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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진정한 봄은 오지 않았다

갈라진 나라

  • 윤평중 | 한신대 철학과 교수 pjyoon@hs.ac.kr

진정한 봄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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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 전체가 호된 몸살을 앓고 있다. 겨울은 끝나가고 봄은 왔으되 진정한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받아 파면되는 비상사태 속에 ‘촛불’과 ‘맞불’(태극기)의 대립으로 표출된 상처가 깊다.
3월 10일의 헌법재판소 심판 결과는 8대 0 전원일치 탄핵 인용이었다. ‘맞불’ 쪽에선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불퇴전의 결기로 가득하다. 가정법이지만 헌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기각했다면 ‘혁명이 불가피하다’고 외치던 ‘촛불’은 어떻게 나왔을까. 탄핵 정국이 대선 정국으로 이행하면서 물리적 충돌은 차츰 잦아들 것이다. 그러나 촛불과 맞불의 대치가 야기한 정치공동체의 깊은 내상(內傷)을 치유하지 않고서는 통합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특히, 박사모 등의 탄핵불복종 운동으로 빚어지는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이냐가 어려운 숙제로 남았다. 기본 전제는 자명하다. 국민 기본권의 하나로서 탄핵에 반대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는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이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는 토대 위에서 비로소 자유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탄핵 반대 진영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수호하려는 대한민국 자체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지켜진다는 사실을 성찰해야 한다.

‘박사모’가 만약 헌법과 법률을 부인한다면, 나아가 만약 헌재 심판, 국회청문회, 검찰 수사, 특검 수사, 언론 보도에서 드러난 기본적 사실조차 부정하면서 폭력적 행동을 계속한다면, 대한민국을 부인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을 지킨다면서 대한민국의 뼈대인 헌법과 법률과 각종 헌법기관을 부정한다면 자기모순적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웅변보다 센 朴의 침묵

통합과 치유를 위한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탄핵안 기각을 확신한 만큼 탄핵 심판 직후 충격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때로 침묵이 웅변보다 더 센 발언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탄핵 이후 며칠간 박 전 대통령의 침묵이 그런 경우였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 수사과정뿐 아니라 헌재 탄핵 심판에서도 줄곧 결백을 주장했고 최종적 선고인 헌재 심판이 내려졌음에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3월 12일 청와대에서 퇴거해 사저로 들어가면서 남긴 간략한 대국민 메시지가 그런 추측을 증명한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이 말은 헌재 심판에 대한 승복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탄핵되었다’는 입장 표명과 다름없다. 이 메시지 어디에서도 헌재 심판에 대한 승복이나 국정농단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는 부재한다. 박 전 대통령이 실질적 불복행위를 통해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것이라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정치적 재기는커녕 나라를 어지럽히고 개인적으로도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에 제출한 최후 변론문 끝부분에서 “어떤 상황이 오든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고 공직자로서 국가와 국민에게 한 최후의 약속이므로 즉각 이행해야 마땅하다.

지금의 혼란과 분열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국정농단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헌재 판결에 승복하며 국민통합을 호소하는 메시지야말로 공인으로서 그의 최후 의무인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헌재 심판에 대한 실질적 불복을 겨냥하는 듯하다.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던진 정치적 호소로 비친다. 이런 점에서 갈라진 나라를 더욱 갈라지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엄정한 검찰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민심을 더 자극할 게 분명하다. 미래로 나아가야 할 대선 과정이 과거 청산으로 왜소화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의 사법화 

우리는 헌재 재판관 전원일치 탄핵 인용의 의미를 다시 새겨봐야 한다. 박 전 대통령 파면을 나라가 두 쪽으로 나뉜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볼 수 있겠지만 전혀 다른 시각으로 조망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비상사태조차 유혈사태를 겪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합리적 절차로 풀어가는 역량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을 광복 직후의 좌우대립이나 내전 상태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건 일종의 과잉 해석이다. 2017년의 탄핵은 주권재민과 법치주의, 삼권분립의 원칙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사태인 것이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제도정치권이 정치 고유의 조정 능력을 잃어버린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의회 내에서 풀어가야 할 정치권은 이번에도 문제 해결을 광장과 사법기관에 넘겨버렸다.

