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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제는 대선이다 - 안희정의 안보관·신상 검증

전대협 의장 指導한 주사파 막후… ‘남로당 박정희’처럼 조직원 불어

보수가 못 미더워하는 ‘반미청년회 이력’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전대협 의장 指導한 주사파 막후… ‘남로당 박정희’처럼 조직원 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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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체사상 확산·반미운동 조직화 이뤄내
  • ● 6월 항쟁·민주화 쟁취에 혁혁한 功
  • ● 文 대변인 김경수, 정청래는 자민통系
  • ● 우파 공동체주의 닮은 복지·노동觀, 행복론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미국 국부무 한국과장이 쓴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 한국어판이 2월 25일 출간됐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에서 반미주의가 다시 발생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①북한 변수: 진보 세력이 권력을 다시 얻으면 추진하려는 햇볕정책 2.0 ②중국 변수: 한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를 미국에 통합하는 문제에 대한 중국의 반대 ③일본 변수: 한국의 반일주의로 인한 일본에 대한 한미 간 격차로 한미동맹이 시험에 드는 것을 꼽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스트라우브 전 한국과장이 언급한 사안 중 ①북한 변수와 관련해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면서 포용정책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②중국 변수와 관련해선 “사드 배치 결정은 다음 정부로 미뤄야 한다”면서 유보적 태도를 보인다.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론적 발언을 두고도 논란이 일어날 만큼 문 전 대표를 불안해하는 보수 인사가 적잖다. ③일본 변수와 관련한 반일정서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한국인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문재인 전 대표와 다르다.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보수층이 적지 않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중국보다 미국을 먼저 방문하겠다”고 했으며, 사드 배치에 대해선 “한미동맹에 기초한 합의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신뢰할 만한 북한의 변화가 있어 국제 제재가 완화되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고도 했다. 미국에 종속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마저 상대적 안정감을 느낄 만한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학생운동 헤게모니 장악

안희정 지사는 198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국가관·안보관과 관련해 ‘반미청년회 이력’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주체사상’ ‘반미’가 그가 몸담은 민족해방(NL) 그룹을 상징한다. 사상은 종교와도 비슷한 측면이 있으며 전환이 이뤄지더라도 정서에는 잔향이 어린다. 안희정 지사는 “나의 사상은 확고하다. 나는 민주주의자다”라면서 이렇게 밝힌다. “그 누구도 내 젊은 날의 열정을 반성하라고 할 권리는 없다. 내 젊은 날을 스스로 부정하라는 이 색깔 공세에 나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안희정, ‘안희정의 함께, 혁명’에서 인용)  



안희정 지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힌 공인(公人)이므로 지나온 길을 서술하는 것은 언론 비평의 영역일 뿐 색깔 공세는 아니다.

대학가에 북한의 혁명론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983년 김상만 씨의 ‘예속과 함성’이 처음이다. ‘예속과 함성’은 현대사를 반미투쟁 역사로 서술했다.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 군부독재정권은 미국에 예속됐다고 봤다. 김씨는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검거된다.



전대협 의장은 ‘얼굴마담’

1980년대 중반 김영환 씨의 ‘강철서신’이 등장한다. 그는 1991년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으며 이듬해 민혁당을 창당했다. 북한에 환멸을 느껴 1997년 민혁당을 해체하고는 북한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김영환 씨와 정대화 씨(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다)가 1986년 구학련을 결성해 학생운동 주도권을 장악했다. 구학련은 산하에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를 두고 주체사상을 전파했다. 1986년 11월 김영환 씨 등 지도부가 검거돼 구학련이 와해되자 주사파 학생운동의 중심은 반미청년회로 넘어갔다.

반미청년회는 고려대 운동권 주도로 조직됐다. 조혁(노어노문학과 82학번) 씨, 안희정(철학과 83학번) 지사, 김태원(법대 83학번) 씨가 산파다. 조씨가 총책임자, 안 지사가 ‘조직’, 김씨가 ‘선전’을 맡았다. 조씨는 현재 라오스에서 관광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안희정 캠프’에 합류했다.

고려대 애국학생회가 반미청년회 모태다. 조혁 씨가 이끈 애국학생회가 1986년 각 대학 주사파 세력을 묶어 전국청년학생사상운동추진위원회(전사추위)를 결성하고 이 조직이 반미청년회로 발전했다. 조씨와 안 지사의 반미청년회는 김영환 씨의 구학련보다 운동 방향이 세련됐으며 방식도 진화했다. 구학련의 활동이 이념 중심의 서클 수준이던 반면 반미청년회는 전국단위 비합법조직을 구성해냈다. 학생운동을 대중운동으로 전환했으며 지하서클을 학생회 조직으로 편입했다.

1987년 전대협을 조직한 것도 반미청년회다. 이인영 민주당 의원, 오영식 전 의원이 1987년, 1988년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1기, 2기 의장을 맡은 것은 반미청년회가 막후에서 결정한 것이다. 우상호 민주당 원대대표가 전대협 1기 부의장(연세대 총학생회장), 임종석 전 의원이 전대협 3기 의장(한양대 총학생회장)을 맡은 것도 반미청년회 지도부의 의중을 따른 것이다.

‘전대협 의장’ ‘총학생회장’ 등은 비합법 조직인 반미청년회가 내세운 ‘얼굴마담’ 격이다. 안희정 지사가 이인영 1기 전대협 의장의 지도선이었다. 안 지사가 지도하고, 이 의원이 지도받는 관계였다.

