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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리포트

인간 닮아가다 인간 밀어낼까

한·미·일 인공지능의 미래

  • 이한음 | 과학 칼럼니스트 lmglhu@hanmail.net

인간 닮아가다 인간 밀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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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라이(Mirai)’라는 악성 코드가 공유기 같은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감염시켜 독일 인터넷망에 장애를 일으켰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IoT 기기가 100만 대를 넘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보안 설정이 안 된 어느 카페의 무선공유기를 누군가가 해킹해 개인정보를 빼낼 수 있다는 경고는 옛날이야기가 된 듯하다. 수백만 대 기기에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온갖 짓을 할 수 있는데, 굳이 수고스럽게 공유기 한 대를 공격하려 애쓸 필요가 있을까. 해킹도 대규모 자동화시대에 접어들었다. 바로 ‘4차 산업혁명’의 토대인 만물의 지능화에 힘입어서다.

이런 걱정스러운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지만, 미래 먹거리인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침없는 물결에 비하면 사소한 일처럼 여겨진다. 레이 커즈와일이나 케빈 캘리 같은 기술혁명 전도사들은 어서 빨리 그 물결에 올라타라고 권한다. 어차피 올라탈 수밖에 없는데, 막차 타지 말라는 뜻이다.

거의 모든 사물은 영리하든 아둔하든 간에 지능을 갖추기 시작했다. 자동차, 에어컨, 건물 등 지능이 장착된 사물들은 유형물인 상품으로 남아 있지 않고 무형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칩을 집어넣어 인터넷으로 연결한 덕분이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도 그런 기기들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자료를 분석해 금맥으로 바꾸는 새로운 인공지능(AI) 기술을 계속 내놓는다.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아니, 구글조차 발전 속도를 못 따라가는 듯하다.





알파고 vs 딥젠고

지난 10여 년 동안 구글은 수십조 원을 AI 기업을 인수하거나 거기에 투자하는 데 썼다. 알파고를 개발한 기업 딥마인드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혹자는 그런 기업들이 개발한 AI 기술이란 게 수십 년 전 나온 원리를 토대로 한 것에 불과하며, 돈만 좀 투자하면 금방 따라잡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물론 선두주자가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야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기술 발전엔 가속도가 붙는 법이다.

2016년 AI계의 스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알파고다.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알파고는 3월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둬 4승 1패로 이겼다. 알파고는 이길 가능성이 적은 수를 제외하는 방식을 씀으로써 계산 효율을 높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차피 엄청난 컴퓨터 성능과 데이터를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으니, 굳이 그 점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바둑이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훨씬 많다고 해도, 지금의 컴퓨터 성능으로는 제한시간 내에 충분히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말을 한 데에는 아마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기술을 광고하려는 의도도 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실제로는 많은 대국을 통해 학습을 했다는 점이 더 중요한 기여를 했을 것이다. 바둑 기사가 많은 대국으로 경험을 쌓듯, 알파고의 토대인 인공 신경망도 학습을 통해 개선된다(기술 분야는 늘 새로운 용어를 창안해 자신의 기술이 새롭다는 점을 강조하느라 안달하는 듯하지만, 그 점에 불만인 이들도 있다. 알파고가 자랑하는 딥러닝 기술이 수십 년 전 개발된 인공 신경망의 변형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그렇다).

옛날 전자오락실 게임을 하는 AI가 한 예다. AI에게 게임을 잘하는 요령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가르친 사례가 있다. 처음엔 금방 죽더니, 게임을 하면 할수록 나아졌다. 나중엔 오락실에서 몇 년을 죽치고 있던 사람들조차 알아내지 못한 공략법까지 찾아냈다. AI에게 학습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말해주는 사례다.

지난 11월엔 일본에서 조치훈 9단과 ‘일본판 알파고’라고 할 만한 딥젠고의 대국이 벌어졌다. 조 9단이 2승 1패로 승리를 거뒀다. 결과만 보면, 딥젠고가 알파고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 때 약 2000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약 300개의 그래픽 처리장치(GPU, 주로 컴퓨터 게임에 쓰이는 그래픽을 처리하는 칩으로, AI의 급속한 발전은 GPU를 활용한 덕분이다)를 쓴 반면, 딥젠고는 컴퓨터 한 대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알파고는 수백 대의 컴퓨터를 돌렸고, 딥젠고는 한 대를 돌렸을 뿐이다.


왓슨 vs 엑소브레인

다만 딥젠고엔 기존에 널리 이용되던 바둑 프로그램에 딥러닝 기술을 얹었다. 따라서 알파고보다 경험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2017년쯤 둘이 붙어보면 흥미진진한 대국이 되지 않을까.