정치의 사법화 현상, 즉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에다가 중대 정치 이슈에 대한 최종 심판자 역할을 떠넘겨버리는 한국 정치의 무능은 혹독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헌재 심판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국민주권과 법치주의를 규정한 헌법이 박제화된 문서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들의 실생활에서 실천되고 구체적인 정치제도로 실행되어야 함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입니다”라는 구절이다. 이는 모든 헌법 교과서 제일 앞에 나오는 구절이지만 국가기관과 권력기관이 헌법과 국민 위에 군림해온 현실 때문에 때로 공허하게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문은 국민주권의 헌법정신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최고 최대의 원칙임을 생생하게 증명했다. 헌재 자체가 1987년 시민항쟁의 성과물인 데다 탄핵 심판은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이 민주주의에 불가결한 요소임을 시민교육 차원에서도 확고하게 입증했다.

촛불이든 맞불이든 박 전 대통령이든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태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저항권의 이름 아래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헌재 결정을 뒤엎겠다는 과격한 주장은 헌정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헌재 심판에 따라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헌재가 신성불가침은 아니지만…

헌재가 절대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리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여서가 결코 아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헌법기관이 헌법재판소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통합의 형성과 유지 및 법질서의 창설과 유지’를 맡은 헌법을 수호하는 뼈대가 헌재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흔들리면 법치도 흔들린다. 법치가 흔들리면 시민적 자유가 파괴되고 대한민국이 흔들리게 된다. 헌법재판소를 최초로 신설한 6공화국 자체가 오랜 군사권위주의 체제를 혁파한 87년 시민항쟁의 산물이다. 우리 스스로가 피와 땀으로 일군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의 성과를 형상화한 정치제도가 오늘의 헌정 질서인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있는 전 세계 96개국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헌재는 모범적 기구로 잘 기능해왔다. 헌재 결정을 거부하는 건 우리 자신의 역사적 성취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나 마찬가지다. 헌재는 법의 지배를 상징하는 기관이며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 크게 보아 법치주의는 시민적 기본권 보장과 법 앞의 만민 평등을 지향한다. 법 앞의 평등 원칙이 중요한 것은 통치자와 지배층이 법 ‘위’에 군림하는 걸 금지해야 법치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치(人治)가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사회여야 시민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 현대사는 법 위에 서려고 하는 통치자와 지배층을 법 ‘아래’ 놓는 고투(苦鬪) 과정이나 다름없다. 법을 초월하려 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속성과 지배층의 유전무죄 관행이 법치주의를 끊임없이 위협했다. 동아시아 전래 문명 속의 한반도에서는 법이 권력자의 통치를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통치자를 비롯한 지배층이 법을 가벼이 여기게 된 사회문화적 맥락이다. 법률가이기는커녕 한낱 법기술자에 불과한 김기춘·우병우 같은 사람들이 출세하고 재벌과 유력자들이 법망을 희롱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촛불 시민들의 절제가 필수적

형평과 정의의 구현으로서의 법이 아니라 통치를 위한 실정법이 득세하는 사회에선 권력자일수록 법을 지키지 않는다. 법기술자들이 법률 지식을 악용해 호가호위하기 일쑤다. 법이 정의를 구현한다는 공감대가 부족하면 법의 정당성에 대한 시민들의 믿음도 약화된다. 통치자와 지배층이 법을 무시하는 나라에선 법원과 검찰을 비롯한 국가기구의 신뢰도가 바닥을 친다. 경찰 지구대가 취객 난동의 현장이 되고 비상 출동한 119 대원이 얻어맞는 게 일상이 된다.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권력자부터 법을 준수해야 법치주의가 실현된다. 시민적 자유도 곧 법 ‘안’의 자유다. 이를 깨닫게 만드는 소중한 학습 기회가 곧 탄핵 사태다. 헌재를 민주 헌정 질서의 수호자로 만든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탄핵 과정에서 우리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조차 법의 아래에 있음을 증명했다.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를 헌법 절차에 따라 풀어가는 능력을 보여줬다. 이렇듯 한국 민주주의는 경탄할  만한 정치적 회복탄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우리는 법 안에서만 자유롭다. 법치주의는 우리도 살고 나라도 사는 단 하나의 길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인 것이다.