안 지사는 이렇듯 주사파 지하조직인 반미청년회의 핵심에서 주체사상을 확산하고 반미운동을 조직화했다. 반미청년회가 주도한 학생운동이 대중운동으로 전환해 1987년 6월 항쟁을 견인했으므로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혁혁한 기여를 했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것이다.  


각자도생한 옛 동지들

반미청년회 중심의 학생운동은 6월 항쟁에서 승리한 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노선 혼란을 겪는다. 김대중(DJ)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두고 견해가 갈렸으나 지도부는 비판적 지지를 서둘러 선언했다. 2000년 총선에서 이인영 의원을 비롯한 86세대 운동권이 정치권에 들어간 데는 DJ가 가진 부채의식도 영향을 미쳤다. 동교동 구파의 최재승 전 의원이 반미청년회의 세례를 받은 86세대 운동권의 정치권 입성을 도왔다.   

안희정 지사는 1988년 2월 국가안전기획부에 검거됐다. 법원은 “반미청년회는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확정적 인식하에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과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노선을 한 점의 의문 없이 그들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이념을 펴기 위해 구성됐다”고 판시했다. 안 지사와 조혁, 김태원 씨 등이 검거된 후 반미청년회는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잃기 시작했다.  

주사파 학생운동의 주도권은 자민통으로 넘어갔다. 자민통은 1992년 상반기까지 전대협을 지도했다. 1990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이던 윤진호 씨, 자민통에 의해 전대협 의장(전남대 총학생회장)이 된 송갑석 씨 등이 자민통 지도 아래 활동했다.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는 김경수 의원, 양정철 씨와 정청래 전 의원 등이 자민통 계열이다.

1992년 자민통이 와해하면서 사상운동이 도태하고 합법적 대중운동 중심으로 NL이 개편된다. 사상운동을 지속한 세력 중 일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검사 시절 수사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등으로 와해된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민혁당 잔존파가 최근까지 주체사상을 고수한 독특한 그룹이다.

안희정 지사는 반미청년회가 와해될 때도 역할을 했다. 안기부 조사에서 비합법조직 지도부의 전례대로 묵비하지 않고 조직 구성과 동지들의 이름을 털어놓은 것이다. 안 지사가 이 일에 트라우마를 가졌다는 얘기가 있으며, 자신이 직접 지도한 이인영 의원과의 관계도 이 일 탓에 매끄럽지 않다는 말도 있으나 30년 전을 회고하는 후일담일 뿐일 것이다. 남로당원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향을 통해 동지들의 이름을 밝히며 목숨을 구한 것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으나 전후 관계가 다르다. 안 지사가 강조하는 진보-보수 대연정이 북한의 통일전선전술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 또한 억지스러워 보인다.

안희정 지사는 1989년 김영삼(YS)계의 김덕룡 의원 비서로 정치에 입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주군 격으로 선택했으나 반미청년회의 지도를 받은 이인영·우상호 의원, 오영식, 임종석 전 의원 등은 재야에서 활동하다 DJ가 만든 정당에 들어갔다. ‘문재인의 복심’으로 불린 최재성 전 의원과 김현 전 의원도 반미청년회의 영향력 아래에서 학생운동을 했으나 정치적 행로는 안 지사와 다르다. 안 지사를 포함한 86세대 정치인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각자도생한 것이다.



“전작권 환수” 등 自强 성향

안 지사가 ‘우클릭’ 한 것을 두고 다른 86세대 정치인과 달리 1989년부터 정치권에 입문한 것과 반미청년회가 와해되는 과정에서 역할을 한 게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으나 1980년대의 시점에서 오늘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반미청년회 주류는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중심의 엘리트 의식이 강했다. 정청래(건국대), 최재성(동국대) 전 의원 등은 전대협에서 비주류였다.

반미청년회 리더이던 조혁 씨는 1998년 ‘강철서신’ 김영환 씨와 손잡고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꾸린다. 조씨가 노선 전환에 나섰을 때 안 지사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소장 노무현)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조씨는 노선을 전환한 후에도 “나는 ‘관계형 좌파’(인맥이 좌파에 있다는 뜻)”라면서 옛 동지들과 교유했다. 조씨는 2002년 대선 때 안 지사 쪽 일을 도왔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안 지사 측근들은 조씨를 경계했으며 안 지사는 측근들 편을 들어줬다. 조씨가 라오스로 떠난 것은 이때 안희정 그룹에 받은 상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안다고 복수의 주사파 출신 인사가 말했다.

주사파 출신 인사들은 우파이건, 좌파이건 대체로 ‘민족주의’와 ‘자주자강’을 강조하고 남북통일 의지가 강한 경우가 많다. 우파로 이동한 이들은 ‘공동체주의자’인 예가 많다. 안 지사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는 자주국가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강조하는데, 전작권 환수는 자주국방과 관련한 것이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상대를 ‘악마화’ 함으로써 서로가 얻는 게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해야 우리의 발언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이 세계평화와 공동 발전을 위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힘써야 한다”는 식의 대미관을 가졌으며 중국과 관련해서는 “조공을 바치면 그들이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득세한 적이 있다”면서 민족주의 의식을 드러낸다. 노동관, 복지관, 행복론 등은 우파 공동체주의자의 그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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