 반영됩니다.”



    물, 에너지, 의료, 미래車…

    ▼ 회의에 끝까지 참석합니까. 다른 일정 때문에 중간에 나가진 않나요? 바쁜 일이 많을 텐데요.   

    “지금까지 열린 시민원탁회의에선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죠(이와 관련해 대구시 관계자는 ‘시장이 가장 늦게 회의실에서 퇴장한다’고 귀띔했다). 이전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설명해야 하고, 저의 새로운 의견도 밝혀야 하므로 제가 마지막까지 있어야죠.”

    ▼ 대구에 대해선, 어감이 좀 안 좋지만 ‘수구 꼴통’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정치권의 소장개혁파(새누리당 미래연대) 출신으로서 이런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대구는 창의와 혁신의 아이콘이었는데요. 국채보상운동, 2·28민중운동, 산업화, 지방분권…. 그러다 어느 날 정치가 지역주의로 찌들고 특정 정당이 독식하면서 대구에 그런 이미지가 덧씌워졌죠. 원래의 그걸 어떻게 다시 되살릴 것인가, 대구 변화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죠.”  

    ▼ 대구에 따라붙는 또 다른 오명이 ‘1인당 GRDP(지역 내 총생산) 전국 꼴찌’입니다. 다른 지역이 꼴찌로 내려가는 건 그 지역에는 안 좋은 일이지만, 대구가 언제쯤 꼴찌에서 벗어날 것으로 봅니까.

    “소득 수준으로 보면 대구가 전국 6위 정도는 되는데요, 1인당 GRDP로는 수치가 그렇게 나와요.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한 10년간 남들이 변할 때 여긴 별로 안 변했어요. 원단 중심의 섬유산업에 너무 오래 의존해왔어요. 그래서 250만 인구에 비해 생산량이 적게 된 거죠.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청년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청년이 빠져나가고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이 고리를 끊고 싶어요. 그래서 주력산업인 섬유, 자동차부품, 기계금속의 경쟁력을 강화해나가면서 물, 에너지, 의료, 미래형 자동차, 사물인터넷을 신성장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기존 산업단지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하고 그만한 규모의 새로운 산업단지를 만듭니다. 얼마 뒤 꼴찌 자리를 양보할 수 있을 것 같고요, 10년 후엔 ‘친환경 첨단 산업 도시’로 멋있게 바뀔 겁니다.”

    ▼ 대구는 내륙도시라 산업 발전에 핸디캡이 있지 않냐는 회의론도 있습니다. 동남권 신공항을 원하는 입지에 유치하지도 못했고요. 이런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구 시내에 있는 대구공항이 만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어요. 2003년 108만이던 이용객이 2016년 250만으로 늘었어요. 증가한 이용객의 89%가 해외여행객이죠. 2016년에만 7개의 외국 직항 노선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공항이 살아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밤이 즐거운 도시’

    ▼ 제조업도 중요하지만 관광산업이 지역경제에 주는 효과도 클 텐데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주로 오는 국제적 관광지라고 하면 서울, 제주, 부산 정도 아닐까요. 대구는….

    “2013년 대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0만 명이 조금 넘었어요. 사람이 모여드는 도시가 되려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서비스산업, 그중에서도 관광산업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2020년까지 내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외국인 관광객 2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어요. 숙박 기준으로 2014년 39만 명, 2015년 55만 명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5개년 계획까지 세워서요. 이를 위해 먼저 접근성을 높이려 했어요. 그래서 대구공항 활성화를 시도했는데 잘되고 있어요. 두 번째 대구만의 관광 포인트를 만들고자 합니다.”

    ▼ 그게 뭘까요.

    “‘밤이 즐거운 도시’죠.”

    권 시장은 이를 위해 서문시장에 국내 최대 야시장을 열도록 했다. 야시장엔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관광객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끌어왔다고 하는데 최근 서문시장에서 큰불이 나고 말았다. 대구시는 서문시장을 더 나은 모습으로 복구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주로 밤에 열린 치맥페스티벌, 컬러풀대구페스티벌도 많은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수성못 일대, 동성로, 앞산, 신천, 83타워, 팔공산 같은 시내 곳곳을 밤 문화의 명소로 만들고, ‘한국관광의 별’에 포함된 근대골목과 김광석골목도 전국적 관광지로 부각할 계획입니다. 대구 주변에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이 다섯 곳이나 있어요. 이걸 잘 엮어서 시너지 효과를 끌어올릴 생각이에요.”



    “삼성 비중 1%도 안 돼”

    다른 한편으로 대구는 박근혜 정부가 공을 들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처음 설립된 곳이다. 삼성이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돕는다. 이 사업이 잘되고 있는지 권 시장에게 물어봤다. 권 시장은 “기업의 창업을 적극 돕고 있고, 기업과 학교와 지자체 간 탄탄한 협업 체계를 만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슬로건과 무관하게 우리 방식의 창조경제 모델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답했다. 물 산업 클러스터에 16개 기업을 유치한 것, 미래형 자동차 생산기지에서 1t 전기자동차를 양산하기로 한 것, 국내외 일류 로봇 제조 기업들을 유치한 것, 삼성창조경제단지가 마무리된 것, 동대구 벤처밸리가 활성화하는 것, 수성 소프트웨어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것 등이 주요 성과라고 한다.

    ▼ 삼성이 신경을 좀 쓰던가요?

    “우리는 삼성에만 의존하지 않아요. 삼성이 일종의 마중물 역할 정도를 해주기를 기대했죠. 대기업은 대통령이 부탁하니까 마지못해 하고, 다음 대통령 들어오면 흐지부지되고…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보고 우리가 주인이 되어 창조경제사업을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삼성이 대구의 창조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떻게 보면 1%도 되지 않아요. 박근혜 정권과 관계없이, 삼성과 관계없이 저절로 갈 수 있게 하고 있어요.”