우리는 법치주의와 주권재민의 원칙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국론분열을 봉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촛불이나 맞불은 상대방 주장을 경청해야 하며,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적대시하는 행동을 자제해야 마땅하다. 헌법과 법률을 어기는 행위는 비판받아야 하고 때로 법적 처벌이 불가피하지만 합법적인 의사표현과 집회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특히 촛불 시민들의 절제가 필수적이다. 지금 시점에서 맞불을 든 대다수 태극기 시민들의 진정성과 애국심 자체를 희롱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맞불 시민들에게도 나름의 충정과 나라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진정한 통합의 과정이 출발할 수 있다. 태극기 시민들도 역지사지의 도량을 발휘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인의 책임도 막대하다. 정치인들은 정의실현과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적대감을 조장하고 국민을 갈라 치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 탄핵당한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국민을 적과 동지로 나누고 반대자와 비판자들을 배제했다. 이로 인해 국민적 상처가 깊어지고 국가적 에너지가 낭비됐다. 이런 점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특히 유력 대선주자들은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로 나서야 하고, 촛불이든 맞불이든 대중을 격발시키는 성격의 집회 참석을 중단해야 한다. 촛불과 맞불로 나타난 광장정치의 에너지를 정당정치와 국회 안으로 녹여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단번에 건설될 수 있다고 선전하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을 경계해야 한다. 명백한 반헌법적 범죄와 위법행위는 엄격히 처벌하되 모든 개혁정책의 주안점은 통합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적폐가 일거에 청산되고 발본색원될 수 있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이야말로 정의의 화신인 것처럼 외치며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는 식의 정치는 민주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민주주의는 결코 ‘적과 동지의 이분법’ 방식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협치와 연정을 본격화하지 않고서는 기본적인 국가 운영조차 불가능한 시대에 한국 사회는 진입했다.

갈라진 나라를 치유하는 통합의 리더십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새로운 리더는 공공성에 충실한 인물이어야 하며, 공공성이 그의 행동과 이력을 통해 검증된 인물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최대 문제점이 공공성의 결여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과 권력자들의 존재 이유는 공공성을 진작시키는 것이며 권력 행사 자체가 국가와 사회를 위한 데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대 실패는 국민이 위임한 공적 권력을 사사화(私事化)해 사적 이익을 도모한 데서 비롯되었다.



공화정과 비지배 자유

하지만 이는 박 전 대통령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상류층과 지도층에게 흔히 나타난다. 상류층이 누리는 명예와 권리에는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이 반드시 동행해야 하는 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공공성의 핵심이며 천하위공(天下爲公)은 공공성의 원리를 가리킨다. 공공성의 원칙을 정치철학적으로 표현하면 민주공화정의 사상이 되고, 한국 사회에 가장 시급한 구체적 정책으로 옮기면 격차사회 시정과 튼튼한 안보 위에 건설된 한반도 평화정책이 될 터이다.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공정한 대한민국’을 구현할 리더십이야말로 갈라진 한국 사회에 대한 처방전이다. 여기서 우리는 헌법 1조 1항 ‘공화정’의 의미에 대해 다시 성찰해야 한다. 공화정의 핵심 내용인 비지배 자유(non-dominant freedom)를 이루기 위해서는 양극화를 줄여 격차사회를 극복해야 한다. 공정한 격차는 장려하되 불공정한 격차를 줄이고 최소한의 인간 존엄권이 보장되는 사회만이 진정한 시민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 법 앞의 평등을 실천하는 법치주의는 공화정의 또 다른 본질이다. 나아가 혈통이 아니라 헌법정신에 대한 충성심이야말로 공화정이 강조하는 시민적 애국심의 원천이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건강함과 시민들의 주체적 역량이 고조되는 시기다. 한국 역사의 일대 호기(好機)다. 촛불과 탄핵을 통합 지향의 시민적 명예혁명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한국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넘어 제3의 국가 비전인 성숙한 민주공화정으로 가는 출발점이 바로 지금이다. 지나친 낙관론과 비관론을 절제하면서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 이 나라가 통합과 화해의 중(中)강국으로 격상되는 건 먼 미래의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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