알파고가 국내에 부추긴 AI 열기에 힘입어 우리나라도 뭔가 성과를 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긴 하다. 일본의 AI 연구자들이 달려들어 9개월 만에 딥젠고의 실력을 아마추어 수준에서 최고의 프로 기사 수준으로 향상시켰으니,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최근 뉴스에 나온 내용은 좀 뜬금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엑소브레인이라는 AI가 EBS ‘장학퀴즈’에 출연해 쟁쟁한 퀴즈왕들과 경쟁해 이겼다는 기사다. 기사들은 엑소브레인을 IBM이 개발한 왓슨과 비교했다. 왓슨은 2011년 미국의 유명한 TV 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 출연해 퀴즈왕들을 물리친 바 있다. 300억 원 남짓 들여 개발한 엑소브레인이 1조 원 넘게 투자한 왓슨과 비슷한 능력을 지녔다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까.

하지만 왓슨과 엑소브레인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둘이 출연한 퀴즈쇼의 성격 자체가 달라서다. ‘장학퀴즈’는 “한글을 발명한 왕은?” 같은 단순한 지식을 묻는 퀴즈쇼다. 반면 ‘제퍼디!’엔 복잡한 질문이 많다. 지식과 직관, 단어 유희(遊戱) 등을 온갖 방식으로 비비 꼬아 질문한다. “힘든 시기였어요(Hard times), 정말로요! 1812년 2월 7일 미주리 주 뉴마드리드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거든요. 이 작가가 영국에서 태어난 날이죠. 누구일까요?”

즉 ‘장학퀴즈’의 질문은 네이버나 구글을 검색하면 곧바로 답이 나오는 것들이다. ‘제퍼디!’의 질문도 검색하면 답이 나오겠지만, 어떤 단어에 중요한 단서가 있는지 간파하고, 여러 가지로 조합을 해보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차이를 일부러 외면한 채 엑소브레인이 왓슨보다 정답률이 더 높다는 식으로 발표하는 행위는 기만에 가깝다. 연구진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그런 성과라도 발표해야만 하는 이 나라 연구 환경이 딱해서 하는 말이다.



인간은 AI에 밀려날까

더욱이 왓슨은 바로 그런 지식과 직관을 종합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여러 단서를 모아 비교, 분석해 종합적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필요한 일에 쓰기 위해서다. 현재 왓슨은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지만,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의학 진단이다. 왓슨은 환자의 증상을 보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나라에선 가천대 길병원이 최초로 도입해 이제 막 쓰기 시작했다. 국내 환자들의 질병 통계 지식을 습득할수록 점점 더 정확도는 높아질 것이고, 당연히 널리 쓰이게 될 것이다.

왓슨, 알파고, 딥젠고는 각각만 생각하면 놀랍게 여겨지지만, 이젠 AI의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한 상황이 됐다. 구글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면, 알아서 모아 파노라마 사진을 보여주고 기념 동영상도 만들어준다. 페이스북은 검색만 하면 언제 누가 어디에서 찍은 사진이든 찾아준다. ‘제이슨 본’ 같은 시리즈 영화에 나오는 고도의 컴퓨터 실력을 갖춘 전문가와 강력한 첨단 장비 없이도 얼마든지 전 세계의 누구든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아마존은 ‘이 신발을 산 당신은 이런 상품들도 좋아할 겁니다’라는 추천 방식을 써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다. 아예 계산대 없이 AI가 알아서 구매 물품을 계산하는 매장도 시범적으로 열었다. 애플은 음성을 인식하는 AI 비서인 ‘시리(Siri)’를 통해 손가락으로 입력하는 수고를 크게 덜었다. 네이버와 구글을 비롯한 기업들은 AI 통번역 기술에도 힘을 쏟는다.

우리가 무심코 시간을 보내는 사이 AI는 이미 생활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국 기계에 밀려나지 않을까. 스티븐 호킹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인사들이 우려하듯, 기계가 인간을 몰아내거나 지배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장기적으론 어떨지 모르겠지만, 기술 전도사들은 그렇지 않은 사례들을 찾아냈다. 체스 대국이 대표적이다. 알파고보다 20년 앞서 IBM의 딥블루라는 컴퓨터는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그 뒤로 기계가 체스 선수들을 계속 이기자, 기계 대 인간의 대국은 시들해졌다. 모름지기 대국이란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둬야 재미있으니까.

낙심했던 카스파로프는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기계가 기존의 수많은 기보(棋譜)를 참조하면서 두는데, 사람이라고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프리스타일 체스 경기가 탄생했다. 기계든 사람이든 다 참가할 수 있는 경기다. 기계와 사람이 팀을 짤 수도 있고, 기계만으로 팀을 꾸릴 수도 있다. 물론 사람이 홀로 둘 수도 있다.