    ▼ 온 나라가 지금 최순실 사건 때문에 좀 시끄러운데요.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빚은 또 다른 참상이자 국가적 불행이죠. 과거에도 ‘6공 황태자’ ‘소통령’ ‘홍삼 트리오’ ‘봉하대군’ ‘영일대군’이 있었죠. 단지 분노로, 이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엄단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여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우선, 이 사건과 관련해, 헌법과 법을 어긴 사람에 대해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헌법과 법에 따라 단죄해야겠죠. 이와 함께 이번엔 여야가 ‘분권형 개헌’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헌 없이는 이런 역사가 더 처참하고 자극적인 형태로 반복될 것입니다. 정략적인 계산을 하는 정당은 역사에 배신을 하는 것이죠.”

    ▼ 분권형 개헌이라면.


    “두 가지예요. 지금까진 ‘대통령에게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분권만 얘기해왔어요. 미국 대통령제와 우리나라 대통령제가 어떻게 다르냐 하면, 미국은 연방제의 틀 속에서 권력이 지방으로 상당부분 분산돼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25년이 됐지만 여전히 정부가 거의 모든 권력을 틀어쥔 가운데 대통령이 그 권력의 정점에 있어요.

    헌법 전문에 우리나라는 분권국가라고 명시돼 있는데, 어떻게 보면 지방 분권이 우리에겐 더 시급하고 중요합니다, 지금 헌법은 지자체에 사무를 위임한다는 조항과 선거 조항 두 개밖에 없어요. 이참에 헌법을 개정해 재정에 대한 분권, 인사에 대한 분권, 입법에 대한 분권을 헌법에 명시해야 해요.”



    “기득권 지키려는 몸부림”

    ▼ 분권형 개헌을 그런 관점으로 볼 수도 있군요. 다만, 정치권에선 개헌 하면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중에 하나를 고르는 3지선다형으로 주로 생각하더라고요.  

    “그 문제와 관련해선 개인적으론 4년 중임제로 가는 게 옳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이번 사건(최순실 사건)을 보면서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방과 외교를 담당하는 대통령은 4년의 안정적인 임기를 보장받는 대신 내각은 잘못한 일이 있으면 해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 안정에는 더 나을 것 같아요.”

    ▼ 정치권이 탄핵·하야 정국에 대처해온 방법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는 아직 법치와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대통령에게 하야하라고 하는 것은, 국민이 그렇게 요구할 수는 있어요.”

    ▼ 야당의 일부 유력 대선주자는 박 대통령에게 즉각적 하야를 요구했죠.

    “대통령 하야 문제는 정치권이 논의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법치가 뿌리내리지 않은 시대에 독재 권력을 몰아내듯 하면 안 되죠. 탄핵 절차에 따라가는 것이 잘못을 치유하는 바른 과정이라고 봅니다. 이런 걸 무시하면 법치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없어요.”

    ▼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 간 대립도 심한 편인데요. 이참에 새누리당이 분당되는 것이 낫지 않으냐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선과도 연관되는 이슈이기도 하고요.

    “새누리당은 대통령을 만든 정당인데, 그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에 동참하게 됐어요.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저를 포함해서 새누리당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잘못한 것이라고 봐요. 이미 국민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계파 패거리 정치에 대해 심하게 회초리를 들었어요. 그 결과가 총선 참패였죠. 문제는 그렇게 혹독하게 심판받고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은 겁니다. 계속해 권력다툼하고 기득권 지키려 하니 버림받는 처지까지 온 거예요. 상황을 이렇게 만든 책임 있는 사람들이 당을 떠나지 않는 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봐요.”

    ▼ 그러나 책임 있는 사람들의 출당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그렇게 되지 않으면 새로운 보수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올 겁니다. 새누리당 안에도 있고, 새누리당 밖에도 개혁적 보수가 있다고 봐요. 새로운 보수 정당이 등장하는 것도 국민을 위해 나쁘지 않은 일이죠.”

    ▼ 새누리당 해체, 보수신당 창당….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면서 위기가 있었어요. 차떼기 정당 같은 거요. 그때마다 자정 능력을 발휘했죠. 지금은 그런 능력이 없어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밖에는 안 보여요.”

    ▼ 차기 대선은 해보나마나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지금 정당 체제로는 안 치러지겠죠. 어떤 정당이 집권하느냐보다는 어떤 가치와 정책을 가진 사람이 집권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새누리당이 위기를 겪고 있지만, 정치권도 새롭게 태어나야 해요. 보수적 가치 아래에서 안보, 성장, 양극화 해소, 국민통합 문제를 해결할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나라를 경영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리 정치권이 이런 세력을 만들어낼 역량을 발휘하면 좋겠어요.”  



    “자갈밭 소의 마음으로”

    ▼ 구심점이 될 만한 사람이 등장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 위기의 시점에 누군가는 국민에게 그 길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봐요. 한편으로는, 걸출한 영웅이 없더라도 그 뜻에 동의하는 지도자들이 많으므로 이들이 힘을 합쳐 그런 길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권영진 시장은 “요즘 석전경우(石田耕牛, 자갈밭을 경작하는 소)의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이게 내가 해야 할 도리”라고 말했다. 다른 자치단체장들이 ‘대권의 꿈’을 이야기하고 ‘촛불’을 논하지만, ‘GRDP 꼴찌 도시’의 시장은 이 도시의 도약이라는 힘든 일에 매진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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