그 결과 흥미진진한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아예 컴퓨터처럼 두는 사람도 나타났다. 아마 머지않아 바둑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식으로 기계와 인간이 협력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기계에 밀려나지 않을 방법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다.


기계는 인간을 닮아갈까

기계는 인간을 전멸시키거나 지배할까. 기계는 인간을 닮아갈까. 이런 질문은 어쩌면 왓슨 같은 AI에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례, 즉 데이터가 없긴 하지만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 같은 역사적 사건을 사례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할 것이라 보는 이가 많다. 실리콘과 탄소라는, 바탕이 되는 원소조차 서로 다르니까. 하지만 우리는 기계를 점점 우리와 비슷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인간, 더 나아가 생물과 다른 원리를 토대로 기계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비행기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케치나 이카로스 신화가 말해주듯, 인류는 초기에 생물의 날개를 사례로 삼아 비행 능력을 얻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 같은 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을 써서 비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하여 빠르면서도 대규모 수송이 가능한 비행기가 나왔고, 생물이 쓰는 방식보다 이쪽이 더 효율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해졌다. 그런 견해는 초기에 컴퓨터 쪽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의 빠른 계산 능력을 따라가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식, 관찰력,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예전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들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한 산물인 생물이 경이로운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응용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물에 젖지 않는 연잎 표면, 정지 비행을 하는 벌새, 어디에든 달라붙는 도마뱀붙이의 발, 강력한 접착력을 지닌 홍합 등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즉 우리의 기계가 생물보다 뛰어난 게 아니라, 생물의 능력을 우리가 모방할 수 없었기에 그런 쪽으로 개발한 것뿐일 수도 있다.



‘판단’하는 AI

기계의 지능 쪽도 그렇다. 컴퓨터 성능 향상과 새로운 알고리듬 덕에 기계는 점점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운전이나 번역같이 복잡한 사고를 요하는 일은 기계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기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긴 것들을 사실상 확률과 통계로 변환시킬 수 있음을 알아냈다. 그 뒤로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빅데이터와 데이터 마이닝 등 대규모 자료를 확률적으로 처리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계는 점점 인간처럼 행동하고 있다.

물론 인공 신경망이 우리의 신경망을 모방했다지만, 다른 점이 많다. 이른바 기계 학습이라는 것을 하려면 데이터가 수십 개에 불과해도 수백 회나 반복해 계산해야 한다. 목표에 가까운 값이 나올 때까지 변수의 가중치를 이렇게저렇게 바꾸면서 계산을 되풀이한다. 사람은 그 정도까지 계산하지 않는다. 때론 대충 훑어보고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또 흔히 염두에 두지 않는 가장 큰 차이점은 에너지 사용량이다. 사무용으로 쓰는 저사양 컴퓨터도 우리 뇌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잡아먹는다. 수많은 일을 하는 우리 뇌와 비교조차 하기 힘든 수준인데도 그렇다. 이 점을 토대로 기계가 인간을 따라오려면 멀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면, AI는 점점 인간을 닮아가는 듯하다. 게다가 AI는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도 인간처럼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도 갖춰가고 있다. 우리는 첫인상만 보고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을 내리곤 한다. 이 불합리해 보이는 판단이 맞을 때도 많다. 19세기에 베이즈라는 수학자는 이 결정 방식을 확률수학 함수로 나타냈다. 최근의 AI엔 이 베이즈 알고리듬까지 도입되고 있다. 그래서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AI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인간처럼 말이다.

이렇게 보면, AI 연구자들이 기계의 판단 능력을 높이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듯 보인다. AI의 판단 능력이 높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그려진 미래는 어떨까. 그 미래엔 범죄 예방 프로그램이 있다. 죄를 저지를 사람을 미리 파악해 검거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범죄율은 거의 0으로 떨어진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미래

최근 중국 상하이자오퉁대 연구진은 그런 미래를 언뜻 보여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신경망에 범죄자와 일반인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학습을 시키자, AI가 사진만 보고도 무려 90%의 정확도로 범죄자를 식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입술의 곡선, 두 눈 사이의 거리, 입술 양끝과 코끝이 이루는 각도 등을 통해 AI가 범죄자를 식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세부적으로 좀 복잡한 사항들이 있긴 하지만, 이 방식이 정말로 먹힌다면 그냥 길거리의 폐쇄회로(CC)TV만으로도 얼마든지 범죄자, 아니 잠재적 범죄자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발전하면, 찾아온 손님을 보자마자 “네가 큰 죄를 저질렀구나” 하고 호통을 내지르는 점쟁이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AI가 좀 섬뜩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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